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40) : 네안데르탈인 등장(4)

Que sais 2021. 2. 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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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진 진상>

1996년 영국 고생물학자인 브라이언 가디너와 앤드류 커런트10년에 걸친 조사 끝에 이 사건의 실제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아냈다. 그들은 대영박물관에 있던 오래된 상자에서 중대한 증거를 발견했다. 상자에 많은 뼈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산성 용액에 담근 후 오래되 보이게 하려고 망간과 철 산화물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것은 필트다운 두개골의 경우와 꼭 같았다. 트렁크에는 M. A. C. H.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19301040년대 대영박물관의 동물학관 책임자였던 힌틴 박사의 이니셜이었다.

힌틴이 왜 이런 조작에 가담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그는 1910년대 박물관에 자원해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박물관에 근무한 경력으로 당시의 상관인 아서 스미드 우드워드에게 고액의 월급을 요구했는데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힌턴은 필트다운을 조작한 후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우드워드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드워드는 필트다운 화석을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트다운인은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다 박물관이라는 전문인들의 분야이므로 그의 작품임이 탄로나지는 않았다. 더구나 힌턴이 비록 필트다운 화석을 조작했지만 추후에 어느 정도 자질을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굳이 진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사망한 후에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트렁크대영박물관 한 구석에 두었다는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영국의 인명사전 누가 누굴까에 자신의 관심사로 기록했던 것들 중에는 속임수라는 항목도 들어 있었다.

여하튼 고생물학자들은 이 사건으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고대 인류에 대한 연구와 확증을 위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모든 것을 검증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곧바로 새로운 연대 측정 기술이 개발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명된 새로운 연대측정 기술, C14을 이용하는 탄소연대측정법이 개발되자 가짜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필트다운 화석이 가짜임이 밝혀진 이후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다시 정밀 측정한 결과 두개골은 600, 턱뼈는 90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필트다운인의 진상은 밝혀졌지만 오늘날까지 많은 영역에서 큰 여파를 남긴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이크 올드필드1973년에 그의 첫 번째 앨범 튜블러 벨에서 원시인처럼 두드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필트다운인을 흉내냈다. 미국의 SF물 작가인 러브크레프트의 단편소설을 영화한 데이곤에서는 필트다운인의 후예들이 등장하며 2001년 영국의 폴티 타워시리즈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필트다운 겁쟁이로 묘사되는 반사회적인 방문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9년부터 필트다운 치킨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말은 당시 중국에서 발견된 아키오렙터 리아오닝겐시스라는 이름의 보조품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당시 중국에서 공룡과 조류 사이의 계보를 이어주는 1억2,500 년 된 자칭 잃어버린 고리가 발견되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대대적으로 게재되었다. 후에 닭 종류와 비슷한 화석과 공룡의 긴 꼬리를 인공적으로 붙인 것으로 밝혀졌고 이 사실은 엄격한 검증으로 유명한 <내셔널지오그래픽>치명적인 모욕을 안겨주었다. 2000<내셔널지오그래픽>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독자들에게 사과 했지만, 더욱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명성을 추락시킨 것은 게재하기 전모조품이라는 증거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컴퓨터 관련 업종자들에게는 필트다운은 나름의 의미를 준다. 애플사1994년에 출시한 파워매킨토시 6100컴퓨터에 코드네임으로 필트다운맨을 사용했고 애플컴퓨터게임인 마라톤2에 실제로 필트다운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는 진실이 아닌 전달 사항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아직도 가짜 유물 사건은 횡행

필트다운 유골이 가짜로 판명된 이상 필트다운인을 조작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20세기 초 과학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핵심으로 부각되었는데 이렇게 조작된 유물들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였는지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소 쉽게 설명된다. 필트다운 화석들이야말로 인류 진화에 대해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던 바로 그 대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가짜 유골이 바로 진화의 과정에서 두뇌 중심적 이론을 반영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범인이 사람들이 기대하고 원했던 것을 제공하여 대중 스스로가 함정에 빠져들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필트다운인은 영국인들의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다 오래된 민족의 역사를 갈망한 점에서 기인한 점도 있다. 필트다운 사건은 과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면과 함께 과학이 자체정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데 보다 큰 의의점을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트다운인의 유골이 가짜임으로 판명됨으로써 인류 진화의 전개직립보행이 먼저이고 두뇌의 발달은 그 이후에 진화되어 왔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비록 필트다운인에 의해 거의 40년 동안 인류의 선조 찾기에 혼선을 빚었지만 차후에는 그런 혼동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하튼 2의 필트다운 사건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가 있을까? 지금은 유기물질이 함유된 모든 표본의 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밝혀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기물질인 경우에는 아직도 신뢰할 만한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경우에는 지층 검사를 해야만 연대를 확정지을 수가 있으므로 위조자는 언제라도 조작된 재료를 슬그머니 끼워 넣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첨단 측정 방법이 개발되자 고대생물학의 속임수는 두드러지게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89도에 인도 출신의 비슈와 굽타는 인도령 히말라야 지방에서 발견된 화석에 대해 계속 독보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소가 다른 학자들에게는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장소였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국방상 중요한 곳이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고학자들에게만은 발굴지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그러한 기초 사항도 지켜지지 않는 것에 의심을 품은 한 학자가 이를 엄밀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세계 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굽타모든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굽타가 화석들을 발굴했다는 발굴 장소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었다. 화석들도 아프리카와 미국, 영국, 그리고 체코에서 가져온 것이다.

최근 중국의 요동성에서 발견된 한 화석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과학동아> 20017월호에 게재된 이융남의 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화석은 1997년 중국 북동부 요동성의 전기백악기 지층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는데 주둥이와 윗 몸통원시 새의 골격이며 꼬리는 전형적인 소형 육식공룡인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화석은 공룡으로부터 새가 진화되었다는 가설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았고 아르키오랩터 랴오닝엔시스라 명명되었다.

그러나 이 화석은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다. 발견되자마자 교묘히 조작된 후 미국으로 밀반출돼 보석광물전시회에서 8만 달러에 팔려나갔는데 X-Ray 촬영에 의할 경우 최소한 두 개의 다른 화석을 합성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한국인에게도 직결되는 가장 큰 고고학 사기사건일본70만여년 전의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음을 증명한 미야기(宮城)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출토 석기에 관한 내용이다.

60만 년 전 원인(原人)의 건물터로 보이는 주거의 흔적70만 년 전의 석기 등을 발견했다고 하여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기재되어 있는 가미타카모리 유적이 사실은 한 발굴단장의 조작에 의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하다가 발굴에 뛰어든 시니찌 후지무라는 발굴단원들이 모두 피곤해 있을 때 석기를 슬며시 묻으면서 곧바로 다른 발굴팀이 발견하게 했다.

일본구석기시대 연구에 한 획을 긋게 했던 후지무라의 발굴이 조작임을 밝혀진 것은 그의 발견이 너무나 기적과 같은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는 전기구석기 문화가 없었는데 후지무라연이은 발굴에 성공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일본의 역사시대가 13만여 년(중기 구석기 시대)에서 70만 년 전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는 처음에 4만여년 전의 석기를 발견하여 일본의 고대사를 바꾸어 놓은 것은 물론 발굴할 때마다 일본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발굴품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수집한 석기들을 몰래 땅에 묻었는데, 한번은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각각 발견된 2개의 석기의 단면이 딱 맞아떨어지는 기적이 연출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운이 보통 사람에게는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평생에 한 번도 복권에 당첨되기 어려운데 그는 수십 번에 걸쳐 행운의 발굴 주인공이 되었다. 후지무라의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해 소수의 고고학자들이 그에게 행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후지무라의 성과에 의심을 품은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발굴 현장에 자동카메라를 몰래 설치했다. 신문사측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후지무라가 다양한 종류의 석기들을 570,000년 전 화산재와 함께 발견했다고 발표하기 바로 전날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후지모리가 새벽에 가미다카모리 유적 발굴 현장에서 땅을 판 뒤 석기를 묻는 장면이 선명하게 녹화되어 있었다.

우선 흙손으로 구멍을 판 후 주머니에 들어 있던 흰 봉지에 있던 유물들을 꺼내 쏟아 붇고는 그 위에 흙을 덮었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발로 땅을 밟았다.

후지모리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과 국민들에게 고대 일본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위한 고고학적 증거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채우기 위해 실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곳의 고고학 현장에 가짜 유물을 숨긴 것 이외에는 결코 단 한 번도 연구 결과를 조작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불행하게도 자신이 두 번 조작했는데 그것 중에 하나가 탄로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추가 연구에 의해서 후지무라그것조차 거짓말했음이 알려졌다. 마이니찌 신문은 처음 발각된 두 곳의 현 장 외에도 무려 42개의 현장에서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결국 그의 조작이 탄로됨으로써 20035월 일본 고고학협회는 그가 발굴에 관여했던 총 162개 전중기 유적이 모두 날조되었다는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개인적으로는 고고학협회에서 제명된 것은 물론 일본에서 6070만 년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갔던 일본 인류역사는 다시 비교적 확실한 유적이 존재하는 45만 년 전으로 뒷걸음치게 되었다. 역사교과서 들도 관련 유물에 관한 내용을 전면 삭제하는 것은 물론 구석기 고고학 사전을 비롯한 각종 연감사전들도 해당 기술이 삭제된 개정본으로 발간하고 있다.

후지무라가 돈을 위해서 그런 조작행위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조작을 자행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본질은 일본에 매우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살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경원인이 있고 한국은 전곡리유적 그리고 북한의 검은모루 유적이 100여만 년 전으로 올라가므로 일본도 70만 년 전에 일본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과 한반도가 붙어 있었으므로 고인류가 이동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후지무라는 한국, 중국처럼 일본도 뼈대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방편이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예를 볼 때 과학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머리를 이길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의심스럽다는 것이 필트다운 사건의 결론이다. 인간은 언제든지 다른 인간을 속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고도의 거짓말 즉 사기는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필트다운의 장난꾼이 쌓은 업적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전문가들은 과학자들을 언제든지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