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59) : 나도 네안데르탈인(1)

Que sais 2021. 2. 1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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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한 인간의 역사>

현재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극동아시아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가 어떻게 한국에 살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인골들이 년대에 맞춰 입맛에 맞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인골과 유물들이 발견되었다하더라도 해석에 따라 전혀 반대의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 세계의 인류사의 첫째 장을 한껏 소용돌이로 휘몰아갔던 주요한 주제들이 유전자분석이라는 상상치 못한 무기에 의해 새로운 결과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상당부분 지식이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직결되므로 지금까지 설명된 것을 간략하게 정리한 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다.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할 당시 적도에서 현재의 프랑스 북부, 독일 그리고 알레스카 남부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온통 열대우림이었다. 이곳에 매우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번성했는데 이때 포유류는 물론 현재 영장류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동물도 있었다.

물론 이들의 모습은 후대의 자손인 원숭이, 유인원, 인간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선택에 의해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꼬리가 길던 설치류 즉 우리의 조상은 전혀 다른 외모로 무장한다.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종으로 우리의 가장 오래된 포유류 조상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원원류(原猿類). 이 속에 여우원숭이, 로리스원숭이, 안경원숭이들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반면에 다른 영장류의 조상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갈라져 나왔다. 학자들은 6500만 년 동안 이어진 기나긴 포유류 진화의 역사를 다음과 같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인류의 조상포유류6500만 년 전부터 5400만 년 전까지 첫 수백만 년 동안 나무위에서 열매와 곤충을 먹고 살았다.

긴 뒷다리를 가지고 나무 위에 올랐고 매달려 사는데 적응했다.

맹수의 날카로운 발톱 대신 평평한 형태의 손톱을 가지며 엄지손가락이 발달하면서 다른 4개의 손가락과 마주 보기가 가능해졌다.

손가락이 더 길어지고 유연해졌으며 물건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5400만 년 전부터 3800만 년 전까지 자세는 직립에 가까워졌고 머리는 상당히 큰 각도로 좌우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시력이 좋아지고 눈이 더 커졌으며 양쪽 눈 사이의 간격이 보다 벌어졌다. 반면에 후각이 퇴화하면서 코는 더 짧아졌다.

3800만 년 전부터 2600만 년 전원원류의 일부가 원숭이나 유인원에 보다 가까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들은 오늘날의 이집트의 열대우림에서 살았다.

영장류에서만 볼 수 있는 4개의 교두(咬頭)가 있는 어금니가 나타났다.

현재의 인간처럼 눈 위와 안와(眼窩) 주변부의 전두엽이 안와 뒤쪽의 폐쇄부까지 이어졌다.

2600만 년 전에서 700만 년 전까지 키가 30센티미터 정도로 자랐고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열매가 귀해지자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고 감, , 포도 등 장과류와 뿌리, 곤충을 주로 먹는 식생활로 변했다. 발바닥과 주먹 쥔 손의 손가락 관절부분을 이용하여 걷기 시작했지만 해부학적인 특징으로 나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이동, 식이, 주거 방식에 적합하도록 골격이 변했다.

턱은 더 작아지고 안면부는 더 수직으로 서기 시작했다.

700만 년 전 인간의 특징을 가진 고대 인간류로 인식하는 투마이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작은 유인원처럼 생겼지만 원숭이와 달리 직립 보행했고 키도 1미터 정도로 커지며 사람과 비슷한 특징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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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년 전 지각의 융기에 의해 아프리카에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가 형성되면서 이 산맥을 경계로 서쪽과 동쪽의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던 습한 바람이 더 이상 높게 솟은 산맥을 넘을 수 없으므로 산맥 동쪽의 강수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당연히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울창했던 열대 우림은 점차 초원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산맥 서쪽열대 우림에 남게 된 유인원은 오늘날의 침팬지, 고릴라로 진화한 반면 산맥 동쪽에 남은 유인원은 초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대체로 아프리카 지형이 바뀐 후인 약 700만 년 전에서 600만 년 사이유인원과 인간 조상이 갈라졌다고 추정한다. 한마디로 이때까지 이들 조상은 같았다는 이야기다.

사바나의 단점탁 트인 초지가 기본인데 사바나라고 나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인원들이 무성한 우림처럼 나뭇가지를 바꿔가며 이동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무들이 있으므로 안심하고 잠을 잘 수는 있었다. 이 말은 유인원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여하튼 사바나는 고인류에게 큰 고통을 주었지만 고인류들이 사바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그 중 탁월한 전략 중 하나가 직립보행이다. 침팬지도 가끔 두 다리 걷기를 하지만 인간류직립보행을 정상적인 행동으로 만들었다. 물론 직립 보행을 위해 적어도 몇 백만 년 동안 나무와 땅 양쪽에서 생활하면서 신체 구조 및 행동도 그에 맞게 변화시켜야 했음은 물론이다.

600만 년 전에서 500만년까지 계절에 따른 건기가 길어지자 인간류는 살아남기 위해 구근류 등 땅에서 나는 열매도 먹었고 우기에는 숲에서 다양한 과일을 섭취했다.

다소 놀라운 것은 고대 아프리카 환경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과학적 자료들이 쌓이자 현재 그동안 철통같이 견지되던 사바나 가설이 약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고인류가 사바나 중앙 초원이 아니라 열대 우림 가장자리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선조들이 사용한 화석들이 열대 우림 가장자리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말이 갖고 있는 뜻은 사바나 가설 자체가 완전히 침몰된 것은 아니지만 사바나에서 인간의 선조들이 결정적인 진화 단계를 만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무에서 완전히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직립 등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학자들이 조그마한 자료를 토대로 얼마나 다방면으로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고인류 탄생>

현대 인류학의 기본은 아프리카에서 고인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프리카 기원설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인간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말했다. 아프리카에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고릴라와 침팬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다윈은 유럽에서도 유인원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인간 역시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당대 과학자들을 화끈하게 만들었는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집중적으로 투여한 사람이 에른스트 헤켈 박사.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한 헤켈 박사는 당대의 지식인들과 다소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인간류가 인간이 되어가는 결정적인 첫 단추를 그동안 자연 환경 여건에서 문명 존재여부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동안 발견된 화석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어 능력이 없는 원숭이와 언어 능력이 있는 인간 사이의 이행 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조상이 마다가스카르 섬에 살고 있는 여우원숭이라고 결론지었다.

여우원숭이가 현재도 마다카르섬과 동남아시아의 섬들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것에 착안한 헤켈레무리아대륙이 존재했는데 현재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레무리아인류의 요람인 파라다이스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라진 대륙이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헤켈은 인류의 진화가 훨씬 더 남쪽인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났다고 말을 바꾸었다.

여하튼 헤켈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 분명하므로 그 중간고리를 상정하는 의미에서 원숭이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을 미싱 링크잃어버린 고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그 중의 한 종에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라 이름을 붙였다. 이는 그리스어의 원숭이를 뜻하는 피테쿠스사람을 뜻하는 안트로푸스의 합성어로서 원인(猿人)이라는 뜻이다.

헤켈 박사의 주장에 감복한 마리 외젠 프랑수아 토마 뒤부아(Marie Eugène François Thomas Dubois, 19581940)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해부학 조교는 자신이 이를 찾을 운명을 갖고 있다며 군의관을 자원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인 수마트라로 건너갔다.

그는 자신의 목표에 몰두하여 자바의 한 곳에서 발굴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트리닐의 솔로 강변에서 18901892에 두개골 일부, 대퇴골, 아래턱 조각, 이빨 몇 개를 발견했다. 해부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뒤브아는 이들 두개골이 인류와 유인원의 중간형을 나타내고 대퇴골이 직립적인 것을 근거로 직립원인이란 이름을 붙였으며 이들이 호모에렉투스. 자바원인은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그의 이름은 고인류사에 불멸의 이름이 되었다.

그가 크게 각광을 받은 것은 당대의 학계에서 그의 대 발견을 폭발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인류 탄생의 중심지역이 중앙아시아냐 아프리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아프리카가 아니라 중앙아시아라는 점이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사바나 가설과 상당히 흡사하다.

중앙아시아 고원에 한때 영장류가 뛰놀던 광활한 숲이 있었는데 히말라야 산맥에 습곡이 형성되면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영장류와 그곳에서 살던 다른 포유동물들의 서식 환경이 변하자 능력있는 영장류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포유동물 진화의 중심지중앙아시아라는 주장을 미국인 헨리 페어필드 오스번 박사가 강력히 지지했다. 마침 1920년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의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박사몽골 탐험에서 공룡 뼈와 포유류 뼈를 발견한 것도 시기적으로 적절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장을 역임한 앤드루스 박사몽골탐험은 지구인들이 공룡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그런데 그는 한국과도 관련이 된다. 그는 1912 일제 강점기경상남도 울산에서 귀신고래를 연구하기도 했다.

앤드루스 박사는 고고학자로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행운을 받은 정통 학자인데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전설이나 마찬가지다. 1920년대에 고고학 발굴에 투신한다는 자체가 매우 생소할 때인데 그는 몽골 탐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탐험 도중 고래, 상어늑대는 물론 탐험대를 인솔하고 발굴 현장으로 갈 때 각지의 도적과 중국 병사에게 습격당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일화가 잘 알려져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인물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탐험과 발굴 등에 자신의 일생을 보냈는데 그가 1916년부터 1917까지 중국 각지를 방문하여 아시아 지역의 포유류를 수집했고 이때 1923 수많은 공룡뼈와 유명한 오비랍토르의 공룡알을 발견했다. 몽골의 황량한 사막지역에서 공룡뼈를 발견했다고 하자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공룡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특히 이때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포유류들의 두개골 화석은 고인류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앤드루스 박사 등의 포유류 화석 등의 발견으로 중앙아시아의 인류 기원이 또 다시 힘을 얻은 것이다.

인류의 중앙아시아 기원설은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당시 단 하나의 허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들을 연결시켜 줄 호미니드의 실제 화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