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64) : 피라미드 과학의 미스터리(1)

Que sais 2021. 3.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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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선물>

이집트의 문명을 나일강의 선물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기원전 460년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이집트를 방문한 뒤 적은 이집트에 대한 내용에 많은 오류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가 적은 나일강에 대한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중요성은 다른 큰 강들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강물이 범람한다는 점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신기하게도 시계처럼 예측 가능하므로 농사의 파종, 수확 주기 등을 적절히 예측하여 활용할 수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소박한 수리기술을 이용해 홍수를 억제하고 물을 관리하며 농산물 증산을 꾀하였다. 경작지에 사용할 충분한 물을 위해 제방을 세우고 단순한 형태의 수로, 수문 등으로도 보리와 밀 등을 생산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바로 상하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가 관개사업과 동일시되는 파라오로 알려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7년에 발굴된 메네스의 철퇴에는 흰 왕관을 쓰고 킬트를 두르고 황소 꼬리가 달린 허리띠를 차고 관개용 운하 건설을 위해 괭이와 땅을 파면, 옆 사람이 그 흙을 바구니에 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이집트의 파라오는 토지 소유주이자 강을 통제하는 군주이며, 그를 보좌하는 사제, 관리자등 엘리트는 제방감시관, 운하사업 관리자, 나일강 수위 감시인등의 직책을 맡았다. 한마디로 파라오의 임무나일강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초기 이집트의 석조댐은 높이 15m로 기원전 2900년에 수도 멤피스를 홍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지어졌다. 카이로 남쪽에 기원전 2950년에서 기원전27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저수지는 높이 11m, 길이 80m에 달한다.

이집트는 강우를 예측하고 농업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달력을 만들었고, 땅을 측량하는 도구와 나일 삼각주의 갈대로 파피루스 기록을 남겼다.

특히 나일강의 범람이 규칙적이므로 이집트인들은 이를 예측하기 위한 달력을 만들었고, 땅을 측량하는 도구 등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고대 이집트에서 천문학, 역학, 측량술 등에서 빼어난 유산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일강의 규칙적인 범람을 체계화하여 이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일강이 정규적으로 범람하므로 농토를 다시 구획 지을 필요가 생겨 일찍부터 삼각측량, 기하학이 발달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경작지 등을 복구하고 경계선을 확실하게 하려면, 측량기술과 기하학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하여 천문학과 달력 역시 발달한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토대로 태양력을 만들었는데 1년을 한 달에 3012개월로 나눈 후, 1년 끝에 5일을 추가했다. 정밀한 달력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다 정확한 달력은 로마의 시저가 만든 율리우스력이지만 이집트인들에게 이러한 오차는 장구한 3000여 년의 역사동안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과 직결된다는 것은 고왕국이 쇠퇴하고 지방영주들 간 투쟁, 도적떼 창궐, 대기근이 나타났는데 스티븐 솔로몬 박사 물의 세계사에서 바로 이런 고난의 시기는 지중해 지역이 건조해지던 때와 일치한다고 적었다.

여하튼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특혜를 활용하여 남다른 문명을 구축했는데 특히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각종 약초의 효능을 연구하고 약품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이집트인들의 놀라운 점은 이들 지식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를 후세에 전술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의술은 주로 마귀를 육체로부터 몰아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여 신체 각 부위마다 신이 있어서 노래로 이 신을 부르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그러나 이집트인들이 의술의 모든 것을 주술로 처리한 것은 아니다. 기원전 1700년경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술 내용은 무려 48건의 수술사례를 소상히 밝혔다.

이집트 문명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는 미라 역시 과학 면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이집트인들이 시신 전체를 완벽하게 방부처리하지는 못했지만 미라가 수천 년 이상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여하튼 놀라운 수준의 과학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제작하는데 활용한 것은 탄산나트륨과 염화나트륨이 결합된 물질인 소다석으로 이들은 뛰어난 수분 흡수효과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송진과 여러 첨가물을 혼합한 유약도 만만치 않은 과학의 산물이다.

학자들은 현대문명의 출발을 알려주는 여러 일상적 과학기술들이 고대 이집트로부터 시작되거나 존재하였다고 설명하는데 접착제, 염료, 피임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접착제 역사는 3300년 전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 물체 사이에 송진이나 식물의 액체 성분을 넣어두면 재료가 붙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을 접착제의 시초로 설명한다.

기원전 2000여년 경 이집트 테베고분에서 미라를 싼 남색천과 잇꽃을 이용한 황색천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당시 이미 식물염료를 사용한 예다. 기원전 14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아멘호테프 4세와 람세스 2의 고분에서도 여러 색의 염색직물이 발굴된 바 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는 성교 후 아교나 꿀, 악어 배설물과 같은 물질을 일종의 살정제(殺精劑)로 이용해 여성의 체내에 넣어 임신을 막을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가축의 방광 등의 내장을 가공해 원시적 형태의 콘돔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피임법의 시초로도 설명한다.

그렇다면 곧바로 질문이 나온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에서 쿠프의 대피라미드를 건설할 정도의 과학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였느냐이다.

 

<기초 과학의 출발>

이집트의 생활상을 보면 만만치 않은 과학 기술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구리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청동기를 제작하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였고 은 한참 후대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고왕국시대의 피라미드를 보면 완벽한 시공 능력에 놀란다.

조세르의 피라미드를 건축했다고 알려지는 임호텝이 돌을 사용한 건축의 발명자로서 신격화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공구는 디오르트나 도르리트와 같은 단단한 돌덩어리가 주류였다. 나무에 묶는 원형 망치나 도끼류, 끌이나 자귀, 혹은 날카롭게 갈은 칼 등을 이런 돌들로 만들었다. 구리같은 금속류의 칼이나 가위 등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아마도 강도가 연한 것을 보안하기 위해 몇 가지 불순물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학자들이 놀라는 것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구축물 즉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학 즉 기하학 지식이 있어야한다고 지적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학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한 한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인들이 가장 앞섰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머리에서 추상적인 수를 향한 첫걸음은 기원전 6,000년경 나일강 주위의 사람들이 유목생활을 버리고 나일 강변을 경작하는 데에 주력하면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나일강은 매년 6월 중순에 강물이 솟아올라오기 시작하여 4개월 간 범람이 지속된다. 10월이면 강물이 줄고 폭이 좁아지기 시작하여 땅이 건조해지며 비옥한 검은 흙으로 채워진다.

8개월의 건기는 경작기인 페리트(perit)와 추수기인 셰무(shemu)로 나뉘어진다. 기원전 3,500년경에 이집트인들은 선박을 제조하고 금속세공 같은 간단한 공업기술을 터득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자인 상형문자를 발명했다.

이집트의 모든 토지와 소유물은 원칙적으로 파라오의 소유였지만 실제로는 신전과 개인도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집트 정부는 그 해의 범람 높이와 소유한 토지의 면적을 기준으로 해서 세금을 부과했다.

세금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이집트인들은 정사각형, 직사각형, 사다리꼴 등의 면적을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원의 면적도 계산했다. 엄밀한 의미로 그들이 계산한 원의 면적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오차는 0.6%에 불과했다.

사실 유럽 중세시대의 수학 실력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시대까지도 유럽인들은 수학에서 100만이란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100만을 표시하는 상형문자를 갖고 있었고 천문학적인 숫자를 사용했다.

이집트인들이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그들의 수학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는 피라미드들을 건설했는데 이 면만 보면 학자들이 현대 기하학의 요람을 이집트로 설명하는데 무리하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대 지식인들, 헤로도토스, 플라톤, 세르비우스, 클레망 알렉산드르, 헤론 드 지오미트르, 디오도르 드 시실리, 포르피우 등은 고대 이집트가 동시대의 다른 문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도의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세르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과거에 구획된 토지의 경계를 알아낼 수 없게 되는 난처한 문제에 봉착했다. 이러한 경계를 정확히 찾기 위하여 이집트인들은 모든 경작지를 선으로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기하학이 생겼는데 그들은 땅을 재는 것뿐만 아니라 바다, 하늘까지 영역을 넓혔다.’

 

천문학적으로 볼 때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임의적으로 방위를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쿠프의 대피라미드방위의 평균 오차36초다. 케프렌의 경우는 5, 미케리노스의 경우는 14분이 차이가 나는데 이러한 오차는 매우 미소한 것이다.

피라미드를 건설할 당시에 북쪽을 의미하는 용자리 알파별을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대지와 건물의 방위로 보아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단순한 추와 조준할 때 사용하는 베이로 불리는 막대기로 만든 측량 장비로, 사용된 장비가 전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