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78) : 도굴 역사가 이집트 역사(3)

Que sais 2021. 3. 13. 10:20

https://youtu.be/NuQXXX6svu8

장례식도 도굴꾼들에게는 도굴 아이디어를 수립하는 데 좋은 기회를 준다.

파라오나 왕비의 무덤들은 경비병이나 신관들이 지켜주므로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의 경우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그 시신은 훼손되고 장신구 등이 탈취되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학자들은 많은 미라들이 매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둑들의 손을 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왕의 계곡 입구

새 미라를 매장하는 데 동원되는 인부들은 매장자를 위한 부장품이 어느 정도 들어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매장할 때부터 도굴하기 쉽도록 조치할 수 있었다. 또한 도굴꾼들간의 예의 즉 기본 협조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도굴한 무덤에 다른 도굴꾼들이 들어가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표시를 해놓았다. 이와 같이 조직적으로 도굴이 가능했던 것은 묘지를 조성하고 유지 관리하는 사람조차 도굴에 직접 가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덤은 손도 대지 않고 부유한 사람들의 무덤만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사람들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아 도굴되지 않았는데 이들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들도 나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부장품들을 갖고 갔는데 생각보다 질좋은 부장품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도굴꾼들이 가장 선호한 물건들은 금속제품, 직물, 목공예품, 상아, 파피루스 등이다. 화장품과 연고처럼 사용기간이 제한된 것은 매장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만 갖고 나왔다. 문제는 값비싼 장신구 등은 미라와 함께 붕대 속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도굴꾼들은 미라의 붕대를 조심스럽게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미라를 여러 토막으로 내어 곧바로 장신구들을 탈취했다.

왕조 시대 내내 파라오를 비롯한 상층 계급들은 자신들의 무덤에 죽어서 사용할 물건들을 갖고 가면서 이런 도굴꾼들에게 손상되지 않는 방법에 열중했다. 쿠프의 피라미드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피라미드들의 건축가들은 어떠한 도굴꾼들이 덤비더라도 결코 훼손되지 않을 장치 등을 고안했다. 그들은 가짜계단, 가짜 방, 돌로 된 차단 문 등 장애물을 곳곳에 설치했다.

아메넴헤트 3세의 무덤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다. 다른 피라미드와는 달리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길이 7미터, 넓이 7미터, 높이 4미터로 바위의 속을 파서 만든 것이다.

이런 특이한 무덤은 페트리 경이 발굴했다. 그는 피라미드의 주인은 물론 입구가 어디인지를 알 수도 없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이 피라미드만은 도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당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발굴에 착수했다.

피라미드는 모래에 뒤덮여 있으므로 제일 먼저 북쪽의 모래를 제거했다. 그러나 모래의 양이 워낙 많으므로 모래 치우는 일을 포기하고 피라미드 중심을 향해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쿠프의 대피라미드 등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피라미드는 지하 중심에 현실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페트리의 아이디어는 적중하여 몇 주 동안의 공사로 좁고 어두운 구멍을 통해 마침내 중심부에 있는 벽에 도착했다. 그는 피라미드가 축조된 후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라는 기대하에 벽을 깨고 구멍을 만들었는데, 결론은 두 개의 텅 빈 관과 항아리 몇 개만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한 것은 그 무덤의 주인공이 아메넴헤트 3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관이 두 개라는 의문도 풀렸다. 일반적으로 파라오의 피라미드에는 왕비를 함께 묻지 않았으므로 관이 두 개 있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페트리 경은 나머지 한 개의 관은 왕의 딸인 프타하네플임을 밝혔다. 아메넴헤트 3세의 딸인 프타하네플이 그보다 먼저 사망하자 자기 무덤에 딸의 관을 함께 쓴 것이다.

여하튼 페트리가 아메넴헤트 3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 것은 이 피라미드는 하나의 거대한 규암을 판 후 지붕으로만 들어갈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매장실로 이어지는 가짜 통로는 물론 자동으로 닫혀지는 문들도 설치했다.

그러나 도굴꾼들은 이러한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결론을 말하면 아메넴헤트 3세의 현실의 입구50톤짜리 돌로 막혀 있었는데 도굴꾼들은 무지막지하게 그 돌들을 뚫었다. 이와 같은 난공불락의 피라미드조차 도굴되었다는 것은 일반 도굴꾼도굴에 참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빙한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들을 비롯한 각종 무덤들이 도굴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무덤 속에 부장된 재보를 얻기 위해서이지만, 19세기 말에는 이상한 광풍이 미라 발굴을 재촉한다. 그것은 미라로 만든 약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가 기록한 다음 글을 통해 미라의 효용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미라를 가루로 빻아 식물 기름에 섞는다. 이 혼합물이 젤 상태가 될 때까지 짓이긴다. 이 약은 찰과상골절상폐렴 등에 효과가 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냄새가 나는 충분히 검은 미라를 고르는 것이 좋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당대에 폐렴이나 폐결핵은 퇴치하기 힘든 병이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미라로 만든 약을 구하려고 열중했다.

뜻밖의 수입을 얻게 된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찾는 데 열중했다. 문제는 미라를 아무 곳에서나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미라가 동이 나자 가짜 미라도 출현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하층계급의 시체를 구해서 미라 비슷하게 가공하고, 사막의 더운 모래 속에 23년 묻어두었다가 다시 파면 적당하게 건조된 가짜 미라가 되었다. 현재 세계의 중요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미라들은 이 당시에 구입한 것이 많다고 한다.

 

<파라오가 파라오의 무덤 약탈>

상당한 시행착오 끝에 이집트인들은 어떤 정교한 장치를 설치한 피라미드나 무덤이라고 해도 비밀과 사후의 안식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승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이집트인들의 염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은 최후의 조처를 취. 자신들의 무덤에 도굴꾼들이 침입할 것을 예상한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무덤을 훼손할 경우 그들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남긴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무덤을 훼손하거나 망가뜨리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결과가 닥칠 것이라고 위협하는 저주 주문을 무덤 속에 새기거나 적었다. 이것이 사자의 저주로 저주 주문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물속에서 악어가 그자를 공격하게 해주시고 땅에선 뱀이 그자를 공격하게 해주소서. 또한 이 무덤을 훼손하는 자는 신께서 그자를 심판할 것이다.

이 관이나 이 무덤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훼손하는 사악한 자들에게 고하노니, 그 자는 헤멘 신을 위한 제사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팔이 잘릴 것이다. (중략) 헤멘 신은 그자가 바치는 고기 제물을 받지 않을 것이며 (중략) 그자의 상속자는 상속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의 팔은 끊기고 그의 목은 새의 목처럼 절단 당하고 이와 더불어 그의 지위도 떨어져나갈 것이다. 또한 그의 몸은 불태워질 것이다.'

 

이런 글이 바로 잘 알려진 파라오의 저주가 나오게 된 근본이다. 즉 무덤의 주인이 파라오든 아니든 무덤의 여러 곳에 이런 저주의 글을 적었고, 그들이 반드시 휴대하는 사자의 서에도 무덤 주인의 안식을 해칠 때에는 저주가 내린다는 글을 적었다. 무덤의 주인으로서는 자신의 무덤이 손상당하는 것처럼 낭패인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덤을 훼손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것은 결국 무덤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파라오의 저주란 엄밀한 의미에서 투탕카문 무덤의 개봉으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에 투탕카문을 둘러싼 저주가 기본이지만 모든 무덤을 개봉할 때 근본적으로 사자(死者)의 저주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자의 저주는 사자의 서나 무덤 속에만 적힌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무덤을 도굴하는 자는 모두 죽는다는 저주의 문구가 고대 이집트의 장제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파라오를 비롯한 사자를 위해 제사지내는 곳에도 수많은 저주의 글이 적혀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들을 왕의 용광로에 넣을 것이다. 왕께서 그들의 머리 위에 화염을 토해 육신을 파괴할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문드러지고 뼈는 썩을 것이다.’

 

물론 도굴꾼들이 이런 저주의 글에 굴복할 리 없었다. 조이스 타일드슬레이 박사는 이집트 도굴꾼들이 이런 저주에도 불구하고 도굴을 멈추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도굴꾼들이 무덤에 적힌 수많은 저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일을 꿋꿋이 도굴해 나갔는데, 그것은 도굴꾼들이 문맹이었을 수도 있고 또 문맹이 아니더라도 그런 글이 적혀 있는 무덤일수록 더욱 도굴할 가치가 있음을 눈치 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