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피라미드(86) : 이집트를 다시 본다(2)

Que sais 2021. 3. 16. 18:41

https://youtu.be/QTXhswhsukk

(ren, 이름)

이집트인들에게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름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름이 현세에서 마법같은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범죄자에게 내려진 극형은 처형 전에 이름을 라메수레가 잉태한 자에서 마레스쥬레가 증오하는 자로 바꾸는 것이다. 죄인이 죽은 뒤에도 바뀐 이름이 계속 그를 저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집트인에게는 죽은 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무덤 자체는 물론 곳곳에 이름을 새겼다. 이름표는 물론 미라를 감싼 천 앞부분에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특히 사자의 이름이 살기를 바란다는 문구도 있다.

 

미라의 이름표(로마시대)

 

그림자

이집트인에게 그림자는 육체라는 물리적 형상에서 분리된 부분이다. 사자의 서에서 그림자는 육체, 미라, , , 이름과 더불어 사후에 실제적인 영혼을 형성할 때 요구되는 핵심요소로 언급된다.

그림자는 죽은 이의 가 심판을 위해 지하세계의 오시리스앞에 설 때 동행한다. 즉 사자가 심판을 받을 때 그림자와 함께 한다. 심판이 무사히 끝나면 이 모든 요소들이 통합되어 아크가 된다. 그러나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면 괴물 아무트(Ammut)가 죽은 사람의 심장을 먹어치운다. 이는 죽은 사람이 완전히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이집트인들이 위안을 받았다.

 

마아트(Ma'at)

매장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하더라도 사자가 이집트인들이 규정하는 마아트에 정의하는대로 살지 않는다면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죽은자는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마아트를 상징하는 깃털과 비교한다. 이때 심장이 사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야 했다. 증언에는 35가지의 부정 고백이 있는데 사자가 자신이 살인하지 않았고 훔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가지 않았고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나 신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 등을 진술해야 했다.

자신의 무죄를 피력하는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사자는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42명의 문지기 앞에 도달한다. 이 문지기들은 무덤의 부조로 표현되거나 사자의 서에 그림으로 등장한다. 즉 사자는 각 문으로 가서 문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에게 자신이 특정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진술하여 자신이 마아트에 따라 살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이집트인들의 기본은 사후에 두아트(duat)'로 불리는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집트 서쪽에 있고 사후세계 자체는 땅 아래에 있다고 믿었다. 태양이 12시간 동안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한 뒤 서쪽에서 지므로 태양이 밤에는 배를 타고 두아트를 여행하며 지하세계를 밝힌다고 생각했다.

배를 탄 태양은 관에 새겨지기도 하고 지하세계를 다룬 글에도 등장한다. 지하세계에서 여정을 마친 태양은 매일 아침 이승의 동쪽에서 솟아오른다.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지하세계가 땅 아래에 있는 이유는 하루가 끝날 무렵 태양이 서쪽 지평선 아래로 졌다가 다음 날 아침 동쪽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두아트가 하늘을 가로지를 때 태양은 아포피스라 불리는 거대한 뱀 모습의 악마에게 공격을 받는다. 지하세계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믿음은 오시리스의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 중 일부는 다섯 번째 시간을 제외한 시간대, 태양과 아포피스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이 싸움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데 이곳은 이집트인으로 볼 때 영원한 삶을 보내기에는 그다지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두아트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죽기 전에 자신이 마아트에 따라 살았는지를 판단하는 최후의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 심판을 통과하면 비로소 지하세계의 신성한 장소 즉 다섯 번의 시간대로 입장이 가능하나 실패하면 완전히 소멸되거나 태양신과 아포피스의 전쟁을 영원히 지켜보며 살아야 했다. 사자가 사후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배치된 시간대에 태양이 위치해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신성한 다섯 번째 시간으로 축복받은 자는 태양이 배를 타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12시간 내내 그 순환을 경험할 수 있다.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영혼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투아트로 들어가면 이승과 닮은 꼴의 장소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이승에서의 계급을 지하세계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의식주를 해결해야했다. 제사장도 지하세계에서는 무덤에 배정되어 봉헌 의식을 계속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하인으로 우샵티 또는 샤우티를 동행한다.

이집트인들이 지하세계에서도 현생과 마찬가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지하세계를 다룬 그림을 보면 보리밭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은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무덤에 바치는 음식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자들이 계속 곡식을 바칠 수 있도록 제사에 쓸 수 있는 농장을 제공하여 대대로 자신에게 음식을 바치도록 주선했다.

여하튼 이집트인들은 두아트에 들어가면 더 이상의 부활이나 죽음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집트인에게는 두아크가 모든 과정의 종착점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집트인들은 사후의 준비에 모든 것을 걸었다. 바로 그점이 후대인들의 도굴 먹이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미라 만들기 이모저모>

이집트인들이 사후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생과 마찬가지로 육체가 중요했다. 그러므로 이집트인들은 미라가 되는 것이야말로 평생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사실 이집트가 다른 문명과 차별화되는 것은 모든 이집트인들의 미라화다. 다른 문명에도 미라 만들기가 생소하지 않지만 이집트처럼 철저한 규범에 의해 미라를 3500년 이상 만들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미라 만들기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미라 제작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미라 대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파라오, 제사장, 관료 등 남다른 힘과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들과 모든 면에 열악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층의 이집트인들이 미라의 대상이었다. 미라 제작에도 차별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미라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3500여 년 이상 이집트인들이 줄기차게 미라를 제작했으므로 미라 제작이 후대로 갈수록 선대의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한 방식을 적용했다는 뜻이다.

미라 제작법은 간단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 가족들이 미라 제작자에게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 미라 제작자는 가족에게 몇 가지 미라 모형을 보여주며 선택하게 한다. 당연히 가족들은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때로는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미라 제작비를 지불하고 시신을 제작자에게 인계한다.

미라를 만드는 가장 비싸고 완벽한 방법은 여러 자료에 나와 있다. 기본은 간단하다. 사자의 생전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수분을 제거하고 해충의 번식을 막는 것이다.

알려진 기본적인 방법은 제일먼저 콧구멍으로 갈고리를 집어넣어 를 꺼낸다. 이집트인들에게 뇌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므로 바로 버린다. 다음에는 두개골에 특수약품을 주입하여 남아 있는 찌꺼기를 깔끔하게 제거했는데 이 과정은 박테리아를 박멸하는 효과도 있었다.

다음에는 돌로 만든 날카로운 칼로 옆구리를 절개해 내장을 제거했다. 이후 값비싼 방부처리과정이 잇따른다. 장기를 빼낸 뱃속은 야자수 및 허브와 향신료를 우려낸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향료의 원료인 몰약, 계피 그리고 유향을 제외한 온갖 종류의 향신료를 채웠다.

그 다음 과정은 매우 잘 알려진 것으로 시체를 천연소금나트론으로 70일간 탈수시키는 것이다. 70일이라는 말에 정확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이 이 과정을 똑같이 재현하는 연구를 수행한 결과 70일이 가장 이상적인 기간임을 확인하였다. 70일보다 짧으면 주검이 완전히 탈수되지 않았고 더 오래되면 몸이 너무 뻣뻣해져서 천으로 쌀 때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미라 제작자는 시신을 다시 씻고 아마천으로 꼼꼼히 싼 뒤 그 위에 고무진을 발랐다. 고무진은 방수제이자 항균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미라는 가족에게 되돌아가며 나무로 만든 사람 모형의 관에 안치된다. 부유한 사람들은 나무 관을 다시 석관에 넣어 이중으로 보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집트인 모두 파라오나 부자처럼 미라를 최상급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라오나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삼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을 복부에 주입하는 것으로 이때 직장을 마개로 막아 기름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했다. 이 기름은 장기를 액화시키는 용도인데 더불어 복부를 소독하는 효과도 있었다. 장기를 액화시키면 카노픽 단지 제작 비용과 장기를 따로 처리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신을 70일간 나트론으로 탈수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미라에 통용되는 방법이다. 탈수 기간이 모두 끝나면 액화된 장기를 직장을 통해 빼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탈수방충방부 처리된 미라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사실 이 방법이 이집트 대부분의 사람에 적용된 미라화라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 나무가 많이 나지 않으므로 나무관은 매우 비싼 재료였고 가난한 사람들은 흙을 구워서 만든 관을 사용했다.

이집트에서 이보다 더욱 저렴한 미라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정확하기 기술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알려지지 않은 용액을 항문에 주입하여 장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들도 70일간 나트론에 넣어 탈수한 후 미라가 되어 가족에게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