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사자의 공간>
끄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의 왕릉을 가능한 한 자주 방문하라고 추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강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등산을 하는가.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복을 입고 조그마한 산등성이라도 걸으며 자랑스러워하며 특히 산림이 우거진 곳을 주파한 후에는 삼림욕으로 건강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 삼림욕이라면 왕릉이야말로 적소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왕릉은 천하의 명당 자리 즉 길지를 엄선하여 조성한다. 이와 같이 명당 자리를 찾는 것은 기(氣)가 충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왕릉사를 보면 수많은 천장(遷葬)을 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능침이 풍수지리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붕당 간의 정쟁과 풍수적 논리로 천장된 조선 왕릉은 15개소).
풍수지리에 나쁘다고 해서 천장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풍수지리에 대해 문외한이더라도 왕릉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면 자신이 있는 자리가 왜 그렇게 좋은 자리인지 즉 기가 높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덤으로 기를 한껏 받을 수 있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답사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이들을 제4구역으로 나누었다.
① 제1구역 : 동구릉, 홍유릉, 사릉, 광릉
② 제2구역 : 서오릉, 서삼릉, 온릉, 파주삼릉(공순영릉), 파주장릉, 김포장릉
③ 제3구역 :태강릉, 의릉, 헌인릉, 선정릉, 정릉
④ 제4구역 :영영릉, 장릉, 융건릉
위 일정은 지역과 거리를 감안했지만 기본적으로 설명의 편의를 위해 구분한 것이므로 여타 답사처럼 일사분란하게 틀에 맞추어 답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각자의 편의에 따라 답사할 일정과 장소를 정하기 바란다. 특히 많은 왕릉이 서울시내 또는 인근에 위치하는데다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만큼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으므로 이곳에서 왕릉 찾기 등은 별도로 설명하지 않는다.
큰 기대를 걸고 왕릉에 도착하여 안내도에 따라 홍살문을 거쳐 정자각, 비각 등을 보고 침전으로 올라가면 봉분과 석물이 여러 개 보이며 낮은 담장이 있는 정도로만 느껴진다. 당연히 몇 개의 능을 본 후에는 그것이 그것 같으므로 지루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는 한국의 왕릉이 40개나 되지만 각 왕릉에 따른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각 왕릉의 건축적인 특성 등 전문적인 정보와 함께 왕릉에 얽힌 소사를 간략하게 설명하여 사전에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왕릉을 답사하면서 왕릉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기초 역사를 이해한다면 왕릉 답사가 한결 흥미있고 부드러워 질 것이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는 법인데 품격과 철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된 왕릉을 답사하려면 왕릉의 기본인 상설제도에 대한 기본 내역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설(象設)이란 좁게는 능(陵), 원(園), 묘(墓) 등 각급의 무덤에 설치한 여러 석물(石物)들을 가리키며 좀 더 넓히면 산릉도감에서 능역에 설치하는 모든 시설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상설은 병풍석, 난간석, 석수(석호, 석양, 석마), 석상(상석 또는 혼유석으로 불림), 망주석, 장명등, 석인(문석인, 무석인),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깐, 재실 등 모두를 통칭한다.
그러나 상설제도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한자 용어들이 많이 나오므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조선왕릉을 한껏 맛보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용어 정도야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틀이 있는 제례 공간>
왕릉에 상설을 설치하는 목적은 후세인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보도록 하는 데 있다. 피장자의 일대기를 적은 지문(誌文)이 있으나, 땅 속 깊은 데 묻기 때문에 겉에서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데 비해 상설은 쉽게 그 피장자의 신분 위상을 분별할 수 있다.
상설이란 단어는 그 뜻이 넓어져서 능침(陵寢) 자체를 가리키는 용례로도 많이 쓰였다. ‘마음이 상설에 매달려 있다’, ‘멀리 상설을 바라 본다’는 등의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 때 상설이란 능침 자체는 물론 능침에 묻혀 있는 선대의 왕을 가리키는 뜻이다.
조선왕릉의 공간 구성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인 정자각을 중심으로 크게 2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외금천교, 재실, 연지 등 진입 공간을 지나 홍살문, 정자각과 참배도(향도 + 어도), 수복방, 수라청이 배치된 곳은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제향 공간이며 둘째는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곳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인 능침 공간을 말한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돌다리인 금천교다. 금천교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속세와 구분해주는 구실을 한다.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커다란 문이 있다. 붉은 석간주칠을 한 신문(神門)인 홍살문(혼전문)은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는데, 그 중앙에는 삼태극 문양이 있다. 홍살문 오른쪽에는 제례의 시작을 알리는 가로세로 6자(1.8m) 정도의 네모난 배위(拜位, 판위 또는 어배석, 망릉위라고도 함)가 있다. 이 배위에서 혼백을 부를 때 4배한다.
홍살문 앞에서부터 정면의 정자각까지 얇은 돌(박석)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참도라고 한다. 참도는 혼령이 이용하는 신도(향도)와 참배자(왕 또는 제관)가 이용하는 어도(御道)로 구분돼 있다. 좌측의 신도는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도보다 약 10센티미터 정도 높고 넓다. 일반적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300척(약 90m)이나 능마다 차이가 있다.
참도는 정자각 월대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월대 동쪽까지 접근되는데 이곳에서 계단을 통해 배위청에 오른다. 정자각의 계단은 정면에 두지 않고 측면에 만든다. 이것은 참배자가 서쪽(왼쪽)을 바라보면서 들어가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해가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서쪽(끝과 죽음)으로 지는 자연 섭리를 인공 건축물에 활용한 것으로 동쪽 계단은 신계(神階)와 어계(御階)로 2개, 서쪽 계단은 1개다. 올라갈 때는 참배자가 왕의 영혼과 함께 하지만 내려올 때는 참배자만 내려온다는 것으로 왕의 영혼은 정자각 뒤 문을 통해 봉분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신계는 기본적으로 3단으로 돼 있으며 양옆에 구름무늬와 삼태극을 조각한 석고(石鼓, 북)가 있는데 석고는 진행을 가리킨다. 어계는 배석이 없으며 단순한 장대석의 3단 계단이다. 동계를 오를 때는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다.
동쪽으로 오른 월대의 형태는 정전의 기단 폭과 배전의 기단 폭이 일치하는 일반배전형이 많으며, 월대의 높이도 기본적으로 3단 장대석을 쌓았다. 헌관은 월대에 올라 배위석에서 4배하고 동문을 통해 정청으로 들어간다. 배위청은 앞면 1칸, 측면 2칸이며 배위청에 맞닿은 정청은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배위청보다 단을 10센티미터 정도 높게 조성한다. 이 두 건물이 결합해 정(丁)자 형태를 갖추므로 정자각이라 한다. 정자각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이다.
제례를 마친 제관들은 정청 서쪽 문을 통해 나와 월대 서쪽 어계를 거쳐 내려온 뒤 정자각 북서쪽에서 제례의식을 끝낸다는 의미로 지방을 불사르고 제물을 예감(隸坎 또는 望燎位)에 묻는다. 예감은 가로세로 2자, 깊이 30cm 정도의 정(井)자 형태로 나무뚜껑을 올린다. 조선왕조 초기 능인 건원릉과 헌릉에는 잔대 형식의 소전대라는 석물이 있었으나 세종부터 소전대 대신 예감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산신석이 능침의 강(사초지 경사면)이 끝나는 정자각 뒤 동북쪽에 세웠는데 규모는 혼유석의 4분의 1 정도다.
정자각 앞쪽 양옆에는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수라청과, 능원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인 수복방(수직방)이 있다. 수라청과 수복방은 참도를 향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수라청 근처에는 제례 준비를 위한 어정이 있다. 어정의 위치에 따라 수라청은 아래위로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정자각 좌측(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우측)에는 비갈(碑碣), 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는데 개석(蓋石) 양쪽에 쌍룡을 새긴다. 석비(石碑)는 이수(螭首)와 귀부(龜趺)위에 비신(碑身)을 세우는데 비신 앞면은 표석(表石), 뒷면은 음기(陰記)라 한다. 비각의 위치는 능원의 왼쪽 상단부로 학생 시절 달던 명찰의 위치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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