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유산)/경주역사지구 답사

경주역사유적지구 답사(69) 불국사(7)

Que sais 2021. 12. 28. 10:29

https://youtu.be/tS4j_44SFMw

<아미타정토>

칠보교와 연화교를 지나 다다르게 되는 아미타정토극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8세기에 한창 융성한 아미타 신앙은 모든 중생이 나무아미타불을 단 한 번만 염불해도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행복의 땅극락세계가 바로 아미타정토.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정토서방정토에서 가장 훌륭하고 장엄한 세계로 무수한 불국토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연화교, 칠보교(국보제22호)

이 구역은 석가정토보다 면적도 좁고 건물도 낮으며 장식도 간단하다. 아미타 신앙대로라면 불국사에서 아미타정토 구역을 제일 장엄하고 높게 조성하는 것이 이치이지만 규모나 구조면에서 아미타정토석가정토의 부속물로 설계되었다. 권지연은 이와 같이 설계된 이유로 아미타 신앙신라시대 대중 사이에 크게 유행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화엄사상의 카테고리 안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엄사상에 의하면 아미타정토는 가장 낮은 단계로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한 것이고 연화장세계는 가장 높은 단계로서 근기가 높은 중생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연화장세계는 바로 해탈의 경지인데 이곳은 만물이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세계.

불교 세계에는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정토, 약사여래가 있는 유리광정토 등 수많은 정토가 있지만 불교의 주 관심사석가여래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사바세계에 있다. 그러므로 많은 여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여래는 사바세계의 석가여래이므로 연화장세계로 변모한 석가정토아미타정토보다 단계가 높은 것이다. 즉 우리의 이상은 저 멀리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연화장세계로 변모시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노력과 실천으로 깨침에 다다르면 이 사바세계가 가장 훌륭한 정토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불국사의 건축이 말해주고 있다고 최준식 박사는 적었다.

 

 칠보교와 연화교

대웅전으로 가는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에는 아미타여래의 서방 극락세계로 가기 위한 칠보교연화교가 있다. 칠보교연화교청운교백운교와 모습이 비슷하지만 경사가 훨씬 완만하게 처리되어 있는데 다소 규모가 작다. 여기에서 칠보일곱 가지 보석을 뜻한다고 설명되나 부처의 본질깨달음의 일곱 가지 덕성을 말한다는 설명도 있다.

다리 밑에는 약간 완만한 곡선을 이룬 홍예가 만들어져 있는데 오르는 계단 하나하나에 활짝 핀 연꽃이 조각되어 아미타의 극락세계극락전 영역에 이른다. 이 다리는 창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는데 헌강왕비비구니가 되어 왕이 극락에 왕생하기를 기원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청운교백운교에 비해 부드럽고 온화한 다리로 신라시대 석조 기법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극락전

안양문을 지나면 석등과 극락전이 나타난다. 안양이란 극락정토의 다른 이름으로 이 문을 지나면 사방의 극락정토에 이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극락전아미타여래가 주존으로 봉안된 사찰 건물을 말하는데 무량수전이라고도한다.

아미타여래무량광 또는 무량수로 번역된다. 극락전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으로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이 봉안되어 있다. 고금창기에는 6칸 건물로 전후 26칸의 행랑이 적혀 있지만 임진왜란소실된 것을 영조 26(1750)에 중창했으나 기단과 초석, 계단 등은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의 모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강릉 객사문과 도갑사 해탈문을 참고로 하여 1960년에 중건된 것이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제27호)

극락전위축전(爲祝殿)이라고도 부르는데 위축전이란 조선 왕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명산대찰에 지은 원당(願堂)을 뜻한다. 1920까지 온돌을 들여 원당으로 사용했는데 1920온돌을 철거하고 다시 극락전으로 환원되었다

극락전의 모서리에 돼지가 조각되어 있다. 불국사에서는 이를 복돼지라 안내하고 있는데 돼지제물과 의식의 풍족함을 상징하며 복을 가져다주므로 극락정토의 복돼지

극락정토의 복돼지

부와 귀의 상징인 동시에 지혜로움으로 그 부귀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로 극락전에 조각했다고 설명된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통하는 길에는 3을 지어 쌓은 계단이 있는데 각각이 16계단이므로 모두 48계단이 된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48()을 상징한다. 이와 유사한 계단은 구례 화엄사에서도 발견된다.

 

극락전 안에 있는 아미타여래불상결과부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고 가슴으로 올린 왼손은 엄지와 장지 손가락을 짚어 극락에 사는 이치설법하고 있는 자세인데 비로전의 비로자나불과 양식이 같아 같은 시기에 같은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높이 1.66미터, 머리 높이 48센티미터, 무릎의 너비 1.25미터 8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풍만하고 탄력있는 살결 위에 간결하게 흐르는 옷주름, 전체적으로 인자하고 침착한 모습의 이 불상은 신라 시대 금동불상가장 큰 걸작으로 평가된다.

신라 최대의 석조 (보물제1523호)

연화칠보교 앞에 크기가 다른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이는 불국사가 여러 차례 중수되는 동안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지주 앞에 길이 265cm,  1,231cm, 높이 56cm신라 최대의 석조(보물 제1523)가 놓여 있다. 일반 석조에 비해 내·외면에 조각 장식이 있는데 바깥 면에는 중앙부와 상부에 가로로 도드라진 띠를 돌리고 중앙부의 돌림띠 아래로는 긴 변에 각 6, 짧은 변에 각 3개씩 모두 18개의 8괄호형 안상(길이 32cm, 높이 7cm)을 조각하였으며, 안쪽 면에는 바닥 중앙부에 타원형의 커다란 자방 형상을 조각하고 이를 중심으로 긴 변의 좌·우 바닥 면과 측면벽으로 연결하여 단청의 머리초 수법의 연화문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이하게도 바로 옆에 석조를 덮었던 돌뚜껑이 놓여 있다. 불국사 경내에는 이 석조 이외에도 3가 더 있다. 좌경루 앞쪽에 있는 석조는 지금도 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된다.

 

 비로전

석가여래의 사바세계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비로자나불이 주석하고 있는 법계가 있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으므로 연화장 세계 불국비로전을 건축했다.

비로전무설전 뒤쪽 높은 곳에 있어 대웅전으로부터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1970년대의 발굴로 터전이 확인되어 그 자리에 다시 중건했으며 건물은 고려 시대 양식이다.

비로전

기단은 지대석, 면석, 갑석으로 조립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화강암 기단, 앞쪽 중앙에 삼단의 층계, 좌우에 삼각형 소맷돌을 설치했다. 소맷돌받침돌과 위에 놓이는 두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런 소맷돌황룡사나 감은사에서도 볼 수 있지만 불국사의 다른 전각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비로전의 주인비로자나불인데 화엄사상에 따르면 비로자나불 빛을 발하여 어둠을 쫓는다는 뜻으로 모든 부처님의 본체진리의 몸법신불이다. 단순히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부처님 중의 한 분이 아니라 그 모든 부처의 근본이요 중심으로 간주되는 부처님이다(비로자나불주존일 경우 그를 봉안하는 전각을 대적광전이라 함).

 

 금동 비로자나불좌상 (국보제26호)

불단에 모셔진 금동 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높이 1.8미터, 머리 높이55센티미터, 폭은 1.36미터. 극락전의 아미타불과 마찬가지로 금동불인데 주조 기법이나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몸은 바로 앉아서 앞을 바라보고 오른손의 두 번째 손가락을 세워서 왼손으로 잡고 있는데 이러한 수인을 지권인(智拳印)이라 한다.

오른손부처의 세계왼손중생들의 세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는 심오한 뜻을 나타낸다. 이러한 수인은 비교적 후대에 비로자나불밀교의 주존(主尊)으로 대일여래가 불렸을 때 흔히 나타났다고 최준식 박사는 적었다.

에는 삼도를 나타내 위엄을 보이는데 다부지게 꼭 다문 입술, 지긋하게 아래세상을 내려다보는 자비로운 눈, 단정히 결가부좌하고지권인으로 하여 가슴 앞에 들고 있는 모습 등은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씩씩한 기상을 보여준다.

불국사 사리탑(보물제61호)

비로전 옆 뜰에 얼핏 석등(보물 제61)으로 여겨지는 회백색의 화려한 고려 초기의 부도가 전각 안에 있는데 안내판에는 불국사 사리탑이라고 적혀있다. 4각 지대석에 창 모양의 안상(眼象) 코끼리 눈 모양 무늬를 조각하고 그 안에 꽃을 조각했다. 8각형의 하대석에 커다란 연꽃 8을 구성하고 장고 모양의 중대석에는 구름 문양을 조각했다. 

불국사 사리탑(보물제61호)

상대석은 아랫면에 9잎의 연꽃을 조각하여 안에 원형 그리고 윗면에는 연밥을 조각했다. 원통형 탑신에는 장식이 있는 기둥을 세워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얕게 조각된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만들어 위쪽에 장막을 드리고 그 안에 석가모니불다보불제석범천을 조각했다. 기와지붕을 본뜬 지붕틀 아랫면에는 연꽃을 조각했다. 윗 부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사라졌다. 통일신라시대의 팔각형에서 벗어난 특이한 형태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석질이 연약해서 곳곳에 풍화현상이 있지만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전면의 조식전체의 조화미려한 작품이다.

불국사 사리탑(보물제61호)

현재 불국사의 강당 뒤쪽 비로전 곁에 단칸의 보호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는데 1905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33반환된 것으로, 지금의 위치는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표면 장식이 아름답고 단아하며, 외형적으로는 석등과 비슷한데,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 광학부도(光學浮屠)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