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
라스푸틴의 또 다른 주역은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다. 그는 1918년 『라스푸틴의 살해(The Murder of Rusputin )』로 당대의 정황을 매우 자세하게 적었다.
‘우리가 모이카 궁전의 상층에 있는 테이블에서 보낸 한 시간은 나에게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중략) 우리는 차를 마치면 예기치 않은 손님이 와서 겁에 질린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테이블을 떠난 것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각각의 컵에 약간의 차를 부었고, 남은 케이크 조각과 피로즈키 그리고 구겨진 테이블 냅킨 몇 개 사이에 부스러기를 흩뿌려 테이블을 흐트렸습니다. 유수포프 왕자가 라조베르 박사에게 청산가리 몇 조각을 주자 그는 왕자가 준 장갑을 끼고 칼로 접시에 독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핑크색 크림 케이크와 초콜릿 상단을 반으로 들어 올리고 각각에 많은 양의 독을 넣은 다음 상단을 올바르게 보이도록 교체했습니다. 핑크색 케이크가 완성되자 브라운 초콜릿과 함께 접시에 담았습니다. 라조베르 박사는 청산가리의 양은 몇 명을 즉시 죽이기에 충분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유수포프 왕자도 당대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라스푸틴을 맞이하러 갈 때 드미트리 대공, 푸리슈케비치, 스코틴 대위가 위층으로 올라가 축음기를 연주하고 흥미있는 곡을 선택하는 데 동의했다. 나는 라스푸틴이 유머 감각을 유지하여 잠재된 불신을 없애고 싶었다. (중략) 나는 자동차로 라스푸틴을 데리러 그의 집으로 갔다. (중략) 라스푸틴은 명랑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차를 몰고 그를 준비된 방으로 안내했다. 작은 탁자에는 케이크와 고급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세 종류의 포도주에 독을 탔고 케이크도 마찬가지였다. 라스푸틴은 따뜻한 방에서 의자에 몸을 던지고 유머에 찬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성공담, 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독일군 무기에 대해 설명했고 독일의 카이저가 곧 페트로그라드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었다. (중략) 시간이 흘렀지만 독이 작용한 흔적은 없었다. 라스푸틴은 전보다 훨씬 더 즐거워 보였다. 나는 이 사람이 불가침의 존재이고 초인간적이며 죽일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섬뜩한 감각이었다. 그는 마치 우리 마음을 읽고 우리를 속이려는 듯 까맣고 까만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푸리슈케비치는 유수포프 왕자가 상층으로 올라와 라스푸틴이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었는데도 죽지 않았다고 말한 상황을 부연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상상해보세요. 그는 독으로 가득 찬 두 잔을 마시고 분홍색 케이크를 몇 개 먹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중략) 내가 볼 수 있는 독의 유일한 효과는 그가 끊임없이 트림을 하고 약간의 거창한 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국 유수포프가 다시 라스푸틴에게 가서 직접 라스푸틴을 쏘기로 결정했다.
유스포프가 라스푸틴을 쏜 후 지하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푸리쉬케비치로서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가 라스푸틴에 두 발의 총을 쏘아 쓰렸트렸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후 그는 라스푸틴의 처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다. 이 당시 유수포프는 기절하여 안식을 취하고 있을 때이므로 유수포프가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라스푸틴이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드미트리 대공은 몇몇 병사들에게 인근 철도 터미널에 가서 라스푸틴의 옷을 불태우라고 말했다. 또한 드미트리 대공은 새벽 4시 50분 라스푸틴의 시신을 페트로프스키 다리로 옮겼다. 푸리슈케비치가 이 정황을 정확히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한 안식처로 데려가 내 발치에 누워있는 ‘존경하는 노인’ 생명이 없는 시체와 함께 차 뒷좌석에 앉았을 때의 기억이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집들과 끝없는 울타리로 통과하여 도시를 떠났으며 조명은 거의 없었다. (중략) 추위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히 경직되지 않은 부드러운 시체에 무릎이 닿을 때마다 나는 신경질적인 떨림을 느꼈다. 마침내 저 멀리 얼음 구멍에 라스푸틴의 시신을 던질 다리가 나타났다.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은 속도를 줄이고 다리의 왼쪽으로 차를 몰고 가드레일에 멈췄다.
(중략) 나는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최대한 재빨리 뛰어내려 난간에 다가갔다. 병사와 라조베르 박사가 나를 따라오자 대공 옆에 앉아 있던 수코틴 대위가 우리와 합류하여 함께 라스푸틴의 시체를 휘둘러 다리 바로 옆의 얼음 구멍에 세게 던졌다. 드미트리 대공은 차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사슬로 시체에 무게를 고정하는 것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서둘러 그것들을 하나씩 차례로 던졌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망자의 외투에 사슬을 꿰어 같은 구멍에 던졌다. 라조베르 박사가 차 안에서 라스푸틴의 부츠 중 하나를 찾았다. 이 모든 작업은 2〜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 다음 라조베르 박사와 수코틴 대위, 군인은 차 뒤에 탔다. 그리고 나는 드미트리 대공 옆에 탔고 다시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리를 건넜다.
(중략) 우리는 다리 위의 보초소에 경비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가 우리를 눈치 채지 못했는데 그가 너무 깊이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그의 경비실에 불을 켰을 때도 깨어나지 않았다.’
푸리쉬케비치는 다소 무모한 사람이 틀림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러시아 궁정과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런데 총소리를 듣고 경찰관이 찾아오자 자신이 라스푸틴을 쏘았다고 말했다. 사전에 유수포프의 이야기처럼 개를 쏘았다고 입을 맞추기로 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그의 돌발스러운 증언으로 모이카 궁에서 라스푸틴이 살해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빌미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드미트리 대공과 유수포프 왕자가 체포되기까지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여러 가지 정황으로 5명의 주범은 커다란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푸리쉬케비치의 돌발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라스푸틴 살해의 장본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③ 스타니슬라우스 드 라조베르(Stanislaus de Lazovert) 박사
라스푸틴의 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러시아 군의관인 라조베르 박사다. 그는 듀마 의원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와 잘 알고 있는 친구인데 라스푸틴에게 줄 청산가리를 케이크와 포도주에 직접 넣은 장본인이다. 그는 당시의 정황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검은 악마의 경력을 끝낸 총격은 내 절친하고 사랑하는 친구이자 듀마의 반동 의원인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에 의해 발사되었다. 우리 중 다섯 명이 이 행사를 여러 달 동안 준비했다. 살해당한 날 밤, 모든 세부 사항이 정리된 후 나는 자동차를 타고 황궁으로 달려가 이 검은 악마를 유수포프 왕자의 집까지 동행했다.
그날 밤 푸리슈케비치는 유수포프 왕자의 집의 정원에서 자동 리볼버 권총으로 라스푸틴을 쏘았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의 시신을 시트에 담아 네바 강에서 얼음을 깨고 던졌다.’
라조베르 박사는 라스푸틴을 살해되어야 할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라스푸틴과 그의 파벌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식량도 무기도 없이 군대를 참호에 보내 학살당하게 놔두고 루마니아를 배신하고 연합군을 속이고 독일에 러시아를 몸으로 넘기는 데 거의 성공했다.
오스트리아 그린 핸드의 비밀 멤버인 라스푸틴은 궁정에서 절대 권력을 가졌다. 황제는 모든 사악한 사업에서 퇴위하고 도피하는 것이 유일한 욕망인 햄릿과 같은 존재였다.
라스푸틴은 악덕, 방탕, 열정의 삶을 계속했다. 드미트리 대공비가 이런 사실을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보고했는데 돌아온 것은 궁정에서의 추방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괴물을 죽이기로 결정했을 때 5명의 남자 즉 드미트리 대공, 유수포프 왕자, 푸리수케비치, 수코틴 대위와 자신만 참가했다고 적었다.
‘유수포프 왕자의 궁전은 네바 강가의 장엄한 장소다. 그레이트 홀은 6면이 동일하고 각 홀에는 무거운 참나무 문이 있다. 하나는 정원, 반대편은 넓은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 거대한 식당, 다른 하나는 도서관 등으로 연결된다.
자정에 내가 차에 올라 라스푸틴의 집으로 운전하는 동안 왕자의 동료들은 몸을 숨겼다. 우리는 왕자의 집으로 빠르게 차를 몰고 도서관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굴뚝이 있는 곳에서 타오르는 통나무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작은 테이블에는 케이크와 귀중한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세 종류의 포도주에 독이 들어 있었고 케이크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적절한 순간 라스푸틴에게 포도주와 케이크가 제공되었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케이크를 삼켰는데 시간이 흘렀지만 독이 작용했다는 징후는 없었다.’
자신이 직접 준비한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와 포도주를 마셨음에도 죽지 않았다는데 라조베르 박사는 유수포프 왕자와 마찬가지로 경악스러웠다고 실토했다. 그는 라스푸틴이 불가침의 존재이고 초인간적이며 죽일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섬뜩한 감각이었다. 그는 마치 우리 마음을 읽고 우리를 속이려는 듯 까맣고 까만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우리의 일이 헛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갑자기 그가 문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총으로 쏘았다.’
그는 라스푸틴이 무서운 비명과 함께 몸을 빙글빙글 돌다가 얼굴을 바닥에 대고 쓰러졌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달려와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는 몸 위에 섰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두 발을 더 쏠 것을 제안했지만 ‘이제 그의 마지막 고통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는 그를 홀로 죽게 하고 그의 제거와 말살을 계획하기 위해 방을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도서관으로 통하는 거대한 문 뒤에서 이상하고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문이 천천히 열렸는데 라스푸틴이 앉아 있었고 입에서 피 묻은 거품이 뿜어져 나왔고 끔찍한 눈이 소켓에서 튀어나왔다. 놀라운 힘으로 그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뛰쳐나와 문을 비틀어 열고 기절했다.’
유수포프 왕자의 말과 다소 다른 설명이지만 여하튼 그는 라스푸틴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 보이자 곁에 서 있던 푸리슈케비치가 손을 뻗어 미국산 자동 리볼버 권총으로 그에게 재빨리 두 발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라스푸틴이 신음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고, 나중에 시체에 다가갔을 때 라스푸틴이 조용하게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를 시트에 싸서 강가로 데려갔다. 얼음이 얼어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부수고 그를 던졌다. 다음날 라스푸틴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 죽음에 대한 조사를 강력히 명령하자 라조베르 박사는 곧바로 푸리슈케비치와 러시아를 탈출했다고 설명했다. 유수포프 왕자는 체포되었지만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이 인정되어 왕자는 석방되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서 헷갈리는 것은 라조베르 박사가 처음 라스푸틴에게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적었다는 점이다. 추후에 푸리슈케비치가 라스푸틴에게 2발의 사격을 가했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유수포프가 알려진 것처럼 처음에 발사한 사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라조베르 박사의 말이 이럴진데 진상 확인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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