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DNA와 RNA에 대한 성격이 규명되자 학자들은 DNA의 염기배열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결정하는 방법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연구가 중요한 것은 DNA 속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를 해독할 경우 유전자의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하며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시키거나 나아가 새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시작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그것은 작업량이 너무나 방대하여 쉽게 연구 결과를 얻어낼 수 없으리라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평생을 걸려서라도 해석할 수 없는 연구 프로젝트라면 아무리 의욕이 넘친 학자라도 주춤하기 마련이다. 노벨상도 죽으면 수상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인류사에 이럴 경우 매우 재미있는 예가 생긴다. 즉 아무리 어려운 연구를 하더라도 노벨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이미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1958년 인슐린을 완전히 분석하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생어(Frederick Sanger)가 여기에 도전했다.
그도 폴링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할 때의 연구 방법으로 시작했다. 즉 아미노산 배열을 결정할 때와 같이 DNA 염기배열을 결정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RNA의 경우 특수부위를 절단하는 핵산가수분해 효소를 구할 수 있었지만 DNA의 경우는 분자량이 큰데다가 염기 종류에 특이한 효소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 해피엔딩이었다. 생어는 결국 특정한 염기들을 제거하면 DNA 중합체의 작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화학적으로 변경된 염기들을 사슬의 말단 고리들로 이용함으로써 그 배열을 더 잘 통제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1978년 첫 연구 결과로 비교적 단순한 파이 X174바이러스의 5,386염기의 완전한 배열을 발표했다. 이는 그때까지 배열해 낸 것으로는 가장 긴 가닥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RNA가 효소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RNA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3가지 분야로 좁혀지는데 이성옥 박사의 글에서 많은 부분을 참조한다.
첫째는 생명현상에 있어 RNA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즉 RNA가 기존에 알려진 유전 정보의 수동적 전달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단백질과 같이 효소 기능을 가짐으로써 매우 능동적으로 유전자 정보 발현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명의 기원 물질로서 RNA가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 정보 저장체인 DNA와 그 발현 산물인 단백질은 마치 닭과 달걀 중에 누가 먼저냐는 논쟁처럼 생명체의 기원으로 알려졌는데 이제 RNA의 등장으로 RNA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설명이 가능해졌다.
왜냐하면 DNA는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반면 복제를 위해선 단백질에 의한 촉매작용이 필요하며 단백질의 경우 효소 촉매 기능은 갖고 있으나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비해 RNA는 유전 정보를 저장할 수 있으며 동시에 효소활동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최초의 생명체는 RNA 형태로 자연 합성된 후 자기복제를 통해 증식하면서 현재의 생명체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가설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세 번째는 의학 분야를 비롯한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RNA의 효용성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다수 리보자임의 기능인 특정표적RNA의 절단 기능을 이용하면 HIV(에이즈)나 2020년 노벨상을 받게 만든 HCV(C형 간염바이러스)와 같이 RNA를 유전자로 갖는 바이러스의 복제를 억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암세포의 특정RNA를 잘라 암세포를 죽게 하거나 암 성장에 필요한 영양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항암제를 개발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간섭RNA(RNAi, RNA interference)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간섭RNA는 21~25개 정도의 뉴클레오티드(nucleotide) 중합체로 이뤄진 길이가 짧은 RNA이다. 그런데 이것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더욱 놀라운 발견은 효모에서 간섭RNA가 유전자가 아니라 염색체의 구조자체를 변형시켜 유전자발현 조절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결과들은 특정유전자의 세포 내 기능 규명과 바이러스나 종양과 같은 인체 질환의 치료제로서 간섭RNA의 응용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크게 주목되고 있다.
<사이언스>지는 2003년 12월 과학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10대 중요 과학적 성과를 발표하면서 여기에 RNA 간섭 현상을 유도할 수 있는 소간섭RNA(siRNA, small interfering RNA) 기술을 포함시켰다.
RNA간섭이란 쉽게 말해 RNA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간섭을 받아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단원은 김연수 박사의 글을 많이 참조했다. 생명체에서 유전정보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DNA의 유전정보가 RNA로 전사된 후 이 유전정보에 담긴 대로 단백질이 합성돼야 한다. 만약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단백질 합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RNA간섭은 이런 원리를 활용한다. DNA의 유전 정보를 단백질 정보로 전달할 때 이 과정에 관여하는 전령 RNA를 방해하거나 파괴해 단백질 정보가 중간에서 전달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유전정보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다.
현재 4천 종 이상의 질환이 유전자 변이나 유전자 발현의 이상 때문에 발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약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자로부터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RNA를 세포내에 주입하면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RNA 간섭의 ‘능력’은 유전병 치료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응용이 가능하므로 학자들이 주목한다. 우선 RNA 간섭이 바이러스 감염성 질환 치료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암과 에이즈 바이러스, 간염 바이러스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약이 태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RNA 간섭 기술을 식물에 적용하면 경제성이 높은 작물의 재배시간을 단축하거나 병충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하튼 RNA간섭 작용에 대한 연구는 근간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그러한 기대는 어긋나지 않아 2006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앤드루 Z 파이어 미 스탠퍼드 의대 교수와 크레이그 C. 멜로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들의 수상 제목은 「유전정보의 전달 통제연구」에 기여한 공로이다.
실제로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전달받은 멜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받게 된다면 10년이나 20년 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RNA에 대한 연구는 2006년 노벨 화학상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스웨덴 왕립 한림원 노벨 화학상 수상위원회는 200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유전자 내에 축적된 정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복사되고 또 단백질을 생산하는 세포의 다른 부분으로 전달되는지를 다룬 전사(輾寫)에 대한 연구 공로로 로저 콘버그 박사를 선정했다.
생명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슐린이나 소화효소 등 수 만 가지의 단백질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DNA→RNA→단백질 합성으로 이어지는 유전 정보 전달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즉, 몸에 혈당이 높아 인슐린이 필요하다는 정보가 세포로 전달되면 DNA는 인슐린을 만들 수 있는 유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RNA를 합성한다. 인슐린은 DNA로부터 RNA가 가져온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콘버그 교수는 DNA에서 RNA가 합성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것이다.
줄기세포를 신경세포.심근세포 등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킬 때도 콘버그 교수의 업적은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만들려면 그와 관련된 단백질이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RNA 전사 과정을 모르면 이를 조절할 수 없다. 전사 과정을 정교하게 조절하지 못하면 신경세포를 만들려던 것이 근육세포 등 엉뚱한 세포로 자랄 수도 있는 것이다.
콘버그 박사의 연구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처음으로 박테리아와는 달리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세포핵을 갖춘 진핵생물의 기관에서 분자 수준에서 이 같은 전달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도해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효모에서부터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생물들이 이러한 진핵생물의 범주에 포함돼 있다.
연세대 화학과 신인재 교수는 ‘콘버그 교수의 업적은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현대 생명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이라고 말했다.
로저 콘버그 박사는 특히 그의 아버지 아서 콘버그가 1959년 하나의 DNA 분자로부터 다른 DNA 분자로 유전자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6번째로 부자 2대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버지 아서 콘버그 교수가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인 데 반해 아들 로저 콘버그 교수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던 셈이다.
참고문헌 :
「생명의 기원과 유전자 비밀 밝혀줄 핵심분자 RNA」, 이성욱, 과학동아, 2003년 4월
「RNA로 유전병 고친다」, 김연수, 과학동아, 2004년 11월
「올 노벨 화학상에 콘버그 교수」, 박방주, 중앙일보, 2005.10.5
「올 노벨의학상…난치병 치료 새로운 길 열어」, 이명진, 매일경제, 2006.10.3
『사이언스 오딧세이』, 찰스 플라워스, 가람기획, 1998
『내가 듣고 싶은 과학교실』, 데이비드 엘리엇 브로디 외, 가람기획, 2001
『유레카』, 레슬리 앨런 호비츠, 생각의 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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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2005
『오류와 우연의 역사』, 페터 크뢰닝, 이마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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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과학자들』, 존 판던 외, 아이세움, 2010
『100 디스커버리』, 피터 매니시스, 생각의날개,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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