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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도 원자 내 전자의 상황을 훌륭하게 설명하는 별개의 수학적 개념을 발표했다. 하이젠베르크에 의하면 전자는 입자일 뿐만 아니라 종래에는 연속적인 양이라고 믿어졌던 전자의 위치 및 운동량은 띄엄띄엄한 값을 취한다. 이것을 불확정성원리라고 한다.
불확정성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아원자 입자들이 보이는 본질적인 성질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예로 어느 전자의 운동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애쓸수록 전자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더 부정확해진다는 것으로 둘 중에 하나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물체의 경우 운동량을 알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발사된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원자인 경우 하이젠베르크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한 전자의 위치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빛을 충돌시키면 된다. 어떤 에너지를 가진 일종의 복사(빛)를 전자에 충돌시켜 그것이 반사되는 것을 보고 전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물체를 관찰하는 행위 자체는 필연적으로 그 물체의 위치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가해야 하므로 전자의 속도에 더 많은 변화가 초래된다.
반대로 전자의 운동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복사의 간섭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전자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전자의 에너지를 측정하려고 하면 전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관측자의 행동에 따라 전자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궁극적으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책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광자가 책을 때리고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물리학자들은 광자에 맞은 책은 약간 움찍 물러난다고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책에 써져 있는 글을 읽을 수 있다. 즉 고전물리학에서는 어떤 측정행위(빛이 어떤 물질을 때리고 튀어나오는 것)가 어떤 식으로든 측정대상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광자의 무한히 작은 에너지가 책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에 미치지 못하므로 이것은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야구장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투수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공이 갑자기 춤을 추거나 방에 백열등을 수십 개 한꺼번에 킨다고 해서 가구들이 옮겨지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뉴턴의 사고가 작은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가 책을 보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전자를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불확정성 원리의 중요성은 측정도구가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원자 입자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아원자 입자의 행동에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어 이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원자나 전자와 같은 작은 세계는 궁극적으로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로버트 M. 헤이즌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이 있는데 그 안에 차가 한 대 있는지 알아내어야 한다. 문제는 그 터널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없고 빛을 비춰 볼 수도 없다. 이때 터널 안에 차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다른 차 한 대를 들여보내서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소리가 들리면 터널 안에 차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충돌 실험‘이 끝나면 터널 안에 있는 차의 모습은 결코 처음과 같지 않다.’
즉 충돌실험(측정행위)가 관찰 대상이 되는 차의 모습을 바꿔 놓은 것이다. 두 번째 측정을 위해 차를 또 한 대 들여보낸다면 이때 측정하는 대상은 최초의 측정에 의해 이미 변해버린 차들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보험회사를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을 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신빙성 있는 수치로 제시할 수는 있지만 보험 가입자 개개인이 언제 사망할지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자의 운동은 궤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확률 구름과 같다. 즉 전자의 존재확률이 큰 장소에서는 구름이 밀집되고 그렇지 않은 장소에서는 엷어진다. 이제 원자 속의 전자가 존재하는 장소의 확률 분포가 전자의 궤도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불확정성원리란 한 마디로 소립자의 경우 위치와 속도 두 가지를 동시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치와 속도는 물체를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이다. 즉 소립자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해서 오차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속도의 불확정성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한쪽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다른 쪽에 대해서는 점점 더 모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측정 행위 자체가 측정 대상을 변화시키므로 우리의 지식은 항상 어딘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에 대해 하이델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함축성 있게 설명했다.
‘실체의 점점 더 작은 단위들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실체를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 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들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쪼개는 일이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상반된 이론으로 부자가 노벨상 수상>
드브로이와 슈뢰딩거,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물리학에서 소립자학이 성립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드브로이는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슈뢰딩거도 1933년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원리를 착안하게 된 동기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관찰이란 것은 관찰 대상과 감각의 연관성을 정해주는 자연법칙을 알고 있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주는 것은 바로 이론이라고 말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원자모형을 이용해 플랑크의 복사공식을 유도하는 논문을 썼는데 이때 광자의 입자성을 나타내는 ‘운동량’ 개념을 물리에 도입시켰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개념에 기초해 물리적인 관점에서 불확정성원리를 면하게도 되었다고 추후에 이야기했다.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 데 있어 같은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위치와 운동량 같은 입자성을 이용한 반면 슈뢰딩거는 물질의 파동성을 이용했다. 두 가지 접근 방법은 추후에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체계를 형성하는 두 개의 축이 되었다.
거시세계의 용어와 개념을 바탕으로 원자 현상이라는 미시세계를 설명하면 한계점에 도달한다.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 같은 미시세계의 현상은 거시적인 용어를 차용할 때 입자나 파동의 어느 한쪽으로만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어는 상보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보어에 따르면 입자와 파동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으로 어떤 물리적인 현상을 기술할 때 동시에 적용할 수 없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전자는 관찰자가 행하는 관찰의 종류에 따라 떄로는 입자, 때로는 파동으로 행동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원자적 세계에서는 관찰이 행해질 때에만 실체를 갖게 되며 관찰이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하나의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어의 ‘상보성 원리’라고 하는데 나중에 이 원리는 ‘상호 배타적인 것은 상보적’이란 말로 일반화된다. 이에 따라 위치와 운동량, 시간과 에너지, 파동과 입자 등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견해를 일괄하여 코펜하겐 해석(G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 한다. 보어는 1922년 37세의 나이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여하튼 독일의 물리학자 보른(Max Born)은 1924년 처음으로 ‘양자역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슈뢰딩거 방정식을 사용하여 ‘파동 확률’을 나타내는 이론을 접목시켰다. 그의 이론은 전자는 3차원 공간에서 위치를 정확히 잡을 수 있는 입자도 아니며 바다와 같은 3차원의 파동도 아니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 원리를 체계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보른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주임 교수였다. 노벨상은 제자인 하이젠베르크가 먼저 받았지만 그도 양자역학의 수학적 방법을 더욱 발달시킨 공로로 195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고전물리학과 모순되는 양자역학>
광자와 전자라는 주제로 돌아가자. 이 두 개의 기본 입자의 중요성은 바로 이 두 입자의 관련성 속에 이 세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독특한 소재를 주제로 삼은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은 여러 곳에서 공포의 장면을 보여주는데 마지막 장면은 매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변태살인마 버팔로 빌과 FBI견습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과 마지막 승부가 펼쳐진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승부는 매우 불공정하다. 버팔로 빌은 야시경을 쓰고 스탈링을 보고 있는데 조디 포스터는 암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답게 스탈링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버팔로 빌을 저격하지만 영화에서 최첨단 야시경을 통해 비친 스탈링의 공포에 떠는 모습은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여기에 등장한 야시경은 바로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광증폭기(photo multiplier)라 불리는 소자의 2차원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광증폭기란 광전효과를 이용해서 빛 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꿔 증폭시킨 후에 다시 빛 신호로 바꾸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야시경의 원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빛이 금속판을 때리면 광전효과에 의해 금속판의 전자가 방출된다. 만약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주 약한 빛이 금속판을 때리면 에너지가 낮은 전자가 방출된다. 이러한 전자에 전기장을 걸어주면 전자는 가속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가속된 전자가 다시 형광판을 때리면 이 전기신호는 강한 광신호로 바뀌어 우리 눈의 시세포를 자극한다.’
이런 광증폭기를 2차원으로 배열하면 마치 TV처럼 2차원 공간을 보여준다. 영화 「패트리어트 게임(Patriot game)」도 야시경에 관한 내용을 소재로 했다.
IRA테러 집단은 미국 해군사관학교 교수인 잭 라이언(해리슨 포드)를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한다. 테러범들은 잭의 집에 공급되는 전기를 차단하여 완전히 어둡게 만든다. 그들은 야시경을 쓰고 있으므로 목표물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잭이 이들에 대항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잭이 숨어있는 지하실로 테러범이 들이닥치자 잭은 갑자기 불을 켠다. 그들은 아주 미약한 불빛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야시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한 빛이 들어오자 눈에 심한 타격을 입는다. 야시경의 원리 즉 광전효과를 잘 알고 있던 교수였으므로 야시경이 없어도 승리한 것이다. 광전효과가 우리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수많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예이다.
여하튼 우리는 광자와 전자를 독립된 존재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자연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두 개의 방식을, 광자는 가장 낮은 단계의 에너지를, 전자는 그 다음 단계의 에너지를 대변한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가지고 있는 원자핵은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양자 역학의 한 특성으로서 전자가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 개념인 고전 물리학과 극히 모순된다. 따라서 원자와 같은 미시적 세계에서는 종래와는 다른 개념과 새로운 법칙이 필요로 하고 있다. 더욱이 고전 역학에서는 최초의 어떤 체계의 위치와 운동 상태를 알고 있으면, 운동 방정식을 풀어냄으로써 장래의 상태를 예지 할 수 있었으나 미시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전자의 위치와 그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다.
한편 양자론을 이끌어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반대하였다.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로 물리적 사건에서 우연이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부정했다. 그는 우주가 질서정연하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뉴턴주의자임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즉 어떤 상황이나 계의 초기 조건을 정확히 알면 어느 시간 후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에서 절대적인 기준점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파괴하여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라는 것도 포기하도록 강요한 사람이다. 즉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우주의 모든 곳에서 똑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그에 의해 시간의 정의조차 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인 계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한 식으로 나타냄으로써 우주는 정해진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연속적이고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다. 확률로 우주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이루는 전자와 같은 기본 입자들이 인과율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1930년 그는 반격을 시도한다. 그는 하이젠베르크의 운동량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지 않고는 위치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불확실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측정하는 시간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지 않고는 측정하고자 하는 에너지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역으로 반증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1954년에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보른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반론은 엉뚱한 곳에서 이용되어 또 다시 그의 성가를 높이게 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증은 소립자의 세계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보존 상태로 되돌아와야 하며 에너지 보존 상태에서 많이 이탈할수록 그 이탈 시간은 짧아진다.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이 이론을 적용하여 중간자에 대한 이론을 확립시킬 수 있었고 그는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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