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4차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

1차 산업혁명(1)

Que sais 2020. 10. 3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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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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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산업혁명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100 동안 영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기술조직경제사회적 변화를 총칭하는 용어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단순한 도구들이 소형 기계대체되었고 조직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가내 수공업공장 규모로 변형되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국내 시장 및 해외 식민지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사회적인 면에서는 산업 자본가 및 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계급 사회가 형성되었다. 한마디로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영국에서 진행된 일연의 과정을 보면 산업혁명의 진행이 한 거대한 틀에 의해 연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영국모직물 발달하였는데 18세기부터면직물모직물보다 사람들이 선호했다. 물빨래도 가능하고, 옷 이외에 여러 재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저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떻게 하면 면을 빨리, 많이 생산할 수 있을까?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천재들이 나타나 사람의 손을 대신할 새로운 기계들이 하나둘씩 발명하기 시작했다.

실 만드는 기계를 방적기라 하는데,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제니 방적기를 만든 이후 방적기가 급속한 개량을 거쳐 실 생산량이 최고 300400증가했고 옷감 짜는 기계인 직조기도 개발되었다. 덕분에 옷감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부유한 사업가들이 공장을 지어 여러 대의 기계를 한꺼번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작업의 분화가 이루어져 한 사람이 한 가지 작업만 하루 종일하였다.

 

영국 최초의 방적공장 크롬포드

특히 하그리브스1765년에 실 만드는 기계인 제니(jenny) 방적기를 발명하였고,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1769년에 수력 방적기(water frame)를 개발하였다. 제니 방적기가 생산한 실은 가늘기는 했지만 쉽게 끊어졌고, 수력 방적기가 생산한 실은 튼튼하기는 했지만 거칠었다. 이에 크롬프턴(Samuel Crompton)두 방적기의 장점만을 조합하여 1779년에(mule) 방적기를 발명하였다. 뮬 방적기 덕분에 비로소 튼튼하면서도 가는 실이 생산될 수 있었다. 제니 방적기, 수력 방적기, 뮬 방적기가 잇달아 개발되면서 면공업의 상황은 역전되었고 1785년에 카트라이트(Edmund Cartwright)역직기(power loom)를 발명함으로써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로 돌입한다.

그런데 당시에 기계를 움직이려면 풍차, 물레방아처럼 바람이나 물의 힘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물이 흐르는 힘을 이용해 기계를 움직이려면 물가에만 공장을 세워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여기에 제임스 와트석탄을 이용하여 증기의 힘을 이용한 증기 기관을 만들어 이런 단점을 해결했다. 증기 기관이 널리 보급되자 석탄 생산이 증가했는데 증기 기관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값싸고 질 좋은 철 생산이 필수였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통망이다. 아무리 좋은 생산품이라도 각지의 고객까지 빠른 속도로 전달해야 하므로 도로가 정비되고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고 속도가 빠른 선박이 개발되었다. 이와같이 기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발명되고, 관련 인프라가 함께 발전하면서 산업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산업혁명의 3대 요소증기기관, 제철 그리고 도로망 개척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산업 혁명의 중요성기술적 혁신과 경제 성장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의 과정도 촉발시켰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했고 도시의 저소득 공장 노동자의 인구가 급증했다. 공장 노동증가하자 계급 분쟁이 격화되었다. 공립학교와 감옥 같은 새로운 강압적인 기관들이 사회적 통제목적으로 등장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소규모 생산 업체인 가정이 생산의 중심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노동 분업외부 생산시설 공장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집 밖에 있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확보하려고 애썼고 여자는 생산보다는 집안 일에 종사했다.

또한 산업화와 더불어 거대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수백만 명의 유럽인대서양을 건너거나 팽창하는 러시아 제국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이주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세계의 모든 곳을 변화시켰고 이 와중에서 종종 동요와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이와 같이 전방위적으로 인간의 생활 모든 면에 파고들었지만 이를 단적으로 표시해주는 대표적인 앰블럼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산업혁명의 거대한 핵심의 축에 증기기관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증기기관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제자리를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과 같다.

그런데 증기기관이라 하면 대부분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를 곧바로 연상할 것이다. 큰 틀에서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와트에 의해 비로소 그보다 전에 나타났던 기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그 적용 분야가 확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와트의 증기기관에도 선행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제임스와트와 스팀엔진

증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론그리스의 과학자헤론(Heron of Alexandria) 때 이미 선보였다. 그는 기원 1세기증기의 힘으로 신전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헤론은 또한 간단한 반응기 터어빈 제작했는데 그것은 구형으로 보일러 위에 있는 축에 설치되어 증기가 2개의 뒤틀린 노즐에서 배출될 때 돌아가도록 고안되었다. 한마디로 헤론의 반응기는 인간이 처음으로 만든 증기 장치인데 과학자들이 근래 헤론의 설계대로 복원시킨 반응기는 실제로 잘 작동되었다고 한다.

 

헤론의 증기기관

헤론 이후 이와 같은 아이디어가 선을 보인 것은 1698영국군 공병이었던 토마스 새버리(Thomas Savery, 1650 ? 1715) 대령에 의해서이다. 그는 불의 추진력으로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를 고안하여 특허를 획득했는데 광부의 인력을 줄여준다는 의미에서 이 기계를 광부의 친구라고 불렀다.’

새버리의 터빈은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데니스 파펭(Denis Papin, 16471712)의 연구를 기초로 한 것으로 그는 현재 안전밸브라는 장치를 발명한 사람이다. 안전밸브는 압력이 안전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증기가 빠져나가도록 한 것으로 현대의 압력솥은 사실 그가 알아낸 과학적 원리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압력솥에서 얻은 지식은 파펭으로 하여금 흡인 파이프 위에 놓여 있는 밀폐된 용기에서 증기를 응축시킴으로써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1706 고압으로 작동하는 직접 작용하는 증기 펌프를 제작했다. 그러나 당대의 기술 능력 때문에 실험 단계에서 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너무 앞서 간 것이다. 새버리파펭의 원리를 보다 진전시켰는데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한도가 고작 20피트 즉 6미터에 지나지 않으므로 광산 등 수요처에서 대단위로 실용화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당대에 증기 펌프의 용도는 단연 광산이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질 좋은 금속의 수요가 늘어나자 광산에서 이들을 채취해야 하므로 지하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하광산으로 보아 장애물 투성이었는데 가장 고민은 이었다. 갱도를 깊이 파면 팔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물이 고이곤 했는데 양수 능력이 약하면 물 속에 파묻혀 버리기 십상이었다. 당시의 동력 수준으로는 깊은 곳에 있는 물을 퍼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동력이 개발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절박한 문제에 도전한 사람이 와트보다 70여 년 전에 태어난 토마스 뉴코맨(Thomas Newcomen, 16631729)이다. 학자에 따라 뉴코맨이야말로 200년 동안 유럽을 후꾼 달구게 한 산업혁명의 불을 당기게 만든 선두주자 중에 한 명이라고 평한다. 그것은 뉴코맨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처음으로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해 많은 동력 즉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각종 공장이 무난하게 가동될 수 있었으며 궁극적으로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탄광에서 사용중인 뉴커맨 기관

뉴코맨은 당대의 거의 모든 광산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든 광산 내에 물이 침수되어 작업을 방해하면 물을 뽑아내기 전에는 광산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당대에 사용된 방법은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말을 사용하여 물을 뽑아내는 방법인데 말은 기계가 아니라 동물이었다. 말은 인간처럼 먹어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말과 같은 힘을 가지면서도 음식을 먹지 않는 그 무엇이 필요했다.

뉴코맨파펭의 원리를 이용한 새버리의 기계를 개선하면 당면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증기 동력을 하여 광산 안에 있는 물을 뽑아내자는 것이다. 그는 1712 스타포드셔(Staffordshire)에서 최초로 상업적인 증기기관을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계는 5.5마력(33,000파운드를 1분간에 1피트 높이로 올리는 힘)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었다. 1마력은 원래 한 마리의 말이 내는 동력을 기본으로 정해진 단위이나 보통 말이 내는 동력은 1마력보다 훨씬 작아 대체로 0.30.6마력 정도이므로 새로운 뉴코맨 기관은 918마리의 말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획기적인 기계였다.

물론 뉴코맨의 증기기관은 완벽하지 않은데다 그의 증기기관을 가동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석탄의 비용이 채굴한 석탄이나 광석을 판 금액의 40퍼센트가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뉴코맨 기관은 광산 지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동력기관으로 당대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였다. 그러므로 채굴하는 광산에서 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영국을 떠나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뉴코맨이 중세시대에 과학이라는 무기를 재산으로 엄청난 부를 쌓자 많은 사람들이 보다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발명가로 제임스 와트가 손꼽히는 주요 인물이라는데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뉴코맨의 초보적인 기관을 신뢰성 있는 능률적인 발동기로 전환시켜 산업이 요구하는 여러 가지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임스 와트야말로 산업혁명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동력원을 제공했다.

와트는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강변에 있는 그로노크(Greenock)에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주이자 조선업자였으므로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집안이었다. 소년시절을 아버지 공장에서 보내는 동안 수세공(手細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마친 후 갑자기 집안이 기울어 20세의 와트1755년 런던에서의 기계공 견습 기간을 거쳐 1757년 글래스고(Glasgow) 대학 부속 공장의 기계공이 되었다. 그곳은 연구용 실험 기구나 기계 제작수리하는 곳으로, 와트는 주로 컴퍼스, 눈금자, 사분의(四分儀) 등과 같은 과학 도구를 만들었다. 글래스코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는데 그것은 앤더슨(D. Anderson), 블랙(J. Black) 등과 교류하는 한편 과학지식을 습득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는 물리학(열역학) 분야앤더슨이었다. 앤더슨은 유명한 화이어 머신(fire marchine)'으로 불리는 뉴커먼 엔진 모형을 사용해 증기기관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등 현장감 있는 강의로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강의 도중 강의 자료인 모형이 망가지자 앤더슨와트에게 수리를 부탁했다. 와트뉴커먼 엔진의 모형을 수리하기 위해 모형의 내부를 분해하여 살펴본 후 곧바로 엔진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모형은 고장난 것이 아니라 뉴커먼 기관을 단순히 축소해 작게 만들었기 때문열효율이 너무 떨어져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열기관을 소형으로 만들면 실린더의 단위 면적당 열손실이 커져 그만큼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는 양이 줄어들어 열효율이 떨어진다. 와트뉴커먼 엔진을 면밀히 검토한 후 열효율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작게 만들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커먼 엔진석탄으로 보일러를 가열하여 얻은 뜨거운 증기로 피스톤을 밀어 올린다. 피스톤이 제일 윗부분까지 올라가면 이번에는 차가운 물을 집어넣어 실린더 안의 증기를 식힌다. 그러면 실린더 속의 증기가 액화하여 물이 되고 위로부터 대기의 압력을 받는 피스톤이 아래로 내려온다. 피스톤이 아래로 내려올 때 또 다시 보일러의 뜨거운 증기가 차가워진 실린더를 데워 다시 피스톤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애써 물을 데워 증기로 만들었다가 다시 냉각시켜 물로 만들게 되니 열이 낭비되는 것이 뉴커먼 엔진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제임스와트의 증기기관

와트는 실린더를 냉각하지 않는 대신 한 번 피스톤을 밀어올린 뜨거운 증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 거기서 냉각시키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스톤 실린더를 교대로 가열하고 다시 냉각하는 과정을 제거하면 열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린더에 따로 체임버(chamber)를 연결하고 여기에 응축된 증기를 모으는 것이다.

와트는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강력한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력을 이용한다면 광산의 양수 펌프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기계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코맨의 기계는 피스톤을 오르내릴 때 대기압을 이용하지만 와트증기의 힘이용한다는 뜻이다. 대기압의 크기1기압이므로 뉴코맨 기관에서는 기계를 상당히 크게 만들지 않는 한 큰 힘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와트의 기관으로는 증기압을 이용하므로 보일러가 폭발되지 않는 한 작은 기계로도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뉴코맨의 불완전한 증기기관와트에 의해서 비로소 완전한 증기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와트의 기관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는지는 18세기 말에 이미 500개의 제품이 그의 회사로부터 출시되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탄광의 양수 기구에 지나지 않았던 뉴코맨의 증기기관와트의 손에 의해 만능 동력원으로 각광받았다. 와트발명한 증기기관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의회1785 와트의 특허권15년 동안 연장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당시의 특허권의 기간15이었는데 이를 다시 연장해 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빈털터리 와트가 과학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는 점으로 기계를 잘 만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헤론(Heron of Alexandria)

#헤론의 반응기

#토마스 뉴코맨(Thomas Newcomen, 16631729)

#뉴코맨의 증기기관

#체임버(ch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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