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4차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

1차 산업혁명(3)

Que sais 2020. 10. 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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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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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고속도로 매커덤 도로>

산업혁명이 전개되면서 값싼 제품들은 사람들의 구매를 촉발시켜 판매량이 급속도로 늘어났는데 이는 물동량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상품 유통의 범위는 이미 국가 단위를 넘어서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고 대양을 건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 값싼 제품들이 보다 넓은 지역에서 소비되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공급되어야 했다. 당시 가장 빠른 교통수단마차였는데 마차가 빨리 달리기에는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 사실 역마차라고 해도 평균 속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약간 빠른 정도였다. 현대의 고속도로에서도 노면이 패이거나 작은 파손이라도 발생하면 자동차의 주행에 지장을 받는다고 비난이 쇄도하는데, 하물며 과거의 도로는 말할 것도 없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이 되어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고속도로 개념은 이미 로마제국 시대에 있었다. 세계를 정복해나가던 로마로서는 식민지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빠른 시간에 이들 영토 간의 소통하는 방법이 관건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 변방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때 진압할 군대를 신속하게 파견하는 것이 문제였다. 비행기나 자동차가 없는 시절이니 그 방법이 고속도로뿐으로 현재도 로마시대의 아피아 도로는 사용되고 있다.

 

로마시대의 아피아도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여파로 대량 생산물을 재빨리 원하는 곳에 공급하려 해도 엉망진창인 도로가 문제였다. 골치 아픈 도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도로 건설에 일가견이 있던 스코트랜드 사람 존 매캐덤(John Loudon McAdam, 17561836)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선임자들이 있었다. 현대의 도로 건설 기술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프랑스의 엔지니어 피에르 마리 제롬 트레사게(Pierre Marie Jerome Tresaguet)인데, 엔지니어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571764년까지 파리의 도로 건설에 종사했다. 1775 트레사게프랑스의 도로와 교각 건설의 총감독이 되자 그는 보다 효율적인 도로 건설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의 아이디어 비교적 간단했다. 많은 교통량, 하중에 견딜 수 있도록 도로 전체에 무거운 돌을 평평하게 깔고 망치로 두드려 기초를 튼튼히 한 뒤, 그 위에 약 17센티 두께의 큰 돌을 깐다. 그런 후 그 위에 또 다시 약 8cm짜리 작은 돌덮는 방식이었다. 전체적으로 도로의 중앙 부분약간 높인 형태인데 깨진 작은 돌로 도로면을 포장하여 배수가 잘되도록 했다. 그의 공법은 도로 표면이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이 있어서 말발굽이나 철로 만들어진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트레사게 공법이 현대식 포장의 시초가 되었는데, 덕분에 프랑스는 1800년대 유럽에서 가장 좋은 도로를 가질 수 있었다.

 

매캐덤이최초로건설한 하이킬톤커티지 도로

비슷한 무렵 영국존 메트캐프(John Metcalf, 17171810)는 배수가 잘되도록 홈을 내는 방식을 사용했고 늪지대는 작은 나뭇가지로 채워 기초를 다지는 방식을 사용했고 트레사게의 방법과 더불어 훗날 도로건설의 한 축이 되었다.

당대의 고속도로는 토머스 텔퍼드(Thomas Telford)에 의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1801년 영국의 도로 및 다리 위원회위원이 된 텔퍼드는 거의 혼자 힘으로 토목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텔퍼드트레사게의 도로건설 방식을 변모시켜 약 17센티의 두꺼운 돌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50센티 정도 기반 층을 덮은 뒤, 6.3센티의 돌을 두 겹으로 깔고 다시 5센티 두께로 자갈을 덮어 보다 견고한 도로를 완성시킨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고속도로존 매캐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매캐덤3(로마도로(1)트레사게(2)텔포드(3)맥캐덤(4))

매캐덤1756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인근 아이르(Ayr)에서 워터월드 가남작 제임스 매캐덤과 어머니 수잔나 코크란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상류층의 자제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매캐덤은 메이볼에 있는 사립학교 드와크 학교에 다녔지만 아버지가 파산하여 워터헤드 가의 영지가 매각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미국에 있는 사업가인 삼촌 윌리엄 매캐덤에게 보내졌다. 윌리엄은 뉴욕 인근의 땅 30,000에이커를 소유할 정도로 부호였다. 미국에 건너온 매캐덤도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 수완이 뛰어나 곧 보스톤에서 찰스톤까지 사업장을 확장하고 대형 선박도 소유했을 정도이지만 미국 독립전쟁의 여파로 모든 재산을 압수당했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그는 당대의 큰손들과 회사를 만들기도 했으나 그가 진정 재능을 발휘한 분야는 토목공학, 도로 건설이었다. 그는 영국 서해안의 해군기지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맡았는데 임무는 완수했지만 도로 사정이 너무나 나쁜 탓에 너무 많은 물류비용이 지출되었다.

 

매캐덤

1801 그는 브리스톨 시의 도로 감독관이 되었는데, 브리스톨에이브러험 다비의 제철법으로 급격히 성장한 도시이다. 문제는 이곳의 도로 상태가 엉망인데다 보수조차 어려워 물동량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해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도로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매캐덤은 자신이 토목공학의 기술을 접목해 폭주하는 물동량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좋고 의지와 집념이 있다고 모든 일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고속도로의 건설비너무나 높아 정부라도 쉽게 도로 건설을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매캐덤은 계획 단계부터 역발상을 했다. 즉 사용자가 통행료를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가 처음 통행료를 받아 막대한 건설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제안했을 때 모두들 비웃었다. 조금 빨리 가기 위해 도로 사용료를 내라고 한다면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매캐덤은 초기에 그의 계획을 비웃었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가 건설한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통행료 수익은 그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접목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거의 6년 동안 3만 마일 이상의 도로를 답사하며 각 도로의 문제점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가 철저한 준비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채 고속도로 건설을 설득하자, 브리스톨 시 당국은 매캐덤에게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직접 건설해 보라고 허가했다. 물론 매캐덤의 제안대로 통행료를 보장하는 조건이었다. 도로가 개통되자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비싼 통행료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가 이용자들에게 큰 이득을 줄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고속도로가 소비자들에게 매우 경제적인 경쟁력을 제시한 것이다.

매캐덤은 자신이 설계한 공법으로 70여개의 고속도로건설하여 통행료를 받았는데, 그가 얼마나 큰돈을 벌었는가를 풍자한 만화가 그려질 정도였다. 그가 도로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많은 통행세를 받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로의거상 매캐덤 풍자만화(1827년)

매캐덤 도로의 기본배수가 잘되도록 도로 면을 지면보다 약간 높게 만드는 것으로, 원리를 보면 두 선배, 트레사케와 텔퍼드의 아이디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길 양쪽에 배수 홈을 만든 후 작은 돌을 촘촘히 깔아 기초를 다진다. 그리고 도로 표면은 네모진 작은 화강암이나 녹암(綠岩)으로 덮었는데, 교통량에 의한 압력으로 다져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823년 영국 의회는 런던을 비롯해 영국에서 건설되는 모든 도로를 매캐덤 방식으로 건설하도록 결정했다. 그런데 매캐덤의 아이디어로 영국에서 도로가 수없이 건설되고 있음에도 영국 정부는 다소 의아스런 결정을 내린다. 다른 건설업자들이 매캐덤 방식의 도로를 건설해 특허를 침해해도 방관한 것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매캐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방관한 것인데 이것은 영국 정부국익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불꽃으로 고속도로 건설이 급선무라는 것을 잘 아는 영국 정부는 고속도로 건설이 매캐덤의 특허에 의해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매캐덤의 공헌을 계속 모른 척할 수 없었던지 1825, 2,000파운드의 특별 포상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작위 부여결정했으나 매캐넘고령을 이유로 거절했고 아들이 대신 이를 받았다. 매캐덤183611모팻(Moffat)에서 사망해 조상 묘지에 매장되었다.

매캐덤이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착안한 아이디어의 핵심은 지금의 민자 고속도로와 비슷하다. 오늘날 거의 전 세계의 고속도로에는 통행료를 내야 하는데, 19세기 초에 이미 매캐넘이 민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통행료를 징수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840 영국에는 거의 22,000마일 이상의 유료도로가 있었고 8,000개 가량의 통행료 징수소가 있었다. 기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들 도로 위로 12마리의 말이 끄는 새롭고 신속한 역마차가 고속으로 달렸고 그가 건설한 도로190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매캐덤의 도로건설 방식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상륙하게 된다.

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주연의 역마차하이눈, 셰인과 함께 서부영화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역마차에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이 시종일관 등장한다.

 

역마차

한 마디로 좋은 상태의 도로 위를 마음껏 달리는데 사실상 이 도로들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견인차가 되었듯이 미국에서도 신흥국 미국최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서부에서 발견된 금광으로 시작된 골드러시역마차가 운송수단으로서 큰 역할을 했는데,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이 역마차가 달리던 도로는 지금처럼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고속도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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