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4차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

1차 산업혁명(2)

Que sais 2020. 10. 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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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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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을 이끈 에이브러햄 다비의 코크스 제철법>

증기기관산업혁명의 불을 당긴 데 이어 좀더 빠르게 산업혁명이 확산될 수 있었던 데는 결정적인 또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산업혁명으로 각종 제품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것들을 값싸게 대량 생산할 기계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가 기본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이었다. ,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대형 산업기계를 대량으로 제작하자면 질 좋은 철이 저렴하게 공급되어야 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사람이 철강의 아버지라는 에이브러햄 다비(Abraham Darby, 16781717)이다.

 

에이브러햄 다비

철광석을 녹이려면 고열이 필요한데 주철(鑄鐵, cast iron)이나 선철(銑鐵, pig iron)을 만드는 제련 과정에 목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목탄이 너무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한 번에 생산되는 철의 양은 제한적이었다. 더구나 해양 국가였던 섬나라 영국강력한 함대를 항상 거느려야 하므로 목재철 생산에만 투입할 수는 없었다. 대형 군함(man of war) 한 척을 만드는 데 사용된 목재는 무려 통나무 4천 개가 필요해서 해양을 기본으로 하는 대영제국으로서는 만사 제치고 함선 제조에 목재를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목재빵과 맥주, 유리를 생산하는 데에도 필요해서 영국에서는 계속해서 산림이 벌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 방위에 필요한 군함 건조용 목재마저 부족해지자 영국1558년 벌목제한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토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삼림지대16세기 중반 이후 16퍼센트로까지 떨어져 벌목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16세기18세기 동안 영국의 일반적인 물가다섯 배 상승한 반면 장작의 가격10배나 상승했다. 당연히 제철에 필요한 목재가 부족했는데 용광로 한 개가 연간 소비하는 목재의 양은 4제곱킬로미터 면적의 숲에서 생산되는 목재와 맞먹을 정도로 제철 생산 효율이 좋지 않았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영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쓰임새가 많은 목재를 불태워 없애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었다.

이런 절박할 때 학자들은 철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목재 대신 영국에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탄사용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일반 석탄불순물인 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철광석에 연료를 직접 닿도록 했기 때문에 이 많은 석탄을 사용하면 철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사람이 에이브러햄 다비. 뉴커먼보다 열다섯 살이 적은 다비뉴커먼의 증기기관이 갖고 올 파장을 잘 알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철의 수요도 덩달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좋고 값싼 철을 공급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선 목탄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질 좋은 철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비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는 목탄 대신 코크스(석탄을 가열해 휘발 성분을 없앤 구멍이 많은 고체 탄소 연료)를 사용하여 을 만들었다. 사실 제철 공정코크스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17세기 초부터 있었다. 원리도 매우 단순하다. 음식물을 익힐 때 야채나 고기를 직접 불에 굽지 않고 그릇에 담아 익히는 것처럼 철광석연료와 분리하는 것이다. 코크스를 이용하는 원리 자체는 알려졌지만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중국의 제철공들은 이미 11세기부터 이 방식을 사용하여 철을 얻었지만 유럽에서는 아직 그런 기술이 없는 상태였다.

다비는 남다른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제철 생산업자들보다 한 수 앞선 생각, 브리스틀(Bristol)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에는 황 성분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브리스틀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 코크스를 만들어 연료로 쓰면 질 좋은 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한 가지 아이디어가 그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철 그룹을 이루게 한다.

러나 다비는 철저한 기술자인 동시에 사업가였다. 그는 1707 자신의 아이디어로 제철에 관한 기초 특허를 받았지만 코크스 제련법의 핵심인 제조 공정특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특허를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제조 공정의 비밀이 밝혀지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 의해 더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기술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특허권 인정 기간15으로 그다지 긴 기간은 아니었다.

학자들은 전형적인 기술자인 다비가 경험을 통해 다음 사실을 파악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철광석을 녹이는 용광로의 크기공급되는 바람의 세기가 증가하면 온도가 더 높아진다. 그러면 석탄 속의 불순물도 모두 타버리므로 철을 망쳐놓았던 황 성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비의 용광로

다비의 제철소에서는 영국 정부의 고민거리였던 목재를 소비하지 않고서도 질 좋은 철을 생산할 수 있어 다른 제철업자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의 제철소가 있는 콜브룩데일(Coalbrookdale) 인근 지역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업 지대로 변모했다. 제철소에는 대량의 물을 공급해줘야 하므로 강 또는 바다 인근에 세워지는데 세번 강(Severn River, 길이 290킬로미터로 영국에서 가장 긴 강)은 물동량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번잡한 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덩달아 주변에 공장들이 세워지고 온갖 종류의 기계 장치들이 생산되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1761 철공장을 운영하던 무기제조업자 존 윌킨슨(John Wilkinson) 최초로 철로 만든 선박을 만들었다. 철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는 보다 큰 선박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여 이 사건을 계기로 군함은 물론 대형 선박들도 철로 제작되었다.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은 제철 산업이 약속하는 부를 찾아 아이언브리지(Iron Bridge) 계곡으로 몰려들었고 새로 이주해온 주민들을 위한 집과 학교, 교회, 은행 등이 세워지면서 콜포트(Coalport)라는 마을도 형성되었다.

174012,000톤이던 영국의 선철 생산량18401,840만 톤으로 1,500배가 늘어난 것만 보아도 다비의 제철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즈음에는 다비의 기술이 알려져 다른 제철소에서도 목재 대신 석탄을 사용했으므로 영국의 제철은 획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2011 세계 6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한국의 철강 생산량6,840만 톤인 것과 비교하면, 1840년 영국의 제철 생산량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텔포트의 부르크데일다리

비로소 세계 철 생산의 주도권스웨덴에서 다시 영국으로 넘어왔다. 다비의 코크스 제철법으로 인해 더 이상 목재로 만드는 스웨덴 철을 수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지리적, 자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비의 제철법에 힘입어 연철(軟鐵)과 강철 등 질 좋은 철을 생산하면서 그야말로 철의 강국으로 발돋움한다. 철의 강국이란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 즉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계들을 제작하기 위한 철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의미했다. 세계는 다비의 제철법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철기시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비에 의해 비로소 산업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다비의 얘기로 돌아가서, 질 좋은 철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다비의 제철소는 손자인 다비 3로 이어졌다. 다비 3까지 철저하게 제철의 비밀이 지켜진 것이다.

다비로부터 시작된 신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철의 대량생산으로 세번 강의 물동량이 폭증했지만 다비의 제철소가 있는 콜브룩데일에는 다리가 없어 모든 물동량을 배로 운반해야 했다. 다비의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물동량을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므로 도시의 비약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를 극복하자면 다리를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면 배로도 강을 건너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리를 만들더라도 다리 위로 무거운 철을 이동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다리라면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생각이었다. 이때 천재적인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Thomas F. Pritchard, 17231777)가 등장한다. 그는 철로 선박도 만들 수 있다면 다리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비의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주철다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철을 이용하여 적절한 구조역학적인 설계만 한다면 상당한 무게의 하중도 견디는 다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훗날 아이언브리지로 불리는 이 철교는 콜브룩데일에서 세번 강 어귀까지의 골짜기에 건설되었다. 총 길이 42.7m(철제 부분 30.6m), 수면 위의 높이는 15.35미터로 그리 크지 않으며 강 양쪽에 설치한 석조 교각, 배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상판, 그리고 상판을 떠받치는 주철로 된 다섯 개의 나란한 아치로 구성되었다. 각 아치는 반 쪽 부분씩 만들어 이어 붙였는데 이를 위해 다비 31778년 용광로를 확장해야 할 정도였다. 또한 아주 적은 수의 여러 부품도 주조해야 하므로 제작 과정도 그에 맞추었다. 한마디로 아이언브리지 건설을 위해 전 재료가 조립식으로 제조되었다.

다비 3가 아이언브리지를 건조한 근본적인 목적철의 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다비 1값싼 철을 공급하자 철의 사용처는 급격히 확대되어 일부 부자들은 가정용 수도를 나무 관에서 철관(鐵管)으로 교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의 용도는 기계류를 제외하면 고작해야 철봉, 꺽쇠, 경첩 등의 소품으로만 사용되었다.

 

다비 3세

철교를 만들면 완벽한 구조 역학적인 설계가 필요하여 매우 복잡한 구조물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다비3의 예상대로 이후 토목공사 재료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 인상적인 구조물은 완성되자마자 순식간에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 당시의 신사숙녀들에게 콜포트 방문성지 순례에 버금갈 정도였다. 1795 발생한 사상 최악의 홍수가 일어났지만 범람을 견뎌낸 다리는 아이언브리지 하나뿐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근대화를 앞당긴 아이언브리지는 이후 증기기관과 함께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 산업혁명의 상징라는 점이 인정되어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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