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4차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

2차 산업혁명(1)

Que sais 2020. 10. 3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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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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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산업혁명>

2차 산업혁명(Second Industrial Revolution)은 산업 혁명의 두 번째 단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학자에 의해 사용되는 단어인데 일반적 년대는 1865년부터 1900, 또는 1870년부터 1920년까지로 설정되는데 이처럼 연대가 다른 것은 그만큼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산업혁명은 소재, 동력, 통신, 경영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동력을 예로 들면, 영국의 산업혁명 때에는 증기가 활용되었던 반면 2차 산업혁명 때에는 전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와트(James Watt)가 본격적인 증기의 시대를 열었다면, 전기의 시대를 개막한 사람은 에디슨(Thomas A. Edison)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영국 외에도 독일, 프랑스 혹은 미국의 공업생산력도 급격히 증진되었기 때문에 영국과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들 국가의 기술 혁신을 강조할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2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사회에 비추어 영국과 완전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1차 산업혁명이 지구상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이 시대에 화학, 전기, 석유 및 철강 분야에서 기술 혁신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비재대량 생산하는 구조적 측면의 발전, 식료품 및 음료, 의류 등의 제조 기계와 더불어 가공, 운송 수단의 혁신, 심지어 오락 분야에서도 영화, 라디오와 축음기가 개발되어 대중의 요구에 부응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의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한편 2차 산업혁명20세기를 전후하여 산업의 중심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된 것을 두고 일컫는 말로 정의하기도 한다. , 산업 구조소비재 산업경공업 중심에서 부가 가치가 큰 생산재 산업중화학 공업으로 변화되었음을 말한다.

 

발명왕 에디슨과 전등

그러나 큰 틀에서 1차 산업혁명증기의 시대였다면 2차 산업혁명전기의 시대석유에 동반된 중화학공업의 발달 시대를 말한다. 전기의 시대는 발명왕 에디슨1879년에 백열등을 개발하는 것에서 시작됐고 석유의 시대석유화학의 폭발적인 증가와 자동차, 비행기빠른 운송매체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전기시대2차 산업혁명을 연 에디슨<노벨상을 놓친 비운의 천재들> 에디슨과 테슬라 장에서 설명했으므로 석유시대를 연 비델, 록펠러, 포드에 대해서만 설명한다.

 

<석유 시대를 연 3인방>

인류석유의 다양한 용도를 알아내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석유산업1850년대 미국에서 비셀, 실리먼 2, 드레이크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1859년에 펜실베이니아 지역에서 석유처음 시추된 후 록펠러가 주도한 스탠다드 오일거대한 석유 제국을 형성했다. 19세기 말에는 석유조명용 연료를 넘어 자동차용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들이 잇달아 개발되었고, 2006을 전후해서는 석유정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석유증류하면 가스, 가솔린, 등유, 경유, 중유, 피치 등의 순서로 나온다. 그중 가스액화석유가스(liquefied petroleum gas, LPG), 가솔린가솔린엔진의 연료, 등유가정용으로, 경유디젤엔진의 연료, 중유산업용으로, 피치아스팔트의 원료로 주로 사용된다. 석유에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인류가 석유의 다양한 용도를 알게 되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석유탐사, 채굴, 정제, 배급하는 일이 일종의 산업이 된 것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천연 상태의 석유는 지표로 스며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석유석탄층의 기름방울지표면이나 바위틈을 통해 흘러나온 것으로 보았다. 석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페트롤리엄(petroleum)인데, 그것은 을 뜻하는 페트라(petra)기름을 뜻하는 올리엄(oleum)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글자 그대로 석유(石油)돌에서 얻은 기름인 셈이다.

서양 사람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석유설사를 일으키거나 피부병을 치료하는 용도사용했다. 당시의 의료 행위가 상당히 주술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석유는 꽤나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기원전 400년경에는 페르시아 군대아테네를 공격하면서 석유방화용 기름으로 화살촉에 발랐다고 한다.

구약성서에는 노아의 방주방수용으로 아스팔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지를 함유한 목재로 방주를 하나 만들어라. 그리고 그 방주의 안팎을 역청(pitch)으로 칠하라.”

동양에서도 기원전 2000경부터 석유사용했다고 한다. 5~6세기 남북조 시대의 기록을 보면, 석유노인들의 이를 다시 나게 해주며 모든 병을 치료한다고 적혀 있다. 11세기 송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심괄(沈括)몽계필담에서 석유의 또 다른 용도에 대해 보고한 바 있다. “석유는 얼핏 보면 옻나무의 진과 다름없이 보이며, 태우면 짙은 연기를 내고 센 불길을 낸다. 연기먹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은 옻칠을 한 것처럼 검고 윤기가 돈다. 글씨의 아름다움소나무 검정으로 만든 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원유19세기 중엽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끌지 못한 시꺼먼 액체에 불과했다. 원유를 태워 불을 밝힐 수도 있지만 대부분 돌팔이 의사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유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된 것은 백인들이 아메리카상륙하기 이전부터 인디언들이 석유를 모아 류머티즘 치료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백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부 미국인들 소위 약장수들이 세네카(Seneca)로 불렀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쓰인 것은 아마도 세네카족 인디언이 그것을 사용하였든가 혹은 세네카호(Lake Seneca) 근처에서 산출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런 큰 효용처가 없는 석유가 현대 문명의 총아가 된 것은 석유로 떼 부자가 된 3인방19세기 중엽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 석유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비셀(George Bissel, 18211884)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821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렵사리 다트머스 대학을 나와 라틴어와 그리스어 교사, 신문기자로 활약하다가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딴 집념의 사나이로, 뉴욕 월가에서 주식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조지 비셀

그가 석유와 인연을 맺은 것은 1850년대 중반이었다. 과로로 건강이 나빠져 휴양차 고향에 들른 그는 그곳에서도 인근에서 채취한 등유(석유)두통이나 치통, 류머티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석유를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석유불을 켤 수 있다면 조명용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조명용 연료로는 고래기름으로 만든 등유가 고급이었고 최첨단 조명 방식으로 가스등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사업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은 고향이 아닌 뉴욕의 한 가게에 들러 만병통치약한 병 산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석유의 미래가 매우 전망 있다고 생각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비셀은 어떻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골몰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어린아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다. 석유조명용 연료로 사용하려면 대량의 원료석유를 우선 확보해야 하고, 석유유전에서 캘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문제는 유전 확보인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투자금을 받아야 한다단순한 생각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투자 유치 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와 자본이 만나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그 이윤을 나누게 되는데, 미국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자본가보다는 아이디어맨의 지분이 높은 반면, 한국의 경우 어떤 개발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투자자가 더 많은 주식을 갖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가 상식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발명자가 투자자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갖는다. 투자자의 역할은 발명자의 아이디어가 실용화될 수 있도록 자본을 제공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발명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전개할 수 있도록 실용화 단계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어쨌든 비셀은 발명자가 아니라 사업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발명처럼 독점적 사업권이 보장되는 특허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단 아이디어가 공개되면 돈 많은 사람 아무라도 먼저 사업화하면 그뿐이다.

오늘날에는 깊은 바닷속까지 시추할 만큼 유전을 찾아 혈안이 되어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석유석탄층의 기름방울이 지표면이나 바위틈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석유(石油, rock oil)라는 말 자체도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비셀의 아이디어는 당시의 통념을 깨고 땅 속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수직으로 파서 뽑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땅 속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었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셀은 투자자들이 그의 말만 듣고 선뜻 모여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굳이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성이 있다전문가의 정확한 자료와 지지를 받아낸다면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서부 개척 초창기, 전문가의 조언이 없어1미터를 남겨두고 철수한 다비의 실패를 답습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셀의 입맛에 맞는 학자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대의 유명한 화학자 실리먼 2(Benjamin Silliman Jr., 18161885) 예일대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미국 최고의 화학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비셀실리먼 2를 찾아가 믿을 수 없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그가 갖고 온 원유 샘플의 성분 분석의뢰했다. 그가 약속한 연구비는 526달러 8센트(지금의 가치로 약 10만 달러 정도)였다.

 

벤자민 실리먼과 원유에대한 보고서

실리먼 2는 선뜻 비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3개월 내에 중간 보고서제출하기로 했다. 문제는 비셀약속한 연구비제때 줄 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리먼 2는 약속된 연구비가 들어오지 않자 연구를 중단하고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버렸다. 액의 연구비를 받기로 하고 한 계약에서 연구비 지급이 다소 연체되었다고 해서 연구 자체를 중단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실 실리먼 2연구를 중단한 것전략이었다. 실리먼 2는 비셀이 갖고 온 원유 샘플을 보고 비셀보다 더 높은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실리먼 2는 비셀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무궁무진한 석유의 사업화 과정에서 얻을 자신의 수익이 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비셀로 하여금 좀더 애를 태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셀에게는 전문가인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분석자료가 꼭 필요하고, 그것이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계산으로 실리먼은 비셀의 결례를 꼬투리 잡아 더 이상 연구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셀의 입장에서는 실리먼 2세의 연구 중단은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를 잃는 것이고, 이는 사실상 프로젝트 자체의 무산을 의미했다.

실리먼 2세의 마음을 읽은 비셀은 주저하지 않고 미국인다운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불찰에 대한 보답으로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뜻은 실리먼 2도 자신의 프로젝트에 주역으로 참여해 달라는 의미였다.

실리먼의 도박은 성공했다. 비셀로부터 동업 조건과 연구비를 확보한 그는 곧바로 비셀이 그토록 원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18554월의 일이다. 실리먼 2세의 보고서 내용비셀이 원하는 것, 석유의 모든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실리먼은 당시까지 조명용 연료의 대명사였던 고래기름을 대체하는 연료로 석유매우 유용하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비셀을 더욱 감격하게 만든 것은 석유의 사업성이 매우 좋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귀하의 회사가 그다지 비용이 들지 않는 단순한 처리로 매우 귀중한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원료를 손에 넣었다확신해도 좋은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화학적 과정 가운데 가장 간단한 방법에 의해 달성될 수 있으며 특히 원료 대부분이 낭비 없이 제품으로 제조될 수 있으며 더욱이 그것은 관리하기 매우 수월합니다. 이런 결론은 나의 실험이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석유가 다양한 물질로 분류될 수 있으며 램프에 사용될 수 있는 양질의 기름을 매우 값싼 공정으로 얻을 수 있다는 실리먼의 예언은 그때까지 화학자가 내린 예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의 하나로 평가된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59 한 신문은 실리먼 2세의 이 예언추후에 완전히 진실로 증명된 것으로 방대한 석유산업을 성장시킨 바탕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실리먼의 보고서비셀의 예상대로 효과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석유 캐기가 현대의 벤처 사업처럼 모험이었지만 투자자들이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리먼의 보고서에는 어디에서 석유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원천적인 질문에 답은 없었다. 사실 그 문제는 비셀이 실리먼에게 의뢰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석유가 그야말로 전망이 좋은 물질임은 틀림없지만 석유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당시에는 석유가 바위틈에서 새어나오거나 지표면에 자연 분출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석유를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투자자들이 곧바로 들고 일어섰다. 비셀이 약국에서 의약품으로만 거래되는 석유를 파내 조명용으로 판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했지만 어디에서 그 많은 양의 석유를 확보하느냐에 대한 담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비셀은 석유도 자신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후 석유를 탐사하는 작업 책임자로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 18191880)를 채용했다. 드레이크는 전직 철도직원인데 비셀이 그를 발로 뛰는 석유탐사 책임자로 채용한 이유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 비셀드레이크를 채용할 때 가장 많은 점수를 준 것은 그가 전직 철도원 출신이므로 그가 갖고 있는 무임승차권철도 교통 요금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셀터이터스빌을 지목한 것은 그곳 인근 하천에서는 언제나 검은 기름띠가 떠돌아 다녔다. 그러므로 기름 냇물이라는 뜻의 오일크리크(oil creek)'라고 부르기도 했다. 더구나 눈썰미가 좋은 비셀드레이크에게 소금 광산 주변부터 찾아보라고 말했다. 원유가 나오는 곳은 대부분 염전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 들어갔을 때도 주민들은 그를 소금 업자인 줄 알았다. 시추공을 뚫어 짠 소금물을 끌어올려 모은 다음 불로 가열소금을 만드는 공정 자체도 유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레이크1857년부터 1년 반 동안 타이터스빌 인근을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 투자자들로부터 확보한 모든 자금이 고갈되어 더 이상 유전 개발을 포기해야 할 절망적인 순간에 그야말로 극적인 행운이 그들에게 따라온다. 시추공과 연결된 펌프에서 원유가 나온 것이다. 1959828이다.

 

1859년타이터스빌의 원유발견지 드레이크대령(중앙모자)

추후에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석유 3인방은 그야말로 억세게 운이 좋았다. 드레이크가 석유를 처음 발견한 곳은 지하 30미터인데 이후 그런 낮은 곳에서 기름이 나온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지름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그 일대에서 파내려 간 수백 개의 유정 가운데 드레이크처음으로 발견한 유정에서만 기름이 솟아난 것이다. 이 사건은 석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경위는 어떻든 드레이크사상 최초로 수직 굴착식 시추성공했기 때문에 혹자는 1859828일 미국의 석유산업이 탄생되었다고까지 말한다. 그가 사용한 굴착 방식은 땅을 파헤치는 재래식 방식이 아니라 작은 증기기관으로 추진되는 드릴로 구멍을 뚫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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