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늘과 쑥
단군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군 신화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고대 국가를 건설할 무렵부터 농사를 지으려고 천문 기상을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나 질병ㆍ의료와 같은 일을 맡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아울러 쑥과 마늘을 일찍부터 유효한 약물이나 먹을거리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쑥은 아시아ㆍ유럽ㆍ북미 지역에 야생하는 다년초로 먹을거리로 쓰이는 것 외에도 옛날부터 약재로 복통ㆍ해독ㆍ발한ㆍ해열ㆍ지열과 같은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쑥은 한방에서 뜸을 뜨는 데 사용한다.
마늘은 서아시아 지방이 원산지로 이것을 으깰 때 생기는 알리신은 강한 항균력을 갖고 있을뿐더러 비타민 등 많은 유효 성분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결핵ㆍ감기 같은 기관지 계통의 질병에 좋으며 특히 스테미너를 강화시켜 오늘날 주요한 조미료로 전 세계에서 사용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6세기까지 쑥과 마늘을 약재로 다루지 않았다. 반면 한민족은 단군 신화에 나올 정도로 귀중한 약재로 활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원래 우리들이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의술을 개발했으며 이어 중국의 의학과 교류하는 가운데 차츰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단군신화의 요지는 인간이 되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 100여일을 동굴 속에서 먹으라고 하는데 곰은 이 약속을 지켜 인간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곰의 생태를 보면, 곰은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이자 잡식 동물이므로 마늘이든, 쑥(쑥은 기호성이 높다)이든 무엇이든 잘 먹는다. 그러나 철저한 육식 동물인 호랑이는 풀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배가 고픈 경우 호랑이도 풀을 먹는다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고 알려지지만 호랑이가 풀을 먹는 것은 소화를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또한 곰은 기본적으로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지루한 동굴생활 100일 정도야 곰이 겨울잠 자는 기간을 생각하면 긴 시간도 아니다. 반면에 호랑이는 겨울이라도 먹어야 하므로 절대 한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더구나 곰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새끼를 안고 다니기도 한다. 겨울잠을 자고 새끼를 안고 나오는 곰은 멀리서 보면 그대로 인간 여성의 형상이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주 발견되었다는 설인(雪人)이 사실은 대형 곰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6. 적석총
돌무덤 즉 적석총이 한민족으로부터 크게 중요시되는 것은 적석총이야말로 동이족의 전형적인 무덤이기 때문이다. 돌무덤은 신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만주 및 한반도 소위 동이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여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도입했으며 남쪽으로는 일본의 구주(九州) 지방과 유구(琉球) 열도까지 분포되어 있다.
돌로 만든 무덤에는 돌무지무덤(積石塚), 돌널무덤(石棺墓), 돌덧널무덤(石槨墓), 돌방무덤(石室墓) 등이 있으며 고인돌무덤(支石墓)도 돌무덤에 포함시킨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무덤 형식의 하나가 돌널무덤(석관묘)이다. 돌널무덤도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땅을 파고 지하에 판자와 같은 넓은 돌(板石)을 마치 상자 모양으로 널(관)을 만든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깬돌(割石)이나 냇돌(江石)로 네 벽을 쌓고 뚜껑을 덮은 무덤이다. 이곳에서는 큰 틀에서 이들 모두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적석총으로 설명한다.
적석총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곳은 우하량이다. 우하량 유적지는 매우 넓어 20여개 지점에서 유적들이 발견되는데, 그중 6개 지점에서 돌무덤이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구릉 하나에 적석총 하나를 세웠지만 한 구릉에 여러 개의 적석총도 있다. 중심 대묘는 적석총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묘실은 넓고 깊은 묘혈에 구축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 개의 적석총이 있는 경우 하나하나의 적석총이 또 하나의 단원을 이루는 등 일정한 규칙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적석총 사이에 담장이 설치되어 독립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각각의 적석총 내부는 몇 개의 줄로 나뉘어진 묘실이 배치되었다.
즉 각각의 구릉이 하나의 대단원을 대표하며 각 구릉 위의 여러 적석총은 대단원 하부의 중 단원, 그리고 각 적석총 내의 묘실 한 줄 한 줄은 소단원을 대표한다. 이런 절대적인 구분은 홍산 문화에서 이미 사회 변혁이 폭 넓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산 문화에서 이미 매우 강한 피라미드식 구조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들 적석총이 ‘일인독존(一人獨尊)’ 즉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등급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큰 틀에서 홍산 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무덤의 형태는 동일하지 않은데 이것은 무덤들이 만들어진 연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적석총의 한 지점에서 15기의 돌널무덤(석관묘)도 발견되었는데 이들 돌널무덤은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짠 상자 모양의 돌널과 깬 돌을 쌓아 올린 돌널이 함께 배치되었다. 돌널무덤은 땅 속에 널찍한 돌로 상자 모양의 널(관)을 만들었다. 외형은 원형과 장방형 두 종류가 있는데 원형의 직경 또는 장방형의 경우 한쪽면의 길이가 20여 미터나 되기도 하는데 온전한 인골이 상당수 발견되었다. 큰 석관은 길이 2m, 높이 60㎝, 작은 석관은 길이 55㎝ 정도이다. 순장의 흔적도 보이는데 순장은 기본적으로 상(은)나라와 부여, 고구려 등 동이족의 풍습으로 이어진다.
우하량 홍산 문화의 특징은 수 십 평방킬로미터의 범위에 대규모 묘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형 적석총들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취락유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이들 대형 적석총이 당대의 제왕묘 급으로 홍산 인들의 주거지역과는 달리 신성한 곳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1년 7월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몇 장의 사진이 발표되었다. 이들 사진은 홍산지역으로 인식되는 아오한 바너(敖漢旗, Aohan Banner) 지역에서 촬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중국 당국이 철저하게 보안 조치하여 중국 밖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밀리에 잠입한 독일인에 의해 그 실상이 알려진 것이다.
사진은 모두 대형 피라미드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 피라미드는 외형적으로 수천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수목이 우거진 산처럼 변해 있어 지역농민들은 처음에는 평범한 산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100개 이상이며 평균 25〜100미터 높이의 피라미드들로 추정되지만 미확인 설명에 의하면 그 중에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맞먹는 300미터 높이의 것도 있다고 한다.
요령고고학 연구센터의 곽대순(郭大順)은 이들 피라미드가 5000년 내지 6000년 전인 ‘홍산문화’ 시대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피라미드가 최초로 발견된 것은 1945년에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에 의해서이다. 조종사는 눈 아래 특이한 것을 발견하고 카메라로 촬영하였고 이는 1947년 3월 28일 「미국조종사의 시안 서남쪽 외딴 산의 거대 피라미드 발견」으로 뉴욕타임즈에서 보도되었다.
이들 거대한 피라미드군은 1963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이들 피라미드군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73년에 실시된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거대한 피라미드가 진시황의 무덤보다 수 천 년 전에 건설된 것임이 밝혀지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들 피라미드들이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진시황제가 아니라 그들이 극구 중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동이족의 유산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철저하게 피라미드의 존재에 대해 함구했다. 그러나 이미 다소나마 알려진 동이족의 피라미드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증폭시켰다. 결국 1994년 4월,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와 피터 크랴샤(사진 촬영)는 여행객으로 가장하고 평상시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의 고관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외국인 금지 구역으로 묶여있던 피라미드들을 몰래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 사진을 본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고고학자들은 중국에 있는 피라미드야말로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21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견이 될 수 있다며 중국 정부에 발굴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아직도 이들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유적들이 과연 피라미드인지 또는 앞에서 설명한 우하량에서 발견된 피라미드와 연관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들 유적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동이족의 과거사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하량의 적석총이 세계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집트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거대한 원형 피라미드도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피라미드 유적은 우하량 남쪽인 해발 564.8미터의 전산자성(轉山子山) 정상에 있으며 남향으로 하천과 광활한 평지가 보이며 북쪽으로 멀리 여신사당이 보인다. 피라미드 중앙은 판축 형태로 흙을 다지고(층마다 8~10센티미터) 바깥쪽은 돌로 쌓았는데 직경이 140미터나 되고 총면적이 10,000 제곱미터나 되며 언덕과 일체로 되어 있다. 연마한 할석의 면을 바깥으로 하고 무너지지 않도록 견치석과 엇박자로 쌓은 석축 방법은 이곳 홍산 문화-하가점 하층문화-부여-고구려ㆍ백제ㆍ신라와 일본 구슈로 그대로 이어진다. 특히 피라미드 앞에 제단(60미터×40미터)이 발견된다. 이것은 홍산인들이 이 제단에서 피라미드의 주인공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이 피라미드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연대가 기자의 피라미드(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프 파라오의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600년경에 건설)보다 거의 1천 년이나 앞서는 5500년 전 경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이 피라미드를 왕의 묘로 추정한다. 중화문명 5000년 역사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적석총은 중국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묘제라는 데 중요성이 있다. 한마디로 돌무덤은 유목민의 전형으로 디코스모 박사는 돌로 만든 무덤 문화를 ‘유목 문화’로 지칭하며 흉노 문화 역시 포괄적으로 이들과 동의어로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한반도에서 돌무덤이 발견되는 연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북방기마민족이 살던 터전에 적석목곽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돌무덤이 발견된다.
그런데 적석총은 요하 일대에서 한민족의 터전으로 이동하지만 중원 지역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중국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주류를 이루었고 주나라 때(周代)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 묘가 유행했다.
이것은 중국의 역대 제왕들의 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중국의 능은 대체로 두 가지 형식을 갖고 있다. 하나는 ‘퇴토성릉(堆土成陵)’이고 다른 하나는 ‘인산위릉(因山爲陵)’이다. 퇴토성릉은 평지에 흙을 쌓아올려 작은 산처럼 만드는 것으로 진시황릉이 바로 이 형식이다. 인산위릉은 산을 뚫어 관을 안치하여 산 자체를 능으로 하는 것으로 비교적 늦게 출현하였는데 측천무후의 건릉이 대표적이다.
무덤 즉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은 오랜 기간 완고하게 변하지 않고 그 민족 고유의 전통으로 내려온다. 특히 무덤은 지역집단의 공통된 참여를 통해서 축조되므로 무덤의 성격에 따라 무덤을 만든 민족의 유사성을 구분할 수 있다. 중국과 동이족의 무덤이 원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이들 문명이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민족이 타 민족을 정복했을 경우 선주민의 묘를 파괴하는 분묘파괴행위가 나타난다. 이것은 분묘가 제사행위의 장소로 자신과 선조와의 계승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편 노혁진은 ‘고고학’에서 완벽한 구조를 갖춘 제도화된 무덤의 존재는 그에 상응하는 일정한 수준의 정치체계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왕권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데 왕릉이 출현할 수 없고 왕릉에 다른 계급자가 묻히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왕릉과 일정한 지배자에 속한 자의 무덤은 항상 그 사회의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 특정한 지위를 보장받는다. 그것은 사망자가 속한 사회구성원이나 후손들이 무덤을 향해 일정한 숭배의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묘파괴행위는 과거의 계승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이족의 근거지라고 간주되는 홍산 지역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에서 돌무덤이 계속 이어져왔다는 것은 민족의 계승이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민족이 중국과 다른 동이족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부단히 주장하는 이유이다.
홍산 문화와 동일한 적석총을 채용한 나라는 고조선이다. 그러므로 고조선 문화의 전 단계인 홍산 문화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가를 이룩했던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이다. 적석총은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무덤으로 고구려와 백제 초기까지 이어진다.
신라지역에서 돌무덤 중에서도 거대하면서도 복잡하고 축조하기 어려운 적석목곽분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들을 축조한 사람들이 중국인과 다른 동이족 계열이라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물론 고구려, 백제도 규모는 다소 작지만 적석총을 사용했는데 이를 보아도 한민족의 원류가 같다는 것을 이제 이해할 것이다.
여하튼 적석목곽분이란 땅을 파고 안에 나무로 통나무집을 만들고 시체와 부장품들을 안치한 후에 위에는 상당히 많은 돌로 둘레를 쌓고(護石) 흙으로 커다란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국, 일본에는 없는 무덤이다.
원래 북방 초원(스텝)지역에서는 유력자가 죽으면 그가 생전에 살던 통나무집을 돌과 흙으로 그대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스텝지역의 적석목곽분을 파보면 난방시설의 흔적도 남아 있고 심지어 창문도 발견된다. 신라 김(金)씨들은 그런 옛 전통에 따라 지상에 시신을 넣을 집을 일부러 만들고 그 위에다 냇돌을 쌓은 다음 흙으로 반구형(半球形) 봉분을 했다.
그러므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은 세월이 지나면 목곽 부분이 썩어 주저앉기 때문에 적석 중앙 부분이 함몰되어 낙타등처럼 된다. 봉토는 거의 대부분 원형인데, 적석시설이 상당히 큰 규모이고 그것을 둘러싼 봉토 또한 대규모여서 신라의 고분이 고구려나 백제지역의 고분에 비해 상당히 대형화한 요인이다.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신라왕이 마립간(麻立干)으로 불리던 시기(4~6세기)의 무덤이다. 원래 적석목곽분은 평지에 조성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경주, 창녕, 동래 등지의 경우 구릉지에 조성된 것도 있다.
적석목곽분은 경주 시내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황남동의 대릉원(大陵園)이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왔다면 틀림없이 이곳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작은 동산을 연상케 하는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 23기의 고분들로 공원이 조성돼 있다.
적석목곽분은 4〜6세기 6대에 걸친 마립간 시대(내물-실성-눌지-자비-소비-지증마립간)에만 나타나는데 이를 만든 신라 김(金)씨 왕족의 뿌리가 대초원지대의 기마민족이라는 기록을 증빙한다. 게다가 중앙아시아 대초원지대의 기마유목민족들이 즐겨 사용했던 각종 제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금관과 장신구, 금으로 만든 허리띠, 띠 고리(버클), 각배(뿔잔), 보검, 유리제품 등은 북방기마민족들이 즐겨 사용한 것과 비슷하거나 동일한 제품들이다.
적석목곽분은 무덤 구조의 특성상 도굴하는 것이 간단치 않으므로 부장품들이 매장 당시 그대로 출토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릉원에서 발굴된 대형고분의 경우 한 고분에서만 10,000점에서 20,000점을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유물들이 발견된다.
특히 황남대총에서는 순금제 금관을 비롯해 실용적인 은관(銀冠),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로만그라스 등 무려 7만여 점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비단벌레(玉蟲)를 잡아, 그 날개 수천 개를 장식하여 무지개빛처럼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비단벌레 장식 마구(馬具)’도 발견되어 세계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비단벌레는 딱정벌레 무리 비단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100종이 넘는 우리나라 비단벌레과 중 크기와 화려함이 으뜸이다. 몸길이는 3~4센티미터 정도이며 온몸에 초록색 광택이 돌고 딱지날개에 붉은 줄 두 개가 선명하다. 한국․일본․중국남부지역․대만․인도차이나 등에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체수가 줄어 해남․완도 등 일부 남쪽 지방에만 한정적으로 살고 있다.
요시미츠 츠네오는 호화로운 비단벌레 장식의 마구가 황대총 북분과 남분에서 발굴되는 것을 감안할 때 피장자인 왕비의 섬세한 배려와 왕릉에 쏟은 열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적었다. 비단벌레는 아름다움과 희소성,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2008년 10월 천연기념물 제49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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