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민족과 중국인 차별성

한국(동이)과 중국(화이)(7) : 삼재사상

Que sais 2020. 11. 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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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단과 무덤의 동시성

제단과 무덤의 동시성(우하량)

동이족은 우하량에서 독특한 문화양식의 적석총을 창출했다. 우하량 제2지점에서 3층으로 된 원형의 제단사각형의 적석총이 발굴되었다. 제단과 무덤 모두 돌을 쌓아 올린 적석총으로 원형과 방형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적석총 자체가 대규모 지상 석축 물로 큰 틀에서 정연하게 만들었다. 적석총의 사주(四周)는 층층으로 쌓인 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정상부는 넓고 비교적 평탄하게 조성했다. 적석총을 건설될 때부터 제단의 성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적석총의 전면(남면)으로 넓은 면적에 걸쳐 홍색 소토(燒土)가 발견된다. 때로는 적석총의 전면에 원형의 돌무더기를 쌓아 놓기도 했는데 이들은 적석총 외부에 만들어진 제사 유적의 일환이다.

우하량 제2지점의 두 적석총 사이에 방형의 독립된 제단이 발견되었다.

 

제단원형과 방형 형태를 갖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정연한 배치로 남북 축을 갖는 대칭성을 보인다. 이중 중심에 있는 제단은 넓은 대지에 돌로 울타리를 쌓았고 울타리는 3중 원형 형태. 원형의 직경은 각각 22미터, 15.6미터, 11미터이며 매 층에 기초가 있는데 높이는 0.30.5미터로 이곳에서 채색 토기들도 발견되었다.

이들 적석총에서 보이는 특징은 적석총을 만드는 재료가 돌만이 아니라 채색토기잘게 부셔 무덤을 구성하는 잡석처럼 사용했다는 점이다. 홍산 인들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상당한 질 좋은 채색토기를 부장하지 않고 잡석처럼 사용했다는 것은 토기가 매장자들의 정신 즉 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학자들은 중국은 우하량에서 발견된 이들 제단 유적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의 원형이자 북경 천단 구조의 원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제단 유적지의 안내판에 5500년 전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들(all conditions to be a state)을 갖추고 있는 우하량 홍산 문화 유적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로 신비의 왕국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풍습이 갑자기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백음장한(白音長汗) 유적 부근 산봉우리에서 옥기가 수장되어 있는 초기 홍산 문화 적석총 군을 발견했는데 7개의 고분이 산등성이를 따라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직경 67미터로 상부는 적석으로 이루어졌고 하부는 웅덩이를 팠다. 이들 묘지는 일반 주민들의 묘지가 아니라 소수의 특정 상층 계급의 묘지임을 증명해준다. 특히 M5묘지는 돌로 원형을 쌓았는데 이는 홍산 인들이 돌로 원형을 쌓는 것은 지위가 가장 높은 조상신령을 숭배하는 형식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학자들이 이들 형태에 주목하는 것은 후기의 홍산 문화에서 산 위에 돌무덤을 쌓은 후 무덤 위에 ()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는 동시에 신주(神主)를 숭배하는 형식으로 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묘지 앞에서 토기 신주와 석제 조각 신주가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이는 묘지 앞에서 신주를 모시는 예의(禮儀)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홍산 문화의 가장 중요한 제사용 도기무저통형기(無底筒形器, 밑 없는 토기)로 출토량이 매우 많다. 이 도기들의 출토 위치는 적석총 아래에 쌓여 있거나 적석 중간에 혼입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도기는 중요한 제사 유적 내에서 출토되지만 취락 유적에서 출토되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무저통형기는 출토 위치에 근거하여 5가지로 구분된다.

 

묘 주위

적석총의 석담에 배열

총의 적석 사이

갱내에 단독으로 부장

특수한 상황으로 여신묘의 북실에서 발견

 

이들 무저통형기천원지방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통형도기 자체가 을 대표하며 통형도기를 땅에 두는 것은 상하가 관통하여 천지 사이의 관계를 소통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홍산 인들은 제사 봉행에서 통형도기를 묘지 담 아래에 설치했는데 이는 통천대로(通天大路)를 건축해 영혼이 빨리 승천하여 구천에 들어가고 후손이 행복하며 부족이 평안하게 보존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는 한반도 전남지방에서 그대로 보이며 일본의 하니 와로도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들만 모여 가주(家主)에만 제사를 지내지만 각자의 거주 지역을 떠나 교외에서 ()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혈연관계에서 벗어나 일종의 지역적 성질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우하량에서 더불어 중요시되는 것은 여신 묘 주변에 적석총 군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여신묘를 중심으로 사당과 총이 결합된 것으로 적석총에서 지내는 묘제조상의 혼령을 주요한 숭배의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여신 묘주신과 그 주신을 둘러싼 계층화된 조상의 우상 군을 제사하는 시설로 사용되었다고 인식한다. 여신 묘는 신상이 설치된 명확한 묘우(廟宇)의 증거로 이후 발전되는 종묘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동양의 덕목인 예제의 원본이 바로 우하량에서 발견되었다는 설명인데 기본적으로 적석총은 중원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이계열로만 전수된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8. 삼재사상(三才思想)

 

중국과 한국극명한 차이는 중국인들은 요리나 술을 시킬 때 2, 4, 6, 8, 10개 등 어김없이 짝수로 시킨다. 결혼식의 축의금200 위엔, 400위엔 등 짝수로 낸다. 3자가 들어간 것은 특별히 꺼리는데 이것은 3중국어 발음(san)'으로 흩어질 산()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이와는 반대로 술을 시킬 때나 축의금을 낼 때 1, 3, 5, 7, 9 홀수를 사용하며 특별히 3자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이는 근래의 습속이 아니라 매우 오래전부터 동이족의 특성 중 하나다.

홍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용기 류의 경우 절반 이상이 삼족(三足)이며 석등도 삼족, 역시 5, 9, 13층 등 기수가 대부분이다. 깃대 꽂은 수나 계단의 수도 3, 5, 7, 9 기수로 되어 있으며 가로등의 전등 숫자도 기본적으로 기수, 현수막 문양의 숫자도 기수가 보편적이다.

반면에 화하족의 경우 4족 용기와 8, 12 층의 탑을 기본으로 건설한다. 특히 재복(財福)을 비는 소상 앞에 공물을 바칠 경우 대부분이 우수. 중국인들이 2, 4, 8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세환 선생1999년 중국이 선조로 생각하는 삼조당(황제, 염제, 치우를 봉안)을 방문했을 때 복숭아 4가 올려져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2009년 제사상에 올려 진 복숭아의 숫자는 황제 앞에 9, 치우 앞에 5가 올려져 있음을 발견했다. 동이족은 기수, 화하 족은 우수를 기본으로 하므로 그동안 황제에게 우수의 제물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황제의 제사상에 복숭아를 기수인 9개로 올린 것은 황제가 동이족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이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물론 같은 조상이라고 하면서도 황제 앞에는 9, 치우 앞에는 5개를 올려 제물의 숫자가 다른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산문화의 우하량 유적의 적석총과 제단은 대부분 원형과 방형의 3층 계단식 적석총이다. 이를 보면 홍산인들이 숫자 3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하량 제2지점의 원형 제단도 3층 계단식 원형 건축이다. 중국 학자들은 홍산문화 우하량에서 보이는 이 원형 제단3층 원형으로 된 북경 천단 환구(天壇) 환구(圜丘)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단의 평면도 앞부분(원형 제단)은 북경 천단의 환구를 닮았고 뒤부분(방형제단)은 천단의 기년전(祈年殿)의 방형 토대를 닮았다는 것이다. 즉 이 제단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하다라는 천원지방형 구조이다.

특히 3층 원형 제단은 주변에서 나지 않는 적색 안산암을 사용하여 백색 석회암을 사용하는 기타의 3층 계단식 적석총과 분명하게 구별했다. 또한 원형 제단터가 원형의 3층인데 비해, 많은 묘를 주변으로 거느린 대형 방형 3층 적석총은 4겹의 돌담이 둘러져 있다. 이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우주만물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는 동방문화의 삼재사상(三才思想)과 연관되며 음양2분법적 중국 사유체계와는 확실히 구분된다. 삼재삼신하늘, , 인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며 천지와 하나 되는 삶을 지향했다.

 

우하량 삼재 사상과 통형도기

‘3수 분화의 세계관흔적은 고대 동아시아의 태양숭배사상과 관련이 깊은 삼족오(三足烏)에서도 볼 수 있다. 삼족오검은 새로서 하나의 몸통에 세 개의 발이 달려있다. 동이족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를 태양 안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신성한 새인 태양 새로 인식한다.

삼족오는 기원전 4000년경의 앙소문화 유적지 토기에서도 대량으로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되는 삼족오홍산 지역 문화와 중원의 채도문화가 만났음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삼족오홍산 문화에서 발견된 천제과 같이 북방 샤머니즘의 사유체계3수 분화의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삼족오단군조선-북부여-고구려으로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하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는 삼족오는 옛 고구려 지역을 비롯한 산동 지방과 요령 지방 일대 고분벽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데 고구려는 전쟁을 할 때 삼족오 깃발을 내걸었다. 평양시 역포구역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왕의 장식품으로 추정하는데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 겹의 둥근 테두리 속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빛 세발 까마귀삼족오를 장식했다. 중국의 요령성 조양지구 원태자벽화묘에도 세 발 까마귀 태양이 그려져 있다. 이 무덤은 선비족의 한 갈래인 모용(慕容) 선비의 무덤이라고 보는데 선비 역시 동북아문화권의 후예.

삼족오가 한민족에게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처음 중화와 동이 모두 삼족오를 차용했지만 중국은 삼족오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중원에서 삼족오가 전국시대까지 간간히 보이기는 하지만 ()나라 이후에는 중국에서 3()의 상징성이 사라지는데 반해 고구려에서는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점이다. 한 나라 시기에 음양 오행론이 확립되면서 삼족오남방 화()를 상징하는 주작의 다리 2개로 변화한다. 즉 중국은 3수분화의 세계관을 벗어나 음양 오행론 안으로 수용되므로 중국에서 발견되는 주작들은 모두 다리가 2중국 한대(漢代)의 마왕퇴뫼(馬王堆墓)의 회채백화(繪彩帛畵)2족오(二足烏)로 그려져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 󰡔악학궤범󰡕에 보이는 주작은 분명하게 머리가 셋이고 다리도 셋삼두 삼족의 형태를 보인다.

잘 알려진 천단이란 이름도 삼재사상과 관련된다.

동양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천단봉건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천단의 원형명나라 영락 18(142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정원을 둘러싼 담과 함께 천지단(天地壇)이 세워졌는데 중앙 건물은 커다란 장방형 전각으로 그곳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렸다. 천지단 남서쪽에 제궁이 위치했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었다.

100년이 지난 후 가정 9(1530)에 하늘과 땅에 각각 별도의 제사를 올리기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중앙 건물의 남쪽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圓久壇)이 건설되었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천지단이란 이름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으로 바뀌었다. 그와 더불어 북경의 북쪽에 땅에 제사를 지내는 지단(地壇), 동쪽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일단(日壇), 서쪽에 달에 제사지내는 월단(月壇)이 건설되었다.

청나라 건륭 14(1749) 원구가 확장되고 원래 청색 유리였던 기와흰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천단의 전성기에 천단의 넓이는 273헥타르에 달하며 1911년 중화민국 정부천단 제사를 금지하기 전까지 490년 동안 , 청나라의 황제들이 천단에서 654차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천단1918년부터 공원으로 개방되어 현재에 이른다.

3으로 된 주요 제례 구조물들은 천단 공원 중심을 기점으로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주로 건물 안에서 제사를 올리는 내부 제단 형태이다. 그리고 이 제단들은 동서로 뻗은 외벽에 의해 남쪽 제단인 원구단, 곡물에 제사지내는 북쪽 기곡단으로 나뉜다. 남북 두 제단은 단계교라 불리는 360미터의 벽돌로 된 오르막길로 연결된다.

원구는 천단을 중심으로 하늘을 의미하는 중앙의 원형을 의미하는 울타리로 둘러쳐진 사각형 안에 놓여있는 모습이다. 이는 남북 두 제단을 나누는 외벽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구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3개의 원형 단으로 구성된다. 이 단들은 위로 올라가면서 지름이 줄어들고 좁아지며 각각의 단들은 흰 대리석 난간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입구들이 울타리로 둘러쳐진 사각형 공간으로 이어진다.

 

중국 천단

맨 윗단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된 직경 약 80센티미터 정도의 천심석(天心石)이 있으며 이 돌을 중심으로 대리석 판이 아홉 겹으로 원을 그리며 아홉 겹으로 배열된 대리석 판엇째 바퀴아홉 개로 원을 그린다. 둘째 바퀴열여덟 개, 셋째 바퀴스물일곱 개로 이어져 마지막 아홉째 바퀴는 정확하게 여든한 개로 되어있다.

나머지 아래 두 단도 아홉 겹의 대리석으로 돌려져 있는데 모두 9개 배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4등분된 3단의 원에 설치된 각각 네 개의 난간들도 모두 한쪽이 아홉 칸, 열여덟 칸, 스물일곱칸 씩 나뉘어 있다.

난간에 있는 360개의 기둥은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음력의 1년인 360을 의미한다. 원구의 북쪽에 있는 황궁우(皇穹宇)는 환제가 금욕의 궁으로 불리는 제궁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북쪽의 기곡단은 길이 440미터, 25미터의 긴 회랑에 의해 천단으로 연결된다. 모양과 재질은 천단의 흰 대리석 3층 원형 구조를 따르며 형태로 보아 3층으로 된 청색 유리 기와지붕이 원형 제단 위에 얹혀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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