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민족과 중국인 차별성

한국(동이)과 중국(화이)(9) : 고인돌별자리

Que sais 2020. 11. 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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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인돌별자리(2)

고대 국가에서 지배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 중의 하나는 천문 현상 관측이다. 천문 현상 왕권의 존립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3명의 제왕이 있다. 가 그들인데 그들의 업적은 모두 하늘과 땅에 관한 일이다.

요 임금희화씨라는 천문 관측 관원과 기관을 설치했고, 순 임금선기옥형(혼천의)라는 천문기구를 창안하여 완벽한 천문 역법을 정비하고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었다. 우 임금은 잦은 홍수로 황폐해진 중원지역의 치수에 성공함으로써 천하를 평정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결국 중국의 전설적인 세 성군천문 역법과 치수를 완성함으로써 제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늘은 제왕만이 대행할 수 있고 자연재해제왕의 부덕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는 자연관은 결국 하늘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학고대의 통치 기술로 접목될 수 있는 것은 농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농사를 제대로 지으려면 적절한 때에 맞추어 파종하는 등 사시사철의 변화와 절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수. 작물의 생육조건과 하늘기후와 연계시킨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을 때 특정 작물이 잘 자라며 또 수확도 많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이 절기를 제대로 알아내려면 하늘을 관찰해야만 한다. 시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1년의 시작, 한 달의 시작점을 정확히 안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시계가 없던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시간과 절기를 안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강동군 항목리 고인돌 별자리

결론은 , , 별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을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계산할 수 있다. 4계절의 변화와 매 절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농사에는 필수였으므로 하늘을 관찰하여 제대로 된 역을 만들고 시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그런 하늘의 정보는 하늘을 계속적으로 관찰하고 거기서 이상 징후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는 담당자가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고인돌이 국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 것은 고인돌 국가답게 별자리가 새겨진 고인돌대동강 유역에서만 무려 200개나 발견된다는 점이다. 고대인들은 원시시대부터 천문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낮에는 해, 밤에는 달과 별들규칙적인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별자리를 관찰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국가의 길흉을 점치기 위한 주술적인 의미

역법을 만들거나 오차를 바로잡기

야간 이동

 

번은 다소 미신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번은 엄밀히 따져 천문학 또는 역학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점성술적인 측면이 강했을지 모르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후자 쪽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고대 홍산 인들의 천문학 수준은 주술이나 무속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 틀에서 움직였다. 고인돌 무덤에 새겨진 홈 구멍의 배열 상태를 조사한 학자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별자리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성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한 돌에 아무렇게나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이는 고인돌이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정도로 정확한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고인돌과 같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하여 별자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위에 직접 별자리를 새겨 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위 자체를 하나의 별로 간주하여 바위들을 별자리 모양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에 있는 외새산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 무덤이다.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약 44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는 이 무덤의 돌은 문자 비슷한 곡선과 점들이 새겨져 있어 글자를 전하는 돌이라는 뜻에서 전자석이라고 불린다. 고인돌 무덤의 뚜껑돌 겉면에는 80여 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는데, 조사 결과 그 구멍들이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했다. 돌의 중심부에는 북극성이 그려져 있으며 80여 개의 구멍은 11개의 별자리에 있는 80여 개의 별을 의미한다. 또한 북극성 주변의 별들은 다른 별자리들과 달리 년 중 계속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북극성은 오늘날 용별자리의 알파(α)이다. 이 별을 중심으로 80여 개의 구멍은 큰곰별자리, 사냥개별자리, 작은곰별자리, 케페우스별자리11개의 별자리를 그렸다. 별의 밝기를 반영하듯 구멍의 크기도 각각 달랐는데 세차운동(歲差運動)을 감안하여 연대를 측정하면 고인돌의 별자리는 기원전 2800±220의 하늘을 보여주었다. 또 같은 고인돌 무덤에서 발굴된 질그릇 조각의 연대핵분렬 흔적법으로 측정하여 4926(±741)을 얻었다. 이는 적어도 기원전 29003000년 전에 홍산 인들이 천문을 세밀하게 관측하였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용덕리 고인돌 별자리

평양시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 무덤기원전 30세기 전반기의 무덤으로 뚜껑돌 위에 80여 개의 홈 구멍이 새겨져 있으며 크기도 제각각 다르다. 그 중 큰 홈 구멍은 6개가 있는데 5개는 북두칠성의 국자와 자루를 연상시킨다. 북두칠성의 놓임 새에 따라 나머지 별들을 관찰하면 큰 별 하나는 5제좌(사자별자리의 β)에 해당하며 작은 별자리들은 자미원(당시 북극)과 테미원에 속한다. 함경남도 함주군 지석리 고인돌 무덤에서 발견된 별 그림은 기원전 1500년경으로 고조선 중기에 해당하는데 별의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를 4부류로 구분하여 새겼다. 이 돌에 새겨진 별을 관찰하면 동지, 하지, 춘분, 추분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특히 지석리 고인돌 별 그림을 보면 그 이전 시기의 것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자리별을 기준으로 볼 때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에 속하는 별에 해당하는 구멍들의 간격이 용덕리 고인돌보다 더 정확하며, 4등성 이하의 별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사람들이 단순히 별을 관상한 것이 아니라 관측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실생활에 적용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총체적으로 200여 기의 고인돌 무덤에 그려진 별자리북극 주변의 별자리와 지평선, 적도 부근의 28를 비롯하여 모두 40여 개가 된다. 이 별자리들은 북위 39도의 평양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새긴 것이다. 또 이 별자리에는 특이하게 은하수와 플레이아데스 성단들도 새겨져 있다. 육안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이렇듯 많이 새긴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다.

2002년에는 평양시 순안구역 구서리에서 매우 특이한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모두 9기의 고인돌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 모양은 누가보아도 북두칠성이 분명했다. 이들 9기의 고인돌은 대체로 350미터 거리에 분포되어 있다. 유물로 돌활촉이 20, 돌도끼 1, 반달칼 1, 질그릇 2 등이 발견되었는데 돌활촉은 모두 점판암을 정교하게 갈아서 만들었다. 이들 고인돌은 구조형식상 북방형고인돌이다. 고인돌무덤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은 황해북도 송림시 석탄리에서도 나왔다.

고인돌 별자리한반도 남쪽에서도 발견되었다. 1978이융조대청댐 수몰지역충북 청원군 문의면 가호리 아득이 마을의 고인돌 유적에서 조그마한 돌판을 발견했다. 고인돌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땅속에서 발견된 이 돌판은 가로 23.5센티미터, 세로 32.5센티미터에 두께가 4.1센티미터였고 표면에는 지름 27센티미터의 크고 작은 홈이 65개나 파여 있었다. 박창범 교수는 이 아득이 고인돌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조사한 결과 이것이 기원전 500년경의 천문도이며 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이아 등을 묘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득이 고인돌 별자리

고대 사회에서 천문도가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천문도야말로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이 모인 자료라는 것이다. 천문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조직적인 체계 하에 하늘을 비롯한 자연현상정기적으로 관찰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세계 고대 천문학계에서는 , , 전갈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바빌로니아 토지 경계비별자리의 원형으로 보고 메소포타미아 지역고대 천문학의 발상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토지 경계비기원전 1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고, 대동강 유역의 고인돌에서 발견된 천문도는 그보다 무려 1,800년이나 앞서는 것이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가 다른 지역보다 문명이 앞섰고 4대문명의 발상지라고 내세울 수 있는 커다란 요인 중에 하나는 체계적인 천문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인돌별자리를 볼 때 이들 문명에 비추어 결코 늦지 않은 시기부터 하늘을 체계적으로 관측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선조들이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도 우수한 과학적 소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고인돌별자리는 당시의 국가와 같은 틀이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로 제시된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다음은 야간 이동이다. 100여 년 전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하여 밤을 낮으로 변환시킨 이전까지 밤에 길을 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다. 유일한 방법이 횃불 등을 이용하는데 이는 먼거리에서도 이동 방향을 알 수 있으므로 포착되기 마련이다.

전쟁에서 승리의 방법 중 하나는 기습인데 과거 장병들의 이동거리는 오로지 낮의 행군에만 의지해야 했다. 밤에 횃불을 들고 행진하다가는 적군에게 포착되기 때문인데 이때 불 없이 행군할 수 있는 방법이 별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별자리가 군사상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들 정보는 최고급 군사비밀이지 않을 수 없다. 별자리에 대한 정보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데 5000여 년 전의 별자리 정보가 고인돌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이를 전수관리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별자리지식을 갖고 있는 곳이라면 국가 체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고인돌동이지역의 유산으로 중원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고인돌별자리 역시 중원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