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4)

Que sais 2020. 11. 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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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무리아 대륙의 실존설을 없앤 판구조론

이전의 설명들은 대륙이 이동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딱딱하기 짝이 없는 지구의 대륙이 이동한다는 생각을 떠 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지구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을 배운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지구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과학적 정설을 뒤집고 지각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방법을 최초로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인 사람이 베게너. 그런데 그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비과학자로 거명될 만큼 당대에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

베게너는 대륙이 지구의 둘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지구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베게너에 대해서는 물리 노벨상이 만든 세상판구조론, 베게너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설명하지 않지만 여하튼 베게너의 판구조론은 아틀란티스 신봉자들에게 악몽의 강타를 날렸다.

판구조론판들의 가장자리끼리 맞닿는 곳에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개의 판 중 하나가 맨틀 아래로 침강해 내려갈 수도 있고 다른 쪽 판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은 지진이나 젊은 산맥들이 생성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줄 수 있다. 특히 두 판이 만나는 곳에서는 마찰이 일어나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아래층의 암석을 녹일 수 있을 정도다. 지구 내부의 큰 압력마그마를 위로 분출시키면서 화산이 분화하고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도 말끔하게 설명된다.

 

그린란드빙원을 횡단하는 베게너

해리 헤스는 동부 태평양에서 남북 방향으로 연속되는 특이한 자장 이상대(고지자기 줄무늬)가 존재하는 사실을 발견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이론은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대양 한 가운데의 해령에서 지구 내부로부터 뜨겁고 동적인 용암(마그마)이 솟아오르면서 해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지구 내부에서 새롭고 기다란 화산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그 물질이 솟아오르면서 쌓여서 해저 바닥에서 수 킬로미터나 솟아오른 거대한 산맥을 생성한다. 마그마는 또한 해령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가가면서 새로운 대양저를 만드는데 나이가 2억 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륙이동설로부터 출발한 해저확장설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라는 새로운 지구과학을 유도한다. 종래의 관점이라면 지구의 횡단면에 보이는 지구의 중심부는 용융된 납과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암석층에 둘러싸여 있고 그 표면을 얇고 견고한 지각이 감싸고 있다. 현대에도 이런 지각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으나 과거의 이론과는 달리 지각 그 자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판구조론이다.

대륙이나 거대한 섬 같은 지각층 윗부분의 지괴(地塊)는 지각층 아랫부분의 플레이트 같은 판상(板床) 위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 세계적으로 암석권으로 알려진 이런 지각판은 취약권이라 불리는 반 액체 상태의 광대한 맨틀 위에 떠 있다. 그 결과 취약권을 뚫고 나온 용암이 두 개의 지각판을 갈라놓는 틈새로 흘러들어 가면서 이 지각판과 대륙이 분리된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대서양에는 중부 대서양 해령(海嶺)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해저 분지가 존재한다. 이는 동서 양쪽의 해저 분지가 분출된 용암이 양쪽으로 흘러내려 응고하면서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거대한 지각판은 이런 광대한 분지의 점진적인 확대로 인해 계속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판구조론은 레무리아 대륙의 존재를 믿는 연구가들에게 치명적인 사망선고를 내렸다. 결론은 대륙 규모의 땅덩이가 대서양 해저 분지에서는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대서양의 함몰지대라고는 카리브해 근처에 있는 작은 규모의 지대 하나 뿐인데 그 역할 또한북 아메리카의 거대한 지각판의 장력을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 만약 대륙 규모의 레무리아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또한 지각판 위에 있어야 하는데 거대한 지각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해저 지형

더구나 대륙의 이동2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억 년 전이라면 지구를 석권했던 공룡들의 세상이며 인간이 속한 포유류는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시대이다. 물론 레무리아 대륙의 사망 선고아틀란티스 대륙의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이다. 대륙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무 대륙

레무리아 대륙과는 달리 무 대륙은 비교적 근세인 12,000년 전에 태평양 상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대륙을 지칭한다. 지도를 보면 태평양 상에 드문드문 섬들이 분산되어 있는데 이들 섬들이 과거에 한 대륙으로 구성되어 있다가 갑작스런 격변에 의해 침몰되고 일부 섬들이 남아있다는 설이다. 무 대륙은 대부분 후술하는 아틀란티스 대륙과 내용이 겹쳐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의 연계성에 관심을 보이는데 무 대륙에 대한 신상 명세서는 다음과 같다.

 

먼 옛날, 태평양 상에 무라는 대륙이 있었다. 동쪽 끝은 현재의 하와이 섬, 서쪽 끝은 마리아나 군도, 남쪽은 파노베, 피지 등 여러 섬, 그리고 최동남단은 이스트 섬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동서의 길이는 8,000킬로미터, 남북이 5,000킬로미터로 태평양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며 중국 대륙의 40여 배에 달한다.

12,000년 전, 무 대륙의 주민들은 고도의 문명을 보유했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어 낙원과 같이 살았다. 그런데 무 대륙에 살면서 초고대 문명을 갖고 있던 6,400만 명의 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지각의 대변동으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태평양 상에 현재도 남아있는 여러 섬들은 무 대륙의 잔해.‘

 

무 대륙이란 이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중앙 아메리카 고고학의 선구자 중에 한 명인 오귀스튀스 르 플롱종(Le Plongeon)이다. 르 플롱종고대 마야인들의 기록에서 판독했다며 마야인들이 아틀란티스의 무 여왕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 대륙이 실제한 대륙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은 영국의 제임스 처치워드 대령이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무 대륙에 관계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처치우드1868년 인도 주둔군 소속으로 그가 주둔한 지역에 대기근이 닥치자 난민들에게 영국 정부의 구호양곡을 배급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대가 주둔한 힌두교 사원의 고승(高僧)이 그에게 오래 된 2개의 원반형태 점토판을 보여 주었다. 고승은 아득히 오래 전 인류의 본고장에서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카루스 형제가 인간의 말을 새긴 점토판이라고 설명했지만 해독할 수 없었다.

 

무대륙과 아틀란티스

코미디와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승과 처치워드 대령이 점토판을 해석하는 도중에 멕시코에서 미국의 지질학자인 윌리엄 니벤무 문자와 매우 비슷한 문자판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후 똑같은 문자가 마야의 고대 신전달력, 티세크의 돌기둥 및 아스코 파사르코의 돌로 된 테이블에서 발견되었고 이스터 섬에서도 똑같은 문자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처치워드는 무 문자로 된 점토판의 해석에 성공했다며 다음과 같이 점토판의 내용을 발표했다.

 

1) 점토판을 새긴 인간은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2) 점토판은 나아칼(성스러운 형제라는 뜻) 비문의 일부로 이 비문에는 무 제국의 역사와 법률, 신봉해야 할 라아신(太陽神)에 대해 적혀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트로안느 서에 무 나라라는 설명이 있는데 트로안느 서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즉 마야 인들이 썼다고 여겨진다.

MU또는 Moo로 적는 무 또는 뮤란 말은 그리스어 알파벳 12번째 단어이다. 이 말은 원래 1864, 프랑스인 신부 샤를 브라쇠르가 마드리드 왕립역사학회 도서관에서 스페인이 중앙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참여했던 신부 디에고 데 란다유카탄 사물기를 발견하고 그가 해득한 마야 알파벳으로 고대 마야의 트로안느 서를 해독한데서 출발한다. 그는 화산 폭발과 재앙에 의해 함몰된 나라의 이름에 해당하는 두 개의 마야 그림문자를 보고 MU라고 읽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란다가 해득했다는 마야 알파벳표는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3) 유카탄 반도의 웃슈멀 사원의 벽에는 서쪽 나라, 우리들은 그곳에서 왔다라는 마야의 상형문자가 쓰여져 있다.

4) 이집트, 미얀마, 인도, 중국, 중남미, 북미의 인디언 종족 사이에는 태양을 신격화하는 풍습이 있다. 이런 공통점을 볼 때 이들 국가들의 사람들이 같은 원류(源流)인 무 대륙에서 각각 이동해 갔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집트, 인도, 미얀마에서는 동방의 나라라고 하는 반면 멕시코, 중남미에서는 서쪽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 기록은 태평양 상에 대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치우드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켰다.

인구는 약 6,400. 주민은 약 10개 민족으로 이루어졌으며 인종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고 하나의 정부에 한 명의 왕이 지배했다. 대륙은 좁은 해협에 의해 세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수도 히라니푸라를 포함한 7개의 대도시를 돌을 편편하게 깐 도로가 그물처럼 사방에 잘 뻗어 있었다. 비옥한 토지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식물들이 잘 자랐고 항구는 출입하는 선박들로 혼잡하였고 세계 각지에서 진귀한 물건들이 계속 공급되었다. 한 마디로 무 대륙은 낙원이었다.

무 대륙에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무 제국이 번영하고 있었으며 황제는 라아 무라는 제관이다. ‘태양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무 제국은 건축과 항해술이 뛰어나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넓혔는데 식민지의 지배자들은 무 제국의 자손임을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안데스의 잉카 제국에서 태양의 아들임을 뜻하는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인도에서 동일한 점토판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인도 역시 무 제국의 식민지였음을 의미한다.

처치우드는 여러 섬에 남아 있는 대이변 즉 홍수와 분화 등으로 대륙과 섬들이 침몰했고 이 당시에 화를 면한 사람들이 태평양의 각 섬에 살게 되었다는 전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보다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들이 무 제국을 건설한 것은 무려 7만 년 전이다. 전성기에는 의 나라인 무대륙, 대서양에는 아틀란티스 대륙, 아시아 동부에서 유럽 동부에 걸친 위글 제국, 중미의 마야 제국 등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마존 내륙에 카러 제국이 있는데 이들은 하늘을 나는 기계를 사용했다.

처치우드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직접 답사한 후 1931년 뉴욕에서 잃어버린 무 대륙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의 발표에 학자들은 냉담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의 저서 잃어버린 무 대륙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계속하여 무의 자손들, 무의 신성한 표상, 무의 우주력 1, 2등 시리즈 물로 발간되자 무 대륙의 신화는 상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

처치우드가 수도라고 부른 히라니프라티베트에 있는 전설의 성도. 그곳에는 천제를 모시는 하얀 대리석 신전, 지붕이 없는 대사찰(전설에서는 투명한 신전), 등이 세워져 있고 하얀 돌 벽에는 열대에서 자라는 야자수 그림자들이 드리운다. 문명국이니 대학과 문화 시설이 있음은 물론이며 제왕 라무는 최고의 신관으로서 종교 의식을 집행한다.

무대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무 대륙은 두 번에 걸친 천재지변을 겪었는데 두 번째 천재지변이 치명적이었다. 트로안느 서에 의하면 무 대륙은 바알 ()이 떨어진 후 단 하루 만에 지하의 불의 작용으로 대지가 흔들린 후 여러 곳이 솟고 가라 앉았다. 열 개의 나라는 이 격변으로 흩어졌는데 이 사건이 생긴 연대는 약 12,000년 전이다. 재난의 내용을 사실로 본다면 바알 성은 거대한 유성을 뜻한다.

처치워드는 격변이 생긴 이유도 설명했다. 무 대륙의 땅 밑에 있는 무서운 함정 즉 여러 층에 걸쳐 발달한 가스 구멍재난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각 내에 종횡으로 발달한 벌집 모양의 공동에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가스가 충만해 있으므로 이 가스가 폭발하면서 가스 구멍의 상층부가 허물어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진과는 완전히 다른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아틀란티스와 무대륙

그는 내친 김에 아시아와 남미 대륙의 변화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위글 제국은 지각의 변동에 의해 고비 지역을 사막으로 바꾸었고 그 후 히말라야의 산맥이 융기되기 시작했다. ‘북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피부가 하얗고 밝은 머리 색깔과 푸른 눈을 가지고 있으며 남방에 사는 사람들은 짙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하고 있다.’라는 중국의 고기록이 전하는 위글 제국의 민족은 사막의 모래 속에 묻혔다는 것이다.

남미에서도 안데스 산맥이 올라가 바다였던 아마존 지역이 큰 강으로 변해 연안의 카러 제국의 도시들도 떠올려졌다. 그것이 티카티카 호이며 티어워나코의 유적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 즉 초고대 문명은 지각의 변동에 의해 멸망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레무리아 대륙이나 무 대륙은 과학적 잣대만 대기만 하면 곧바로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데 오히려 묘미가 있다. 지질 연대상으로 보아 가장 최근의 알프스의 조산(造山) 운동은 적어도 6000만 년 전이다. 더구나 지각의 변화는 아직도 계속되어 지금도 조산기의 후반에 속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근년에 와서 첨단 과학 기술에 의해 무 대륙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중앙태평양 해저를 탐험했는데 이들은 현무암질로 구성돼 있고 적어도 5억 년 전에 조성된 것이 밝혀졌다.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지에 흩어져 있는 태평양의 섬들에는 고립된 섬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연관되는 유적들이 많은 것을 근거로 무 대륙을 주장하지만 학자들은 태평양 제도의 역사는 대체로 3000에 불과하다.

1846년 폴란드의 요한 크바리는 태평양 상에서 수많은 유적을 수집한 후 선박에 싣고 귀국하는 도중 1874마샬 제도의 산호초에 좌초하여 모든 자료를 분실했다고 알려졌다. 무 대륙에 대한 결정적인 자료들이 이때 모두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크바리가 수집했던 지역의 유적들의 추정연대는 겨우 1000년 전이었다.

결국 레무리아 대륙이나 무 대륙에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무리아 대륙과 무 대륙이 인간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데 묘미가 있다. ‘사라진 대륙초고대 문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