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9)

Que sais 2020. 11. 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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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등장하는 후보지>

아틀란티스가 워낙 매력적이므로 후보지들은 계속 등장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바다에 '도거랜드(Doggerland)'라고 불리는 바닷속의 높은 평지와 같은 지형이 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신석기 시대에 영국과 프랑스는 육지로 이어져, 현재의 아일랜드부터 브리튼 섬과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가 거대한 반도의 형태로 있었는데 이를 도거랜드라 부른다.

학자들은 도거랜드가 대체로 기원전 18000년부터 5500년까지 존재했다고 인식하는데 실제로 이들 지역에서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되어 과거에 이 지역에 존재한 문명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곳이 바로 아틀란티스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이들 지역의 해수면이 높아져 완전히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이 지역이 엄청난 쓰나미로 잠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전설상의 아틀란티스와의 연계성이 더욱 주목받았다.

모로코수스마사(Sous Massa) 도 있다.

독일의 미하엘 휘프너 박사가 제기했는데 그는 '티아미오스'와 '크리티아스'에 나오는 지형적 특징을 근거로 아테네에서 반경 4,700 km 이내의 지형을 400개 구역으로 추리고, 지형적 특징이 이들 설명과 일치하는 곳을 간추렸다.

그런데 모로코에서 '크리티아스'에 등장하는 동심원 모양의 지형을 찾았고 크기도 플라톤이 말하던 것에서 1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지역이 모로코 국왕의 개인 소유지였기 때문에 발굴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고, 모로코 국왕도 발굴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설을 발표한 휘프너 박사2013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주장은 유사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2018년 혜성같이 등장한 주장이 서부 사하라 사막의 리차트 구조가 아틀란티스의 문명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리샤트 구조(Richat Structure)'사하라의 눈()'이라고도 불리는데,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에 근접한 모리타니에 위치한 둥근 동심형 지형이다.

'사하라의 눈'20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틀란티스의 후보로 주목받은 이유는 이곳이 실제 사람의 눈 높이에서는 평범한 사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기술 즉 정밀한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하니 아틀란티스 대륙과 놀랍도록 비슷한 지형을 발견한 것이다.

 

사하라의 눈

미하헬 휘트너 박사가 주장하는 리샤트 구조가 아틀란티스의 흔적이라는 세 가지 근거는 간단하다.

첫째 리샤트 구조의 크기가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의 크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리샤트 구조의 주변 지형이 플라톤의 기록과 일치하는데 아틀란티스는 동심원 3개인 고리 모양 해자 구조로 중앙섬에 연결되고, 도시의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넓은 평지가 있다고 기록되었다. 이들 지역도 플라톤이 설명한 동시원 지형 설명과 매우 유사한데 리샤트 구조의 위치가 사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아틀란티스와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사하라 사막은 지구 자전축 변화로 인해 2만 년마다 초원과 습지 그리고 사막을 오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이 지역이 지금처럼 사막이 된 것은 약 5000년 전부터로 플라톤의 주장대로 9000년 전이라면 지금 기준으로 11000년 경에는 사막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아틀란티스 대륙이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는 설명인데 실제로 모리타니 사막에서 오래된 고래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인근 지역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했던 적이 있음은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플라톤이 '침몰한 섬'이 남긴 많은 이토(泥土, 진흙)가 항해를 방해하고 있다는 설명과도 부합된다. 더구나 '사하라의 눈'을 포함한 사하라 사막 아래 거대한 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거대한 아틀란티스

워낙 사하라 눈이 플라톤이 설명한 지형과 유사하므로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원시 석기 시대를 넘어서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또한 이들 지역은 약 23 천만 년 동안 가장 가까운 해안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해양 문화로 추정되는 '아틀란티스가 내륙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아틀란티스 대륙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알티노플라노 평원에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 가설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파괴가 고대 지중해를 석권하였던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과 인근에 있는 산토리 섬의 테라 화산 대폭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 있는 볼리비아의 알티노플라노 평원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가설은 비교적 근래에 나온 것이다. 20년 간 아틀란티스의 증거를 찾아 온 탐사가 짐 앨런은 아틀란티스 대륙이 남미의 알티노플라노 평원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알티노플라노164x480킬로미터의 직사각형 모양을 갖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평원이다. 알렌은 우선 지형이 플라톤이 설명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평원이 황무지이지만 고대에는 운하로 둘러싸인 섬으로 180미터의 원형 운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기염을 토했다. 특히 원형으로 된 팜파 올라가스 휴화산의 하얀색 절벽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아틀란티스 지형과 유사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알티노플라노가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와 유사한 점은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플라톤이 말한 , , 백색 돌이 발견되는데다가 오리칼크도 발견되었다. 오리칼크는 구리와 금, 주석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금보다 더 비싼 광석으로 알려졌지만 근래까지 플라톤이 상상으로 만든 광석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안데스 지역에서 실제로 오리칼크가 발견되었다.

더구나 커다란 돌들을 이어 맞출 때 구리와 니켈로 만들어진 장부맞춤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니켈은 3,500도 이상에서야 녹일 수 있는데 3,500도는 현대에도 만들기 어려운 기술이다. 이들이 사용한 금속의 기술 수준을 볼 때 남미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선진 과학기술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며 안토에우지노 박사도 이들이 아틀란티스 인들이라면 충분한 설명이 된다고 역설했다.

또한 해발 3,80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내해 즉 땅의 융기로 바다가 갇힌 것인 티티카카호는 호수가 침몰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데 아카코르 탐사팀이 수면 아래 30미터 지점에서 부두와 제단, 사원을 비롯한 건물 유적이 발견된 것을 증거로 들었다. 정확한 조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들 유적이 물 속에 잠겼다는 아틀란티스의 유적임이 틀림없다고도 강조한다.

알렌은 남미 전체가 아틀란티스로 10개 왕국이 있었으며 앞에서 설명한 볼리비아의 티아우아나코 유적도 플라톤이 말한 왕국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현재는 남미에서 코끼리가 사라졌으나 기원전 300년경에도 코끼리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그리스와 전쟁을 했다는 설명이 가장 큰 걸림돌인데 앨런은 남미에서 현재도 제조되고 있는 거대한 갈대배로 세계 어디로든지 항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350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미라에서 코카인과 담배 잎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식물들은 과거에 남미에서만 발견된 것으로 아틀란티스와 이집트가 교역할 정도로 항해술이 발달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제시됐다. 남미에 살고 있는 아이마라 족은 현재도 갈대배를 만들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이집트까지 항해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알렌의 주장에 아메리카에서 그렇게 문명이 발달했다면 다른 세계에서는 문명이 계속 발달했는데 아메리카에서는 문명을 진보시키지 못했느냐고 반문한다. 알렌의 답변은 명쾌하다. 문명이 진보한다고 반드시 수직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발달된 문명이 어떤 계기로 인하든 퇴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틀란티스의 문명이 1만여 년 전에 발달했다고 그 문명이 반드시 현대문명과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앨런의 주장은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 있다.

우선 알티노플라노는 1,500만년 동안 불모지였으며 플라톤이 기록한 만큼의 인구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운하의 흔적180미터나 되는 등 너무 넓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으며 티아우아나코 유적을 보더라도 외부와의 접촉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으며 탄소측정법에 의할 경우 티아우아나코는 20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이 지구의 어디엔가 실재했었음을 믿더라도 남미가 아틀란티스 대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가 아틀란티스라는 주장은 매우 매력적으로 현재도 많은 학자들이 증거를 찾기 위해 남미를 방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틀란티스 대륙 침몰의 근원지 테라

현재 많은 학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K.T. 프로스트(K.T. Frost)1909년에 <타임>지에 발표한 내용이다. 이어 1969년에 J.V. 루스(J.V. Luce)󰡔아틀란티스의 종말-옛 전설의 재발견󰡕을 펴냈다. 그들의 주장은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라는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크레타 섬이라는 프로스트의 가설은 다른 가설보다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가설이 근래까지 큰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는 플라톤이 말한 하룻밤과 낮 사이에아틀란티스 대륙이 갑자기 소멸되었다는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면 서쪽에 있었던 섬이 아니다. 크레타 섬은 이집트에서 보면 서쪽이지만 그리스인이 볼 때는 동쪽에 있다. 물론 이집트 사제가 이집트인의 입장에서 서쪽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한다면 간단할 수도 있지만, 이 방향성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학자나 고고학자가 플라톤이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스트의 가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증거가 마침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고학자 스피리돈 마리나토스(Spyridon Marinatos), 루스, A.G. 갈라노풀로스(A.G. Galanopoulos), 에드워드 베이컨(Edward Bacon) 등은 프로스트의 가설을 조사했다. 그 이유는 플라톤이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만들 때 미노아 문명을 배경으로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산토리니(테라)

1900년 영국의 에반스(A. Evans 18511941)이 크레타에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여 미노아 문명(기원전 2500년경 기원전 1400년경)의 존재가 밝혀지자 사람들은 이 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여러 개의 궁전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아틀란티스의 10명의 왕을 연상시켰다.

크노소스의 수도 미노아의 웅장한 사원들은 약 3,800년 전에 축조된 것이다. 이 사원의 정상부에는 2만 평방미터의 면적에 1,000여 개의 방이 있고 안뜰에는 복도를 따라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으며 의례를 위한 목욕탕과 계단도 있다. 신전의 일부는 34층 높이로 되어 있으며 광장과 주거공간의 일부 벽은 돌고래와 황소 그림프레스코 벽화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 유적을 보면 플라톤 시대의 그리스보다 훨씬 오래된 문명이지만 매우 수준 높은 문화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황소 그림과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황소를 제물로 바칠 때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매듭과 몽둥이만 사용해 죽였다는 기록이다. 당시 크레타인은 무기 없이 황소와 싸우는 운동을 즐겼다. 이는 커다란 황소가 질풍같이 돌진해 오는 정면에 떡 버티고 섰다가 황소의 뿔에 떠받힐 듯한 순간에 쇠뿔을 휘어잡고 공중회전을 해 황소의 등에 올라타는 경기이다. 이 경기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황소를 상대로 하는 것이므로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의 무기는 오직 양팔과 번개처럼 빠른 눈, 민첩성, 용기뿐이었다.

 

크노소스의 황소경기

크레타를 발굴한 에반스 박사가 크레타에서 발견한 투우사의 프레스코화에는 황소 한 마리와 세 명의 선수가 나오는데 그 중 두 명은 여성이다. 힘이 넘치는 황소가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고 허리에 짧은 요포를 두르고 양말만 신었을 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한 소녀가 황소의 뿔을 꽉 잡고 있으며 소년이 황소 등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있다. 이 그림에 여자 선수가 등장하는 것은 황소타기가 완력의 스포츠가 아니라 타이밍과 스피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반스는 북아메리카의 카우보이와 스페인의 투우사가 겪는 투우의 위험성을 조사해 돌격하는 소는 자신의 뿔을 잡는 사람을 공중으로 내동댕이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충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 공격하는 소는 머리를 옆으로 돌려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의 몸에 구멍을 내버린다.

그러므로 크레타에서 소의 등에 뛰어오르는 사람은 다치거나 죽을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인장 반지에는 소의 등에 뛰어오르다 떨어져 발굽에 짓밟힐 위기에 처한 불운한 사람이 그려져 있고, 꽃병에는 쇠뿔을 헛잡아 황소의 뿔이 여자 선수의 등을 찔러 배를 뚫고 나온 장면이 있다.

만약 황소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면 선수는 실격되며 간혹 젊은 여성도 경기에 참가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경기가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고 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경기를 도입해 관중에게 보여준 로마도 크레타인이 즐기던 황소와의 경기는 도입하지 않았다. 황소타기가 대단히 위험한 경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