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사고의 보고 버뮤다 삼각지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의 실종 사건이 특별한 주목을 끄는 것은 매우 가까운 지역을 항해하면서도 대부분 SOS를 발신하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설령 교신하였더라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고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난 당할 때 제일 먼저 SOS를 보내는 것은 누구 나도 잘 아는 상식인데도 그렇지 못한 이유가 바로 미스터리의 핵심이다.
SOS조차 보내지 못할 정도라면 무언가 급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몇몇 실종 사건의 경우 최후의 통신을 보내오기도 하였지만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화물선 라이후꾸마루(來福丸) 호는 1924년 겨울, 바하마 제도와 쿠바 사이에서 행방불명될 때 매우 이상한 통신을 보냈다.
'지금 비수(匕首)에 찔릴 듯한 위험이 닥쳐왔다… 빨리 오라… 탈출할 수가 없다.'
미국 해안경비대에서 이런 실종 사건들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이 선박이 조난 신호를 발신하지 못한 것은 이 배가 겪은 조난이 송신도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빨리 들이닥쳤을지 모른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948년 3월 5일 유명한 경마기수 알스나이더는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자기 소유의 캐빈 크루저를 타고 마이애미를 출항하여 낚시를 떠났으나 사람은 사라지고 요트만 발견되었다. 요트가 있었던 곳은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1967년에 일어난 위치크레프트 호 사건은 이 소형선이 부표에 배를 묶어 두고 있었는데도 갑자기 실종된 터무니없는 사건이었다. 이 배의 소유자인 바렉크는 항구에서 약 1마일쯤 떨어진 제7부표 근처에 배를 세웠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급히 해안경비대에 긴급 구조를 요청하고 배의 정확한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해안경비대가 20분도 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지만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1997년 6월 7일에도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구축함은 한 요트가 이상한 항해를 보이자 이 배를 선원들이 확인했는데 배의 이름은 루스 호였고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배가 1996년 7월부터 무려 1년이나 표류했다는 것이다.
선장은 루스 호를 푸에르토리코에 인양하도록 승무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이 루스 호를 인양해가기 시작한지 2일 째 되는 날 밤, 배의 동력이 꺼지고 항해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고 무전기도 불통하는 사고가 생겼다.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실종 사건의 장본인이 될 지 모른다는 불안에 잠겼었다고 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추후에 이 배는 유명한 메리 셀레스트 호의 재판이라는 이름을 얻은 동시에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난 가장 최근의 의혹 사건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사상 최대의 수색작전에도 사라진 비행기〉
버뮤다 삼각지대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선박의 실종보다는 1945년 12월 5일의 6대의 해군비행기와 그 승무원들이 사라진 사건이다. 그 날의 비행은 포오트 로오더딜 기지에서 동쪽으로 160마일, 북쪽으로 40마일을 미리 예정된 해양순찰 훈련 비행을 한 후 남서쪽으로 침로(針路)를 바꾸어 기지로 돌아오는 일상적인 것이다. 제19편대 즉 플라이트19는 이날 이륙한 비행 편대의 이름으로 훈련기는 네이버 그라만 TBM 3형 소형 아벤저 뇌격기(雷擊機)로 각 비행기마다 1,000마일 이상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있었다.
편대장은 찰스 테일러 대위, 나머지 4명의 비행사는 훈련생들로 각 비행기에 하사관 2명씩 모두 9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훈련생 비행사라고 하지만 그들은 말만 훈련생일뿐 모두 조종 및 작전 훈련에 익숙한 베테랑들이었다. 여기에서 9명의 하사관이 탑승한 것은 원래 탑승 예정인 한 명의 하사관이 사정상 결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후 2시에 이륙 개시하여 2시 10분에 5대 모두 하늘로 떠올랐다. 그들은 치킨해안에서 폐선(廢船)을 상대로 표적(標的)훈련을 할 예정이었는데 이 비행 중에 눈에 띠는 이상한 징조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후 3시 15분 로오더딜 기지의 관제탑 무선기사는 편대장 테일러 대위로부터 갑자기 다급한 통신을 입수했다.
편대장 : 긴급연락! 우리가 항로를 이탈한 것 같다. 육지가 사라졌다. 반복한다. 육지가 안 보인다.
관제탑 : 현재 위치는?
편대장 : 위치를 알 수 없다. 어디를 날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관제탑 : 곧바로 서쪽으로 향하라
편대장 : 어디가 서쪽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이상하다. 방향을 전혀 잡을 수 없다. 바다의 모양도 평상시와 다르다.
오후 3시30분 테일러 대위는 다음과 같은 통신을 보냈다.
‘나침반 두개가 모두 고장났다. 기지를 찾고 있다. 플로리다의 작은 섬들 상공인 것 같은데 어느 근처인지는 알 수 없다.’
‘방금 조그만 섬 위를 지나쳤다. 육지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후 잡음이 심해져 더 이상 통신을 할 수 없었다. 반면에 로오더딜 기지 근처에 있는 에버글라드 기지에서도 테일러 대위가 보내는 다음과 같은 통신을 포착하였지만 직접 대화는 불가능하였다.
‘우리들은 흰색의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기괴하며‧‧‧ 바다가 우리들이 보던 것과 다르다.’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들을 찾으려고 오지 말라’였다.
추후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즉 찾으려 오지 말라는 말이 경고인지 또는 곧바로 귀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 정확치 않다는 것이다.
여하튼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구조팀이 구성되고 19시 30분 각 13명의 승무원을 태운 No32와 No49의 두 대의 마틴 마리나형 구조비행기가 서로 다른 항로로 최후의 보고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중 No32가 20시 30분에 정상적인 보고 없이 또다시 사라졌다.
한편 다른 쪽으로 출발한 No49는 상공 1,800미터에 강한 소용돌이가 있고 바다 역시 매우 거친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의문의 실종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자 이 지역에 대한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도 대규모의 탐색작업이 바다와 하늘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수색에 동원된 항공기 300여대, 구축함 4척, 잠수함, 해안 경비정 18척, 조사정, 구조정, 민간기, 요트, 보트 수백 척이 펼치는 사상 최대의 대 수색작전이었다.
그러나 사고지역을 중심으로 공중수색 시간을 4,100시간이나 소요하면서 거의 100만 제곱킬로미터를 구석구석 수색하였지만 사라진 항공기들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잔해도 없었고 어떤 구명대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기름의 흔적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진상을 밝히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종결되었다.
‘수신된 무전의 내용은 편대가 방향을 잃고 나침반이 고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전례 없는 화창한 날의 조난은 해군 항공 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조사 대상이었으나 수수께끼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당시의 조사 위원 중에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묘한 발언을 했다.
‘그들은 마치 화성으로 날아가 버린 듯 완전히 사라졌다.’
이 말이 그 후 버뮤다 삼각지대의 성격을 규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이 말에 얽힌 수수께끼는 사건이 일어난 지 29년이 경과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사고가 일어날 때부터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아트 포오드 기자가 1974년에 테일러 대위가 ‘나의 뒤를 따르지 말라‧‧‧ 저놈들은 우주에서 온 것 같다’ 라는 통신을 보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정보의 출처는 어느 외딴 시골에 살던 무전사(無電士)였다. 마치 외계의 다른 세계로부터의 간섭을 암시하는 이 최후의 무전은 그후 다른 실종사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의 항공기의 실종 사건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났다.
1947년 7월 3일 6명의 탑승원을 태운 미 육군의 C54기 한 대가 버뮤다에서 1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갑자기 행방을 감추었다. 즉시 육군과 해군 및 해안경비대가 출동 대규모 수색을 하였으나 조난기를 찾지 못하였다. 그후 좌석 쿠션과 산소 봄베 1개를 발견했지만 잔해는 물론 기름이 유출된 흔적도 찾지 못했다.
1948년 1월 29일 브리티시 사우드 아메리칸 항공의 츄더4발 여객기인 스타타이거 호가 아조레스 군도에서 버뮤다로 가는 도중 실종했다. 승무원 6명 승객 25명이 탄 이 여객기는 도착 예정 직전에 ‘기후‧운항 모두 쾌조.’, ‘정각에 도착한다.’, ‘위치는 버뮤다 북동쪽 389마일’이라고 한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SOS의 발신도, 긴급 연락도 없었다. 역시 다음날 대대적인 수색이 개시되었으나 헛수고로 끝났다. 몇 개의 상자와 빈 드럼통이 발견되었으나 사고 비행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48년 12월 30일 N16002 항공기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친 여행객들을 태우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목적지인 마이애미에 착륙하기 위해 관제탑에 착륙 지시를 바란다는 연락을 취했고 관제탑에서 착륙 지시를 내리는 도중에 비행기는 갑자기 사라졌다. 실종 이후에 광범위한 수색을 했지만 이 항공기나 승객에 대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1949년 1월 17일 스타타이거 호와 자매기인 스타 에리얼 호가 7명의 승무원과 13명의 승객을 태운 채 버뮤다와 자메이카 사이를 비행하다 실종되었다. 기장은 이륙 후 모든 것이 양호하다는 비행보고를 한 후였다. 같은 항공사의 두 여객기가 동일 지역에서 조난당했다는 사실은 곧 테러에 의한 것 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낳았지만 결국 이 사고도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증거가 불충분하여 사고원인은 알 수 없다라고 종결되었다.
이후에도 항공기는 계속 사라진다. 1950년 3월 미국 국적의 그루우프 마스터 1대가 실종되었고 1952년 2월 2일 요오크 수송기가 승무원 및 33명의 승객을 운반하던 중 사라졌다. 다만 이 경우에는 희미한 SOS가 송신되었다는 것이 특이하였다.
1954년 10월 30일 미 해군의 슈퍼 콘스트레이션 호가 42명의 탑승자와 함께 모조리 실종됐고 1956년 4월 5일에는 민간 화물수송기로 개조된 B25가 사라졌다. 1956년 11월 9일에는 미 해군의 마틴 마린 P5M 초계 수상기가 버뮤다 근해를 순찰 중에 10명의 승무원과 함께 사라졌다.
1962년 1월 8일에는 버지니아 주의 랑그레 공군기지를 이륙한 KB50 급유기가 아조레스로 가는 도중에 사라졌다. 정체불명의 혼란 속에 말려 들어간 듯한 희미한 무전이 들리기는 했으나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 사건이 기묘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로서 1945년 미 공군 C115기인 ‘나르는 박스카’ 사건도 자주 거론된다. 승무원 10명을 태운 이 비행기는 홈스티드 공군기지로부터 바하마제도에 가까운 그랜드 다크 섬으로 가던 도중에 사라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잘 들리지 않는 가냘픈 통신으로 비상사태를 호소하다가 수신이 점점 멀어지더니 실종되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5일간 수색이 진행되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사고 원인은 불명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 이 사건이 큰 반향을 얻은 것은 C115기와 같은 항로를 반대 방향으로 날고 있던 동일한 기종의 비행사가 ‘일기 청명, 시계 양호’라고 보고하였다는 점이다.
제19편대처럼 혼란상태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1964년 그랜드터어크 섬 상공에서 사라진 여류비행사 캬로린 카시오가 탄 경비행기는 C115기와 마찬가지로 ‘아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탈출 방법을 알려달라’라는 기묘한 연락을 남기고 사라졌다. 조사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시각에 그랜드터어크 섬의 주민들이 한 대의 경비행기가 30분 가량 섬 위를 돌다가 어디론지 갑자기 사라졌다고 증언한 점이다.
바하마 제도의 그레이트 아바코섬 부근을 날고 있던 한 개인용 비행기가 SOS를 쳤는데 그의 보고는 플라이트 19와 유사하였다. 그 조종사는 날씨는 쾌청한데도 안개 속을 날고 있는 것 같았으며 위치도 확인 못하고 바로 밑의 섬들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 해역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시계가 양호하였고 전망도 좋았다고 한다.
이런 의혹의 사건에 대해 맥밀란 경을 의장으로 하는 스타타이거 호의 조난 규명 사문회의의 공식 보고서는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사건이 미스터리임을 확인시켜주는 증거가 되었다.
‘스타타이거가 무선이나 기계의 고장, 연료부족, 목적지 발견의 실패, 기상적인 위험, 고도 오인, 기타 몇 가지 가능성 있는 원인으로 해중에 낙하했다고 상정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기술적 과실, 또는 승무원의 태만이 있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난 모든 실종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실종사고로 보고되었다가 추후에 잔해가 발견되어 원인이 규명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두 대의 KC135 4발 제트 성층권 급유기가 급유 비행을 위해 이륙했는데 버뮤다 남서쪽 300마일이라고 위치를 보고한 직후 소식이 끊겼다. 이것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일어난 최초의 제트기 조난사고였다. 그러나 추후에 잔해들이 수거되어 이 두 대의 제트기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렸다.
버뮤다 삼각지대의 실종 사건은 1968년 5월 28일 승무원 99명의 원자력잠수함 스코르피온 호가 버어지니아 주 노오포오크 기지로 귀항하지 않은 사건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잠수함은 5월 21일 최후로 연락을 보낸 후 실종되었다.
6월 5일 조난된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아조레스 군도의 남쪽 460마일, 깊이 3,000미터 이상의 바다 밑에서 그 잔해가 포착되었다. 추후 사고 원인은 원자력 잠수함의 구조적 결함으로 판명되었으며 이 해프닝은 언론의 보도가 얼마나 과장되었나를 지적할 때 자주 인용된다.
사실 이 지역의 사고는 조그마한 것이라도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알맞는 소재이므로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사건만 생기면 의문의 실종이라고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1973년3월에 승무원32명의 2만 톤 급 화물선 아니타호가 독일로 설탕을 운반하는 도중 실종되었을 때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철저한 조사 끝에 이 배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보험회사는 300만 달러의 보험금을 지불했다. 언론사는 자신들의 보도가 항상 틀린 것은 아니라며 이 사건을 예로 들기도 한다.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자 이 해역을 항공기나 선박으로 지나려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갖기 마련이다. 한 항공사의 안내원은 항공기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자 ‘버뮤다 삼각지대를 피해서 비행하느라고 늦었습니다’라며 승객을 안심시키자 모두들 박수를 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는 지금까지 적어도 1,000명이 사망하고 75대의 비행기가 추락하고 수백 척의 배가 전복됐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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