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설인>
미국의 사스콰치 또는 빅풋, 러시아의 알마, 중국의 원숭이-사람 등이 유명하지만 아시아의 히말라야는 괴생명체의 온상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이부분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히말라야는 예티 또는 설인(雪人)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예티란 이름은 티베트어 야테에서 왔다. 원래 티베트어로는 앞의 '야'는 바위, 뒤의 '테'는 곰을 가리키는 말로 한자로 설인(雪人)이라고도 한다 한편 고대 티베트 방언에서 예티는 '눈 속에 사는 곰'으로 번역되고 셰르파들은 '바위의 남자'로 인식한다.
유럽인들 중에서 티베트 지방을 탐험하고 온 많은 사람들이 메토 캉미(설인)라는 원숭이 비슷한 거대한 동물이 티베트 지방에 있다는 전설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히말라야 일대, 파미르 고원에서 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동쪽 끝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일부 종족은 예티를 알마라고도 부르는데 네팔 왕실주재 영국공사인 호지슨이 1832년에 자신의 짐꾼이 똑바로 서서 걸으며 꼬리가 없고 온몸이 검은 털복숭이 동물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적이 있다는 내용을 공식 보고서로 본국에 보내기도 했다. 호지슨은 오랑우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목격자들은 악마였다고 고집했다.
1889년 바델 소령은 히말라야 탐험 중 5,200미터 고지에서 눈 위에 새겨진 45센티미터의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의 짐을 나르던 현지인은 그 발자국들을 설인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예티는 매우 포학해서 사람을 보면 대들고 납치해서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최선의 방법은 위에서 아래를 향해 비탈을 달리는 것으로 예티는 머리털이 길어서 아래로 달리면 머리털이 눈을 덮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적었다.
1921년 제1차 에베레스트 답사대 대장을 지낸 하워드 베리 대령은 에베레스트 북쪽 절벽의 등반을 시도하는 중 이동하는 다수의 거무스름한 동물 떼를 보았는데 짐꾼들은 ‘예티’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고도 7,000미터에서 사람의 발자국과 비슷한 것을 발견했을 때 아마도 늑대의 발자국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921년에 〈더 타임스〉지는 설인을 목격한 윌리엄 나이트의 말을 게재하였다.
‘지독한 추위인데도 거의 알몸 상태였다. 몸 전체는 옅은 갈색이었고 머리에는 엉킨 머리칼이 한쪽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학자들은 그의 설명을 검토한 결과 고도 5,000미터 부근까지 올라가서 사는 사즈라 불리는 힌두교의 고행승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악천후에서 그가 목격한 이야기나 태양열에 의해 녹아서 커진 발자국을 설인으로 착각했다는 뜻이다.
1925년 왕립지리학회 회원 톰바지가 빙하에서 직립한 동물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찾는 사이에 그 동물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그려 보인 발자국을 분석한 학자들은 곰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예티는 여름에는 5,000미터가 넘는 곳의 동굴에서 살고 겨울이면 마을로 내려와 가축 등을 훔쳐간다는 것이다. 설인의 크기와 모습은 목격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키는 2~3미터, 몸무게는 150킬로그램 정도였다.
티벳의 〈박물지〉에는 설인을 이렇게 적었다.
‘설인은 티벳말로 미교(야생인), 몽골말로 훈 그래스(사람 짐승)이며, 네팔, 시킴, 부탄에서는 예티 또는 스피크라 부른다. 놀라운 힘을 갖고 있음에도 즐기는 먹이는 벌레나 개구리 따위이다.’
1948년에는 예티가 사람을 공격하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르웨이인 토르베르크와 프로스티스는 히말라야의 빙하지대에서 측량 작업을 위해 해발 5,000미터의 제무 협곡 아래에 텐트를 쳤는데 예티 두 명 중의 하나가 그들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토르베르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두 다리로 걸었고 사람의 크기와 비슷했다. 몸은 덥수룩한 긴 털로 덮여 있어지만 얼굴은 털이 없었다. 우리는 괴물들을 생포하기 위해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었는데 올가미에 걸린 녀석이 단 한 번에 밧줄을 두 토막내었다. 녀석은 올가미에서 풀려나자마자 바로 프로스티스에게 달려들었고 일격을 당한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마침내 내가 총을 발사하자 그 소리에 놀란 괴물들은 재빨리 달아났다.’
그러나 설인을 보았다는 수많은 증인들의 목격 보고서는 항상 시빗거리가 따라다닌다. 그 이유는 목격자들의 증언 이외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이러한 목격담은 상상과 조작의 냄새가 짙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제시하는 것은 설인의 체구다. 일반적으로 설인은 체격이 엄청나게 크다고 하는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음식물을 먹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거의 탐험되지 않은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 아직도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혹독한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자신의 체력을 유지할 음식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티벳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산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드디어 설인에 대한 증거가 포착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산악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던 에릭 시프턴이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하던 1951년 11월, 눈 위에서 거대한 발자국이 1.6킬로미터가 이어진 것을 발견하고 그 중에서 가장 선명한 발자국을 골라서 아이스 피켈을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 발자국이 곰의 것으로는 너무 크며 눈이 녹아서 커진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선명했다고 말했다.
이 발자국은 길이가 33센티미터, 폭이 20센티미터로 모양도 기묘했다. 거의 원형에 가까운 큰 발가락 하나와 세 개의 작은 발가락이 있었는데 이런 발자국으로 비슷한 것은 오랑우탄이지만 크기가 너무나 엄청났다. 더구나 사진을 찍은 당사자인 시프턴이 바로 과학 조사단원이었기 때문에 그가 찍은 사진은 충격을 불러 일으켰고 예티의 열풍을 몰아왔다.
그는 ‘학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중앙아시아의 동물군에 포함되지 않은 몸집이 매우 큰 유인원이 비슷한 동물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정밀 검사한 대영박물관의 모리슨 스콧 박사는 이 발자국이 히말라야의 몽구르마른원숭이 같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이 견해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처음으로 힐러리경과 함께 정복한 세르파 텐징의 설명에 의한 것이다. 텐징은 몽구르마른원숭이는 키가 약 1.5미터이며 서서 걸어다니고 원추형의 머리와 붉은 갈색털을 지녔다고 했다.
물론 텐징의 발언에 대한 반박도 거셌다. 몽구르마른원숭이는 대부분의 유인원처럼 보통 네 발로 걸으며 다섯 개의 긴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사진에서는 네 개의 둥그스름한 발가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슨 스콧의 주장은 비록 배척당했지만 많은 목격자들이 몽구르마른원숭이를 목격한 것은 사실이다.
1934년 네델란드의 고생물학자 랄프 폰 케니히발트가 홍콩의 한약방에서 오래 된 이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성숙한 고릴라 어금니의 두 배나 되는 크기였다. 크기로만 비견하면 어금니의 주인공의 키는 3.6미터나 되는 것이다. 약제사도 그 어금니를 어디서 입수했는지 또 약방에 언제 들어 왔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폰 케니히발트는 이 거대한 어금니를 발견한 것에 고무되어 20여 년 동안 유사한 것을 수집했다. 1954년까지 모두 19개의 매우 큰 이빨을 수집했으며 중국에도 47개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의 거대한 유인원은 약 800만 년 전에 태어나 50만 년 전까지 살았던 기간토피테쿠스(gigantopithecus)와 유사한데 그는 시프턴의 발자국이 이 기간토피테쿠스와 관계가 있는 동물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했다. 시프턴이 찍은 발자국으로 추정할 때 동물의 신장이 2.7미터 체중이 270킬로그램이나 되는데 이것은 고대 인류의 선조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원인이라고 추정되었다.
혹자는 예티가 원인(猿人)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자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원인이 수십만 년 전에 평지였던 히말라야에서 지각의 변동으로 산으로 바뀔 때에도 쉽사리 환경에 적응한 채 현재까지 살았으리라는 주장이다. 학계에서 이런 주장들을 부정하였음은 물론이다.
에릭 시프턴의 사진으로부터 촉발된 설인에 대한 열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산악인들은 예티를 찾으러 산으로 몰렸고, 아마추어 동물애호가들과 명성에 굶주린 사람들은 물론 순수한 학자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에 예티 탐사대에 가담한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8,000명이나 되었다.
1954년 〈데일리 메일〉지는 예티를 포획할 목적으로 원정대를 조직했다.
그러나 3개월 동안 히말라야 산 속을 헤맸음에도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반면에 그들은 이 지방에 있는 사원에서 ‘예티의 머리’가 보관되어 있으며 성스러운 유물로 숭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보관된 몇 개의 머리를 조사해보니 모두 길고 원추형이며 털로 덮여 있었다. 그것을 전문가에게 보낸 결과 그때까지 보고된 동물의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예티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지만 검사한 머리 중에는 동물의 가죽을 꿰매어 붙인 가짜도 있었으므로 학자들을 납득시키기에는 미흡했다.
지질학자 겸 산악인이었던 오스카 다이렌퍼스의 아들이었던 영화 제작자 노먼 다이렌퍼스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예티의 존재를 확신하고 탐험에 참가하여 에릭 쉬프턴이 촬영했던 것과 비슷한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발표되었다. 같은 시기에 비행 단장이었던 영국의 데이비스 소령은 거대한 발자국을 필름에 담았는데 그는 곰의 발자국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사실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으로 등정할 수 있었던 것도 설인 때문이다. 그들은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기 위해 예산이 많이 필요하자 에베레스트 산의 설인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모금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인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는데 힐러리 경이 쿰중의 셰르파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 전설적인 머리 가죽을 조사했더니 염소의 일종인 사우던 세로라는 동물의 머리였다. 이것은 티베트에서 종교의식을 행할 때 승려가 머리에 쓰는 것으로 아마도 통역의 불확실성으로 ‘예티의 머리가죽’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결국 예티도 전설에 불과하다는 회의론자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후에도 설인을 추적하는 많은 유럽인들이 눈 위를 이동하는 동물을 목격하거나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발표는 계속되었다.
1970년 돈 휠란스가 안나푸르나에서 유인원 같은 동물을 목격했다. 1972년 12월에 에드워드 크로닌과 탐사대 의사인 하워드 에머리가 콩마 라 주변의 고원지대에서 경험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크로닌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해발 3,700미터의 산마루에 텐트를 쳤는데 동이 트기 직전 텐트 밖으로 나간 에머리가 흥분해서 나를 불렀다.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 어떤 동물이 두 개의 텐트 사이를 지나간 흔적들이 있다는 것이다. 셰르파인들은 즉시 이것이 예티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했고 나는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은 뒤 발자국 모형을 떴다.
길이 23센티미터, 너비 12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발자국이었지만 보폭은 놀랄 정도로 짧아 30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다. 시프턴이 발견한 발자국과 너무나 비슷했다. 우리는 곧바로 발자국을 추적해 나갔지만 눈이 너무 깊어져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 동물은 엄청나게 힘이 센 녀석이 분명했다. 이 눈 덮인 길을 뚫고 그 먼 길을 거침없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밤중이었다. 아마 인간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1978년 헌트 경도 예티로 알려진 발자국을 사진으로 찍었다. 1972년 중국군이 티벳에서 가축을 훔쳐 달아나는 동물을 뒤쫓아 사살했는데 키는 154센티미터에 팔이 무릎에 닿을 만큼 길었으며 얼굴은 원숭이를 닮았다. 이 사건은 계속 비밀로 유지되다가 1984년에 히말라야의 설인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설인에 대해서는 에릭 시프턴이 찍은 사진 단 한 건 만이 현재 유력한 증거로 인정되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이 사진의 발자국 주인공을 곰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이 사진을 근거로 내려진 결론은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 발자국은 분명히 인간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유인원이나 그와 유사한 알려진 동물의 것도 아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그 어떤 동물도 이러한 발자국을 나타낸 적이 없다. 예티 문제는 아직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옳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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