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속인 거짓말/설인 예티와 빅풋 사스콰치

설인 예티와 빅풋 사스콰치 (3)

Que sais 2020. 11. 1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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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바르겐 카라페티안 중위1941년 카프카스 지방의 비나크스크 근방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을 때 빨치산이 이상한 것을 포획했다고 했다. 빨치산이 포획된 동물이 있는 헛간에 들어가자 지독한 악취에 움찔했는데 그 동물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원숭이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동물의 처치를 빨치산에게 맡기고 자리를 떠났는데 그 동물이 탈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의 이야기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내무성의 공식 보고서에는 그 동물은 도망자로 간주되어 군법회의에서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1958년에는 레닌그라드대학알렉산드르 프로닌알마(설인)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파미르 고원으로 큰 벼랑의 꼭대기에서 인간과 거의 비슷한 불그스럼한 회색의 털로 덮인 동물을 5분 이상 보았다고 발표했다. 그의 자료는 후에 오데트 체르닌예티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레스터 대학마이러 새클리예티네안데르탈인이라고 가정하였는데 이것은 러시아에서의 여러 증거들을 기초로 한 오데트 체르닌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네안데르탈인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우선 모피로 몸에 걸치는 것을 배웠고 썩지 않도록 돌로 살 부분을 긁어냈다. 네안데르탈인은 컴컴한 동굴 속에 벽화를 그렸고 죽은 사람을 꽃과 함께 매장하였다. 이를 볼 때 사후의 세계도 믿었다고 생각하며 주거지 근처에서 신비스러운 돌들이 발견되는 것을 볼 때 태양을 숭배했다고도 설명된다.

현대인의 조상으로 인식하는 크로마뇽인이 갑자기 등장하여 네안데르탈인4만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모두 멸종한 것이 아니라 보다 진보한 크로마뇽인에 의해 정복되기 시작하자 지구상에서 비교적 살기 어려운 곳으로 쫓겨 갔다고 생각한다. 설인이 바로 네안데르탈인의 후예라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생활

근래의 연구에 의해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 부분은 <! 그래?(한국의 불가사의)> ‘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마이러 새클리는 몽골의 알타이 산맥 지방에서 1972년 러시아인 의사가 몽골인들이 알마로 부르는 원시인 한 가족을 만났다고 발표했다. 아브하즈 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먼저 정착하고 있던 원시인을 쫓아내고 정착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이런 종류의 원시인을 선기원인(pre-hominids)이라고 말한다.

소비에트 학술아카데미 소속 회원이던 포르시네프 교수와 마슈코프체프 교수19세기 중엽 오캄케어 지역에서 포획된 암컷의 알마에 대해 설명했다. 어떤 사냥꾼이 원숭이를 닮은 원인의 여자를 생포했는데 몸뚱이는 불그스럼한 검은 털로 덮여 있었다. 처음에는 매우 난폭했지만 점점 길들여져서 곡식을 절구로 찧는 정도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나로 불렸다. 흉부가 발달하고 팔과 다리는 두껍게 근육이 오르고 손가락도 굵어졌다. 고온을 싫어하고 포도를 잘 먹었고 도 잘 마셨으며 말은 하지 못했지만 몇 마디 소리는 낼 줄 알았고 아주 뛰어난 청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것은 몇 명의 남자와 관계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거의 모두 자나차가운 냇물에 몸을 씻긴 것이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 그 후에 자나가 해산한 몇 명은 태어나자마자 마을 사람들에게 양육되었고 자나는 1890년경에 사망했으며 트키나 마을에 묻혔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 중에서 아들 2명과 딸 2이 살았는데 형제자매 중 막내였던 크비트1954까지 살았다.

 

설인(예티)

포르시네프가 그녀의 손자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턱의 힘이 매우 강하여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를 입으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고 하며 전반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지녔다고 했다. 물론 두 사람은 소비에트의 저명한 과학자이므로 학문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다고 두둔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1966코프만 박사모스크바의 지리학회에서 코카서스 지방에서 알마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알마의 얼굴 특징토피르스키 소장의 부하들이 사살한 동물과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이후 코프만 박사의 조사대는 키 큰 잡목림에서 두 곳의 알마 주거지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버려진 옥수수에는 알마 소녀가 먹었던 이 자국이 있었는데 사람의 치아와 비교할 때 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원숭이-사람>

중국미국,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영토를 갖고 있는데다 히말라야가 포함되므로 설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1954중국의 신화사통신은 중국인민군 영화촬영소의 파이 신 감독파미르 공원에서 이상한 두발 동물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는 히말라야 촬영에서 돌와오던 중 동료와 함께 6,450미터의 해발에서 두 명이 사면위로 걸어가는 형체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직립이지만 눈에 익지 않은 형체로 등을 구부리고 걸었다. 키는 다소 작은데 바위 사이를 쉽게 다녔다. 중국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대고 공포를 쏘았으나 두 형체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곧바로 그들 시야에서 살아졌다.

19575월 중국의 제이장성()에서 원숭이-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그때 남자들은 모두 산에 일하러 갔는데 주 푸디는 자기의 어린 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듣고 쫓아갔는데 그녀의 딸이 키가 145센티미터쯤 되는 원숭이 같은 짐승에게 붙잡혀 버둥거렸다. 그녀가 나무 막대기로 짐승에게 정신없이 휘둘렀는데 짐승이 논으로 달아나려다 진흙 때문에 방해를 받아 그녀가 계속 공격했다. 이때 마을사람이 도착하여 짐승을 때려서 눕혔고 신음소리를 냈는데 여자들이 짐승을 죽이고 토막을 내었다.

중국의 <손양일보>가 그 사건을 취재하여 보도했는데 짐승은 숫컷으로 체중은 약 44킬로그램이며 긴 암갈색 털을 갖고 있었다. 가슴은 크고 코는 움푹 들어갔으며 이가 희었다. , , 눈썹 등은 사람과 같았고 배꼽, 생식기, 종아리 등도 사람 남자의 것과 비슷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서의 목격담은 계속되었다.

19755월 저녁 중국공산당 6후베이성 남부를 걸어가는데 지프 자동차 운전사가 길 앞에 큰 털이 난 짐승을 발견하고 경적을 울렸더니 짐승은 가파른 비탈을 오르려했으나 미끌어졌다. 그것은 네 발로 쭈그려 앉아 사나운 모습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운전사가 경적을 울리며 차를 세워 6명이 그것을 둘러쌌다. 한 사람이 동물에게 돌을 던졌는데 그제서 동물은 뒷발로 서서 작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 짐승은 낙타와 같은 곱고 부드러운 털이 덮여 있으며 얼굴은 천연색이라고 모두들 동조했다. 조사원은 그 짐승이 사라진 훨씬 뒤에 도착했는데 북경박물관의 조국성 박사는 그 동물이 히말라야의 설인이나 아메리카의 커다란 원인과 먼 동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1976후베이, 산시, 시추안 경계지역에서 털이 난 짐승이 자주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많아지자 중국 정부는 북경에 있는 중국과학원의 조사단을 파견했다. 생물학자, 동물학자, 사진사 등을 포함하여 무려 110명으로 된 대규모 조사단으로 북경과학관의 조국성 박사가 단장이었다.

이들은 8개월간 끈질기게 조사했으며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은 목격했지만 잡지는 못했다. 그들이 보고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길이 3040센티미터의 발자국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발자국 옆에서 발견된 대변을 분석한 결과 사람의 것은 물론 검곰의 것도 아니었다. 털을 분석한 결과 고등 영장류의 어떤 종류로 추정되었다. 목격자들은 동물의 키는 2미터 정도며 머리카락들이 거의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들은 직립으로 걸었는데 발자국에 궁형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색한 걸음이 틀림없다.

조국성 박사5개의 발가락 중 3개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으며 그런 이유로 발로 물건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꼬리는 보이지 않았으나 일부 목격자들은 젖가슴이 두드러졌다고 보고했다. 그 짐승은 잡식으로 호두, , 연한 나뭇잎과 뿌리 그리고 곤충을 즐겨 먹었다. 그들의 소리는 녹음하지 못했다.‘

 

1980년대 말 중국은 보다 심층적으로 설인에 대해 조사했다.

수십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후속조처로 과학자들을 투입하여 살아있는 원인의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들은 설인이 나타난 곳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중국 조사단리쉬군()의 생물교사 조 쇼우송으로부터 잘 보관된 원숭이 비슷한 동물의 손과 발을 받았다. 그것은 1957주 푸디가 발견한 것이다.

근육이 조금 우그러진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좋은데 손바닥 길이는 14센티미터였다. 그 짐승은 영장류거나 침팬지와 유사한 동물로 인신되었다.

조사단은 제장군의 숲과 산을 답사하면서 약 1,700미터의 곳에서 작은 방책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나무들과 바위 사이에 끼워진 구조물은 나뭇가지에 풀과 잎으로 덮은 것이다. 나뭇가지의 크기로 보아 그것을 만든 것은 힘이 엄청나야하며 잠자리를 만든 것으로 보아 원숭이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예티

보다 높은 곳에서 다른 11개의 잠자리도 발견했는데 어떤 것은 나무 속, 어떤 것은 땅에 만들어 놓았다. 근처의 발자국과 대변으로 보아 잠자리는 2을 넘지 않았다. 구릉 정상 부근에서도 잠자리가 발견되었는데 약 33센티미터에 달하는 왼발의 자국들도 발견되었는데 사람처럼 발가락들이 분리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처음이 아니었고 한 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매년 9월 또는 10월에 원숭이들로부터 옥수수를 보호하기 위해 구룡산에 올라갔다. 나는 10여년 전원숭이-사람을 보았다. 그것의 키는 대략 집문 높이만 했으며 적갈색의 털로 뒤덮였고 긴 머리가 얼굴을 덮어 어깨까지 닿았으며 두 발로 걸었다. 한 번 나는 원숭이-사람나무의 잠자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를 보자 손뼉을 쳤다. 오랫동안 그것은 누워서 옥수수를 먹었는데 땅에 옥수수 속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인근 마을의 후앙 잘량19788원숭이-사람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 동물은 후앙으로부터 약 60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나무 조각을 들고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는 그 동물이 옥수수 뿐만 아니라 감과 들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의 설인 또는 예티에 대한 자료는 수없이 많은데 1998중국의 자연보존당국티베트 산악지대20년 간 조사한 결과 예티로 알려진 설인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결론은 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티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과학적인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모두 다른 야생동물들을 보고 착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