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만 해도 미국은 유럽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땅덩어리는 크지만 신대륙의 촌구석에서 문화라는 것조차 없는 무식쟁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로 치부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미국인들이 재산을 모으면 유럽의 귀족 가문과 인맥을 맺어 미국에서는 갖지 못하는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유럽의 요청으로 미국의 참전하고 연합국이 승리하게 되자 미국이 서방의 맹주로 떠올랐다. 이어서 벌어지는 공산국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자 고대 로마를 넘어서는 팍스 아메리카노 즉 무소불위의 국가로 자리 잡는다.
이런 위상 변화는 미국이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높이 비상할 수 있는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역으로 설명한다면 20세기 중반 미국이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던 유럽문화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인식한다. 잘 알려진 팝 아트 혹은 대중문화라는 이름이다.
그 가운데 50〜60년대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한 여자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녀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자살했다.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고 인식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현재도 어느 누구보다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다.
일반적으로 사망한 헐리우드의 배우를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할리우드에 항상 신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릴린 몬로는 자살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대중의 시선이 떠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전 세계적 섹스 심벌(Sex Symbol) 아이콘으로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 복제가 가시화된다는 설이 있자 가장 복제하고 싶은 여자로 뽑힐 정도로 인기를 받고 있는데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한 장의 파노라마이다.
참고적으로 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10명을 보면 첫째 캐서린 헵번, 둘째 베티 데이비스, 셋째 오드리 헵번, 넷째 잉글리드 버그만, 다섯째 그레타 가르보다. 이어서 마릴린 먼로가 여섯 번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7번째, 그리고 여덟 번 째로 주디 갈란드, 아홉 번째가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리고 10번째가 조앤 크로퍼드다.
<백치미의 대명사>
영국 패션 웹사이트 <미스 버터플라이>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영화 속의 최고의 드레스로 마릴린 먼로가 「7년만의 외출」에서 입은 옷을 꼽았다. 하이 코미디의 명장인 빌리 와일더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마릴린 먼로의 연기 생활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1950년대 미국 코미디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명작이다.
마릴린 먼로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7년만의 외출」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편집인인 리처드 셔먼은 부인과 아들을 피서지에 보낸 후, 오랜만에 혼자 생활을 하며 해방감을 맛본다. 그때 불현듯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이 ‘만약 내가 바람을 피워본다면’이라는 생각이다. 마침 같은 아파트 2층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금발 미녀(마릴린 먼로)가 이사를 온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자기 아파트로 초대하는데, 리처드에겐 선천적으로 과대 망상벽이 있다. 아가씨를 초대해놓고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동안, 그는 혼자 간호원과 연애를 한다거나 자기 여비서와 맹렬한 사랑에 빠지는 등의 황당무계한 망상에 빠져든다.
한편 금발 미녀와의 이상한 상상에 탐닉해 있을 즈음, 피서지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아내는 그곳에서 리처드의 친구인 탐을 만났다고 말한다. 리처드는 이제 아내의 거동을 불안하게 느끼고 별의별 망상을 다한다. 다음날 리처드는 자기망상의 원인을 한 의사의 연구 논문에서 찾아낸다. 그 의사는 ‘모든 남자는 결혼 7년째에 이르면 바람을 피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그의 망상벽은 한층 심해진다. 예컨대, 금발 미녀가 갑자기 TV방송에 나와 자기와 리처드와의 수상한 관계를 까발리는 것이다. 초조해진 그는 아가씨를 유혹해 함께 영화를 보러간다. 그날 밤 금발 미녀는 날씨가 너무 덥다고 냉방장치가 있는 리처드의 방으로 와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이번엔 아내가 자신에게 피스톨을 쏘는 망상에 걸린다. 다음날 상냥하고 마음씨 친절한 금발미녀의 보살핌으로 겨우 기력을 회복한 리처드는 모든 망상을 청산하고 유쾌히 아내와 아들이 있는 피서지에 합세하러 떠난다.’
여름에 아내와 아이들을 피서지에 먼저 보내고 자기의 휴가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한 가장이 위층에 사는 섹시한 아가씨와 벌이는 엉뚱한 해프닝을 그린 「7년만의 외출」은 지하철 바람에 의해 먼로의 스커트가 들어 올려지는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더워서 팬티를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다는 등의 기발한 대사도 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겨 준 것은 물론 제목처럼 남편들은 결혼 7년째에 바람나기가 가장 쉽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는 매혹적인 비단옷, 섹시함을 강조하는 검은색 긴 장갑, 반쯤 감은 눈, 고혹적인 미소를 트레이드 마크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금발에 푸른 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마릴린 먼로는 백치와 요부의 이중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20세기의 대표적인 섹스 심벌로 알려진다.
그 이전과 이후 수많은 섹시 스타가 명멸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위치를 넘보지 못했는데 바로 이 세기의 여배우가 1962년 8월 4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여 그야말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마릴린 먼로가 이처럼 큰 반향을 받는 것은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섹스 심벌이기도 하지만 무수한 스캔들과 뒷이야기들을 남겼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녀의 길지 않은 삶을 중요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제1기 : 슬픈 가족사>
마릴린 먼로는 1926년 6월, 노마 진 모튼슨(Norma Jean Mortenso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나중에 어머니의 성을 따 노마 진 베이커(Norma Jean Baker)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어머니 글레이디(Glady Pearl Baker)는 할리우드의 크고 작은 스튜디오에서 필름 편집 일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출생신고서에 기록된 아버지의 이름은 어머니가 허위로 기재한 이름이다. 한마디로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마릴린 먼로가 사생아로 태어난 것은 글레디스의 남자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화학약품을 다루는 일을 하던 글레디스는 노마 진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유일한 혈족이었던 외할아버지 역시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태였고, 증조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노마 진은 양부모의 손에 길러지게 되고, 그녀의 과거사를 알게 된 할리우드 기획사들도 그녀와 함께 그녀의 가족사를 숨기려 했다. 희대의 할리우드 스타가 정신병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제2기 : 결혼과 누드 모델>
마릴린 먼로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42년 16세의 나이였으며, 남편은 항공사 정비공으로 일하던 21세의 청년 지미 도허티였다. 양부모가 사정에 의해 더 이상 노마진을 양육하기 힘들어지자, 16세가 된 그녀를 성실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짐 도허티와 맺어주었다.
도허티는 고등학교를 다닐 적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남학생이므로 노마 진도 반대하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큰 탈이 없었으나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어 도허티가 군에 징집되면서 노마 진은 자연스럽게 혼자가 된다.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대신해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먼로는 군수 공장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게 된다. 1944년 어느 날 공장에서 군수품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내세운 선전 사진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노마 진은 바로 이 오디션에 지원해 모델로 데뷔한다.
일당 5달러짜리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사진이 누드와 다름없으므로 상당히 외설적이으로 군인들과 군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때 노마 진이 사진작가인 앙드레 드 디앙과 그의 조수인 윌리엄 번사이드와 번갈아 가며 관계를 맺는 와중에 모델 에이전시가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녀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마침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났고 선천전인 연예 자질도 있으므로 1945년 말에 이미 무려 33개의 주요 잡지의 핀 업 걸로 등장했을 정도였다. 1946년, 그녀는 공장을 그만 두었고 군에서 전역한 첫 남편 지미 도허티와 이혼에 합의하여 독신이 되자 노마 진은 본격적인 연예계 즉 할리우드 진출을 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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