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드라큘라

뱀파이어(드라큘라) 원조, 드라큘라 백작(1)

Que sais 2020. 11. 24. 09:50

youtu.be/J_O_ZmdUF-M

SF영화에서 두 장르가 영원한 흥행 보증수표라고 인정하는데 그것은 드라큘라(뱀파이어)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섹슈얼리티와 은밀한 성적 은유가 난무하는 드라큘라는 동성애, 근친상간, 사도마조히즘 등을 주제로 하는 등 그 범위를 넓혀왔는데 1922년 독일 무르나우 감독노스페라투를 시작으로 무려 180차례나 영화화되었는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흥행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다.

 

노스페라투

학자들은 드라큘라가 흥행에 성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뱀파이어라는 모순의 존재 즉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성격이 섹슈얼리티와 접목되어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을 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흡혈귀의 솟아오른 송곳니가 미녀의 목덜미를 깨물 때의 에로티시즘, 드라큐라가 세상과 등지는 이유가 자살한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로맨티시즘, 그리고 숱한 종교적 상징과 원초적인 공포를 도입하여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 요소가 가득하다.

물론 드라큐라의 특성도 시대가 바뀌었음을 반영하듯 남자들의 아성에 여성 드라큐라가 등장하여 남자사냥에 열 올리기도 한다.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담이나 우주 영웅담으로 번역되는데 1940년대 초 미국의 윌슨 터커가 당시 범람하던 우주영웅담을 일컫는 말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획기적인 장르로 변모시킨 것이 알프레드 앨튼 반 보오트우주선 비이글호.

비이글호는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이 타고 다닌 탐험선을 의미하므로 우주탐험선의 모험담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우주선 비이글호가 기존의 작품과 다른 것은 여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으로 SF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온갖 신기한 과학기술적 상상력으로 메꾸어져 있다.

이후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스타워즈, 스타트랙, 에일리언등 영화는 물론 소설 은하영웅전설 , 피라미드등 광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대호평을 받았다. 이는 우주를 무대로 사랑전쟁배신 등이 주제를 이루므로 관객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틸라의 등장>

드라큘라가 각 부분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은 드라큘라 근저에 상당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 등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드라큘라의 원형은 동유럽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엘리자베스 바토리 여백작을 거론하지만 학자들은 그들보다 약 1000년 전에 유럽을 공포로 몰아갔던 훈제국의 왕 아틸라(Attila, 395453)로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기마민족인 훈족375, 서유럽을 공격하여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면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켰고 찬란한 로마 문명이 476년 게르만족인 오도아케르에게 멸망케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훈족의 침입으로 자신이 살고 있던 근거지에서 쫓겨난 게르만족들이 각지로 분파되면서 새로운 정착지를 기준으로 새로운 국경들이 만들어졌으며 대부분 현대까지 이어진다. 서유럽의 국경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상 훈족에 의해 유럽의 새로운 질서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부분은 아틸라장에서 별도로 설명한다.

 

아틸라

훈족의 아틸라드라큘라와 연계된다는 것은 간단하게 설명된다초창기에 등장한 드라큘라를 퇴치하려면 십자가와 마늘을 뿌리면 된다악마에 대항하는 십자가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마늘은 특이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마늘을 유럽에 도입한 것은 바로 훈족이다.

유럽 중에서도 독일 등은 훈족에 철저하게 패퇴했으므로 훈족의 마늘 냄새를 매우 싫어했다. 현재도 독일 등 북유럽에서는 마늘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가 유럽에서 마늘을 퇴치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나왔을 정도다. 유럽 중에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현재도 날 마늘을 즐겨 먹기 때문이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ulmoe.quesais 

 

끄새 - Google Play 앱

과학으로 본 세계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오디오북 무료)

play.google.com

<드라큘라의 배경>

드라큘라의 탄생은 더욱 포괄적이라 볼 수 있는 뱀파이어는 중세 동유럽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은 전설 혹은 사람들 사이의 구전으로 정해지는 상상의 존재이므로 뱀파이어는 지역마다 다소 다르다.

학자들은 뱀파이어 등장14세기 세계를 뒤흔들었던 흑사병((黑死病) 페스트로부터 인식한다. 페스트는 14세기 중세 유럽 인구의 7,5002억 명 즉 1/4에서 1/3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사상 최악의 펜데믹이다. 펜데믹이란 특정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으로이를 충족시키려면 감염병이 특정 권역 창궐을 넘어 2개 대륙 이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펜데믹으로 선언된 이유다.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피부의 혈소 침전에 의해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증상이 더욱 진행되면 검게 변색된 부위에 괴저가 발생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흑사병은 세균(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원인균으로 이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서 병을 옮기게 된다.

과거에 흑사병은 전적으로 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흑사병이 쥐와 사람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이기는 하나,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쥐가 아닌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그동안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 병원균에 관한 많은 이설이 있었으나 2010-2011년 남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DNA 분석 결과 페스트균이 병원균으로 밝혀졌다.

흑사병의 전염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1343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흑사병이 중국의 기록에 의해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1330년대 초 중국에서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으며 1334허베이에서 흑사병이 번졌고, 유럽에서도 흑사병의 위세가 한창이던 13481354년 동안 중국 각지에서 흑사병이 확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크림 반도에 도착한 후 특히 화물선에 들끓던 검은쥐들에 기생하던 동양쥐벼룩을 기주로 하여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한편 인도에서 기원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역사학자 마이클 W 돌스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비잔틴 제국의 흑사병 유행에 주목하면서 흑사병의 전염 경로를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고 주장했다.

14세기 페스트 유행이 유럽사에서 종교사, 사회사, 경제사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나병(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인식되어 집단폭력은 물론 집단학살당하기 일수였다.

한편, 흑사병의 창궐은 삶에 대한 태도도 바꾸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말을 낳아 이는 조반니 보카치오데카메론등에 반영되었다. 여하튼 흑사병으로 인해 줄어든 세계 인구는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영국 웨이머스의 흑사병 기념 동판(인구의 30 ~ 50%가 희생되었다고 적힘)

유럽에서 흑사병은 현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베니스에 흑사병이 퍼지더니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후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1348년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잉글랜드 지역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으며 1350년에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까지 확산되었다. 노르웨이에서 처음으로 흑사병이 발생한 것은 1349년인데 이후 러시아에서도 확산되었다. 결국 폴란드를 포함한 동구권을 포함하여 유럽 전역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였으나 벨기에와 같은 몇몇 지역은 화를 면했다고 알려진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아 사체 처리가 어려울 정도가 되자 시체를 제대로 매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가족이라도 혹시 전염병에 감염될까봐 시체 주변으로 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데 시체가 부패하면 팽창하는데 피가 억류하여 입 밖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시체가 살아나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람들을 죽인다고 생각했다. 전염병 역시 이러한 뱀파이어들이 갖고 온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이 뱀파이어로 살아오지 못하도록 시체 가슴에 무거운 돌을 올리거나 입에 돌을 박아두기도 했다. 실제로 볼리비아에서 심장 부위에 말뚝이 박힌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에 흑사병은 치료약이 없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연기 나는 제품, 향수, 추출물을 얼굴에 뿌리거나 나중에는 새의 부리같이 생긴 흑사병 가면을 쓰기도 했다. 이런 방법이 유행했던 것은 종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후에 알려지지만 흑사병은 환자의 침을 통해서 많이 전염되는데 이 방법이 확실하게 막아주었다고 추정한다. 현재 코로나19비말로 옮겨진다 하여 마스크를 반드시 사용하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