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드라큘라

뱀파이어(드라큘라) 원조, 드라큘라 백작(3)

Que sais 2020. 11. 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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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한 공격>

술탄에게도 최후의 카드는 있었다.

술탄의 진영에는 드라큘라의 친동생 라두가 있었기 때문이다. 술탄은 라두로 하여금 드라큘라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부호들과 정적들을 모으게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드라큘라는 작전상 트란실바니아로 철수한다. 그때 헝가리의 마티아스 황제가 드라큘라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고 그의 지위는 잠깐 동안 공고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색손인들이 드라큘라의 편지를 위조하여 술탄과 드라큘라가 내통하고 있다고 마티아스 황제에게 고하는 바람에 드라큘라는 곧바로 체포되어 비스그라드 성유폐된다. 그는 그곳에서 12년 간 억류된다.

드라큘라의 전설도 이쯤에서 끝나는 것 같았으나 다시 한 번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드라큘라가 유폐된 성에는 마티아스 황제의 딸 이오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가 드라큘라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드라큘라는 공주에게 청혼하였고 마티아스 황제는 극렬히 반대했지만, 공주가 시름시름 앓아눕자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마티아스 황제와 터키군의 전쟁이 시작되자 드라큘라는 전쟁에 참여하여 크게 승리한 후 터키인으로 된 말뚝의 숲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말뚝의 끝을 약간 둥글게 하여 희생자들이 더욱더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에게도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적과의 전투에서는 번번이 승승장구하였지만 그의 위치는 매우 불안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마티아스 황제의 딸과 결혼하기 위하여 동방정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국민들로부터도 경원을 받고 있었다. 더구나 부호들과 색손인들은 드라큘라가 죽을 때까지 증오에 찬 항전을 결의하고 있었으며, 단의 측근들도 왕관을 빼앗기 위해 재기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의 친동생 라두도 터키의 지원 하에 침공을 노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가장 충실한 드라큘라는 이런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1476, 부카레스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터키군과 일전을 벌였다. 적의 중앙으로 쳐들어가 용감하게 싸우던 드라큘라는 마침내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전투가 끝나자 터키군들은 드라큘라의 시체를 발견하고 머리를 잘라 콘스탄티노플로 보냈다. 그곳에서 드라큘라의 머리는 말뚝 위에 꽂혔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드라큘라가 죽은 후 그의 장남 미네아가 왈라키아 왕위를 계승했다. 1508년 미네아도 아버지와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추후에 악당 미네아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정적의 코와 입술을 잘라낸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그는 1510시비우의 한 교회에서 암살되었다.

드라큘라의 생애처럼 파란 만장한 생활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드라큘라는 역사상 특이한 삶을 살았다. 그의 부친은 암살당했고 형은 생매장되었으며 신하들은 그를 배반하기 일쑤였다.

그는 왕위에 있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을 감옥과 인질로 보냈지만 오뚝이와 같이 매번 일어섰다는 점이 남들과 다르다. 그가 자행한 악행이 누구보다도 악독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기독교인들로 보면 영웅 중에 영웅이었다. ‘피의 드라큘라라는 이름도 터키와 싸울 때 얻은 것이지 기독교인들이 붙인 것은 아니다.

현재도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선과 악의 혼합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루마니아 드라큘라 우표

1989년 정권이 전복되어 처형된 루마니아의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블라드 드라큘라를 매우 존경했다. 1978년 블라드 드라큘라 사망 500주년 때는 영화, 그림, 소설, 역사 설명회, 심지어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하여 성대히 기념했다. 물론 루마니아 국민 모두 이 같은 상황 전개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1993년 블라드 드라큘라의 자손을 자처하는 사람이 코플라 감독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자기 선조를 부당하게 왜곡시켰다는 이유로 컬럼비아 영화사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다행하게도 고소는 취하되었지만 500년 전에 사망한 드라큘라의 평판을 놓고 후손이 재판까지 벌인 것은 드라큘라가 기독교의 영웅이요 애국자이지, 흡혈귀(Vampire)라는 이미지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정부가 드라큘라 백작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브란 성드라큘라 성으로 포장하여 관광명소로 꾸미자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룬다.

드라큘라의 후손으로 루마니아 마지막 왕의 조카인 도미니크 폰 합스부르크가 루마니아 정부를 상대로 드라큘라 성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추방당한 옛 루마니아 왕실 후손들은 드라큘라 백작의 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왕가의 성을 반환하거나 아니면 보상금 25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브란 성1947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 왕족들이 강제로 추방되면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고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전설을 토대로 대대적인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드라큘라 백작의 후손은 브란 성은 흡혈귀와 아무 상관없다며 반발, 성의 반환 및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브란 성1212년 튜턴인들의 지배시절 기사들이 지었으며,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소도시인 브라쇼브 남서쪽 32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브란 성은 그 후 15세기에 블라드 드라큘라의 소유가 되었다.

그런데 브람 스토커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성은 브란 성과는 다르다.

 

드라큘라 브란성

원작에서 드라큘라 성은 트랜실바니아 북동쪽인 몰다비아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위치에는 성이 없다.

그보다 약간 남쪽에 성이 있기는 하지만 성이 많이 파괴되었고 계단이 많아 관광 상품화하기에는 적합지 않자 루마니아 정부가 소설 속의 드라큘라 성과 외관이 유사한 브란 성을 드라큘라에 관한 박물관처럼 꾸며 관광명소로 만든 것이다.

여하튼 드라큘라성으로 불린 브란 성은 관광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 도미니크 폰 합스부르크의 소송은 결실을 맺어 곧 성을 되찾았다. 물론 드라큘라 성은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 현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베스트셀러의 원전>

선악이 분명한 드라큘라가 남다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시대적 요건도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술을 발명하여 인쇄술에 불을 당겼을 때 마침 드라큘라에 대해 쓴 소책자를 인쇄했는데 이 책이 당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이 많이 팔렸기 때문이다. 출판업자가 삽시간에 많은 돈을 벌자 수많은 인쇄업자들이 드라큘라에 대한 책을 찍었다. 1499년에 인쇄된 독일의 소책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난폭하고 피에 굶주린 인간 드라큘라 보이보드 공의 잔혹하고도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을 나무기둥에 꽂거나 불에 태웠고 가마솥에 넣고 삶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양배추를 썰 듯 토막 쳤다. 그의 끔찍한 악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큘라가 소설로 인쇄 사상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드라큘라의 신화는 인쇄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전승되는 드라큘라 백작과 약 100년 후에 탄생한 드라큘라 여백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countess Bathory, 15601614)를 모델로 1897년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드라큘라가 발간되어 그야말로 드라큘라는 다른 차원의 길을 밟는다.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

그녀는 헝가리 산악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의 한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체이테 성의 성주였는데 주변 마을에 살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고문한 죄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희생자의 피를 마시기는 하였지만 뱀파이어와 같이 초자연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무덤에서 일어나는 산송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는 희생자의 피를 목욕통에 가득 채우고 목욕을 즐겼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된 전설은 여백작이 죽어서도 피의 쾌락을 찾아 계속 나타났고 결국 진정한 의미의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토리 여백작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한다.

 

 

브람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주인공인 조나단은 드라큘라 백작을 처음 만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조나단은 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나단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그렇다면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은 무심결에 뒷걸음을 치며 주위를 살폈다. 문 앞에는 키가 매우 큰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구식의 등잔을 들고 있었는데 길고 하얀 수염만 남겨 놓고는 말끔하게 면도를 한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된 옷을 걸치고 있어서 분위기가 몹시 음산했다.

 

'어서 오시오. 조나단 하커씨.'

노인은 정중한 목소리로 조나단에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어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드라큘라 백작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이렇게 먼 곳까지 방문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드라큘라는 오른손을 내밀었고 조나단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런데 조나단은 움찔 놀라야 했다. 백작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왔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드라큘라가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아직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드라큘라 백작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좀 더 살펴본다.

 

조나단은 그때서야 드라큘라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드라큘라는 보통 사람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드라큘라가 나이를 몇 살이나 먹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50세부터 100세까지도 짐작이 될 정도로 분간이 어려웠다. 콧날은 날카롭고 콧마루는 오똑했으며 코끝이 튀어 나왔고 머리숱이 많고 곱슬곱슬했다. 눈썹도 매우 숱이 많아 진하고 길었으며 콧수염이 많았고 긴 수염은 바람에 날릴 정도였다.

입은 일자로 길쭉했는데 특이한 것은 하얀 송곳니 두 개가 입술 밖으로 약간 삐져 나와 있었다. 대개 노인들의 입술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어서 핏기가 없는 것에 반해 드라큘라의 입술은 유난히 붉고 싱싱해서 입술만 보면 아주 젊은 사람 같이 보일 지경이었다. 귓바퀴는 끝이 매우 뾰족했으며 턱은 단단해 보였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뺨은 핏기가 없이 창백했지만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이상한 것은 손바닥 한가운데 털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손톱은 길었고 잘 다듬어져 있었는데 끝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뾰족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대성공을 거둔 또 다른 이유는 드라큘라 백작이 금수저인데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놀랄 정도로 뱀파이어의 성격을 그대로 드라큘라에게 접목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드라큘라는 직위에 걸맞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사랑을 느끼고 집안일까지 처리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죽은 자와 대화가 가능하고 야행성 동물을 조종하는 것은 물론 상황에 따라 박쥐 등으로 변신도 가능하다. 특히 자신의 피를 사람에게 마시게 하면 사람의 조종도 가능한데 힘도 상당하여 드라큘라의 힘은 보통 사람보다 20배도 강하다고 한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백작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