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속인 거짓말/단두대

세계에서 가장 자비로운 기계(7), 단두대(길로틴)

Que sais 2020. 12. 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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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틴 박사 가족의 항의

의사 길로틴단두대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죽는 날까지도 그의 이름이 단두대의 별명으로 불리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다. 그의 명예를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마담 뒤크레 부인죠세핀 황후 궁정의 비밀 비망록이란 저서에서 길로틴 박사가 자신이 제안한 단두대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음을 후회했다고 밝혔다.

 

박식한 의사였던 길로틴 박사가 이 장치의 사용을 제안한 이유는 이 장치가 엄격하고 정당한 법 집행에 의해 사형 당하는 죄인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장치는 한꺼번에 많은 숫자의 인원을 처형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이었고 의회의 의원들 생각도 그랬다.

나는 길로틴 박사를 뒤늦게 알았는데 그는 단두대를 창안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의도는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했던 것인데 본의 아니게 오히려 많은 인간들의 파멸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는 단두대를 발명한 사람도 아니고 단지 사회 계급과 범죄의 성격에 관계없이 사형이 모두에게 동등해야한다고 제안한 의사이자 의원이었다.

1814 길로틴 박사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은 프랑스 법정에 단두대를 자기네 성씨(姓氏)로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이 재판은 수년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나 결국 원고 측이 패소했다. 길로틴 박사가 단두대를 직접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제안에 의해 단두대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새커리의 '필립의 모험'

그렇다면 길로틴 박사길로틴에 의해 머리가 잘렸다가짜 뉴스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그것은 정말로 엉뚱한 곳에서 유래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는 유명한 허영의 시장의 작가인데 그가 필립의 모험 The adventures of Philipse이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썼다.

 

그 의사 길로틴이 깔끔한 자기 발명품으로 처형되지 않았던가?”

 

의사 길로틴76세의 나이에 어깨 등창 감염으로 세인트오노레이에 있는 자기 집 침대에서 죽었다. 새커리필립의 모험을 썼던 1861길로틴이 사망한 지 47이나 지나서이다.

그러나 이 단두대는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다음과 같은 일화까지 전해진다.

1793 말 바이마르에 살던 45세의 괴테는 어린 아들 아우구스트 4의 네 번째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로 길로틴 장난감을 선물하기로 작정했다. 길로틴 장난감은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괴테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모친에게 그런 장난감을 구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괴테의 모친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아들아. 나는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살인 기구를 선물로 구입한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내가 왕이라면 그걸 만든 사람들의 목에 쇠로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무슨 짓이냐. 아이에게 그런 고약한 물건을 갖고 놀게 하다니‧‧‧ 살인과 유혈의 도구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는 그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단두대 처형된 머리의 감각>

단두대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부터, 길로틴 박사의 주장처럼 단두대가 죄수의 고통을 최소화시켜주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과거의 사형 방법과 비교하면 고통이 덜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인도주의적' 면을 볼 때 정말로 고통이 없이 처형되었느냐이다.

이런 질문이 나온 것은 단두대의 신속함죄수의 고통을 더 지속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단두대의 처형방법은 두개골에 충격을 별로 주지 않으므로 교수형 등의 사형 방법과는 달리 죄수의 의식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이다.

보리외(Dr. Beaurieux) 박사1905628일 사형수 앙리 랑기이(Henri Languille)길로틴 사형 집행 광경을 지켜본 후 당시의 상황을 적었다.

 

이것이 내가 참수 이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56초 동안 랑기이눈과 입술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몇 초간 기다렸는데 경련이 멈췄다. 내가 랑기이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자 눈꺼풀이 들리면서 눈이 나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눈꺼풀은 분명히 차분하게, 정상적으로, 마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이 움직였다.

다음으로 랑기이의 눈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으며 동공은 집중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죽어가는 사람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흐릿하고 희미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부정할 수 없이 살아있는 눈을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몇 초 뒤, 눈꺼풀은 다시 닫혔다.

내가 다시 한 번 그를 부르자 눈꺼풀은 다시 천천히 열렸다. 그는 분명히 살아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첫 번째보다도 더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리고 눈꺼풀은 다시 닫혔지만,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3번째로 불렀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멍한, 죽은 사람의 눈이 되었다. 이 모든 일은 2530초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에도 단두대처형된 사람에 대한 실험은 계속되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실험 결과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의학계에서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잘린 후 약 10초 내에 뇌사하지만 일단 잘린 순간에는 피가 뇌에 남아 있고 천천히 흘러나오기 때문에, 수초가량은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잔류 혈액으로, 산소가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뇌에 공급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아직 확인된 사항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에서 절단된 머리에 잠시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현대 의학자들간에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다만 혈류가 아예 막힌 뇌1분 후, 늦어도 2분 후에 죽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잘린 머리자신의 참상을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는 설명이다. 처형된 머리를 향해 이름을 부를 때 대답했다든지, 바늘로 찌르자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는 등의 진술에도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행동은 의식이 수반된 행위가 아닌, 근육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였거나 자동 반사 행동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대뇌 혈액이 대량으로 유출될 경우 수 초 내로 인간의 두뇌는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한마디로 자발적인 반응인지 신경 반사 작용인지 확실하게 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길로틴은 프랑스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단두대는 당대 사회적 변화와 함께 급증하던 범죄와 엄벌 분위기가 결합해 사형을 최대한 신속하게, 대량으로 집행할 목적으로 프랑스 및 해외에 널리 보급된다.

독일프랑스 이후단두대 사용을 가장 많이 한 국가가 되었다. 독일에서 원래 정치범에게는 주로 교수형이 집행되었고, 단두대형일반 흉악범에게 사용되었으나, 아돌프 히틀러 치하3제국에서는 즉결재판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정치범의 처형사용되었다. 베를린의 프레첸제이 감옥 안에서3,000명이 길로틴으로 처형되었으며 이 중에는 여자250이나 포함되었다. 브란덴부르크에서도 적어도 2,500명의 처형이 있었는데 독일의 큰 형무소에는 모두 길로틴설치되어 있었다.

 

빠삐용 한 장면

특히 나치의 경우 죽음의 공포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처형자를 엎드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직접 보도록 눕혀서 형을 집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나치는 전쟁 초반에 국민들에게 '배신자의 말로는 이런 것이다'는 의미로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총살형이나 교수형 등으로 진행하는 공개처형도 자주 실시했다. 패전 후에도 사형이 폐지되는 1949년까지 중범죄자 처형사용되었다.

단두대교황청, 벨기에, 그리스, 스위스, 스웨덴에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다. 이후 베트남이 독립하자 단두대는 사라지고 총살형 또는 약물주사형으로 처형한다. 알제리 역시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군처형하는 데 사용했지만 1962알제리가 독립하면서 곧바로 사라졌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유일하게 길로틴 트래지드조세프 닐처형되었다. , 프랑스 교도소가 있었던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에서는 1965년까지 사용되었으며 누벨칼레도니에서도 1864년에서 1910년까지 적어도 74명이 처형당했다. 타히티에서도 최소 2번 사용되었으며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악마의 섬프랑스의 해외 교도소가 있었던 프랑스령 기아나에서도 1850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되어 150여명이 처형되었다.

미국에서는 1996더그 테퍼(Doug Teper) 조지아 주지사전기의자단두대바꾸자고 제안했는데,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Merger1891(프랑스 최후의 단두대)l

참고적으로 중국에서 판관 포청천에는 단두대 대신 커다란 작두죄인의 목을 자른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 상의 이야기처형에 사용되는 작두는 실제로 허리를 자르는 요참형 도구.

단두대의 효시인 프랑스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단두대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자코뱅 집권기에 적극 이용되어 '공포정치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프랑스에서는 군중들 앞에서의 공개적인 단두대 처형1939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단두대형은 교도소 내의 처형장에서 비공개로 집행되었는데 1977년에 강도와 강간, 살인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튀니지 출신 사형수의 사형 집행 마지막이다. 특히 19819,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사형 제도를 폐지되자 길로틴은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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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루이 16, 함규진, 네이버캐스트, 2010.05.10.

단두대, 나무위키

단두대, 위키백과

http://blog.naver.com/sywwings/100016727302

프랑스 혁명비사 , 집문당, 1971

세계상식백과, 리더스다이제스트, 1983

세계 사형백과, 카를 브루노 레더, 하서출판사, 1991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게르하르트 프라우제, 한길사, 1994

그것이 알고싶다, SBS프로덕션, 1993

문화라는 이름의 야만(1), 찰스 패너티, 랜덤하우스코리아, 1998

기이한 역사, 존 리처드 스티븐스, 예문, 1998

세계의 최초들, 피에르 제르마, 하늘연못, 2000

이야기 세계사 여행, 현준만, 실천문학사, 2001

백과사전이나 역사 교과서엔 실리지 않은 세계사 속의 토픽 , 리처드 작스, 가람기획,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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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세계사, 김향, 가람기획,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