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로마의 여자 검투사, 글래디아트리스(2)

Que sais 2020. 12. 1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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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검투사 등장>

로마의 간판이 검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헷갈리는 것은 여자검투사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남자 검투사와 여자 검투사가 맞장 떴는데 여자 검투사가 승리했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사실 여자 검투사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지만 정말로 로마에서 여자 검투가 벌어졌느냐에는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알려진 것은 이 부분에 관한 한 많은 글이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갈리쿨라 황제가 살해되자 다음 황제로 추대된 클라우디우스 황제황비인 멧살리나가 검투사 출신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녀는 로마 사상 가장 유명한 탕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그녀가 황비가 되기 전에 검투사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멧살리나를 비하하기 위한 가짜 뉴스라는 말도 많았지만 멧살리나를 여자 검투사로 설명한다는 자체는 당대에 여자 검투사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네로

 

특히 약간 후대인 네로 황제가 로마 원로원 부인을 보석으로 치장해서 칼을 들려 원형경기장으로 내몰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네로 시대에 원로원 부인들이 검투에 나섰다는 것은 이들은 검투사가 아니라 네로의 아성에 도전한 원로원들을 제거하기 위한 일환으로 생각한다. 또한 여자 노예간의 검투 경기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종종 개최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여자 검투사에 대한 글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유베날, 셀수스,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카시우스 디오 등이 여성 검투사에 대해 적었는데 이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 여성 검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적었다는 점이다.

유베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헬멧을 쓰고 여성스러움을 피하고 무차별적인 힘을 좋아하는 여성이 어떤 수치심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녀가 다른 형태의 전투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당신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녀가 헬멧의 무게로 고통을 받으며 트레이너의 말에 따라 연습하는 동안 내내 그녀가 끙끙거렸습니다.’

 

타키투스도 여자 검투사에 부정적인 글을 썼는데 카시우스 디오는 이를 보완하여 설명했다.

 

‘한 번에 가장 수치스럽고 충격적인 또 다른 이벤트가 열렸는데 승마자 뿐만 아니라 상원의원 계급의 남녀조차도 오케스트라, 서커스와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일부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무언극으로 춤을 추거나 비극과 희극을 연기 했다. 또한 그들은 말을 몰고 야수를 죽이고 검투사로 싸웠다.’

 

이들의 기록을 보면 로마 시대에 여자 검투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들 기록을 로마의 타락한 정황과 만행을 알려주려는 과장으로 인식했다.

특히 여성 검투사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직접 검투를 했다는 말이 아니라 루디아 즉 축제 또는 오락에 등장하는 여성 공연자로 설명되었다. 루디아를 여성 검투사로 설명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현재 여성 검투사로 설명되는 글래디아트리스(Gladiatrix)라는 용어는 로마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은 말이다. 이는 1800년대에 여성 검투사라는 의미를 설명할 때 처음 사용한 현대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여성 검투 폐지>

많은 사람들이 여자 검투사가 있었다고 기록을 했지만 그동안 이 부분에 관한 한 상당이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한마디로 로마의 퇴폐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 검투사 경기를 기원후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불법으로 규정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자 상황은 역전된다. 이 기록을 보면 여성 검투사가 있었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00여 년 이상 여성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도 틈새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20세 미만의 자유 신분 여성이 경기장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보다 신분이 낮은 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후에도 계속 여자 검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학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보다 검투가 벌어졌다는 실물 증거다.

여자에게도 검투의 길이 열려있다는 것은 당대의 검투 인기를 알려주지만 문제는 세베루스 황제의 기록을 증명해 줄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도 여성 검투사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로마의 기록이 남성들 삶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적어도 100여 년 이상 여성 검투사들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면 이들에 대한 유무형의 유물들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자검투사 

 

그런데 근래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의 원형경기장에서 드디어 여자 검투사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여자 검투사 2명이 혈투를 벌였다는 고고학적 증거 등이 나타난 것으로 할리카르나소스의 검투에 대한 내용을 보자.

 

여자 검투사 두 명이 지쳐 바닥에 깔린 모래 위에 섰다. 장시간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제압할 수 없었던 이들은 번쩍이는 청동 투구를 벗어 던지고 상대편만 노려보고 있었다. 관중들은 두 명의 여성 검투사에게 관용을 촉구하는 소리를 단상에 있는 지배자에게 요청하고 있었다. 지배자는 일어나 마음의 결정을 발표했다. 두 여성 검투사는 한 달 뒤로 예정된 다음 경기 때까지 목숨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한 조각가가 이 사건을 석판에 기록했는데 두 여성 검투사의 이름은 아킬리아와 아마존이다. 이들 그림 위에 두 명이 영예로운 추첨으로 격투했으며 이들은 방패와 검을 갖고 있었다. 각 인물의 발 옆에 있는 두 개의 둥근 물체는 헬멧으로 생각된다. 이 조각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있는데 박물관의 잭슨 박사는 이들이 아마도 상당한 실력의 전사였을 것으로 평가했다.

1996년에 영국 런던 근교인 그레이트 도버 스트리트(Great Dover Street)에서 1,900년 전의 여성 검투사에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었다. 발굴 결과 검투사로 추정되는 20대의 한 여인의 유해는 화장 후 남은 여성의 골반 뿐인데 사후에 상당히 고급스럽고 정교한 장례 절차를 통해 화장되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유물을 연구한 스웨인 박사는 여러 기물들이 ‘존경받는 검투사의 무덤’이란 것을 보여주며 이 여성이 ‘잘 나가는 검투사’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고 설명했다.

 

 

검투사 투구

 

또한 근래 발견된 고대 로마 유적의 한 비석에는 ‘콜레기아 이우베눔에 속해 있던 소녀 17년 9개월을 명예롭게 살다 가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로마 제국에 여성검투사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 과장이 아니라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또한 함부르크에서 발견된 여성 조각상의 탈의상태로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조각을 여성 검투사로 추정한다. 이를 토대로 일부 학자들은 여성 검투사들이 성적 대상으로서 취급받았을 거라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젖가슴을 드러낸 모습은 여자 노예들에게 흔했으므로 하급 여자 검투사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독일 발견 여성 검투사

<남녀 검투는 NO>

남자와 여자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므로 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경기에 임했는지도 관심거리다. 즉 여성 검투사들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으며 검투사 경기의 본질은 무엇인가이다. 로마에서 검투사는 대체로 다음 4가지 무기로 싸웠다.

 

① 직사각형 방패 및 검

② 그물과 삼지창 또는 단검

③ 직사각형 방패 및 투구, 검

④ 휘어진 칼날과 둥근 방패

 

그렇다면 아마존과 아킬리아의 경우 남자들 못지않게 13킬로그램이 넘는 갑옷을 입은 채 무거운 무기를 들고 싸웠는가이다.

여하튼 여성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남자와는 달리 작고 날카로운 무기를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자들은 먼 거리에서 달려와 부딪치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전법을 주로 사용했지만 여자들은 단거리에서 무기를 창 뒤에 숨겨두었다가 갑자기 꺼내 찌르는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했으리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투 경기 시간은 10분에서 15분 정도로 추정한다.

기본적으로 검투사들은 상대방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헬멧을 썼다. 헬멧 때문에 강화되는 익명성이 검투를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검투사끼리 적어도 몇 개월 이상 합숙을 하면서 훈련을 했으므로 서로 잘 알고 있는 상대방을 헬멧 없이는 서로 죽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자 검투사들은 남자 검투사와는 달리 합숙이 아니라 개인교습을 통해 훈련되었다. 학자들은 여성 검투사들의 경우 대부분 아버지 또는 관련 검투 전문가로부터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훈련에는 모두 목검을 사용했다.

또한 아직까지 여성검투사와 남성검투사가 싸웠다는 기록은 믈론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남자 검투사와 여자 검투사가 격돌하여 여자검투사가 승리했다는 말은 가짜뉴스라는 뜻이다.

 

<높은 명성의 여자 검투사>

여성 검투사들의 존재 여부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실존했음이 분명한데 어떤 이유로 여성 검투사들이 장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느냐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놀라운 것은 여성 검투사가 당대에 매우 높게 평가되었다는 점이다. 경기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는 위험성은 있지만 대신에 자유로운 생활과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고,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브리안 K. 하비 박사는 로마의 여성은 자유가 거의 없었으며 남성과의 관계로만 정의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남성의 미덕과는 달리 여성은 가정과 결혼 생활로 칭찬을 받았다. 로마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이다.’

 

여성 검투사의 경우, 남성 위주의 로마에서 자신의 운명을 경기장에서만 맡기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명 여성 검투사에게 남자들이 만만하게 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참고문헌 :

「고대 로마의 여성 검투사」, 조슈아 J. 마크, Ancient History, 2018.04.05.

http://m.christianvision.net/a.html?uid=1357

『역사의 지배자』,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오늘의책, 2002

『과학이 몰랐던 과학』, 존 플라이슈만 외, 들린아침, 2004

『로마 황제의 발견』, 이바르 리스너, 살림, 2007

『의학오디세이』, 강신익 외, 역사비평사, 2007

『서양사 개념어 사전』, 김응종, 살림, 2008

『과학으로 여는 세기의 불가사의』, 이종호, 문화유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