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로마의 여자 검투사, 글래디아트리스(1)

Que sais 2020. 12. 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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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19일 그리스 국립극장은 <콜로세움 2000 프로젝트>의 하나로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고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공연하였고 727일에는 테헤란 드라마 아트 센터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이슬람 판을 공연했다. 지난 523년 마지막으로 공연이 있었던 콜로세움은 이로써 1500 만에 처음으로 원형극장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자평한 이 문화행사가 열린 이유는 콜로세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로마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이 콜로세움에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데 이는 현존하는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검투사들을 동원한 살육의 현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형경기장은 로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제국 각 도시마다 원형경기장들이 건설되어 검투가 벌어졌다.

검투사들은 기본적으로 남자 포로 또는 포로에서 노예로 팔려가 주인에 의해 검투사로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검투는 로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경기이므로 상당히 많은 로마인들이 승자를 맞히는 게임에 참여했다. 한마디로 검투사에 투자하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승리한 검투사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검투에 자질있는 많은 로마인들도 도전했다.

 

장 레옹 제롬 그림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것은 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당시 죽은 사람들은 전문 검투사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처형자로 나온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세네카(기원전 4기원 65)의 글에 의하면 오전과 오후에 검투장에서 이벤트가 벌어지는데 동물 쇼가 벌어진 후 두 번째 단계에서 각종 처형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로 각종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사람, 탈영병, 신성모독자 또는 국가에 대한 불충죄 등이며 전쟁 포로들도 포함된다. 또한 시대에 따라 악명높은 처형으로 기독교인들도 포함된다.

처형으로 눈요기가 끝난 후 비로소 정통 검투사들 간의 검투가 벌어지는데 세네카의 글에 의하면 검투사끼리의 검투는 한 명이 방패와 무기를 떨어뜨리고 손가락을 들어 항복 신호를 보낼 때까지 싸웠다. 상대방이 항복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검투 주재관에 의해 생사가 갈리는데 이때 유명한 폴리세 베르소(pollice verso)엄지 손가락을 올리면 패자도 살려준다. 물론 이들 필사의 검투가 관중을 즐겁게 한 경우이다.

주재관이 가능한 한 검투사를 죽이지 않았는데 이는 검투를 주재한 사람이 검투사를 살해하는 값으로 검투사의 소유자에게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검투에서 살해되는 사람은 대부분 비겁한 검투를 하여 패배한 사람에게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검투사들이 경기장 내에서 첫 번 째 검투를 포함하여 죽을 수 있지만 상당수의 검투사들이 수년간 살았다는 것은 검투사들의 검투가 아니면 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는 로마의 검투 특성 때문이다. 검투는 로마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그러므로 각지의 귀족들이 공직에 선출되었거나 출마를 원할 경우 검투 이벤트를 지원했다. 로마인들에게 황제의 생일, 대관식 또는 기타 중요한 날은 기념해야할 날이므로 이들이 검투를 시민들의 눈요기를 위해 제공하곤 했다.

현대로 따지면 시민들의 호감을 얻는 방법이 검투 주선이었는데 큰 틀에서 검투 이벤트를 개최하는 주재관이 경비를 부담해야 했다. 그런데 이 경비 중에 검투사들의 생명값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검투사들의 신분이 열악하지만 검투사들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검투 이벤트를 주최하는 당사자로는 매우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검투사들이 관중에서 멋진 검투를 벌리면 패배해도 살아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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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처형>

많은 자료에 의하면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기독교인들도 처형했다고 적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처형이라면 대부분 현재도 위용을 자랑하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떠올린다. 악명 높은 네로 황제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했는데 그것도 기독교인들을 원형경기장에 넣어 야수들의 밥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움이 검투의 간판 장소인데다 기독교 초창기 많은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에서 살해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라는것에 역사의 묘미가 있는데 네로 황제에 의해 원형경기장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되었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영화가 바로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커 주연쿼바디스.

1905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8461916)역사소설 쿼바디스을 원본으로 하는데 영화 자체는 네로 황제 시기의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쿼바디스

영화는 주인공인 귀족 청년 비니키우스와 기독교도 리기아를 중심으로 하여 당대 로마 제국의 퇴폐상, 로마 대화재와 그에 뒤이은 기독교도 탄압, 네로의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시엔키에비츠는 네로와 당시 로마 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몫했는데 이는 쿼바디스가 대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네로 황제(5468년 재위) 치하의 서기 64년이다.

 

로마 황제 네로(5468년 재위)의 치하에서 기독교인의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사도 베드로는 도망치던 중 길에서 예수를 만나 신자들만 남겨 놓은 채 로마를 빠져나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로마의 제 14군단장 마커스 비니키우스(로버트 테일러) 장군과 리지아 역으로 당시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데보라 카가 맡았다.

동방에서 예수가 나타나 십자가형을 당한 지 30여년이 지나 비니키우스가 승리를 거두고 로마로 통하는 길 아피아 가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 로마는 자칭 시인이며 예술가인 네로 황제가 통치하며 많은 추종자들 중 비니키우스 숙부인 페츠로니우스도 있는데 그는 실존인물이다.

로마에 들어온 마커스는 숙부의 소개로 퇴역한 로마 장군 플라우티우스의 집에서 하루를 지내며 리지아를 만난다. 리지아는 로마에 의해 패망한 리기 왕국의 공주플라우티우스의 양녀가 되어 장군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리지아에게 사랑을 느낀 마커스는 리지아가 원래는 황제의 인질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네로에게 리지아를 개선식의 선물로 줄 것을 요청하고 네로로부터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마커스를 사모했던 리지아는 마커스의 행위에 실망하고 집을 떠나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지하로 들어가는데 이를 찾아낸 마커스기독교인인 리지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때 수도 로마에서 큰 불이 일어나자 네로는 이를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려는 계획으로 이용한다. 한마디로 로마를 새로 건설하겠다는 뜻인데 네로는 방화의 주범기독교인들로 포장한다.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고의적으로 방화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원형경기장에서 처형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 방식은 굶주린 사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을 먹이로 내어 주는 것이다.’

 

영화는 마커스와 리지아의 사랑 이야기가 겸해지면서 마커스도 기독교인들과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결론은 기독교의 잘 알려진 전설로 이어진다. 베드로가 로마로 돌아와 수많은 기독교들 앞에서 천국에 대해 설교하고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는 것이다.

반면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원형경기장으로 내몰린 기독교인들은 찬송가를 부르며 기꺼이 사자들의 먹이가 되고 이들의 모습에 네로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으로 끌려가기 전 마커스와 리지아는 베드로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후 마커스는 관람석에 앉아 있는 로마시민들에게 네로의 폭정과 로마에 대화재를 일으킨 건 바로 황제였음을 알린다.

 

쿼바디스

특히 마커스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궐기하여 로마로 들어오고 있는 갈바 장군의 소식을 전하고 관중들은 로마의 화재가 기독교도가 아닌 네로의 짓이었음을 확신하고 폭동을 일으킬 기세로 궁으로 밀려든다. 네로는 궁중으로 도망치지만 결국 자살로 마무리한다.

쿼바디스추후 벤허를 제작하는 샘 짐바리스트가 투입되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1년에 제작되었지만 당시의 영화기술로는 최고의 촬영술을 동원한 천연색 화면과 엄청난 규모의 화려한 스펙터클 사극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당시 762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입하여 2,1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흥행작으로 올랐고 오스카상에도 7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지상 최대의 쇼에 밀려 단 한 부분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소설 쿼바디스영화 쿼바디스에서 네로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콜로세움에 몰아넣고 사자를 비롯한 야수들이 공격하게 했다는 내용은 원전 소설이 노벨상을 받은데다 영화도 대흥행에 성공하여 기독교계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이는데 이 문제에 관한 한 상당 부분 진실된 역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네로가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화재범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한 후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처형했다고 하는데 로마의 화재기원 64에 일어났고 네로는 68에 사망했다. 그런데 로마의 콜로세움이 세워진 것이 기원 80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동물들로 하여금 살해하라고 만드는 것 자체가 그다지 자극적이거나 흥미를 끌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 처형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십자가에 기독교인들을 매다는 것이 더 교훈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학자들은 네로가 로마를 불태웠다는 것도 무죄라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로마제국의 악당, 네로황제의 복권> 장에서 별도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