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로마제국의 악당, 네로황제의 복권(2)

Que sais 2020. 12. 2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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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의 애인이 된 소아그리피나>

다음날 근위대는 네로를 황제로 옹립했다.

원래 황제가 사망하면 곧바로 후계자가 황제로 등극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소아그리피나는 네로의 즉시 등극을 막았다. 점성술사가 클라우디우스가 살해된 1012일에 황제로 등극한다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의 사망 사실을 하루 동안 극비에 붙이고 다음 날 네로가 등극하도록 했다.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장례식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나타나 가정교사인 세네카가 써 준 원고를 대중 앞에서 읽었다. 세네카는 자신이 로마에서 추방된 적도 있으므로 로마 시민과 원로원 의원들을 다독거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세네카가 써 준 원고에는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위에 있으면서도 사법권을 원로원에게 부여한 것을 예로 들며 모든 송사에 대해 일일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고 원로원에게 사법권을 돌려주겠으며 자신은 오로지 군 통수권만 갖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제국과 황실의 경영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적인 목적을 위해 제국의 영광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내용도 강조했다. 특히 원로원 의원들이 네로에게 조국의 아버지(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주자 그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자신이 너무 어리므로 그 칭호를 사양하겠으니 양해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17살 밖에 되지 않아 황제로서의 임무 수행에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일부 원로원과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학자들은 네로가 집권한 초기의 5년 간은 로마 제국에서 어떤 문제도 없이 잘 운용되었다고 평가한다. 그가 취한 세제 개혁이 힘을 받았고 식량 사정도 호전되었으므로 그 어느 황제 때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문제는 소아그리피나였다. 공식적인 칭호만을 따진다면 소아그리피나도 네로에 못지않았다. 그녀는 아우구스타, 여황제라는 명칭에다 원로원이 소아그리피나에게 고인이 된 황제의 영혼을 모시는 제사장의 직책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여제사장이라는 직책은 원로원 의원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신격화하기 위해 만든 직책으로 소아그리피나가 명실상부하게 로마에서 가장 유능한 여성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네로가 점점 장성하면서 소아그리피나와 종종 다툼을 벌이는 것은 물론 소아그리피나가 원하는 것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자 소아그리피나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 친아들 네로 대신 자신이 배제시킨 브리타니쿠스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브리타니쿠스가 클라우디우스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타이틀을 강조하면서 신이 된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를 권좌에 앉히겠다고 협박했고, 황제인 아들 네로에게 배은망덕한 아들이라고 말하며 폐위까지 거론했다.

네로로 보아 막강한 소아그리피나와 클라우디우스의 아들인 브리타니쿠스연합한다는 것은 네로로서 가장 위험한 적수가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네로는 곧바로 독살전문가로 하여금 브리타니쿠스를 살해했다.

브리타니쿠스가 제거되자 네로와 소아그리피나는 잠시 휴전하였다.

모자지간인 두 사람이 이전투구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네로와 소아그리피나로마 화폐에도 나란히 모습을 나타내는 등 모든 공식석상에 함께 나타났다.

그러나 소아그리피나와 네로의 휴전은 오래갈 수 없었다. 네로가 소아그리피나의 간섭에 또 다시 반발하자 소아그리피나도 네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네로를 황제로 만들었다고 떠들고 다녔을 뿐 아니라 네로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결국 네로가 소아그리피나에게 정말로 싫증을 느끼자 소아그리피나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소아그리피나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카드를 빼들었다. 그녀의 미모를 이용하여 아들을 유혹한 것이다. 숙모인 레피다로 부터 근친상간의 사랑을 맛 본 네로인지라 어머니인 소아그리피나의 유혹도 거절하지 않았다. 당시 로마 궁정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두 사람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랑을 나누었지만 두 사람의 근친상간에 대한 소문이 로마 전체로 퍼져나가자 네로는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네로는 궁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애인이자 어머니인 소아그리피나를 재빨리 제거하는 것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네카가 조언했다는 말도 있지만 여하튼 네로는 소아그리피나를 살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네로는 소아그리피나를 살해하기 위해 소아그리피나의 침실 천장에 치명적인 덫을 설치했다. 소아그리피나가 잠을 잘 때 침실 천장이 무너지게 하여 압사시킨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천장 공사가 워낙 복잡하여 작전이 새어나가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항해도중 자연스럽게 침몰하도록 설계된 배에 소아그리피나를 태우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배가 파선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연을 가장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네로는 소아그리피나에게 축제에 함께 가자고 한 후 특별히 제조된 배를 먼저 타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소아그리피나를 태운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지만 소아그리피나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헤엄쳐 뭍에 올라 살 수 있었다.

소아그리피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네로는 곧바로 암살대를 파견했다.

암살자들이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녀는 나체로 네로를 낳은 자궁을 보이며 찌르라고 윽박질렀다. 소아그리피나의 시체를 가져오자 네로는 아름다운 젖가슴을 봐라.’라며 그녀의 몸매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고 한다.

네로가 악당으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된 것은 어머니인 소아그리피나를 처형한 것은 물론 첫째 부인도 모호한 이유로 살해했기 때문이다.

네로는 어려서 결혼한 옥타비아와 사이가 틀어지자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하고 그의 정부인 포파에아 사비나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옥타비아의 대중적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그녀를 불모의 섬인 판드타리아로 유배시킨 후 옥타비아가 유배 중에 간통했다는 명목으로 이혼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황후의 하녀 몇 명을 고문했지만 그들은 옥타비아 황후가 절대로 외간 남자와 관계한 적이 없다고 맹세했다. 황후의 음부가 네로의 입보다 깨끗하다고 말하여 네로의 화를 돋구는 증인도 있었다.

결국 네로는 옥타비아에게 자결을 명했다.

옥타비아가 그의 명령을 거부하자 밧줄에 묶어 사지의 혈관을 절단하여 죽였다. 옥타비아의 잘린 머리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원로원은 그 날을 감사의 날로 제정했지만 네로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