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로마제국의 악당, 불명예 대명사 코모두스(1)

Que sais 2020. 12. 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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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코트 감독글래디에이터11,000만 달러를 투입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로마시대를 완벽히 재현하기 위하여 2년에 걸쳐 이탈리아, 몰타, 모로코, 영국 등 4개국에서 촬영 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도입부 10분 동안의 전투장면에서는 실제로 영국의 산 하나를 모두 불태워 촬영하였다.

이례적으로 역사물임에도 200173회 아카데미상에서 12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하여 의상, 음향, 시각효과상의 5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밖에 2001골든글로브상의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 MTV영화상의 최우수영화상, 영국아카데미상의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였는데 글래디에이터는 역사적 사실과 재미를 가미하여 황제가 될 수 있었던 황제의 최측근이 검투사가 되어 파렴치한인 황제에 대항하는 영웅의 드라마틱한 복수담을 줄거리로 삼았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161180)막시무스 장군을 총애하여 아들이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한다. 그러나 황제의 아들 아우렐리우스 코모두스(Aurelius Commodus, 재위 180192)는 질투와 분노를 느껴 급기야 황제를 직접 목 졸라 살해하고 황제가 된다. 코모두스는 곧바로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막시무스는 근위병에 의해 체포되지만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그의 가족은 체포되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그가 가족이 살해되었다는데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는 노예로 팔려갔다. 그가 노예로 전락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도 없는 처지다. 그를 구입한 사람은 검투사 출신으로 그를 검투사로 조련시키고 그는 검투사로서 매 경기마다 승리로 이끄는데 스페인 사람이라는 뜻의 스페냐드로 불린다.

코모두스는 아버지 황제를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150일 동안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시합을 개최한다. 막시무스의 검투력은 이미 로마에 알려져 코모두스가 개최하는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에 참가하며 황제의 누이이자 연인인 루킬라를 만난다. 황제인 코모두스는 검투사인 막시무스가 로마 전투부대와 집단적인 대결에서 승리하자 그를 만나러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그를 만나는데 그가 과거에 자신이 살해하도록 명령한 장본인임을 알아 차린다. 그러나 로마의 영웅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서 코모두스에 대한 반란이 계획되며 루킬라 역시 막시무스의 반란을 돕지만 막시무스는 탈출 직전 체포된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와 1 1 결투를 벌인다고 자청한다. 그러나 이 결투는 코모두스가 막시무스의 어깨를 칼로 찔러 한쪽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중상자로 만든 불공평한 결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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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모두스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막시무스가 코모두스를 쓰러뜨리고 막시무스 역시 관객의 시선을 끌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복권되지 않는 코모두스>

로마의 황제 중 3대 악당으로 칼리굴라, 네로, 코모두스를 그동안 거명했는데 현재 칼리굴라와 네로는 어느 정도 복권된 상태이다. 적어도 두 명은 천하의 악당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악당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황제들이 행동도 이들에 비해 만만치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중에서 코모두스는 아직도 복권되지 않았다.

코모두스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칼리굴라와 네로의 경우 그나마 업적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코모두스는 해당 사례도 없다고 혹평한다. 단지 그가 열정을 보인 검투에서 남다른 활약을 했는데 그것도 돈을 받기 위해서라며 평가절하한다.

특히 로마의 특이한 제도라 볼 수 있는 군인 황제 시대는 코모두스가 암살당하고 40여 년이 지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즉위한 235년으로 간주하지만 코모두스를 대부분 역사학자들은 로마 제국 최고의 혼란기인 3세기의 위기또는 군인 황제 시대의 막을 연 황제로 지적한다. 코모두스가 나라를 방치하면서 측근들에게 정사를 맡기고, 근위대의 정치개입 등을 사실상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천 년에 걸친 로마 제국이 본격적으로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 시점을 코모두스(재위 177~192)의 즉위연도인 177년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로마제국의 멸망을 이끈 황제로 치부된다는 것은 그만큼 악당 중 악당이라는 평가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코모두스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는 서기 161, 로마 근교의 도시 라누비움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파우스티나 황후의 자녀 14명 중 열 번째로 태어났으며 일란성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남자 형제들은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는데 그의 쌍둥이 형제도 4살 때 요절했다.

그는 로마 제국에서 아버지가 황제로 있을 때 태어나 황제의 직위를 물려받은 유일한 황제이다. 코모두스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당대 황제의 덕목 중의 하나인 입양제도를 따르지 않고 아들인 코모두스에게 황제 위를 넘겨준 황제였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전 80년간, 황제들은 자신의 2세들 대부분 대제국을 책임지기에 부족하므로 입양하여 황제 위를 물려주었다. 코모두스 이전에 아버지의 제위를 계승한 마지막 황제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8196)였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아들을 훌륭한 스승들이 가르치도록 했고 공식적으로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선포했다.

코모두스는 다섯 살 때인 166카이사르 칭호를 받았고 171년에는 '게르마니쿠스'라는 아버지의 칭호를 사용했으며 15살에는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개선식을 했으며 16살에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모두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공동 황제의 위치에 올랐고 곧바로 집정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다음해에 게르만족들과의 전투에 참전한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의 딸 브루티아 크리스티나와 결혼했다. 이것만 보면 아우렐리우스가 코모두스에게 매우 만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모두스는 아버지와 함께 178년과 179년에 도나우 전선에서 함께 싸웠고 180년으로 계획된 원정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렇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죽은 후 코모두스는 로마 제국 황제가 되었다. 그가 남다르게 공부보다는 검투사 경기를 좋아하였지만 이것은 당시 상류층들에게 딱히 흠이 될 만한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권장되기도 했다.

 

<영화속의 오류>

글래디에이터가 워낙 큰 반향을 받았으므로 상당수 시청자들이 역사물인 글래디에이터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글래디에이터는 영화사상 가장 오류가 많은 영화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는 아카데미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스펙타클 영화. 그러므로 흥행의 귀재로 알려진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제작한 타이타닉과 비견할 정도로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로까지 평가되므로 영화 장면을 두고 오류를 꼽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지만 글래디에이터는 여타 영화와는 달리 보다 심각한 오류가 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에 대한 변조이다. 그것도 영화라는 특성에 따른 소소한 변조가 아니라 영화 스토리 자체를 오도하는 내용이라 감독의 용감성에 놀랄 따름이다.

우선 작은 역사적 오류로 막시무스의 부인과 자식이 영화의 서두 부분에서 십자가형으로 화형 당했다고 나온다. 이 점은 영화에서 간략하게 처리되었지만 로마 시민은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당대에 십자가형은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므로 로마인이 반역에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십자가형은 면했다.

물론 여기에 틈새는 있다. 절대 권력자인 황제가 직접 십자가형을 명했을 때 이를 부하들이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인데 이 문제에 관한 한 코모두스 황제가 그렇게 명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넘어가기 바란다.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의 다섯 명의 현제(賢帝)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를 포함하여 다섯 명 중 한 사람이며 아우렐리우스 코모두스도 실존한 로마 황제이다. 코모두스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당대 황제의 덕목 중의 하나인 입양제도를 따르지 않고 아들인 코모두스에게 황제 위를 넘겨준 황제였다.

코모두스는 아우렐리우스의 자녀 열네 명 중 쌍둥이 형제 가운데 한 명으로 열 번째로 그의 쌍둥이 형제는 일찍 사망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아우렐리우스가 매우 신중하게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선택했음을 인정한다. 코모두스는 다섯 살의 나이에 카이사르 칭호를 받았고 10살에 게르마니쿠스라는 아버지 칭호를 사용했으며 15살에는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개선식을 했으며 16살에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모두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공동 황제의 위치에 올랐다. 이것만 보면 아우렐리우스가 코모두스에게 매우 만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인 아우렐리우스가 유명한 명상록을 쓴 것은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