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로마제국

로마의 영광 : 콜로세움(2)

Que sais 2020. 12. 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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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중요도>

콜로세움이 로마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는데 그것은 콜로세움 자체가 로마인들을 위한 오락을 위해 건설되었지만 큰 틀에서 황제의 부와 관대함을 보여주고 일반 로마인들이 실제로 통치자를 볼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모두스의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검투에 특별한 취향이 없었음에도 검투경기에 참석했다고 알려진다.

황제는 물론 로마의 집권자들이 검투에 열중한 것은 검투장에서 이벤트의 성격 때문이다. 검투장에서 일반적으로 점심 시간에 범죄자들을 처형했다. 처형방법이 잔인하기로 유명한데 불태우거나 물에 끓이는 방법 등 수많은 처형방법이 등장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사형수에게는 치욕적인 처형방식 나체로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런데 검투사들의 검투가 메인이벤트가 벌어지는데 패배한 검투사를 살려주냐 아니냐는 기본적으로 주재관이 정할 일이지만 관중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관중이 요구하면 처형이 취소되는데 이는 관중들이 수동적이 시청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시청자를 뜻한다.

또한 볼거리로 동물간의 싸움 또는 동물과 인간의 싸움을 잔인한 볼거리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검투사들의 검투가 중지되었음에도 경기장내에서의 이벤트로 추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이는 관중들의 호응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즉 경기장 내에서 처형과 동물서커스 등 이벤트는 계속되었는데 이는 황제를 비롯한 집권자들이 관중들이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등장하는 동물들은 인간처럼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아님에도 황제로 보아서는 로마인을 위해 멋진 공개 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말은 가능한 한 흥미를 보이는 동물을 동원하여 화려한 공연을 펼치는 것인데 이는 엄청난 경비를 들여야한다. 특히 여러 날 계속하는데 이는 이를 위한 전체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 조련사에서 동물 사냥꾼, 음악가, 모래 사냥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고용 원천이 되었다는 뜻으로 황제가 결코 독단적으로 폐지할 성질은 아니다. 검투사의 검투는 종료되었지만 그후에도 계속 경기장 내에서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볼거리가 계속된 이유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경기장이라 하면 색안경을 끼고 피묻은 현장만 연상한다. 특히 영화나 컴퓨터게임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로마의 검투를 비롯한 제반 사항을 현대 잣대에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서 벌어졌던 검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사항은 당대의 사회 규범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당대의 사회 즉 로마의 정복전쟁, 수많은 포로들의 유입,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암살과 반란 등을 감안하면 로마제국 나름대로의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로마의 특별한 검투가 로마를 유지하는 정책적인 방안 중 하나였으므로 나름대로의 지적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탱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많은 학자들이 검투가 고대 로마의 구성원인 에트루리아의 죽음의 결투에서 유래했다고 인식하는 것은 검투의 진행으로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에트루리아 검투의 흔적은 검투사가 쓰러지면 이마에 타격을 가하여 목숨을 끊는데 이를 특정인이 담당한다. 그는 카론에트루리아의 장관 또는 죽은자를 지하 세계로 동행하는 메신저 신 헤르메스의 옷을 입었다. 즉 검투 자체가 큰 틀에서 종교적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심지어는 장내에 물을 채워 전투를 하는 모의 해전(海戰) 등도 벌였다는 점이다. 모의 해전도 나름대로의 순서가 있다.

우선 물로 채워진 경기장에서 물속에서도 육지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된 말과 소들을 물속으로 몰아넣어 그들의 헤엄치는 것을 보는 것은 대단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고래도 넣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들이 경기장 안에서 움직이는 장면을 본다는 것은 현대의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 등이 쇼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카이사르이집트 군함과 페니키아 군함 간의 거대한 전투를 벌여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기념했다고 알려지며 아우구스투스악티움에서 마크 안토니우스와의 해전을 기념하여 모의 해전을 열었다. 모의 해전은 치열한 살육전으로 전개되었는데 각 소속 장병들이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며 접전을 벌였고 최후의 한 사람이 남으면 경기가 종료되었다고 한다. 현재 많은 해적 관련 영화에서 나오는 백병전 장면을 경기장 안에서 연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형 극장 전체를 침수시켰는데 현대의 건축가들도 로마인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콜로세움 장내에 물을 채울 수 있었는지 아직 정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수많은 자료에 해전이 벌어졌다는 내용이 적혀있으므로 이는 사실이다.

경기장 내에서 모의 해전이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황제들은 가능한 한 대형 모의해전을 열어 로마인들을 즐겁게하려고 했다. 모의 해전은 검투사가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 포로들을 투입했으므로 인간을 살해한다는 비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포로는 로마인들이 필요에 따라 잠시 목숨을 연장시킨 동물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래 제기된 가설로는 지하 공간이 추후에 생겼다는 것이다. 경기장 지하실의 나무 바닥 부분은 근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벌어진 해전 때 지하공간이 없었다는 뜻인데 그래도 해전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이 역시 규명될 미스터리.

카이사르가 해전을 처음 선보였다고 하는데 이는 현재의 콜로세움이 아니다. 콜로세움 이전에도 모의해전이 가능했다는 뜻으로 이는 당대의 로마 공학이 상상을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네로가 가장 크게 욕을 먹는 것은 콜로세움에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네로와 관련이 없다. 네로는 68년에 사망했고 콜로세움은 80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만 보아도 네로가 얼마나 많은 누명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콜로세움은 완공된 이래 300여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검투가 계속 벌어지다가 405년 서로마의 호노리우스 황제검투를 폐지함에 따라 마침내 악명 높은 살인의 현장이라는 역사도 종지부를 찍는다.

콜로세움은 기독교인들의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희생된 장소로도 유명하여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콜로세움을 퇴폐와 악행이 저지러진 자리로 기억하지만 로마인들의 콜로세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들은 콜로세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에는 로마도 멸망하리라.

로마가 멸망하는 날에는 이 세상도 멸망하리라.’

 

호노리우스 황제에 의해 사람간의 검투는 폐지되지만 사형수 처형 및 동물 서커스 이벤트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422년 지진으로 콜로세움이 피해를 입자 테오도시우스 2 세와 발렌 티니안 3에 의해 수리되었고 이후에도 수리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는 이들 이벤트가 6세기까지 계속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084노르만의 약탈콜로세움은 파괴된 채로 잊혀지며 그후 콜로세움은 12세기프린기파니와 아니발디 가문의 요새로도 사용되었는데 1231 대지진으로 남서쪽 정면이 무너졌다. 그러나 가장 큰 훼손은 콜로세움이 거대한 건축 자재의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교황 알렉산더6는 콜로세움을 채석장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로세움의 위용은 남달라 15세기에도 종교 행렬과 이벤트가 열렸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콜로세움의 진가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콜로세움 자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수많은 르네상스 시대 건물들이 콜로세움에서 가져간 자재를 사용해 지어졌다.

그런데 1744교황 베네딕토 14는 콜로세움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임을 인식해 석조물을 더 이상 제거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기독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봉헌 장소가 되면서 기독교 수난의 현장으로 복구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원래 모습의 1/3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웅대한 위용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콜로세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 누구라도 이 위대한 건축물을 보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이 사소해 보인다. 그 웅대한 모습은 도저히 가슴속에 전부 담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참고문헌 :

원형 극장, 마크 카트라이트,Ancient History, 2016.12.21

콜로세움, 마크 카트라이트, Ancient History, 2018.05.29.

세계상식백과, 리더스다이제스트외, 1983

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리처드 셍크먼, 중앙 M&B, 2001

클락시커 50 서양건축, 롤프 H. 요한젠, 해냄, 2004

세상을 바꾼 건축, 클라우스 라이홀트 외, 예담, 2006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 외, 모티브, 2006

No.1 유럽, 김선겸 외, 투어닷코리아출판사업부, 2007

세계의 불가사의 대탐험, YBM Si-sa, 2008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마크어빙 외, 마로니에북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