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발키리,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백작(1)

Que sais 2021. 1. 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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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0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발키리거사 75주기를 맞아 독일 베를린의 벤들러블록에서, 거사에 가담했다가 희생된 이들을 추모했다. 메르켈 총리희생자들은 우리가 극우 극단주의, ()유대주의, 인종주의와 결연히 싸워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히틀러의 제3제국의 실상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3제국 즉 히틀러의 나치 통치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일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탄생했지만 그로 인해 홀로코스트 등 수많은 문제점이 태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의 전횡을 막아야한다는 것은 많은 독일인들도 갖고 있었는데 그중 잘 알려진 내용이 암살사건이다. 그를 향한 암살 사건은 여러 번 있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이 전쟁 막바지에 일어난 비밀기지 폭발 사건이다. 수많은 독일 수뇌부들이 장기간에 걸쳐 기획했으나 결국 실패하며 이에 연류되어 롬멜 원수자살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사건은 히틀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물론 히틀러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전세계로 알려주는 계기가 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사건의 행동대장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백작롬멜 원수에 대해서 설명한다.

 

발키리

헐리우드의 스타 중에서 흥행보증수표라고 일컬어지는 톰 크루즈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백작으로 분장하여 화제를 몰아왔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작전명 발키리 Valkyrie는 긴박했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졌던 극비 작전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한 영화다. 영화평으로 나온 설명은 아래와 같다.

 

강직한 성품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은 조국과 국민을 위하는 충성스런 장교이지만 히틀러가 독일과 유럽을 파멸시키기 전에 누군가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아내기를 희망한다. 북 아프리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폰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은 독일 사령부로 발령을 받으면서 권력 최상위층까지 숨어있는 비밀 저항세력에 가담,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게 된다. 히틀러가 비상시를 대비해 세워놓은 일명 발키리 작전을 이용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 정부 전복을 계획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미래와 수백만의 안위,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이 달린 위험한 작전 최전선에 서게 된 폰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은 히틀러를 직접 암살해야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geulmoe.ques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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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말하자면 실화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조연 등 거의 5,000여 명이 사건으로 처형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흥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한국과도 관련이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의 제목이 작전명 발키리이기 때문이다. 발키리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매우 잘 알려진 이름이다.

 

북유럽의 신화에서 최고의 신오딘(Odin)이다. 오딘은 전쟁, 농경, 저승을 관장했으며, 특히 영웅들의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오딘은 전쟁에서 죽은 영웅들을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섬기는 아름다운 처녀 신들로 하여금 죽은 영웅들의 영혼을 오딘이 살고 있는 발홀(Valhol, 바그너 오페라에서 발할라Walhalla)로 옮기는 일을 한다. 이들을 고대 노르웨이어로는 발퀴랴(Valkyrja)’, 발키리(발퀴레)라고 부르며, ‘전사자(戰死者)를 고르는 자란 뜻을 갖고 있다.

발키리반신녀(半神女)들로서 평소에는 전사자들의 궁전인 발할라에서 노래를 부르고 길쌈을 하면서 전사들을 접대하다가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자가 생기면 오딘의 명에 따라 여신 프레이야의 통솔을 받으면서 전장에 나가 전사자들을 발할라궁전으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한다. 전사한 영웅들은 발홀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다.’

 

이 신화는 바그너에 의해 4부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오페라니벨룽의 반지로 재탄생한다. 1라인의 황금’, 3지그프리트’, 4신들의 황혼인데 제 2부가 발퀴레이다. 3발퀴레의 기행(騎行)에서 격정적인 관현악에 이어 8명의 발퀴레가 노래한다.

지크문트를 죽이라는 아버지 보탄의 명령을 어기고 노여움을 산 브룬힐데지크린데와 도착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지크린데는 쌍동이 남매 지크문트와의 근친상간으로 아기를 가졌는데, 이 아기가 훗날 브룬힐데의 연인이 되는 영웅 지그프리트이다. 그런데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현명한 왕 에첼이 바로 아틸라.

아틸라가 한민족과 친연성이 있음을 감안하면 니벨룽의 반지작전명 발키리 Valkyrie를 연계하면 한국과 연계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전의 흥행에 성공한 제임스 카메론의 3D영화 아바타에도 발키리 작전이 등장한다.

 

가까운 미래, 지구 인간들은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자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킨다.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제안 받자 이를 승낙하고 판도라에 위치한 인간 주둔 기지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제이크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의 무리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임무 수행 중 나비의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나 그녀와 함께 다채로운 모험을 경험하면서 네이티리를 사랑하게 되고, 나비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성 판도라와 지구의 피할 수 없는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면서 제이크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야 하는지 혼동에 빠진다.‘

 

나비족을 공격하는 작전명이 발키리. 발키리가 서양 사람들에게 크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인데 결론은 지구인이 구상한 발키리 작전도 슈타우펜베르그 의 발키리 작전처럼 실패한다. 발키리라는 단어가 워낙 거창한 뜻을 함축하고 있어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함부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을 것이다.

 

<발키리 작전의 전모>

발키리 작전의 기본은 단순하다. 간단히 설명해서 독일 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 국내의 예비군을 비롯한 보충군이 이들을 진압한다는 내용이다. 반나치 측은 이를 이용하기로 하는데 그것은 이 작전의 발동권을 가지고 있는 예비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프롬 장군의 부관이 바로 히틀러를 폭사시킬 폭탄을 가지고 가는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대령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백작은 남부 독일의 프랑크후르트 인근 에팅컨의 그리프슈타인성을 중심으로 광활한 영지를 소유한 정통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는 1907년 이 성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형 둘은 쌍둥이었고 자신도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다른 쌍둥이 형제는 어릴 때 사망해서 혼자 자랐다. 참고적으로 폰 슈타우펜베르그앞에 (von)을 쓰는데 이는 영국의 경(Sir), 프랑스의 드(de)와 같이 귀족임을 의미하므로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크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또는 폰 슈타우펜베르그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폰 슈타우펜베르그 가문 문장

어릴 시절 문학이나 미술 등에 흥미를 보여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도 했으나 1926,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30.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임관했는데 그는 동료들로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끄는 매력과 동료들의 갈등을 잘 봉합해주는 탁월한 조정의 능력이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임관하던 해, 바바리아 지방의 귀족인 니나 폰 레르첸펠트과 약혼하고 1933년 결혼한다. 둘 사이에 아들 세 명, 딸 두 명이 생긴다.

1933년은 히틀러의 나치스가 혼란한 독일 정국을 교묘히 조정하여 정권을 잡은 해로 히틀러는 곧바로 재무장을 선언한다. 폰 슈타우펜베르그는 처음에는 재무장을 하고 독일 경제를 살려낸 히틀러에 대해서 일반 독일인처럼 히틀러야말로 독일을 구원할 수 있는 영도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극단적인 일당 독재 쪽으로 흘러가자 서서히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1936 폰 슈타우펜베르그는 수재 장교들만 입학이 가능한 베를린의 육군대학에 입학하여 1938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위로서 독일 참모본부에 보직되었다. 과격한 히틀러가 권력의 정상에서 점점 위험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군부 내에서 그를 제거해야한다는 움직임이 서서히 움트고 민간 정치가들도 이에 동조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전격전으로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독일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였고 국민들이 히틀러를 적극 지지하는 등 상황이 변하자 히틀러를 제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잠복했다. 폰 슈타우펜베르그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6사단 참모장교로서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전개한 주요 작전에 참가하여 19405월 독일 군인의 최고 영예인 철십자훈장(아이언 크로스)을 받았다. 이후 독일 육군의 최고수뇌부로 보임되었다가 소련과의 전투가 벌어지자 병참장교로서 스타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한다.

1941, 소련과의 전투가 답보 상태로 들어가자 동부전선에서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또 다시 반란이 싹트기 시작하여 1942년에 히틀러 제거 음모 조직은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중심에는 베를린 주둔 부대사령관 올브리히트 장군도 있었다. 올브리히트 장군은 과거부터 히틀러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폰 슈타우펜베르그 백작에게 접근하자 그는 즉각적으로 가담하겠다고 승락했다. 히틀러가 국민을 선동하여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고 확신한 상태였으므로 히틀러의 제거만이 독일 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의 동료 장교들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해결책은 그를 죽이는 것인데. 난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

 

폰 슈타우펜베르그1943년 중령으로 진급하고 아프리카의 튜니지아 롬멜 아프리카 군단 소속 10팬저 사단의 작전 장교로서 부임한다. 그런데 194347,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작전 지역을 시찰하던 중, 영국 전투기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는다.

그는 독일 본토로 이송되어 뮌헨의 병원에서 3개월간 치료를 받았는데 여기서 왼쪽 눈과 오른손목 절단, 왼손 4, 5째 손가락을 절단당했다. 당시 의료진은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부상이 치료되자 전역하지 않고 후방인 베를린 군수사령부로 전보되었다.

 

슈타우펜버그(좌) 히틀러 카이텔원수(우))

이때 군 상층부에서도 히틀러 제거 계획이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이 독일을 위한 임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자 19433, 동부전선을 방문하고 베를린으로 돌아가던 히틀러의 전용기에 폭발물을 설치했으나 폭발물이 터지지 않아 실패했다. 히틀러 암살 계획은 계속 추진되었는데 히틀러에 의해 해임된 전임 총참모총장 베크 장군이 적극 지지하자 이에 따라 구체화된 히틀러 암살 계획이 바로 발키리(Valkyrie) 작전이다. 이 작전에 대해 폰 슈타우펜베르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신과 우리의 양심 앞에 이번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거사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히틀러는 극단적인 악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상황이 급변한 것은 1944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였으므로 몇 주 후에 연합군이 독일의 국경까지 와 닿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독일의 궤멸을 바라볼 수만은 없으므로 그동안 주저하던 사람들도 히틀러의 제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447, 폰 슈타우펜베르그는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독일예비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동안 히틀러 암살 계획을 주도한 올브리히트 장군의 군사령관 후임인 프롬 장군이 핵심인데 그는 자신은 항상 승리자의 편에 든다면서 히틀러 제거 음모에 묵시적으로 가담했다. 올브라히트가 반란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 그가 히틀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