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사막의 여우, 롬멜장군(4)

Que sais 2021. 1. 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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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 원수1014일 히틀러가 보낸 두 명의 나치 인사 즉 빌헬름 부르크도르프와 미하엘 비트만 두 명의 장군을 만났다. 그들은 양자택일을 종용했다. 군사법정에 서는 수모를 당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건네는 청산가리를 먹고 국장으로 성대히 장례식을 치룬 후 국립묘지에 묻히겠느냐이다.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롬멜은 몇 분 후 아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가 나를 배신자로 지목했지만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공로를 감안하여 내게 독약을 마실 기회를 주었다. 저들은 내게 독약을 전해주기 위해 히틀러가 보낸 사람들이다. 이 약은 3분 이내로 목숨을 앗아가는 독약이다. 만약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성대한 국장으로 나의 죽음을 예우해주겠다고 했다.’

 

롬멜은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 후 두 명의 나치 장교와 함께 차에 올랐고 그의 집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작은 숲으로 간 뒤 차량 안에서 청산가리가 든 독배를 마셔 음독자살로 일생을 마감한다.

 

울름에서롬멜추도식

그의 시체는 곧바로 울름의 군 병원으로 향했고 병원에서의 공식발표 사인은 서부 전선에서 근무 중 입은 부상 악화에 따른 심장마비라고 발표되었다. 그의 사후 10월 18일 독일 울름시청에서 공식 추도식을 치렀고, 추도식 사회 폰 룬트슈테트 원수가 맡았으며 장례식장에서 베토벤영웅이 연주되었다. 그의 묘는 오늘날 뷔템베르크주에 위치한 '헤를링엔'이라는 작은 마을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근래 색다른 자료가 발견되었다. 롬멜이 마음만 먹었으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슈파이델 장군이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체포되었을 때 롬멜히틀러에게 그를 변호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히틀러의 심기를 건드렸으며 총통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롬멜에게 평소 원한이 품고 있던 마르틴 보어만이 히틀러에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롬멜을 총통부로 불렀다. 그에게 마지막 변명을 듣고 싶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롬멜은 히틀러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고 며칠 후 게슈타포가 롬멜의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롬멜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룬 독일 장성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나치 독일군의 영웅으로 비록 나치의 장군이었지만 그에 대한 평가에서 독일은 물론 당시 연합국의 처칠 수상 및 각국의 정치가, 장군들도 인색하지 않다.

히틀러와 나치가 롬멜의 공개적인 처형을 두려워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사실 롬멜은 히틀러가 만든 신화적인 전쟁 영웅이다. 그런데 제3제국 즉 히틀러가 공을 들여 만든 전쟁 영웅이 히틀러에 반란을 꾀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 된다는 것은 히틀러에 치명상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가 롬멜에게 가족의 안전 보장’, ‘전쟁 영웅으로서의 예우를 갖춘 장례를 조건으로 청산가리를 마시라고 했고, 롬멜은 이를 받아들였다.

 

<히틀러의 후계자 되니츠 제독>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은 그야말로 세계를 놀라게했다.

그동안 히틀러 주위에서 후계자로 거론된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막상 히틀러가 지목한 사람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전설 유보트 함대 사령관직을 맡다가, 해군 총사령관이 된 되니츠(Karl Dönitz, 18911990) 제독이기 때문이다.

되니츠 제독은 자신이 히틀러의 후계자로 지목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추후 히틀러는 자신이 죽은 후 최후까지 독일군을 싸우게 할 사람으로 그를 지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히틀러는 최후가 찾아오는 것을 느끼자 최측근들 및 독일 국방군 특히 육군 수뇌부에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공군은 헤르만 괴링의 배신에 가까운 행위로 신뢰를 잃었으나, 해군은 육공군에 비해 정치적인 힘이 미약했고 사실 히틀러 정치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전쟁 말기에 히틀러가장 믿을 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던 탓도 있다.

되니츠는 자신에 맡겨진 것이 독일인들을 구해야한다고 생각하여 히틀러 총통의 권한을 이어받자마자 동부 전선에서 민간인과 병력을 철수시키고 영미군에게는 항복한다. 반면에 소련과는 계속 전투하면서 소련의 독일 진격을 막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소련이 자신들도 항복협상에 참여해야한다는 주장하면서 되니츠의 구상은 어긋나며 결국 공식적으로 나치독일과 바이마르 공화국마지막 국가원수4대 대통령으로 무조건 항복에 수긍한다. 그러므로 그를 히틀러처럼 총통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총통으로 거명하기도 한다.

그는 곧바로 연합군과 항복 절차를 주관했으며 이들 작업이 마무리되자 전쟁범죄자로 체포되었고 뉴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그가 히틀러의 유언으로3제국의 총통이 된지 20여일 후이다. 되니츠 제독이 제3제국 최후를 마무리한 장본인이라 볼 수 있는데 그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한 발언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보고 그 일을 다시 하라면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한국나이로 100살인 1980년에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절대 뉘우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군인적군에게도 비웃음거리로 전락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정통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반성하지 않고 그 행위를 다시 하겠다는 발언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히틀러와 되니츠 제독

재판에서 되니츠2가지 항목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데 하나는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죄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법 위반이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독일의 침략전쟁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것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당초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도 기소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홀로코스트엔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판단되어 기소되지 않았다. 이중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죄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고 전쟁법 위반의 경우도 이의를 제기했지만 1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1956년에 만기 출소했다. 특히 이 재판에서 소련의 주장이 반영되어 다른 주요 전범들과 함께 군복의 계급장 및 서훈 등을 강제 박탈당했다.

그런데 학자들의 생각은 다소 엉뚱하다.

 

뉴른베르크 군사재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되니츠 제독을 비롯하여 수많은 제3제국 지도층들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롬멜종전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느냐이다.

되니츠 제독 등과 롬멜 원수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모든 지도자들을 부정하는 소련롬멜 원수면죄부를 주었을리 없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롬멜 원수가 재판을 받았다면 그가 진정한 '나치스 추종자인가를 철저하게 규명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와 히틀러와의 관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나치스와 무장 친위대대해 극히 싫어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특히 홀로코스트에 대해 정말로 분개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히틀러와 상당한 친분을 쌓은 것은 사실이며 히틀러에 대해서만큼은 충성을 다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그가 히틀러 총통의 경호실에 근무했고 실제로 그런 경력이 이후 그의 벼락 진급 등 출세가도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독일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호응을 받은 것은 서민적인 풍모와 평민 출신이라는 점이다.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이었다. 그가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병으로 군대에 입문하여 하사로 전역한 것이 바로 한 예인데 롬멜도 정통 귀족 출신이 아니므로 히틀러가 총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아프리카 전선에서 부하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한 점, 유대인에 대한 학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 히틀러 암살 음모를 알면서도 게슈타포에 알리지 않은 점, 히틀러의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 뿌리친 점으로 보아 롬멜이 갖고 있던 히틀러에 대한 환상은 오래 전부터 깨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지적이지만 그의 큰 틀은 히틀러에 대한 충성이 기본이다.

더불어 3제국 초창기부터 그는 나치신봉자는 아니지만 히틀러를 매우 유능한 지도자로 생각했던 것도 분명하다. 만약 뉴른베르크에서 그가 피고가 되었다면 재판의 결과가 만만치 않았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롬멜히틀러 대신 조국을 선택했고, 영광스런 승리를 위한 부하들의 희생 대신 명령불복종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은 롬멜 아니면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신화가 계속될 수 있는 요인이다.

 

참고문헌 :

에르빈 롬멜, 표정훈, 네이버캐스트, 2009.07.21.

늘 최전선에서 조직을 이끈 에르빈 롬멜 리더의 역할은 현장에서의 솔선수범이다, 박기종, 매일경제, 2018.02.01

에르빈 롬멜, 나무위키

카를 되니츠, 나무위키

https://www.ilbe.com/view/5015964784

世界歷史49大迷, 시앙스신, 구경출판사복무유한공사, 2004

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을유문화사, 2006

세계 역사 속의 49가지 미스터리, 시앙스신, 집사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