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홀로코스트

나치의 생체실험(4)

Que sais 2021. 1. 5. 10:03

youtu.be/mf6CvXQQbtg

<다양한 생체실험>

멩겔레의 생체실험은 제목만 거론해도 엄청난 분량이 되지만 그가 연구한 것 중에는 삐뚤어진 과학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것도 많이 있다. 단적인 예로 당시 어린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암이라는 질병이다.

그가 수암의 직접적인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 질병이 영양실조 등으로 면역체계가 무너진 아이들에게 주로 발병해 홍역과 결핵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암에 대한 연구를 나무랄 것은 아니다. 그런데 멩겔레가 수암을 연구한 것은 수암이 인종적 열성요소 때문에 발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 결론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충동적인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이다.

그에게 남다른 취미가 있는데 어느 날은 안경 쓴 사람, 어느 날은 키가 큰 사람, 또 어느 날은 뚱뚱한 사람만 골라 죽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임신 8개월의 임산부가 들어오자 그녀를 살려주었다. 그녀를 살려준 이유는 그야말로 경악스럽다. 맹겔레가 그녀를 살려준 이유는 갓난아이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로 며칠이나 살 수 있느냐이다. 결국 아이는 굶어 죽었다.

한 번은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사람들 중에서 어떤 아이와 엄마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자 그 자리에서 즉시 총을 꺼내서 아이를 먼저 죽이고 그 다음 엄마를 사살했다. 멩겔레는 아이들에 대한 실험은 철저히 실험실에서만 하고 밖에서는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웃어주며 사탕이나 과자를 주었으므로 아이들은 순진하게 요제프 아저씨라고 따르기까지 했다.

또한 멩겔레가 일본의 악명높은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와 연계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시이바닷물 주사 실험도 했다. 어떻게 하면 바닷물을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바닷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학처리하여 피실험자에게 바닷물만을 먹게 했다. 당연하지만 인간이 바닷물만 마실 경우 인체에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전쟁 중 상처가 났을 때의 대처 방안을 위해 정맥, 동맥을 묶기도 했는데 결론은 그 부위가 썩어 들어가면서 사망했다.

 

독성실험

더구나 일부러 상처에 갈린 유리를 문지르고, 나무 톱밥을 집어넣는 등의 방법으로 염증을 일으켰으며, 독극물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총알에 독을 묻혀서 수감자들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나치의 과학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파악하고자 한 것은 군함이나 비행기 승무원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으며 그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냐이다. 이를 위해 냉동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내용은 얼음물이 든 탱크에 피해자들을 나체로 약 3시간 정도 넣은 후 그 온도가 몸에 미치는 영향,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서 신체가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연구했다. 또한 얼어 죽기 직전에 꺼내어 몸을 녹히는 실험을 했는데 이때 여자들이 마사지하는 등 여러 가지 해동방법을 동원했다.

 

엄을물 실험

또한 바닷물 주사 실험도 있다. 이 실험은 공군의 조종사와 해군 선원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한 것이다. 실험자들에게 음식과 물을 주지 않은 후 오로지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바닷물만 마시게 했는데 장기가 손상되고 고통 끝에 사망했다.

또한 모기에도 관심을 보여 한 집단은 말라리아 원충으로 말라리아를 전염시켰고 다른 집단은 주사로 원충을 집어넣어 병의 진행 정도를 연구했다. 말라리아 연구에는 약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되었으며 실험자들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독극물 실험은 다양한 독극물에 대한 효능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피실험자들이 사망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우려 실험한 것은 독을 바른 총알이다. 질산염을 첨가한 총알을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격 실험을 했는데 독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거나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이들 실험 중에서 과학적인 면만 감안하면 상당히 긍정적인 연구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발진티푸스를 비롯한 황열병, 천연두, 콜레라 등을 비롯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과 백신 개발 등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미비한 여건으로 실험자의 90% 이상이 사망했고 이들 질병을 고의로 주입하는 만행을 저지렀으므로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시에 대한 인체실험

근육 및 신경 재생과 뼈 이식 실험도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이들 실험은 외과 시술의 발전 즉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피실험자들의 근육과 뼈, 피부나 팔 다리들을 잘라낸 후 다른 사람들의 조직들을 이식하기도 했다. 때때로 마취도 하지 않고 잘라내기도 했는데 서로 다른 혈액형 때문에 사망하기도 했다. 그들 중 상당수 러시아의 해방때도 살아있었는데 이들이 처형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신체가 절단된 채로 어느 정도까지 살수 있는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들이 전후 수많은 장애로 고통받았음은 물론이다.

그가 가장 반긴 것은 왜소증 환자들이다. 멩겔레는 유전병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왜소증 환자들의 골수를 뽑고, 치아를 발치하고, 귀에다 뜨거운 물, 차가운 물을 집어넣는가 하면, 눈에다가 화학물질을 넣어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다소 놀라운 이야기로 왜소증 환자들 확보가 생각보다 순조로워 즉 많은 왜소증 환자들이 수용소로 들어오자 맹겔레가 2명의 왜소증 환자를 죽인 후 물에 삶아서 뼈만 발라내어 전시했다는 주장도 있다.

학자들은 이들 실험이 빙산의 일각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패망 직전에 관련 자료들을 철저히 파기했고 생존자들을 거의 모두 처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생체실험을 모두 덮을 수는 없으므로 결국 카를 브란트 중장을 비롯하여 23명이 나치의 전쟁범죄로 분류되어 뉘른베르크 의사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여하튼 그의 단 2년간의 행보로 학자들은 대부분 실험 또는 사후 감염 등으로 대체로 40여 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1,600여 명의 쌍둥이 실험 중에서 살아남은 쌍둥이는 200쌍 정도였고 그나마도 온갖 후유증으로 인해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오직 100쌍만이 살아남았다. 750여 명의 여성들이 수용되어 있던 수용소에서 벼룩이 발생하자 멩겔레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가스실로 보냈다.

춤을 잘 추어 살아난 일화도 있다. 17세의 발레리나였던 에거를 찾아와 춤을 추라고 말했다. 에거요한 슈트라우스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멩겔레가 에거에게 보상으로 빵 한 덩이를 더 주었고 이 빵을 에거는 다른 소녀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시로 멩겔레한테 불려가서 발레를 추었는데 그녀는 발레 능력인지 처형되지 않고 추후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었지만 소련군에게 해방되었다.

 

'어! 그래?(세계불가사의) > 홀로코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치의 생체실험(6)  (0) 2021.01.05
나치의 생체실험(5)  (0) 2021.01.05
나치의 생체실험(3)  (0) 2021.01.05
나치의 생체실험(2)  (0) 2021.01.05
나치의 생체실험(1)  (0)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