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의 크메르 루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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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초. 프랑스의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는 진기한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현지 주민 4명과 함께 캄보디아의 밀림 속을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4명의 안내꾼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들은 정글 안에 몇 백 년 동안이나 주술에 걸린 수많은 유령들이 들끓고 있으며 그들은 밀림 속의 텅 빈 도시에 있다고 했다.

무오는 나비채집보다 도시가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밝히고 싶었다. 전설의 대부분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무오는 자신이 직접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안내인들을 설득하여 밀림 속으로 들어가던 무오는 갑자기 펼쳐지는 장관을 보고 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안내인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발견>

무오가 발견한 것은 400년 전에 사멸한 옛 도시 앙코르의 폐허로 현재 캄보디아의 북서부 시엠리압 주의 톤레삽 호 북쪽 일대 일명 앙코르 지방에 있는 돌과 벽돌로 지어진 유적군(遺蹟群)으로 일반적으로 앙코르와트의 유적으로 불린다.

앙코르와트는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으로 수많은 앙코르 건축물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적으로 앙코르 왕국의 세력을 인도양까지 떨치게 했던 수르야바르만2세가 건립한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동서 1,040미터, 남북 820미터나 되는 넓은 지역에 위치한다. 12세기에 약 25,000여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37년 동안에 건설했는데 주위로 너비 200미터의 호(濠)가 둘러 싸여 있고 앙코르 유적 중에서는 드물게 서쪽에 정문 입구를 두었으며 235미터에 달하는 긴 탑문(塔門)이 있다. 탑문에서부터 너비 9.5미터, 길이 475미터에 달하는 돌이 깔린 도로가 일직선으로 사당까지 이어지는데 힌두교 비슈누(Visnu) 신에게 바친 사원으로 왕이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의 놀라운 점은 폭이 넓은 도로가 동서로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다는 점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정교하게 건축한 대소 사원 600여 개가 한때 번창했던 앙코르 전역에 세워져 있다. 그 가운데 적어도 10여 개는 그 크기가 이집트의 룩소르 대신전이나 중세 유럽의 대성당과 능히 비교할 만했다.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3생 즉 전생‧현생‧내생을 거쳐야 한다는 말도 있다. 1층은 미물계이고,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건물은 세 겹으로 된 회랑과 그것으로 둘러싸인 중앙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랑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한 단씩 높아져 계단식 피라미드처럼 되어 있다. 제1회랑은 동서 215미터, 남북 187미터나 되고 내부 벽면에는 옛날의 인도 서사시가 그림으로 부각되어 있다. 중앙 사당의 첨탑 높이는 65미터로 15층 건물의 높이와 맞먹는다. 입구부터 이 중앙 사당까지 약 30분이 걸리는데 앙코르와트는 이 근처에서 파낸 홍토(紅土)를 쌓고, 그 표면에 두꺼운 사암(砂岩)을 붙인 다음 조각했다.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는 원래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사당으로 이 첨탑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고 참배길 등은 세계의 기축(基軸) 도로를 모방하고 있으며 둘레를 에워싼 벽은 히말라야의 산맥을 의미하고 환호는 세계의 끝인 깊은 바다를 상징한 것이다. 사원 안의 곳곳에는 비슈누 신에 관한 신화가 조각되어 있고 국왕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코브라, 무희의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수르야바르만2세의 후계자인 자야바르만 7세 역시 30년을 통치하면서 그 세력을 남지나 해에서 인도양까지 확장시켰으며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도시에 사원과 성역을 건설했다. 이때 새로운 신앙이 앙코르에 들어왔다. 바로 불교였다. 그는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므로 병원과 숙박 시설도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건물에 이런 글귀도 남아 있다.

 

‘임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이다.’

 

크메르 예술은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 시대에 르네상스를 열었다. 특히 그는 ‘큰 왕성’이란 의미의 앙코르톰을 재건했다. 앙코르톰은 사방이 3킬로미터이며 폭 100미터의 수로가 주위에 둘러 있다. 높이 8미터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으며 중앙부에 바욘 묘 즉 납골당으로사용되는 불교 사원도 있다. 바욘 묘에는 51기의 사면탑(四面塔)이 있다. 바욘 묘에서는 사면이 부처 얼굴인 사면불안(四面佛顔) 관세음보살을 탑의 당상부에 안치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사면불안이 사방 팔방을 자비로써 비춘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 사면석상 고프라양식

앙코르톰 역시 신의 세계를 모방하여 건설되었는데 도성의 중심에 위치하는 높이 45미터의 바욘 묘는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며 왕의 지배가 전 세계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한다. 앙코르의 세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앙코르는 동서 29킬로미터, 남북 10킬로미터의 지역에 펼쳐진 일련의 도시로 무려 100만 명이나 거주했다.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무오는 일기에서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도 위대하다. 세계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스와 로마의 유적보다 더 위대하다는 앙코르와트 유적은 세계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하는 고대 유적 다섯 개 안에 선정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유산을 건설한 캄보디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빈국 중에 하나로 거론되는데 그 이유는 놀랍게도 1998년 사망한 한 노인에 의해서이다.

그의 이름은 크메르 루주의 폴포트다.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킬링필드’의 주인공으로 그는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150만 명에서 200만 명을 단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학살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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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최근래에 벌어진 제노사이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킬링필드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좁게는 크메르 루주가 사람들을 대규모로 처형한 사건을 말하며, 넓게는 이를 전후로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학살을 일컫는다.

이 사건은 히틀러의 나치와 함께 '근대의 실패', '이성의 실패'를 드러내주는 사례로서 자주 인용된다. 특히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문화대혁명 및 베트남 멸망 등과 함께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열거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킬링필드를 어느 잣대에 맞추어 제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킬링필드가 당대의 세계 정치 역학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캄보디아에서 히틀러의 나치에 버금가는 제노사이드를 일으킨 킬링필드의 주인공인 크메르루주를 미국과 중국이 강력히 지원했다는 점이다. 세계 정황으로 볼 때 누가 악당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까다로운 문제를, 영화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1984년에 출시된 프랑스계 유태인인 롤랑 조페 (Roland Joffé)감독의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한 뉴욕 타임스 기자인 시드니 쉔버그(Sydney Schanberg)의 「디스 프란의 생과 사 :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제작한 것이다. 실화가 상당히 가미된 영화이지만 작품성도 인정받아 제57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을 수상했고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되어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또한 시드니 쉔버그는 풀리처상을 받았다.

 

‘캄보디아 주재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 특파원인 시드니 쉔버그는 1972년 크메르군을 섬멸하기 위해 미국 공군이 니크루움에 잘못 폭격하여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캄보디아가 공산주의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인 1973년 8월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행적이 알려질 것을 우려하여 비협조적이지만 시드니는 뉴욕 타임스지 현지 채용 기자인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행 S. 응고르 분)과 함께 어렵게 학살 현장을 방문하여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상황은 시시각각 캄보디아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이에 위기를 느낀 시드니와 프란 일행은 미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가족을 탈출시키고 자신들은 남아서 마지막까지 취재를 한다. 결국 수도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군에게 함락되자 이들은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나 프랑스 대사관 측은 미국인인 시드니 쉴버그는 받아주지만 프란은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한다.

 

죽음의 들판(킬링필드의 한 장면)

결국 디스 프란은 크메르 루주 군에게 체포되고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는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디스 프란은 수용소에서 만난 크메르 루즈군 장교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용소에서 탈출한다. 그는 크메르 루주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 집단으로 묻혀 있는 ‘킬링 필드’ 즉 ‘죽음의 들판’을 지나 태국의 난민촌에 당도하며 미국에서 쉴버그와 프란은 극적으로 재회에 성공한다.’

 

이 영화는 1,440만 달러로 제작했음에도 전세계적으로 3,76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한국에선 반공 영화로 간주되어 서울관객 92만 5,000이라는 대박을 터트렸다. 이를 현대의 잣대로 계산하면 전국 관객 800만 명 이상 급이다.

이 영화는 비하인드스토리도 많이 있다. 디스 프란으로 출연하는 행 솜낭 응오(Haing S. Ngor)는 실제로 가족과 약혼자를 캄보디아에 남긴 채 탈출한 인물이며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므로 그는 생존시 캄보디아 난민들을 위해 기부를 많이 했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인으로 출연하는 영화의 출연료도 기부했다.

그런데 1996년 2월,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크메르 루주의 보복성 암살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수사 결과 아시아계 불량배 일당들이 돈을 노리고 벌인 강도 살인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영화는 아카데미상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 극심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큰 틀에서 크메르 루주에게 킬링필드 즉 제노사이드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여 미국의 책임을 희석시켰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킬링필드와 같은 상황이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크메르 루주만 비난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