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의 크메르 루즈(4)

youtu.be/wXswZtkdtAE

어느 정도 국민들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하자 정치가. 군 장교, 관리, 엘리트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엘리트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데 안경만 착용해도 인텔리로 간주되어 혁명의 적으로 처형되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크메르루즈와 전투했던 정규군 출신 장교들이었다. 장교들의 신원이 확인되면 배우자와 자식들도 함께 처형했다. 당시의 처형 장면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목격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크메르루즈는 관리들을 앞으로 나가게 한 다음 가슴과 등을 찔러 죽였다. 남자들이 죽어 넘어지면 공포에 질린 아내와 자식들도 끌려나왔다. 여인들은 강제로 무릎을 꿇린 채 찔려 죽었고, 자식들은 서 있는 채로 찔려 죽었다. 처형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위로 올려 사지를 찢었다.’

 

목격자들은 붉은 손수건을 두르고 광신적으로 세뇌된 십대들이 주로 처형을 담당했다고 전한다. 살인은 마구잡이로 행해졌지만 크메르루즈는 변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폴포트는 불량분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갖고 재교육을 시키는 것보다는 몰살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크메르 루주가 혈안이 된 것은 반동분자들의 씨를 말리는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3대를 제거하는데 집중했으므로 젖먹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인 방식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데 갓난아이들이나 애들을 길바닥에 패대기쳐 죽이는 등, 팔이나 다리를 잡고 몸뚱이를 바위나 시멘트 바닥 또는 통나무 등에 내려쳐 살해했으며 심지어 마을에 스피커를 달아서 온 마을 사람들이 희생자의 소리를 듣게 했다.

 

크메르 루주의 처형장면

거론하기도 역겨운 일이지만 갓난아이를 공중으로 던져서 사격연습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사람들을 생매장하거나 사람들을 우물에 넣는 것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세웠다.

크메르 루주 학살에서 살아남아 폴 포트 정권의 잔학상을 그린 「킬링 필드」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행 응오르는 자신의 목격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메르 루주는 물고기를 훔친 당시 31세의 부이 소판을 인민재판에 회부하여 죽인 뒤 간을 꺼내 요리해 먹었다.’

 

<기계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

폴포트의 학살은 2개의 범주로 나뉜다. 첫째는 집단화정책에 의해 일반국민들이 살해되고 사망한 것이며 둘째는 크메르 루즈 내부항쟁에 따른 숙청과 처형이다.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은 폴포트의 동지였던 후 님의 처형이유다. 그는 폴포트 정권의 정보선전장관이었는데 1977년 4월에 부인 바 란과 함께 갑자기 체포되어 그의 부인은 1977년 5월에 처형되었고 후 님은 7월에 처형되었다. 그의 S-21에서의 진술내용이다.

 

‘정권을 장악한 후 정보선전장관으로서 라디오 방송으로 피아노곡을 전국에 내보냈다. 이것을 듣고 온카(폴 포트 또는 캄보디아 공산당 최고지도부를 지칭)는 매우 분노했다. 온카는 ’센티멘탈한 음악은 싫다. 중국처럼 행진곡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아코디언, 기타, 전자기타도 싫어했다. 3일 후 서구화된 음악은 금지되었다.’

 

후 님이 제거된 이유는 농업문제에 있어서 온카와 대립했기 때문이다. 후 님이 서부 지역의 도시인 바탐방의 지역 당서기인 니엠을 만나자 그는 ‘많은 생산을 위해서는 모내기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건의했다. 또한 ‘트랙터가 부족하지 않도록 외국에서 많은 트랙터를 구입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온카에게 거절당했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온카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농업에서 외국 기계를 사용한다는 사고방식은 공산주의자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본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기계는 사용하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온카의 방침이다.’

 

후 님과 같이 프랑스의 유학파인 후 유온이 살해된 것도 온카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후 유온은 당시 내무‧농촌개혁담당장관으로 온건파였는데 크메르루즈의 도시주민 강제이주 정책을 강렬히 반발했다. 특히 폴 포트가 일상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시장을 없애고 화폐를 폐지하자 후 유온이 ‘이것은 해방이 아니다’라며 정면에서 반대하고 나서자 처형당한 것이다.

폴 포트는 시장을 폐쇄하고 학교의 문을 닫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미제국주의만 가르쳐 왔으므로 학교는 모두 폐쇄되었다. 당신들은오늘부터 공산주의자로 지금부터 논밭에서 배워야 한다.”

 

크메르루즈가 세계인들을 경악시킨 것은 이들 대학살이 초엘리트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크메르루즈의 폴포트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것은 물론 외무장관 이엔 살리는 남베트남 출신으로 파리에서 크메르인 학생대표였고 폴포트의 부인인 큐 포날리와 이엔 살리 부인인 이엔 칠리트는 자매간이다. 국방 담당 손 센도 파리유학 출신이며 부통령인 큐 삼판은 파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중에 처형된 내무장관 후 유온은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정보선전장관 후 님은 폴포트와 파리 유학 동창생으로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삼판, 유온, 님 등은 삼총사로 불리며 캄보디아 경제와 사회제도의 개혁을 추진했는데 그들 모두 초엘리트 집단이었다.

폴포트는 친미정권을 몰아내고 모택동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농촌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이상주의적 실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폴포트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캄보디아인으로서는 초엘리트인 것을 감안할 때 잘못 가르켜진 교육이 얼마나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예로 거론된다. 교육도 인간의 악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임을 알 수 있다.

 

〈공포 정치가 초래한 지구촌 최대의 킬링 필드〉

크메르 루즈 지도자들은 캄보디아에 이상적인 공산사회를 세우겠다며 극단적인 공포정치를 폈다. 종교의 자유도 없었다. 불교 사찰들과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카톨릭 교회들은 파괴되거나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바뀌었다. 개인의 재산 소유도 금지됐다. 화폐제도는 폐지됐고 프놈펜 중앙은행은 폭파됐다. 집단농장이 곳곳에 세워졌으며 모든 정책은 ‘앙카르(Angkar)’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앙카르’는 캄보디아 말로 ‘상부조직’이란 뜻으로, 오류를 범하지 않는 권위를 의미했다.

크메르 루주 치하의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곳이 프놈펜 시내에 자리 잡은 ‘뚜올슬렝(Tuol Sleng)' 보안서 건물로 뚜올슬렝은 일반적으로 '보안의 적'을 뜻한다. 정치범을 잡아다가 취조하는 장소로 쓰였던 이곳의 명칭은 S-21. S는 캄보디아 말인 ‘살라’의 머리글자로 ‘회관’이란 뜻이고, ‘21’은 크메르 루주의 보안경찰을 뜻하는 ‘산테발’의 암호명이었다. 크메르 루주군이 프놈펜을 접수하기 전 그곳은 4개의 3층 목조건물과 1개의 단층 건물로 이뤄진 여자고등학교였다.

크메르루주가 그곳에 남기고 떠난 서류뭉치와 흑백 필름들로 미뤄볼 때 모두 14500〜20000명이 그곳을 거쳐 간 것으로 추정된다. 수용소에서 1976년부터 근무했던 직원은 자신이 아는 한 수감자가 살아서 수용소를 나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확언했다.

 

뚜올슬렝(Tuol Sleng) 입구

그런데도 그들 중에서 10명 미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뚜올슬렝의 전기발전기 기술자, 폴 포트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그리고 폴 포트의 흉상을 만들었던 조각가다.

폴포트가 집권하는 동안 가장 크게 비난받는 것은 인종청소도 자행했기 때문이다. 폴포트는 남부 캄보디아에서 발원한 크메르족만이 순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크메르족에 의한 캄보디아 건설을 이상으로 삼았다.

당연히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었던 가장 큰 소수 민족인 중국인들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학자들은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에 살고 있던 중국인의 절반 이상을 학살했다고 추정한다. 비록 인원은 적지만 중국인 못지않게 피해를 본 민족은 베트남인들이었다.

크메르루즈의 베트남인에 대한 증오는 도를 넘어서 캄보디아인들이 베트남인에게 말하거나 쳐다보는 것만도 사형에 처할 정도였다. 베트남 여자와 결혼한 캄보디아인들은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처형될 것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결과 2만 명 이상의 베트남인들이 생명을 잃었다. 폴포트의 북부 지역 책임자 캉찹도 그의 아내가 반은 베트남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총으로 쏘아 죽이도록 명령받았다. 그 명령은 곧바로 집행되었다.

결국 극단의 인종청소가 크메르루즈의 파멸을 초래했다. 1978년,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인들의 학살이 계속 이어지자 베트남이 일어섰다. 베트남 군대가 15만 명을 동원하여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가자 크메르루즈는 예상과는 달리 순식간에 패배했다.

 

뚜올슬렝(Tuol Sleng) 내부

이 당시 크메르루즈가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로는 군 장비에 있어 베트남군이 월등히 우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메르루즈가 정규군을 운용할 군지도자들을 거의 전부 살해했으므로 전장에서 전투를 지휘할 장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캄보디아가 빈국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폴포트가 지식인들을 거의 모두 살해했기 때문에 캄보디아 발전을 이끌어나갈 산업 역군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폴포트는 현대식 기자재를 사용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주변국들이었다. 주변국들이 폴포트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들은 첨단 무기와 기자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캄보디아 정정에 개입할 명분을 폴포트가 만들어주자 거의 빈손과 다름없던 크메르루즈가 패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포트와 수천 명의 부하들은 낙후된 무기만 지참한 채 캄보디아 북부와 태국으로 도주하면서 농촌 지역으로 숨어 들어가 〈크메르인민해방전선〉을 창설한 후 베트남군이 국토를 침공했다며 결사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토가 유린되었다고 선전해도 캄보디아인들이 베트남군을 오히려 해방자로 환영했다. 궁지에 몰린 인민해방전선이 정치와 종교 자유를 약속한다고 선전했음에도 크메르루즈의 사악한 행동을 잘 알고 있는 국민들이 더 이상 속으려 하지 않았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이어진 크메르 루주 집권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는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캄보디아에서는 1962년 인구조사를 실시한 이래 내전이 계속된 1980년대 내내 인구조사작업을 하지 못했다.

미 예일대 역사학자로 캄보디아 학살을 연구한 벤 키어넌은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 인구를 약 700만으로 보았고 이 중 약 200만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캄보디아 기록센터의 크레이그 에치슨도 희생자 규모가 200만이 넘어 1/3정도가 희생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1년 8월까지 벌여온 광범한 현지조사 작업 끝에 110만 명 이상이 크메르 루주군에 처형돼 사망한 것으로 확인하는 등 캄보디아 전 국토가 킬링필드였다고 경악했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1977년 9월 “혁명에 반대하는 전체 인구의 1～2%만이 제거됐다”고 주장했다.

폴포트는 캄보디아인들 중에서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프랑스에 국비유학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하여 캄보디아인의 거의 1/3을 단 4년 안에 살해할 정도로 극단적인 혁명을 시도했고 결국 패망했다. 학자들은 엘리트들이 누구보다도 비인간적이고 사악한 행동을 자행할 수 있다는 증거를 폴포트에서 찾기도 한다.

크메르루즈가 몰락하자 1993년 캄보디아 국회는 북경에 체류 중이던 시아누크 공에 왕권을 돌려주고 2명의 총리를 두는 입헌군주제로 변경하는 헌법을 승인했다. 결국 캄보디아의 공산혁명은 국민의 1/3에서 1/4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낸 셈이다. 시아누크는 2004년 10월 아들 시아모니에게 양위했다.

놀라운 것은 폴 포트는 그가 자행한 반인륜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폴 포트가 시아누크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이 제시한 항복조건 때문이다. 그들은 시아누크에게 항복하면서 크메르 루즈를 위해 자치 지구를 만들어 줄 것과 어떠한 징계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시아누크는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국 캄보디아인들만 피해를 본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폴 포트의 조건을 수락하여 크메르 루즈 군이 파일린 투항 자치구에서 살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폴 포트는 1998년에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죽기 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어떠한 변명이나 후회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