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중국의 자존심

중국의 자존심(21) : 진시황릉(3)

Que sais 2021. 1. 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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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의 지하 구조>

세계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진시황릉의 지하50미터 높이의 피라미드 모양의 무덤에 묻힌 건물이 있다는 것을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산시성 고고학연구소>두안 칭보 박사는 피라미드 밑 30미터에 위치하는데 이 구조물은 중국 고대 무덤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구조물은 4개의 거대한 주위의 계단 모양의 벽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 , 북벽 바깥 쪽 위층에서 많은 타일을 발견했는데 이 타일은 계단 꼭대기 근처에 쌓여 있다고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불에 탄 점토와 석탄의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진시황릉의 지하온전한 상태라는 것이다.

두안 박사는 계단과 같은 벽의 형태로 볼 때 건물의 계단은 나무로 건설되지 않았지만 계단과 같은 벽의 윗면은 기와 지붕이 있는 나무로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덤에서 멀리 보면 중앙 위치를 제외하고 계단 모양의 벽이 각각 9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4개의 주변을 둘러싼 나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진시황릉피라미드 형태를 기본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준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에게 비밀로 남아있던 진시황릉의 구조도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학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것은 진시황릉으로 진입하는 북문(北門)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중국은 그동안 진시황릉에 대한 원격 탐사를 벌인 결과 진시황릉의 외성(外城)북문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로써 진시황릉이 4개의 대문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산시성 고고연구원 장중리(張仲立) 박사는 북문의 존재를 포함한 진시황릉의 구조가 구체적으로 확인됨으로써 황릉의 좌향(坐向)을 둘러싼 해묵은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근래 발견된 북문이 중요한 것은 그동안 진시황릉이 좌서조동(坐西朝東), 서쪽에 누워 동쪽을 향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역대 황제들의 능이 좌북조남(坐北朝南)의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무덤에서 방향은 매우 중요한데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중국 대륙의 서쪽에서 일어난 진()나라가 동쪽 6개국을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도 동쪽을 계속 주시하고 억누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진시황이 생전에 찾지 못한 불사(不死)의 선경(仙境)동쪽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죽어서라도 선경을 찾겠다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도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진시황릉이 현재의 자리에 무덤을 축조한 것은 근처에 금과 옥이 많이 나므로 진시황이 이를 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진시황릉의 구조가 밝혀짐으로써 당시 선조들부터 서쪽에 묻는 예에 따라 진시황의 무덤도 그 이전 왕들 무덤의 동쪽에 순서대로 자리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향방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다.

한편 진시황릉의 내성과 외성 사이에 길이 1.6, 너비 23, 두께 11후실(後室)을 갖춘 2기의 한대(漢代) 초기 순장 고분도 새롭게 발견됐다. 이 고분들은 1.6짜리 장방형 벽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여기서 발견된 벽돌은 지금까지 중국의 고분이나 갱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이자 가장 큰 벽돌로 추정한다.

 

<진시황릉 시공 분석>

중국에서 진시황릉 발굴 자체는 금지했지만 이들에 대한 연구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첨단기술을 동원한 원격 탐사를 통해 진시황릉의 경계와 구조, 깊이, 보존 상태 등을 조사하는 등 많은 부분이 밝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선 진시황릉 자체가 거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량의 흙이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궁금한 것은 진시황릉 인근에서 이정도의 많은 양을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근래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진시황릉 지하의 흙을 분석한 결과, 석회암 성분으로 화강암과 편마암이 주로 있는 여산 부근의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시안을 가로지르는 위하(渭河) 북쪽의 위북(渭北) 지방에 두루 분포한 것이었다. 진시황릉 지하궁전을 짓는 데 사용된 재료가 위북에서 옮겼다는 사실과 맞아떨어진다.

진시황릉이 워낙 거대하므로 이들 조사는 중국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물리탐사를 수행하며 <중국석탄지질총국>에서 항공기를 이용한 항공 관측을 벌인다. 항공기에서는 적외선 감지기로 지형에 변화가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탐사한다.

결론은 너무나 당연하다. 진시황제의 지하궁전이 진시황릉의 봉토아래 있으며 지하궁전 주변에 성벽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진시황의 유해를 안치한 지하궁전이 진시황릉 봉토 지하 35m에 자리잡고 있는데 궁전의 묘실은 동서 170m, 남북 145m의 직사각형이다. 이것은 축구장의 1.5 크기로 중국 최대의 묘실이다. 특히 묘실에 담장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런 형태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 벽의 높이가 4미터나 되며 가로 390m, 세로로 460m라는 것이다. 무려 약 54,000에 달하는데 재료는 벽돌이다.

이 벽들의 사면에는 완만한 경사로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중 서쪽에 연결되어 있는 경사로에서는 청동 말들과 마차가 발견되었다. 진시황제의 관이 들어있는 매장실 자체는 동서 80m, 남북 50m이며 높이는 4층 정도인 약 15m로 알려진다.

진시황릉의 봉토의 흙은 어디서 가져왔는지가 학자들의 관심사이지 않을 수 없다. 진시황릉 위로 쌓아올린 봉토는 높이 76, 너비가 350에 이른다. 이는 중국 최대 규모다. 수경에 따르면 진시황릉에서 5리 떨어진 어지(魚池)에서 팠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진시황릉에서 2.5지점에 지세가 낮은 곳에 어지라는 이름의 못 하나가 있다.

한편 항공 관측을 통해 진시황릉 남쪽 여산 기슭에서 거대한 계곡을 발견했다. 이곳은 깊이 30에 이르는 계곡이며 인공적으로 흙을 파낸 흔적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산 아래쪽의 어지에서 흙을 파서 옮기기보다는 산기슭에서 흙을 파는 것이 쉬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곳의 흙으로 봉토를 만드는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능묘 위에 소나무를 심었다.

일생동안 유학을 혐오했다고 알려지지만 능묘 조영에선 공자처음 선을 보인 봉토 방식을 차용했다. 공자가 봉분 형식의 묘를 만든데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예를 알게 된 공자가 세 살 때 돌아가신 부친의 묘소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집안 어른들에게 질문하여 겨우 찾아낸 그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묘소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그러므로 소나무황제 전용의 나무로 정한다는 명도 내렸다. 그래서 제후잣나무, 대부(大夫)버드나무를 심어야 했다. 여하튼 그의 봉분 높이가 115미터였다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봉분 바깥으로 내장(內牆), 외장으로 된 두 개의 담을 둘렀고 남북으로 긴 장방형 담의 네 모서리에 망루를 두어 능을 지키도록 했다. 물론 능원을 관리하는 기구도 두었는데 이를 여산식관(‘驪山食官)이라한다.

내부도 외부에 못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덤 안에 아름다운 가재도구와 보석, 진귀한 물건뿐 아니라 궁궐과 탑, 관청 건물까지 세워져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학자들은 지하궁전에 엄청난 금속 부장품이 있음도 밝혀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진시황릉은 인공으로 만든 묘지라기보다 산처럼 보이는데 한 면이 400m, 높이가 76m에 이르는 등 현존하는 단일 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그러나 현재 보이는 무덤은 기록을 볼 때 상당히 낮아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진시황릉은 봉분의 높이가 50여 장이고 둘레가 4, 5리 남짓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보고사에 의하면 시황은 여산에 묻혔는데 능의 높이는 50장에 이른다.’고 하였다. 진나라 때 한 자의 길이가 약 23센티미터이므로 능의 높이는 115미터에 이른다.

<서안병마용박물관> 측은 진시황릉의 배치도를 보면 규모나 내용 면에서 특이한 사항이 많다고 밝혔다. 우선 중국 최초로 하나의 도시궁전을 설치했으며 능 안에 대형 말 형상, 31마리의 다양한 동물, 48명의 궁인을 위한 부장묘, 3채의 사합원(四合院) 4방향의 담 안에 자 모양으로 지어진 베이징식 주택 등도 있다. 바깥 성 쪽에도 98마리의 말 형상과 3곳의 묘소를 지은 사람들의 묘소, 그리고 돌을 다듬고 기와를 굽던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참고문헌 :

진시황릉 묘실은 지하궁전, 곽민영, 동아일보, 2003. 11. 29.

[특파원 리포트]진시황릉 지하궁전 비밀 풀렸다, 홍인표, 주간경향, 2003.12.25

병마용갱/진시황릉, 윤명애, http://blog.naver.com/tcasuk, 2004. 7. 24.

진시황릉 미스터리 풀렸다, 예영준, 중앙일보, 2010.03.06.

무덤 속에 왜 수은 강이 흐를까,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2016.12.19.

진시황릉, 네이버지식백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진시황릉, 나무위키

발굴과 인양, 이병철, 아카데미서적, 1989

중국의 불가사의, 서영빈, 대산출판사, 2001

고대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 브라이언 M. 페이건, 오늘의책, 2003

고대사의 블랙박스 Royal Tombs, 권삼윤, 랜덤하우스 중앙, 2005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문화유산 100, 앤 밴투스 외, 서강, 2007

중국사의 수수께끼, 김영수, 렌덤하우스, 2007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루비박스, 2008.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형준, 시공주니어,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