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세계불가사의)/중국의 자존심

중국의 자존심(23) : 진시황릉과 병마용(2)

Que sais 2021. 1. 1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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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진시황릉에서 토용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제까지는 군인들의 토용만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인이 아닌 행정관들의 토용도 대량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 토용들은 군인과 마찬가지의 용모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문방구를 휴대하고 있었다. 당시 행정관들은 대나무 조각을 늘 휴대하고 있다가 자신의 근무지에 돌아가면 죽간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옮겼다.

처음에는 군인의 토용만 발굴되어 진시황제의 전제성을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행정관의 토용이 발견됨으로써 진시황제가 군인을 동원한 무단정치가 아니라 중앙집권제적 관료 제도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참고적으로 중국인들은 대칭(對稱)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무덤의 동쪽에만 땅굴을 만들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덤의 서쪽에도 같은 거리를 두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조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생각이다. 또한 북쪽에 무언가 있다면 남쪽에도 놀라운 것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항우를 비롯하여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발굴과 발견이 될지 모른다.

 

<병마용갱의 미스터리>

병마용갱1979101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는데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거대한 규모 때문이 아니다. 학자들은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유물을 조사연구한 후 그야말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상당 부분에서 현대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급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모두 진짜 전투에 사용되던 , 미늘창, 장창, 석궁을 지니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 금속2,000년간 썩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청동검은 출토 당시 전혀 녹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표면이 마치 거울 같아 사람을 비출 수 있을 정도였다. 날이 얼마나 예리한지 종이 19을 벨 수 있었다.

과학적인 정밀검사를 통해 그 이유는 청동, , 주석의 비율이 적당한 것은 물론 검신 표면에 1015마이크론의 크롬 화합물 산화층이 덮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이미 진나라 때 크로마이징(chromizing)이라는 산화처리방식을 사용했다는 뜻인데, 청동 병기가 사라지면서 잊혀졌다가 1930년대에 독일인이 이 기법으로 발명 특허를 얻었다. 진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첨단기술을 익힐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석궁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던 군사력의 비밀로 설명된다.

한국에서도 사용된 석궁쇠뇌(連弩) 또는 크로스보우(crossbow)로 불리며 과거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요 원거리 공격 무기로 쓰였다. 석궁의 위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현재는 사냥용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소음이 적다는 장점 때문에 일부 군 특수부대 무기로도 사용된다. 영화에서 석궁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석궁은 약 1.5m 정도 길이인데 놀라운 점은 약 800m 떨어진 적을 맞출 수 있을만큼 위력적이라는 사실이다. 2013년 영국 런던대(UCL)와 중국 병마용 박물관 신 마오셍 박사는 당시 부분적으로 훼손된 채 발견된 석궁과 화살촉을 실제와 똑같이 복원해 테스트 한 결과 당시 병사들이 입었던 갑옷을 단 한발로 쉽게 뚫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진나라의 동쪽에 있던 제후국들은 이미 전국시대에 철제무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진나라는 철제무기보다 주로 청동무기를 들고 전투에 임했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했다는 것은 청동무기철제무기를 이길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은 셈인데, 바로 여기서 진시황제의 통치력을 엿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도용에 채색된 염료는 모두 천연광물질로 이루어졌는데 자색이 보인다는 점이다. 홍색은 주사, 흑색은 카본블랙, 백색은 인회석으로 되어 있지만 당대의 염료로 충분히 활용가능하다. 그런데 자색을 분석했더니 놀랍게도 규산동바륨인데 이것은 현재까지 자연계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이 물질은 1980년대에 비로소 인공합성으로 만들었는데 진나라에서는 2200년 전에 이미 이를 실용화한 것이다.

유적지를 답사할 때 상당수 사람들이 인근에 박물관이 있더라도 잘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전시되는 물건 하나하나에 중요성이 있지만 내용도 잘 모르고 박물관이 거대하다면 공연히 다리품만 파는 꼴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도 병마용갱 서쪽에 있는 박물관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다.

병마용갱 주변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인데 당시 사용했던 거울과 건축하는데 사용했던 도구 등의 생활용품, 그림과 조각은 물론 서예, 마차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1980년 진시황제 무덤 서쪽 20미터 지점에서 발굴된 두 대의 마차. 1호와 2호 마차로 불리는데, 각각 4마리의 말이 끌고 있다.

진시황제가 전국을 순회할 때 탔던 마차의 모델로 추정하는데 실물 크기의 2분의 1로 축소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청동 위에 금과 은으로 도금하고 그 사이사이에 색을 칠해 놓은 채색 마차,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말은 높이 90cm, 길이 110cm, 무게 170190kg에 달한다. 1호 마차의 경우 3,064개의 부품을 연결하여 만들었고 2호 마차는 보다 많은 3,462개의 부품을 사용했는데 마차들의 무게는 1,000kg이 넘는다.

병마용갱의 채색이 거의 모두 벗겨져 소위 탈색되어 당대의 진본과 같은 감을 느끼는데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88년 이후 독일과 중국 공동연구팀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2012년 원상과 거의 다름없는 인물상을 재현했다. 연구진은 우선 원래의 색을 거의 다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채색 흔적이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토용을 집중 분석했다. 분석결과 모든 병마용에는 옻칠을 두 겹으로 입히고 그 위에 계란을 섞어 만든 안료를 칠했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이 출토하는 과정에서 옻칠이 마르면서 안료와 함께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밑바탕의 옻칠은 대기에 노출되는 순간, 15 만에 말려 올라가기 시작하고 4분 안에 벗겨진다.

다행한 것은 다소 가격은 비싸지만 발굴 및 보존 기술의 발달 덕분에 그다지 퇴화되지 않은 병마용의 원래 색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재료가 개발되었다. 독일 문화재 보존국에서 개발한 PEG라는 방부재를 유물을 발견하자마자 채색된 부분에 뿌리고 화학성분이 증발하기 전에 비닐로 감싸기만 하면 된다.

놀라운 것은 학자들이 현재 발견된 진시황릉은 전체 면적의 1%도 채 안 된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아직도 지하에 묻혀 있는 유물을 모두 찾으려면 수백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물론 세계 각지에서의 발굴 참여 의향들을 고려하여 그동안 발굴 속도를 늦추던 것에서는 다소 변화되어 발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이 덕분에 예상치 못하던 곡예사와 남성 토용들이 발견되었다. 발굴 작업이 좀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 상상도 못할 유물들이 출토될 것임은 틀림없다.

 

근래 병마용에 대한 놀라운 자료가 발표되었다. 진시황 이전에 이미 중국과 유럽교류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중국 진시황릉 박물관의 리쉐전 박사는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병마용이 고대 그리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리스 장인들이 3세기 중국 현지인들에게 점토인형 제작기술을 가르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리 박사는 실크로드 시대 전부터 중국과 유럽 간의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데 그 시기는 현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전이라는 것이다.

리 박사기원 전 3세기 경 즉 진시황릉이 조성되기 전 중국에는 실물크기의 점토인형 제작 전통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전의 점토인형들은 단순한 모양으로 크기는 20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진시황릉과 같은 점토인형 제작기술과 스타일의 급변은 중국 자체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시황릉의 병마용과 동상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과 예술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루카스 니켈 교수도 진시황릉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후 중앙아시아로 확산된 그리스 조각품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특히 니켈 교수는 그리스 조각가가 당시 중국인에게 점토인형 제작기술을 가르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