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의 재인>
무측천이 출세할 수 있게 된 요인은 여러 가지이나, 그 중 미모가 큰 역할을 했다는 데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정한다. 물론 그녀가 어느 정도 미모였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열네 살인 637년 태종(太宗)이 그녀가 대단히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며 책을 읽을 수 있고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고 예절에 밝다는 말을 듣고 즉시 조서를 내려 궁중으로 불러 ‘재인(才人)'으로 삼았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태종이 직접 무측천을 정5품인 재인에 봉했다는 것은 그녀를 대단히 중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태종은 그녀를 보고 ‘꽃 같고 옥 같이 예쁘다’며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녀를 ‘무미랑(武媚嫏)’이라 불렀다.
‘재인’은 내관 명칭의 하나로 비빈의 한 등급이다. 당나라는 수나라 제도를 계승해 황후 외에 궁중에 많은 비빈을 두었다. 그 중 귀비ㆍ숙비ㆍ덕비ㆍ현비는 각 1명으로 정1품이고 소의ㆍ소용ㆍ소원ㆍ수의ㆍ수용ㆍ수원ㆍ충의ㆍ충용ㆍ충원도 각 한 명으로 정2품이었다. 첩호는 정3품으로 9명이었고 미인은 9명으로 정4품이었다. 재인은 9명으로 정5품, 보림은 27명으로 정6품이었고 어녀는 정7품으로 27명, 채녀는 정8품으로 27명이었다.
당시의 비빈들은 황제를 자주 만나야 총애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무측천은 직책 때문에 비교적 자주 태종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재인의 지위가 비빈 가운데 중간 등급 아래이지만 비빈들의 연회, 취침과 양잠 일을 기록하고 비빈들이 1년 동안 수확한 상황을 황제에게 설명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갓 황궁에 들어온 어느 날 당태종은 후궁들을 데리고 ‘사자총(獅子驄)’이란 이름을 가진 사나운 말을 보러 갔다. 사자총을 타려다 대장군인 울지경덕이 몇 번이고 말에서 떨어지자 태종은 사자총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들 중에서 저 말을 제압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겠는가?"
후궁들은 아무도 감히 나서서 대답을 하지 못하였지만 무측천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태종이 그 방법을 묻자 무측천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에게 철편과 철퇴․비수만 주시면 됩니다. 철편으로 말을 가볍게 때렸는데도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철과로 말의 머리를 내려치고, 그래도 계속 말을 듣지 않으면 비수로 말의 인두를 자르겠습니다."
그러자 태종이 "그러다가는 말이 죽을 텐데 아무리 사나운 말이라도 죽이는 것은 지나치지 않으냐?"라고 하자, 무재인은 "폐하의 장수들은 모두 폐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신들입니다. 말이 멋대로 날뛰면서 대장군을 다치게 했는데 어찌 말 한 마리를 아끼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태종은 그녀의 말을 듣고 용기를 칭찬했지만 자기 주장을 강하게 과시하며 독기가 있는 언사 사용을 극히 싫어하여 무측천을 그 후 그다지 총애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당태종의 비빈으로 있던 기간이 10여년이나 됨에도 다른 비빈들은 승진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재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그렇다고 마냥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으려면 지식이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재인으로 있으면서 지식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원래 당나라에서의 비빈은 황후 등으로부터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과 여자의 네 가지 덕 즉 부덕(婦德)ㆍ부언(婦言)ㆍ부용(婦容)ㆍ부공(婦功)과 제사를 배워야 했고 궁교박사로부터 쓰고 계산하는 법과 기예를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악을 배우면서 시가(詩歌)와 서예에 몰두하여 당대의 예술가라고 부를 정도의 실력을 닦았다.
그러나 그녀가 궁중에서 배운 진짜 지혜는 황궁이 결코 모든 사람의 천당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숙지한 것이다. 비빈들의 행동을 보면 예의가 바르고 점잖지만 실제로는 단 한 명인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질투하고 암투를 벌였다.
최소한 120명이나 되는 비빈들 모두가 한 명뿐인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비빈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확실히 배운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기회가 왔을 때 다른 비빈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올라가지 못하면 결국 자신이 도태된다는 것이다.
<황태자를 사로잡은 무측천>
재인으로 황궁으로 들어온 지 10년이나 되었음에도 무측천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태종의 병세가 나날이 심해지고 임종이 가까이 다가오자 무측천과 다른 비빈들이 번갈아가면서 태종의 시봉을 들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매일 태종을 문안하러 오는 황태자 이치(李治)의 눈에 무측천이 발견된 것이다. 이치와 무조가 한마디로 ‘눈이 맞은 것’이다.
원래 이치는 황태자에 오를 수 없었다. 그는 문덕황후의 아홉 번째 아들로 첫째 형 이승건이 법도에 따라 황태자로 정해졌고 어렸을 때부터 비교적 총명하여 태종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건이 둘째인 이태와 경쟁하면서 아예 태종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폐서인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연히 태자가 되어야 할 이태를 제치고 이치가 황태자가 된 것이다. 그것은 이태를 앞세우면 이승건과 이치 등 모두가 온전할 수 없지만 이치를 세우면 두 명 모두 안전할 것이라고 태종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무측천과 이치는 명목상 모자 관계다. 당대의 윤리도덕에 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상궤를 벗어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치가 자신의 미모에 반했다는 것을 파악한 무측천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오랫동안 당태종으로부터 냉대를 받았으므로 이치에게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예상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649년 5월, 태종이 51세의 젊은 나이에 종남산에 있는 함풍전에서 사망했다. 고구려 원정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태자 이치가 황제 즉 고종이 되었는데 당시 법도는 황제의 소생을 낳지 못한 후궁은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 평생 수절해야 했다. 무미랑도 예외일 수 없으므로 감업사로 들어가 이름도 법명인 천조로 바꾼다.
황궁에서 풍족한 생활에 길들여진 비빈들이 절에 들어가는 것은 지옥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절의 생활 여건이 비교적 열악한 이유도 있지만 비구니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 엄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구니는 먼저 삭발을 해야 하는데 황제의 사랑을 받던 비빈들이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속세와 완전히 이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태종의 1주기가 되자 고종은 성대한 제전의식을 거행하고 감업사로 와서 분향하고 절을 올렸다. 의식이 끝난 뒤 고종은 무측천을 만났는데 이 순간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 무측천은 여성의 비기를 선보였다. 바로 눈물이다.
그녀의 눈물은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후 자주 감업사에 와서 무측천을 만났다. 무측천은 고종이 옛정을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는 것에 감격했고 보다 확실하게 그의 마음을 빼앗는데 열중했다.
고종도 무측천을 자신의 비빈으로 간주했고 무측천을 감업사에서 빼내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무측천이 비구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황제이지만 어떤 명분 없이 비구니를 황궁으로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종이 감업사에 들리는 날짜가 점점 길어지자 무측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쇠뿔을 단김에 뽑지 않으면 어떤 미인이 고종의 총애를 받을 지 모를 일이다. 무측천은 고종이 감업사로 자주 오지 않자 직접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서 고종에게 전했다. 김택중 박사는 그녀의 시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오색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아물아물할 정도로 그리움은 멈추지 않으며
몰골이 초췌해지도록 님을 그리며
요사이 많은 시간을 눈물로 보냅니다.
믿지 못하신다면 상자를 열어
(석류처럼) 붉은 치마를 꺼내보세요.‘
대부분 무측천과 고종과의 불륜관계가 무측천의 미모에 반한 고종의 의지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앞의 시를 볼 때 무측천도 적극적으로 고종에게 접근했음을 알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태종의 비빈이었던 무측천이 그의 아들인 고종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므로 일부 학자들은 무측천의 행위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설명할 때 단골손님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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