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당/십자군 전쟁(이노센트 3세)

십자군 전쟁(1) 이노센트 3세

Que sais 2021. 1. 17. 23:21

https://youtu.be/ka_c_ctumL4

2001911 초강대국인 미국의 권위와 힘의 상징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펜타곤) 일부를 파괴시킨 대규모 테러는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납치된 4대의 항공기를 직접 운전하면서 가미가제 공격과 마찬가지로 자살 테러로 일관함으로서 테러리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과거의 항공기 납치 사건은 탑승객들의 목숨을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세계무역센터폭파사건여객기를 테러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 다르다. 테러리스트 자신의 몸에 폭탄을 숨기거나 자신이 탄 차량 또는 배에 싣고 돌진하는 예들은 있었으나 비행기로 목표물에 돌진해 자폭한 것은 유례가 없었다. 테러범들은 비행기로 빌딩에 자살 충돌한 것에 그치지 않고 비행기의 고휘발성 연료 그 자체를 폭탄처럼 활용했다.

전문가들은 민항기의 조종사들에게 권총을 머리에 대고 건물에 충돌하라고 명령했을 경우 다량의 인명을 손상시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함께 자폭하지는 않는다고 확언해서 말한다. 조종사들이 함께 죽게 될 상황이 되면 인명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했다. 결론은 테러리스트직접 비행기를 몰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테러에 동원된 수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어떤 연유로 과감하게 자살테러에 기꺼이 수긍했느냐는 의문이 따른다. 신념에 찬 한 두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자살 공격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911 사건처럼 비행기 납치에 참여한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동반 자살하는 예는 지금까지 없었다. 사실 비행기 납치나 폭파 사건은 여러 번 시도되었지만 테러리스트들이 함께 테러에 가담하는 것은 함께 자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동조하고 참여한다는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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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자살테러가 일어날 수 있었던 요인은 매우 간단하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이 성전(聖戰)에 참여하고 있는 전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등 서방측이슬람권간3차 대전을 방불케 하는 문명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바로 성전이라는 단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팔레스타인과 갈등을 벌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이야말로 이슬람인들을 분노케 한다고 주장하며 성전을 선언한다.

그러나 성전이라는 단어는 이슬람교도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지만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십자군 전쟁기독교인들에 의한 성전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은 역사를 보면 누구나 금방 수긍한다. 그만큼 인류사는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고 전쟁은 항상 참혹한 결과를 양산했다. 그럼에도 역사는 승리자 편이었고 항상 여러 수단이 동원되어 정당화되고 미화되기까지 했다. 그런 전쟁 중에서 성전(聖戰)이란 이름이 붙은 전쟁은 그 의미에서나 결과에서나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우선 성전이라는 말부터 다른 전쟁과는 틀이 다르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이 거룩하다는 뜻이다. 성전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성전이란 명목 하에 적에 대한 어떠한 행위도 허락되었기 때문에 약탈과 만행, 적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도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센터를 비롯한 공격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의 성전 참여 요인은 크게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반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랍인들이 미국에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은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의 지원 때문이다. 이스라엘아랍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객관적인 전력은 인구가 적은 이스라엘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스라엘이 원자폭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이스라엘에 공급되어 실전에 얼마만큼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직접 테스트하기도 한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아랍국에 대해 취하는 잣대가 다르다고 유엔의 각 국이 항의하지만 미국의 자세는 완고하다. 이스라엘의 안보서구의 유대 및 기독교 문명을 보호하는 일환이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을 업고 있는 이스라엘에 비하여 전력에 뒤떨어지는 아랍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명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전이다. 아랍 전사들은 성전에 참여하다가 죽으면 곧바로 천당에 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중세시대에 사용했던 십자군 성전 바로 그 성전이라는 단어를 아랍인들이 현재에도 사용하기 때문에 자살테러에 기꺼이 몸을 바치는 것이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미국군에 의해 완패하였지만 아직도 많은 이라크 인들이 주둔군에 대해 자살폭탄 테러를 멈추지 않는 것도 성전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전생에 지은 모든 죄를 성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사함을 받는 것은 열렬한 종교인으로서 무한한 매력일 수밖에 없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즉 천당에 있을 영원한 시간이야말로 인간들이 갈구하는 희망이라는 것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십자군 전쟁성전이라는 이름하에 전개되었지만 교황 이노센트 3(재위 11981216)는 십자군 전쟁의 와중에서 그야말로 추악한 전쟁을 명령한다. 그로서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보다 서유럽에 불꽃처럼 일고 있는 교황청에 대항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노센트 3는 기독교인으로 가장 사악한 명령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꾸며낸 정보로 시작된 십자군전쟁

200여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 중 가장 사악한 사람이라고 지목되는 이노센트 3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성전으로 불리는 십자군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해해야한다. ‘십자라는 용어는 천으로 만든 십자가를 옷에 부착한 데에서 유래했다.

중세의 작가들은 12세기경부터 crux, cruce, se cruisier, croisement, croiserie, cruzada'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을 지칭하는 프랑스어 croisade'1460년에야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십자군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된 지 거의 15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당대인들은 순례단’, ‘무장순례단’, 또는 성지순례단이라고 불렀다.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3백 년 동안 유럽의 관문을 지키고 있는 스페인과 동로마제국을 제외하고, 그리스도 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는 평화가 이어졌다. 7세기에 시리아를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세운 교회에 기도하러 오는 순례자들을 막지 않았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하메드가 보다 위대한 선지자일 뿐이다.

그러나 11세기 초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셀주크 또는 투르크족이라 불리는 타타르족의 세력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도 점령하여 이슬람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면서 기독교 세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비잔틴 제국은 투르크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먼저 그들을 공격했으나 철저하게 패배하여 그들이 지배하고 있던 소아시아마저 모두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신들이 도발한 전쟁에서 패배한 비잔틴 제국의 알렉시오스 콤네누스(Alexius Commenus) 1세 황제투르크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하에 서유럽 국가들이 기독교로 뭉쳐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는 계교를 생각해냈다. 그들은 서방 왕후들에게 호소하는 것보다는 로마 교황에게 호소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기독교의 정신세계를 교황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빼앗긴 기독교의 성지가 이슬람인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는 것을 교황에게 알려주면 교황이 사태의 심각성을 곧바로 알아차린 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상 투르크족이 성지를 점령하면서 간혹 성지 순례를 방해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예루살렘 순례는 기독교인들에게 전반적으로 편리해지고 있었다. 예루살렘 순례를 위해 투르크 인들이 수도원에서 순례자를 위한 숙박소를 건립하는 등 편의를 제공했으므로 때때로 대규모 집단 순례단이 결성되기도 했다. 한 예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30년 전10641065년에 밤베르크 주교인 귄터는 약 12,000명을 거느리고 성지에 가기도 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인들이 박해했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비잔틴의 황제알렉시오스 황제가 꾸며낸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연안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이탈리아 도시들도 자신들의 경제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여 기독교인들이 투르크의 만행에 고통을 겪고 있다고 과장하면서 1095년 당시 교황이던 우르바누스 2(Urban II, 10881099년 재위)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알렉시오스는 이교들도들에게 맞서 성스러운 교회를 수호할 수 있게 원군을 보내달라고 청한 후 이들 이방인들이 콘스탄티노플 성벽에 이르는 모든 땅들을 거의 점령했다.’고 덧붙였다.

당시에 사람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태도는 정말로 열렬했다.

묵상보다는 행위에 의지하는 것이 당시의 종교적 기풍이었다. 실제로 수도원을 벗어나면 글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세상에 죄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삶내세에서의 삶을 시험하는 근거로 보았다. 신에 대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 죄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을 해야만 했다.

신에 의해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견해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족쇄였다. 더구나 당시는 그리스도 사후 무려 1000년이나 지났으므로 세상이 곧 끝나게 된다는 루머도 있었다.

이러한 신앙의 결과로 흔히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하곤 했다. 그중 가장 분명한 예가 성지순례였다. 예언자들이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은 대부분의 세계 주요 종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중세인들로서는 성지순례는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대변해 준다고 믿었다.

당시의 말세론에 의하면 천상의 예루살렘지상의 예루살렘 바로 그 자리에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지를 순례하거나 성지에서 죽는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 날에 그리스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유럽 전역은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분노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이교도에 짓밟히고 있다는 것처럼 충격적인 사실은 없었다. 원래 예루살렘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 인 공통의 성지였다. 유대인에게는 다윗의 우물이 있는 곳이요, 기독교도에겐 예수가 죽어 부활한 곳이고 이슬람교도에게는 마호메트가 머무른 곳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인들이 기독교인의 성지를 방해하지 않았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보낸 거짓말의 효과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성지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같은 기독교도로서 방관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었다. 이런 보고를 듣고 당시 프랑스인 교황 우르바누스 2(재위 10881099)는 마침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