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바빌론의 공중 정원과 바벨탑

공중정원과 바벨탑(1)

Que sais 2021. 1. 2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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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심어주는 공중정원과 바벨탑>

필론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상상을 부추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환상적인 것은 공중정원이다. 하늘에 떠있다고까지 이야기되는 공중정원은 세계 7대불가사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SF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궁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SF영화 스타워즈에서 하늘에 떠 있는 공중 요새가 나오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만화책으로 팔린 드래곤볼에서도 공중에 수많은 궁이나 요새들이 하늘에 떠있다. 이들을 보면 하늘의 궁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을 갖기 마련인데 필론의 고대 세계7대불가사의에 들어가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말도 바로 이들 영화처럼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궁전을 연상시킨다.

 

공중정원

그러나 공중정원이 바빌론에 있다고 이야기하면 곧바로 바벨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벨탑은 신에 도전하여 하늘까지 올라가려고 엄청나게 높은 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속된 말로 하늘까지 오르기 위해 쌓았다고 하니 얼마나 높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공중정원과 바벨탑이 같은 틀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중정원과 바벨탑이 있는 곳은 현재 이라크의 바빌론에 있다.그런데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바빌론은 2019년에 유네스코세계유산에 지정되었는데 바빌론이 이렇게 늦게 지정된 것은 세계 정치 역학과 관련이 있다. 바빌론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8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대통령은 메소포타미아의 핵심인 바빌론이 당연히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1983년 유네스코위원회에 지정을 신청했다. 특히 후세인은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장()인 바빌론 없이 역사와 문화를 논할 수 있느냐'고 바빌론의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의 지정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빌론이 당시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세계 역사를 주름잡던 바빌론은 매우 큰 구역으로 외부성의 둘레가 15킬로미터나 될 정도로 거대하지만 대부분 폐허로 형체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빌로니아 제국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죽어서야 비로소 평가를 받는데 자신은 선조인 네부카드네자르 같은 평가를 받고 싶다며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왕궁터에 별장을 지었다. 그 규모가 축구장 5개가 들어갈 정도로 벽돌 6,000만개를 쌓았는데 그가 바빌론의 영광이 재현됐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위대한 바빌론을 엄청나게 파괴한 것이다.

더불어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쟁 때 다국적군이 공중정원바벨탑 등의 유적들이 있는 바빌론성을 무차별 폭격했다특히 대통령궁도 파괴했는데 이곳에는 다양한 페르시아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므로 이들 유적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혔음은 물론이다.

 

사담 후세인의 바빌론 영광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군이 바빌론을 군사기지로 삼고 헬기 이착륙장 등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군이 바빌론성에 주둔한 것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바빌론 성을 이라크인들이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페르시아의 바빌론은 이라크인들의 자존심이므로 이라크인들이 공격하여 바빌론 유적을 무차별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미국이 헬기 이착륙장들을 건설하기위해 무차별 바빌론성을 파괴한 것은 별도의 일이다.

여하튼 전쟁이 끝나자 이라크는 곧바로 바빌론의 복원에 들어가 현재 약 20%를 재건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인정하여 2019년 즉 유네스코세계유산에 신청한지 거의 35이 지나 바빌론이 지정된 것이다.

바빌론 안에 바벨탑과 공중정원이 함께 있고 큰 틀에서 공중이라는 공통 개념이 들어가므로 공중정원을 설명하려면 바벨탑도 함께 설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모두 하늘 높은 것을 상징하는데 이는 바로 바빌론의 영광 즉 페르시아의 영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설명하기 전에 페르시아의 영광 바빌론부터 설명한다.

 

<바빌론의 역사>

바빌론은 성경 이전부터 민담과 역사가 풍부한 곳으로 바빌로니아 제1왕조 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하는데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 메소포타미아로 더욱 유명하다. 메소는 ‘사이’ 포타모스는 ‘이란 뜻으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 사이의 땅을 말한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는 다른 3대 문명중국의 황하,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지역이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남부 지역은 갈대로 뒤덮인 늪지대나 습지로 되어 있으며 그 외 대부분 지역은 충적 평야의 황량한 벌판으로 생활 여건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더구나 기후는 건조하고 무더운데다 광물 자원은 물론 건축용 석재나 목재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 쐐기 모양의 좁고 긴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주변이 매우 열악한 지역임에도 이곳이 매우 살기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터키의 아라라트 산을 수원지로 하고 있는 두 강은 상류의 해빙기에는 강물이 급격히 불어 급류가 되고 하류에서는 거의 매년 홍수를 일으켰다. 이집트가 매년 나일강의 범람으로 큰 혜택을 받았는데 메소포타미아도 마찬가지다. 해빙기에 홍수를 일으키지만 상류로부터 기름진 흙을 실어다주므로 토질이 비옥해 농사짓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홍수를 잘 이용하면 농사를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고 먹을 것이 풍족해진다는 뜻으로 이는 한마디로 메소포타미아에서 특별한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기원전 4000년경 즉 6,000년 전 우바이드인들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서 근거지를 세운 후 5500년 전부터 수메르인들이 두 강 유역의 천연 재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저수지와 운하를 만드는 등 치수 사업에 모든 힘을 기우린 사실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사업은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통일된 정치 조직이 구성되어 집단끼리의 협동과 단결을 강조하면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첩경이다. 수메르에서 최초의 전제국가 즉 제국주의 국가가 탄생한 이유다. 또한 인류문명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학자들은 수메르 문명을 한 마디로 신전도시 즉 신전공동체로 부른다.

이 말은 도시는 신전의 소속이며 도시의 성원은 신전 소속민이라는 뜻으로 신전은 초기부터 가족이나 씨족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사회 전체를 위한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당대 수메르인들은 신전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향토애자존심목적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었으므로 어느 곳보다 발전 속도가 빨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상당히 열악한 지역인데도 수메르가 세계 최초의 문명 중 하나를 이룬 요인이 무엇이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은 수메르 들이 맥주를 즐겨 마셨고 기르는 양이나 소에게도 보리를 먹였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양이나 소에게 곡식을 주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내용으로 유럽에서 소나 말에 곡식을 먹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다.

사실 곡식은 사람도 먹기 어려운데 가축에게 곡식을 먹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당시 수메르인들은 곡물을 동물에 먹일 수 있을 만큼 곡식이 풍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이 수메르에 놀라는 것은 당대의 곡식 생산량이 상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농산물 재배는 매우 열악하여 곡식 씨앗 당 수확량은 매우 저조했다. 로마에서 보리 씨앗을 파종할 경우 파종량의 4배 이상 수확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인 중세시대에도 많아야 56배 정도였다.

그런데 수메르는 기원전 2350년에 놀랍게도 약 80배의 수확한 적도 있으며 대체로 파종량의 20배 정도를 수확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파종량의 20배가 된 것은 몇 백년이 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메르 인에 의해 경작된 농토의 면적으로 우르 제3왕조시대의 라가시에서의 직영 면적이 무려 250제곱킬로미터인데 이는 여의도의 약 100배를 의미한다. 보리나 밀 등 곡물을 동물에게 먹였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쐐기문자

수메르가 인류사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수메르인이 현대문명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선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기록 즉 역사적 사실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들은 점토판에 갈대 끝으로 만든 가는 펜을 눌러 문자를 새겼다. 이 때문에 설형문자(楔形文字) 또는 쐐기 문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만든 글이 현재 영어 알파벳의 원전이다. 수메르 문자의 중요성은 수메르가 멸망했지만 그들의 문자는 계속 전달되어 수메르어가 당대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점토판만 해도 수십만 장인데 대부분 행정경제상의 내용을 담았지만 신화나 전설 등의 문학작품을 포함하여 교육용 교과서는 물론 노트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수메르 어를 모르는 서기는 서기가 아니다라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과학 분야의 발전도 놀라워 그들은 10진법과 60진법 등 수학은 물론 오늘날 지구인들이 사용하는 시계의 분()과 초() 수메르 인들의 작품이다. 바퀴 달린 수레를 사용하여 인간의 노동력을 절감시켰는데 그들은 바퀴를 축에 부착시켜 한 마리의 소가 예전의 23배의 짐을 끌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원통인장 고안하였고 금은 세공술을 발전시켰고 모자이크 예술도 선보였다.

수메르인이 활약하고 있을 때인 기원전 27세기에 고대 왕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인 길가메쉬 태어난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중 영웅으로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원형으로 생각한다. 특히 홍수에 대한 내용이 노아의 홍수와 다름없는데 이 부분은 노아의 홍수장에서 별도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