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바빌론의 공중 정원과 바벨탑

공중정원과 바벨탑(3)

Que sais 2021. 1.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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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트 바벨탑>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였던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졌고 그후 서로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로 말을 했는데 신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이와 비슷한 바벨탑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바벨탑은 상당히 후대에도 실제로 남아있어 기원전 5세기의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바벨탑의 규모에 대해 상당히 정확하게 언급했다.

 

이 탑은 사방 1펄롱 약 201m의 견고한 탑신을 갖추었는데 그 위에 두 번째 탑을 세웠다. 다시 그 위에 세 번째 탑을 세우는 식으로 여덟 개를 쌓아 올렸다. 여덟 개의 탑은 주위를 두르고 있는 나선형 길을 따라 돌아가며 중간쯤 되는 곳에는 올라가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벨탑이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바벨탑처럼 각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신들이 인간의 도전에 직면하자 인간들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건설 중인 탑을 파괴한다는 전설은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소재를 제공해 주었는데 바벨탑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탑이라는데 중요성이 있다.

 

우르의 지구라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메소포타미아의 풍요로운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30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들을 모시는 수백 개의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바빌론, 우르크, 우르, 니네베, 코르사바드 등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도시들은 도시의 중앙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갖고 있었는데 현재 유적지가 확인된 것만 해도 30곳 이상이나 된다. 바벨탑을 지구라트 중 하나로 본다면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의 하나다.

지구라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작아지는 단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위풍 당당한 모습으로 사방이 100m, 높이가 100m 달하는 것이 많은데 바벨탑은 그 중에서도 사방 200미터나 되어 가장 큰 건축물이다.

바벨탑을 포함한 지구라트의 건축 목적은 당대인들이 가장 위대한 신으로 인식한 마르둑 신의 무덤, 가묘(假墓)로 설명하는데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바벨탑의 꼭대기에 신전이 있고 그 속에는 정교하게 만든 대형 침대의자와 그 옆에 황금의 탁자가 놓여 있다. 신전에는 어떠한 조상(彫像)도 두지 않으며 앗시리아인 여성 한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곳에서 밤을 지낼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이 도시의 최고의 신 마르둑이 자기의 아내 자르파니트 여신의 대리 역할을 하는 여자 신관을 위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이 신전에서 취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지구라트는 당대의 신을 위한 특수한 용도로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우르에 당대 지구라트에서 올려지던 특수 의식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엄선된 한 쌍의 남녀는 지구라트 위에 있는 신전에서 엄숙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와 수행원, 가족들은 지구라트 안에 있는 신전 속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두 개의 관이 있으며 신랑과 신부는 성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관 속에 뉘어지면 수행원들도 독약을 마시고 신랑과 신부를 따라간다. 곧 가축들을 죽여서 제물로 바친 후 무거운 돌문을 닫는 것으로 엄숙한 의식은 끝난다.’

 

한마디로 이들의 성스러운 죽음 덕분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신들의 은총이 내려져 풍요와 영원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모든 지구라트에서 인간을 제물로 희생시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구라트는 신들이 내려와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든 대좌(臺座)라는 것이다. 즉 신들은 하늘에 사는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일들에 끊임없이 관여했다고 한다.

 

바빌론의 바벨탑

그들은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또 인간과 똑같은 욕구와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리스 신화와 성격이 일맥상통한다.

홍수에 휘말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불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된다. 한마디로 지구라트를 만든 동기는 신의 강림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설명이다.

거대한 지구라트 중 현재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침략자들이 정복된 식민지의 주민들이 경배하는 지구라트를 철저하게 파괴한 것도 한 이유이지만 장구한 세월을 견딜 수 없는 취약한 건축 재료로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의 여타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벽돌로 만들어졌다. 메소포타미아의 광활한 충적 평야에는 석재가 없었고 북부에 있는 돌들은 질이 낮아서 건축재로 사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벽돌은 지푸라기를 잘게 썰어서 섞은 진흙을 찍어내어 햇볕에 말리거나 구운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개미 등 곤충의 서식지가 되거나 퇴화되어 부스러지기 쉬웠다. 이와 병행하여 유적 보존이라는 개념이 없던 주민들이 폐허에서 나오는 벽돌들을 자신들의 가옥을 짓는데 재사용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원형 보존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구라트를 건설한 건축가들은 지구라트를 벽돌로만 건설하므로 자칫하면 덩치만 큰 못생긴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대한 벽면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예술적인 솜씨를 발휘하였다. 웅장한 경사로, 개개의 단을 연결시키는 가파른 층계를 만들었고 벽돌을 몇 개의 칸으로 구분하여 장식용 재료들을 삽입하기도 한 것이다.

특히 우르의 지구라트를 보면 구조물의 주요선이 약간 커브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기다란 선을 직선으로 만들었을 경우에 사람들의 눈에 보일 착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또한 지구라트의 위용을 높이기 위해 벽돌을 만들기 전에 화려한 물감을 진흙 속에 넣기도 하였고 지구라트의 상하 부분을 서로 다른 색조를 사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한마디로 지구라트를 건설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폐허로 남은 바벨탑>

구약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바벨은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유태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성경의 한 자 한자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바벨탑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바빌론에 있다는 바벨탑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도전한 사람이 독일의 건축가 콜데바이(18551925)이다.

그는 1913년에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에사구이드의 점토판이라 불리는 점토판을 발견하였다. 원본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각종 사료들을 종합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500만 개의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건물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는 것을 밝혔다.

 

 

1층은 세로 가로 91.4미터에 높이 33m. 2층은 세로 가로 78미터에 높이는 18m이며 3층은 세로가로 60미터에 높이는 6미터다. 이후 4층부터 6층까지 세로가로 61미터, 42미터, 33미터로 줄어드는데 높이는 6미터로 고정되었고 마지막 7층은 세로가로 24미터에 높이는 15미터다.

당시 지구라트 중 규모가 큰 것이 가로세로 약 100여 미터였는데 대지면적 200미터이며 본건물의 크기가 100미터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국가적인 신인 마르둑에게 바쳐진 것이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약 15킬로미터나 되며 27m 높이의 도시 내벽을 따라 경계용 탑들이 서 있었다. 도시 한 편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 천연 방어선을 이루었으며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지어졌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유명한 공중정원도 성 안에 있었다.

바빌론이 얼마나 거대한가는 바빌론 성 안에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 마르둑 신을 위한 예배당 55,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00,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00개소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400개의 제단이 있었다고한다. 가히 신전의 도시라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 바벨탑을 하늘과 땅 사이의 가장 높은 장소에 있는 집이라는 뜻의 에테메난키라고 불렀다.

 

바벨탑 잔해 유적

바벨탑은 바빌론의 운명처럼 여러 번에 걸쳐서 철저히 파괴되었는데 그것은 정복자에게 바벨탑이 위압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벨탑은 몇 차례에 걸쳐서 복원되었는데 공중정원의 창시자라고도 비정되는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본격적으로 재건한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아버지인 나보포라싸는 바벨탑을 재건하게 된 이유를 점토판에 적었다.

 

마르둑 신이 나에게 에테메난키의 기초를 지구 중심까지 닿도록 단단하게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야만 하늘까지 오를 수 있는 건물을 만들 수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점토판에는 자신이 바빌론에 화려한 청색 법랑 처리를 한 구운 벽돌로바벨탑의 정상 부분을 장식했는데 그것은 푸른 하늘색을 칠함으로써 하늘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한 후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시도한다. 그런데 당대의 최강자인 알렉산더 대왕도 이 작업이 워낙 거창한 사업이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1만 명의 인원이 2개월간 투입된 후의 일로 이후 재건 시도는 없었지만 현재 이라크 정부는 바벨탑을 재건할 계획이라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