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바빌론의 공중 정원과 바벨탑

공중정원과 바벨탑(4)

Que sais 2021. 1. 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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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정원 이야기>

세계7대 불가사의의 원전을 만든 필론이 기원전 200년 경임에도 그 멀리 있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에 대해 거론했다는 것은 그가 바빌론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렉산더가 바빌론까지 연결로를 만들어 준 것이다.

필론은 바빌론을 보고 너무나 감탄하여 바빌론 성벽과 공중정원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바빌론 성벽은 중세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그는 공중정원을 세계7대 불가사의 첫 번째로 거론하면서 짧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을 적었다.

 

공중정원이라 함은 공중에 식물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땅 위의 지붕에 나무들이 있다는 뜻이다. (중략) 정원의 경계에 있는 흙으로 덮여진 땅은 경작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위로부터 물이 내려오는 수로가 있는데 완만한 경사를 통해 물이 흐르며 다른 쪽에서는 압력에 의해 물이 올라가는데 이것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작동된다. 수로의 기계적 성질은 연속적으로 물이 돌게 하는 나선형이다. 옥상의 커다란 집수정에서 공급되는 물이 정원에 심어진 식물들의 뿌리를 적셔 습기를 유지하게 한다.’

 

필론은 공중정원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가꾸어 놓은 인공적인 조형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공중정원 물 흐름을 설명하는 수로의 기계적 성질을 특별히 강조했다. 이는 필론이 당대의 공학자이자 기술자이기 때문으로 학자들은 그가 돌게 하는 나선형의 기계에 대해 짧게 적었지만 바로 이 기술에 감탄하여 그로 하여금 공중정원을 7대불가사의 중 첫 번째로 거론한 것으로 추정한다.

 

공중정원 상상도

그러므로 그의 글은 추후 수많은 기술자들로 하여금 환상을 준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필론이 적은 나선형 기계가 가동되었다면 그 기계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느냐이다. 이는 높은 곳에 일일이 물을 길어 나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를 작성한 퀸트 크루스는 공중정원에 대해 필론과 유사한 내용을 적었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은 공중정원으로 성벽의 정상부분이다. 여러 가지 나무와 그 때문에 생기는 그늘이 생겼고 기둥들 사이는 네모난 돌이 깔려있다. 두터운 흙이 깔려있고 배수구가 있다. 나무들이 있는 테라스50피에(1피에는 약 30센티미터)8꾸데(1꾸데는 50센티미터)의 두께를 갖고 있는데 어떠한 과일도 천연 조건과 같이 생산할 수 있었다.’

 

위의 설명을 보면 공중정원은 실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 정원이 있다는 의미다.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露薹) 즉 발코니에 풀과 꽃, 수목을 심었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계단식 아파트의 발코니에 꽃과 커다란 나무들을 심은 것과 유사하다.

학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세계7대 불가사의에 첫 번째로 등장할 수 있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도대체 누가 건설했느냐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는 유럽의 고대 아이콘으로 볼 수 있는 세미라미스와 바빌론의 영광을 재현했다는 네브카드네자르 2이다.

 

바빌로니아의 클레오파트라, 세미라미스

세계 역사상 바빌론처럼 수많은 정복자들의 발이 지나간 곳은 없다고 할 정도로 이곳은 전쟁의 근거지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당대에 이 지역을 차지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지나간 유명한 왕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바빌론을 재건하고 공중정원을 직접 건설했다는 아시리아의 정복자 세미라미스는 특이한 인물이다.

놀랍게도 세미라미스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 사실 남녀평등이 보편화 된 현대에서조차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여자는 많지 않다. 고대의 기록에 여자의 이름이 종종 나타나긴 하지만 대부분은 남편인 왕의 반려자로서, 또는 그녀가 특별히 아름답거나 아들이 유명한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에 거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세미라미스는 이러한 관례를 깨고 남자 지배자들과 동격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세미라미스에 대한 전설은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근래까지도 학자들은 세미라미스가 실존의 여자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것은 세미라미스라는 이름이 기원전 1세기에 시실리에서 활동한 그리스의 역사가인 디오도로스가 적은 바빌론의 지배자 이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래에 학자들은 그 이유가 세미라미스라는 바빌론의 언어를 그리스식으로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라는 한자로 적지 않고 풍신수길이라고 한글로 적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세미라미스를 기원전 823년에서 810년까지 바빌론을 통치했던 샴시 아다드 5세의 왕비인 삼무 라마트라고 추측하고 있다. 샴시 아다드 5세는 유명한 아슈르나시르팔 2(기원전 883859 재위)의 손자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아시리아를 부흥시킨 아다드니라리 2세의 손자로 강력한 정복정책을 감행하여 아시리아를 제국다운 제국으로 만든 정복자로 유명하다. 그는 아시리아 본토의 북서, 카시아리 산맥의 산악 민족들을 토벌하여 북방 통상로를 확보하였고 티그리스강 상류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농경지를 확보했으며 시리아,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를 정복했고 수도를 님루드로 옮겼다.

아시리아의 왕들은 전투는 물론 국내를 다스릴 때에도 잔혹함으로 유명했는데 그 중에서도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가장 냉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바로 아시리아의 이리. ‘아시리아의 이리라는 명성이 그를 당대의 패자로 만든 것은 사실로 그가 지중해 방면으로 원정할 때 그의 잔학성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오늘날의 레바논을 중심으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고대 지역인 페니키아의 모든 도시들은 재빨리 공물을 바치면서 환심을 사기에 바빴다고 한다.

 

바빌론의 세미라미스(에드가 드가 그림)

그의 아들 샬마네세르 3(기원전 858824 재위)도 정복 사업을 계속 추진하여, 시리아 전역과 팔레스티나 등에서 아시리아의 패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의 만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음모로 성경에서 니느웨로 나오는 니네베, 앗슈르 등 오랜 전통을 가진 주요 도시에서 대반란이 일어났다.

그를 이은 왕이 샴시 아다드 5니노스로 각지에서의 반란을 효율적으로 제압하고 바빌론 제국을 보다 공고히 한다. 그러나 니노스가 그의 아들인 아다드-니라리 3세가 어렸을 때 사망하자 왕비인 세미라미스가 몇 년 동안 바빌론을 섭정 통치하게 된다. 이때부터 세미라미스가 화려하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다.

그녀의 전설은 지중해의 앗사론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그녀를 살린 것은 비둘기였다. 마침 목동이 비둘기에 둘러싸인 그녀를 발견하여 어른이 될 때까지 목동으로 키웠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이 인근 지방까지 알려지게 되고, 아시리아 왕이 파견한 메노네스 총독이 그녀를 아내로 삼는다.

니노스의 정복 정책은 계속되고 지금의 아프카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부근에 있던 고대 왕국 박트리아의 수도인 박트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시리아군의 무차별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박트라는 순순히 함락되지 않았다. 결국 니노스는 후퇴를 결심하게 된다. 이때 한 장수가 나타나 선봉에 나서서 아시리아군을 총지휘하며 맹렬하게 파고 들어 결국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장수가 바로 남편 메노네스를 따라 전장에 나섰던 세미라미스였다.

니노스는 난공불락의 성이 한 여자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든 건 그녀의 빼어난 미모였다. 한 눈에 반한 니노스는 메노네스에게 그녀를 자신에게 양보하라고 했지만 메노네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른 메노메스의 처사가 매우 괘씸했지만 세미라미스를 단념할 수 없었던 니노스는 자신의 딸인 소산느와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번에도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위협을 한다. 결국 메노네스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자살을 한 것이다.

니노스가 세미라미스를 왕비로 맞아들이고 기뻐한 것도 잠시,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 때문인지 너무도 일찍 죽고 만다. 결국 어린 왕을 대신해 아시리아를 통치하던 그녀는 아들의 섭정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욕심을 갖게 된다.

 

여전사 세미라미스

외국인인 그녀가 권력을 잡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두 가지의 커다란 이점이 있었다. 첫째는 아시리아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라는 타이틀이 있었고 둘째는 그녀가 아름답다는 점이었다. 독신이 된 그녀는 미모를 이용하여 자신이 정권을 잡는데 도움이 될 남자들을 모두 유혹하여 동침 한다. 결국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그녀는 왕인 아들의 섭정자에서 벗어나 직접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총명한 여자인 동시에 냉혹한 여자였다. 자신의 뜻대로 정권을 완전히 잡자 그녀는 완전히 돌변한다. 우선 자신과 관계를 맺은 모든 남자들을 살해했다. 그런 후 군을 동원하여 아시리아 사상 가장 원거리의 원정을 단행한다. 그녀의 군대는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서쪽으로는 리비아까지 원정하여 아시리아의 영토를 넓힌다. 이 원정이야말로 그녀가 국내에서 취한 파렴치한 행동을 희석시키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학자들은 그녀를 아시리아의 최대의 영웅으로 부각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