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아나톨리아 지방은 매우 오래된 고대 문명 중에 하나인데 언제 초기 정착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기원전 2000년 전에 에페소스에 도시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자료에 의하면 이곳에 이오니아인 즉 에게인들이 이주한 것은 기원전 1200〜1050년 사이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주하기 전에 아나톨리아에는 렐레지안, 펠라스지안 그리고 카리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에게인은 상당히 많은 이름으로 나뉘어졌는데 이올리아인들은 트로이아드에 정착했으며 도리아인들은 할리카르나소소, 그리고 이오니아인들은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 정착했다.
자료에 의하면 세계7대불가사의인 에페스(에페소스)는 아테네 왕 코드루스의 아들인 안드로클로스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는 신탁이 예언해 준 생선과 야생 곰이 안내한 카이스테(작은 멘테레스 강)가 바다로 유입되는 해안가에 에페수스를 건설했다. 에페수스는 ‘대지의 여신의 도시’란 뜻으로 ‘아르자와의 왕국’에 있는 도시의 이름인 ‘아파사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에 토착민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았으나 결국 그들을 복종시키고 아나톨리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들이 건설한 도시들은 프리네, 밀레투스, 테오스, 키오스, 클라조메내, 미우스, 사모스, 포카에, 레베두스, 에페수스 등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으나 네 개의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초기에는 왕들이 지배했으나 후에는 몇몇 사람이 국가를 지배하는 과두정치로 변모했고 세월이 지나면서 유명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운다.
당대에도 유력한 지역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인데 그들이 섬기는 신은 서로 달랐다. 그리스는 아테네 여신을 섬긴 반면 아나톨리아에서는 아르테미스를 섬겼다.
수많은 크고 작은 만(灣)들이 산재한 서부 아나톨리아의 해안선은 해상 교역을 위한 천혜의 장소였다. 포에니아인들은 해상무역을 독점했는데 심지어는 50여척의 배로 이집트와 무역을 하고 흑해와 마르마라 해에는 식민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들은 후에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남부 해안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 해상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유명한 구전문학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다. 대체로 이들 서사시는 8세기 중엽 이오니아와 이롤리안 방언을 혼합해서 사용하던 스미르나 태생의 호머가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오니아가 모든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된 것은 디디마 신전이 신탁의 중심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리디아인들은 6〜7세기에 금 60퍼센트와 은 40퍼센트를 혼합해서 만든 동전을 도입했다. 이들 성분을 종종 속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을 찾아낸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지역에서 최초의 독재 정치가 시작되었는데 ‘독재(Tyrant)'란 말은 리디아에서 온 것이며 ’군주(Lord)'를 뜻한다.
이오니아 출신 중에서 유명한 학자들로는 헤라클레이투스, 핵과 핵의 분리에 대해 소개한 아낙사고라스(태양과 달의 신성함을 부정하고 태양과 달이 여러 가지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여 아테네에서 사형 당함), 전 우주에 단일 신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제노파네스, 서양 철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탈레스 등이 있다. 탈레스가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두 가지 명언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① 부끄러운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지 말 것.
② 당신이 나이 들었을 때 젊어서 당신이 당신의 부모에게 한 만큼만 기대할 것.
이오니아 사상가들 중에서 과학으로 잘 알려진 사람은 테오스 출신의 테모크리투스(기원전 460〜기원전 390)다. 그는 세상의 어떤 것도 원래의 형태가 사라지거나 변화되지 않고 항상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사물은 형태, 우주에서의 위치, 크기와 무게를 구별 짓는 분할할 수도 없으면서 보이지 않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분자들을 ‘핵’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가 현대인들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다음 말이다.
‘어떤 하나의 과학적 발견이야말로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이오니아인들이 세계 예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오니아양식을 건축 분야에 도입하여 세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양식은 이오니아를 넘어서 그리스 해안까지 그리고 지중해 남부와 심지어 페르시아까지 확산되었다.
고대 건축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코린트식에서 이오니아식은 바로 이들이 개발한 것인데 이오니아 양식이 보다 유명해진 것은 바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신전이 이오니아양식으로 건설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에페수스>
에페수스는 기원전 1200년 경 이오니아의 맹주로 활약하면서 이오니아 연방을 결성하여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기원전 7세기 초에 치메리아인들의 침입으로 황폐해졌다. 그러나 리디아 왕의 통치하에서 에페수스는 지중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였는데 그가 페르시아의 왕에게 패배한 후 에게 해 전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기원전 550년부터 당시 소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로 부상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기원전 560~546 재위)에 의해 에페소스는 점령을 당하게 된다. 크로이소스는 상업의 요충지이자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에페소스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새로운 신전의 건축을 명령하였다. 이것이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크로이소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고 알려져 있던 명성에 걸맞게 그리스 전역에서 당대의 최고 예술가인 스코파스, 프락시텔레스, 폴리클레이토스, 피디아스, 클레실라스, 시돈 등을 동원하여 거대한 기둥에도 화려한 조각을 새기도록 했다. 유명한 아펠레스는 신전 내부에 ‘아프로디테 아나디오메네'라는 그림을 그렸으며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고 알려져 있던 명성에 걸맞게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들을 동원하여 고대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리디아어와 그리스어로 글을 쓰게 했다.
또한 기원전 5세기 초 이오니아 도시가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 재빨리 다른 지역과 분리하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에페수스는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는데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 그의 부하인 리시마쿠스가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구 에페소스를 떠나 남서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새로운 항구와 도시를 건설하고 구 에페소스에 있던 사람들이 옮기도록 명령했다. 그것은 멘데레스 강 하구가 퇴적물로 바다가 메워지고 바다로 통하는 길이 끊어지면서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페소스 인들이 기존의 도시 즉 세계7대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구에페소스를 떠나지 않자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명령을 내린다. 거친 폭풍이 부는 날 기존에 있던 도시의 모든 하수 시스템을 막아 버린 것이다. 더 이상 구에페소스에 머무를 수 없는 주민들이 새 도시로 이주할 수 없었는데 다행한 것은 새 도시의 이름을 에페수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주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라 볼 수 있다.
리시마쿠스에 의한 신에페수스 건설은 적절하여 곧바로 이오니아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부에 걸맞게 대형야외경기장, 체육관, 극장이 들어서면서 짜임새 있는 도시로 발전한다. 역사학자 아리스토스는 에페소스가 그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지라고 묘사했다. 또한 이곳은 정치와 지식의 선두 주자로 에게해에서 두 번째로 철학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에페소스는 차례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90년 로마에 점령되는데 로마인들은 이들 지역을 페르가몬 왕국이 간접 통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기원전 129년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가 그의 전 왕국을 로마제국에 귀속시킨다는 유언에 따라 이 일대는 로마의 아시아 지방이 되었다.
이 당시의 인구는 20만 명이 되었는데 로마에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자 에페소스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술라 장군이 이들을 평정하면서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현재의 에페소스는 이후 건설된 것이다.
여하튼 에페소스는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열두 개 도시 중 하나로 소아시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항상 주변 세력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는데 뛰어난 상술과 정치적 수완으로 자신들의 권리와 영향력을 항상 지켜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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