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바빌론의 공중 정원과 바벨탑

노아의 홍수(5)

Que sais 2021. 1. 2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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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찾기>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는 성경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아라라트 산의 정상 부근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호수는 일 년 중 두 달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 열 달은 얼음에 묻히기 때문에 위치조차 알아내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이들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 근처에 도달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노아의 방주는 이 호수 안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독일의 백만장자 슐레이만호머의 전설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다소 무모한 추론만을 갖고 1873년에 트로이 유적을 찾자, 이에 고무된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 흔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고대로부터 아라라트 산은 사람들로부터 매우 신성하게 여겨졌다.

 

아라라트는 노아의 방주에덴동산이 있었던 성지로 하나님이 출입을 금한 금역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년 바빌로니아의 신관 베로소스방주가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언제나 배에서 송진을 긁어내어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마르코 폴로도 그의 동방견문록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고 썼다.

기원전 5세기에 칼데아 인의 사제들이 이 산에 올랐고 방주에 칠해져 있던 역청을 긁어 왔다고 전해지는데 근세의 공식적인 자료로는 1829년 독일의 파로트 교수가 처음으로 아라라트 산 꼭대기에 올랐는데 방주를 찾지는 못했지만 정상이 넓고 평평한 것으로 보아 방주가 얹힐 만하다고 하였다. 1876년에는 영국의 브라이스 경3,900미터 지점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이 틀림없는 나무 조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이 방주의 파편이라고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유물 찾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되었다. 슐레이만이 트로이를 발견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1883년 지진 피해를 조사하던 터키 관리들은 빙하에 드러난 나무로 된 검은 물체를 발견하였다. 거의 다 얼음에 묻혀 있었으므로 전체 모습과 크기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는 높이 5미터짜리 칸막이가 줄이어 있었다고 하였다. 1893년 누리 대주교는 방주를 목격하였는데 적갈색의 대단히 두꺼운 용골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고했다.

20세기에 들어 노아의 방주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이 보고되기 시작하였다. 1916러시아 항공 분견대의 코스코비키 중위는 아라라트 산을 정찰하였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눈 덮인 산꼭대기를 돌아서 남쪽으로 날아가니 사파이어처럼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나는 낮게 떠서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는데 거기에는 둥그스름한 지붕으로 덮인 묘하게 생긴 배 한 척이 얼음 속에 파 묻혀 있었다. 그 배는 엄청나게 컸다나는 그 사실을 대장에게 알렸다. 나를 따라 호수가의 배 모양을 살펴본 대장은 부대로 돌아오면서 틀림없는 노아의 방주라고 하였다. 대장은 로마노프 황제에게 노아의 방주를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자 얼마 안 있어 2개 중대를 탐험대로 보내왔다코스코비키 중위는 자신이 발견한 곳으로 탐험대와 함께 올라가 그 배의 크기를 재고 사진도 찍었다. 배 안은 몇 백 개나 되는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떤 방은 아주 크고 천정도 높았다.’

 

1917년 탐험 대장은 사진과 함께 자세한 보고서를 황제에게 보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보내진 직후 러시아 제국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너졌고 보고서와 사진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 증언은 코스코비키라는 사람이 익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평가 절하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1917년에 러시아 육군 장교들이 아라라트 산의 탐험대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 비행사의 이름은 사보로키 중위와 레이진 중위였으며 대장은 콜 대령이었다. 그러므로 누가 익명의 코스코비키 중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라라트 산에 있었던 방주에 대한 탐험기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 자료로 재평가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시 소련 공군 마스케린 소좌의 부하가 얼어붙은 호숫가에 반쯤 파묻힌 배가 있다고 보고하였고 이 보고를 근거로 특별 조사반이 조사하였는데 그들의 보고로는 배의 길이가 120미터도 넘는다고 했다. 1955년에는 배의 마스트로 쓰인 듯한 1.5미터의 둥근 목재를 프랑스인 나바라가 가지고 돌아왔는데 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3천 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노아의 방주의 유물이라고 발표되었다. 1959년 터키에 머물렀던 미 공군 428 전술 비행중대 슈잉하머 소위도 아라라트 산의 방주에 대하여 러시아 군인들과 거의 같은 내용을 증언하였다.

 

나는 F-100 전폭기를 몰고 아라라트 산으로 갔다아라라트 산을 돌자 낙타 등 같이 생긴 산등성이 밑에 배 같은 모양이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너비는 12미터쯤이고 길이는 얼음 위로 드러난 것만 30미터가 넘었다. 우리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고공 정찰기인 U-2기가 사진을 촬영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본 물체는 틀림없이 네모난 배 모양이었다.’

 

1960년 터키 공군의 커어티스 소령은 아라라트 산을 항공 촬영하라는 지시를 받고 촬영해 온 항공사진을 살펴보다가 해발 2,000미터의 산허리에 있는 달걀모양의 물체를 발견했다. 여러 차례 거듭된 화산폭발로 인해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 속에 묻혀 있는 기이한 물체였다. 소령의 사진을 조사한 한 전문가는 노아의 방주 이외의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사진측량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아더 브런덴부르거 박사에게 보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단언한다. 아라라트 산의 2,000미터 지점에 있는 물체는 틀림없는 배이다.’

 

1969년에는 미국의 고고학 탐험대가 대규모 조사단을 조직해 등정에 올랐다. 면밀한 조사 결과 북서부의 해발 4,900미터 지점에서 깊이 6미터의 빙하 밑바닥에 배 비슷한 물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커어티스 소령이 발견한 곳과 해발에서 차이가 나지만 크기(150미터)는 비슷했다. 이들이 회수한 나무 조각을 미국으로 가지고가 검사한 결과 프랑스인 나바라와 마찬가지로 4,0005,000년 전 것임이 판명되었다.

1970년에 클로포드가 노아의 방주를 발굴할 계획으로 터키 정부에 등산신청을 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구 소련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기각했다. 아르메니아공화국은 소련연방의 하나였는데 아라라트 산의 정상에서 아르메니아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군사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74ERTS(지구자원탐사기술위성)가 아라라트 산에서 어렴풋한 물체를 찍었는데 그 모습은 방주와 꼭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그것은 화산암이 침식되어 우연히 배 모양을 띤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110월 미국의 NBC 방송은 스페이스 이미징사의 인공위성 이코노스 2가 촬영한 아라라트 산의 괴물체는 부분 부분이 끊겨 있는데 아라라트 산의 화산석과는 색깔과 질감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 물체는 눈 위로 드러난 부분의 길이만 183미터에 달한다.

20029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한 최첨단 인공위성 퀵버드(QB2)가 지상에 있는 직경 60센티미터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해낼 수 있는 탐지장치를 동원하여 아라라트 산을 중심으로 촬영을 하고 있으므로 노아의 방주에 대한 실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66월에는 그동안의 설명과는 다소 다른 놀라운 자료가 발표되었다.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고대 선박 잔해가 이란 엘부르즈 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아의 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묻혀 있다고 설명되었는데 이들은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는 장소가 아라라트산이 아닌 이란 테헤란 북서쪽에 위치한 엘부르즈산이라고 주장했다. 성서연구단체BASE(Bible Archaeology Search and Exploration)은 약 4,000m 고도의 이란 엘부르즈 산 정상 인근에서 선박 잔해를 발견했는데 길이는 약 121m나 된다. 아라라트산에서도 선박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유효하다면 다소 헷갈리지만 노아의 방주는 적어도 두 곳에 있었다는 아이러니도 생긴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노아의 방주가 두 개라는 것은 어떤 연유로든 두 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라라트 산 선박의 진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한 배 형태의 물체가 아라라트 산에 있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렇다면 아라라트 산에 있는 물체가 정말 노아의 방주냐는 것이다.

학자들은 성경의 글을 토대로하여 노아의 방주의 약 135미터, 22.5미터, 높이 13.5미터 정도일 경우 배수량은 약 43,000톤이 되며 보다 크게 잡으면 66,000톤이 된다고 계산했다. 반면에 길가메시 신화에 나오는 방주는 이보다 훨씬 커 7층 갑판에 배수량은 무려 228,000톤에 이른다.

그런데 선박 전문가인 로버트 무어 박사는 이처럼 거대한 선박은 1940년대 이전에는 만들 수 없으며 단지 19세기 이후 미국 해군에 의해 건조된 대형군함이 처음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4,0005,000년 전에 몇 만 톤이나 되는 대형 선박을 만든다는 것은 넌센스라 아니할 수 없다.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5000년 전 중동지역의 선박 건조 기술은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3,1002,8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지역에서 발굴된 통나무를 사용하여 만든 선박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인데 이 선박의 크기는 23m x 2m로 성서에 묘사된 노아의 방주와 비교하면 1.5%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선박보다 더 큰 크기의 선박이 중동 지역에서 발견된 예는 없다. 간단하게 말해 이러한 거대한 크기의 배를 노아의 가족들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아라라트 산의 물체를 마스케린 소좌가 조사한 바로는 길이가 120미터나 되었다는 것을 볼 때 크기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지구 바닷물의 양을 계산하면 아무리 세계를 뒤덮을 만한 홍수가 일어났더라도 3,000미터 이상이나 되는 높이로 배가 올라갈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더욱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그 정도의 대홍수가 일어났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아라라트 산에서 발견된 흔적들은 무엇이냐이다. 항공사진으로 보아도 아라라트 산에 방주와 같은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문구 하나 하나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얘기겠지만 아라라트 산에서 발견된 나무 조각들은 노아의 방주의 실물이라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성경에 적힌 전설상의 방주가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의식용 배 또는 건조물의 일부일 가능성이 많다. 즉 아라라트 산에 있다고 생각되는, 적어도 노아의 방주의 전설과 관련되는 어떤 물체는 후대의 열성적인 종교인들이 성경의 묘사를 토대로 제작하였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 가설을 증명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중세에 아라라트 산 기슭에 있던 한 수도원에 많은 순례자들이 몰린 일이 있었다. 수도원에 노아와 그 가족의 것이라고 알려진 유물들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수도사들이 산 정상에다 성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크기의 노아의 방주를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인 나바라가 갖고 온 나무를 새로이 연대 측정해 보았더니 기원 후 69세기경, 12001400년 전의 중세 시대 것으로 판명되었다.

노아의 방주가 두 개 있다는 것도 위 내용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과학과 지리 정보가 현재와 같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므로 각 지역에서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이를 선전에 사용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근래 길가메시가 신화속의 사람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는 증거가 이라크로부터 나왔다. 길가메시의 주인공 길가메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2,500년 경의 무덤이 발굴됐다는 것이다. 독일 뮌헨 <바이에른역사유적연구국>의 요르크 파스빈더 박사는 한때 유프라테스강이 흘렀던 곳에서 길가메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포함한 우루크 도시 전체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서사시에 따르면 길가메시왕은 그가 죽은 뒤 유프라테스강의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지자 강 밑에 축조된 무덤에 안장됐다.

파스빈더는 도시 바로 바깥 쪽에 옛날 유프라테스강이 있던 자리의 한 복판에서 도시의 흔적과 매장지로 보이는 건축물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100헥타르(100) 이상에서 발굴작업을 벌인 결과 서사시에 묘사된 정원 구조물과 야외 구조물들, 그리고 바빌론 시대의 집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적 중에서도 특히 놀라운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운하 체계였는데 운하 내부에서 홍수로 집들이 부서졌음을 보여주는 구조물 흔적도 찾아냈다고 말했다. 도시는 사막 한 복판의 베니스라고도 할 수 있는데 홍수로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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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이라크서 4500년 전 길가메시무덤 발굴, 연합뉴스, 2003.04.30.

노아의 방주 발견? 이란 4,000m 산에서 121m 길이 선박 발견, 김민수, 팝뉴스, 2006.7.3.

길가메시 이야기, 히스, 히스토리아, 2007.01.27.

http://kin.naver.com/knowhow/entry.php?d1id=10&dir_id=10&eid=/V9KQMwNOvOlxqNKg9AL7zHltDW5X87b&qb=wMzB/cauv6G8rSC6zsfHuKYgwOe0wiC55rn9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952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테오도르 H. 가스터, 대원사, 1994

미스터리 세계사, 프랜시스 히칭, 가람기획, 1995

발굴하는 발굴의 역사, C. E. 세람, 차림, 1997

世界歷史49大迷, 시앙스신, 구경출판사복무유한공사, 2004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이종호, 인물과사상사, 2004

과학으로 찾아간 아틀란티스, 이종호, 월드북, 2005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바다출판사, 2007

사기, 신화 그리고 불가사의, 케니스 페이더. 서경문화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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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신화 그리고 불가사의, 케니스 페이더. 서경문화사, 2008

역사의 오류,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열음사, 2008

세계 역사 속의 49가지 미스터리, 시앙스신, 집사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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