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41) : 네안데르탈인 등장(5)

Que sais 2021. 2. 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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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진 네안데르탈인>

가짜 필드다운이 이와같이 큰 명성을 얻은 것은 당대의 염원에 일부 전문가들이 부응한 결과였다. 한마디로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할 잃어버린 고리가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힌튼 등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필드다운인의 사기 사건은 어쨌든 인류 진화의 역사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다. 바로 네안데르탈인본격적으로 재평가되는 계기였다.

많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이 털복숭이 짐승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이 화석이 인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불 박사네안데르탈인을 격하시키는데 이용했던 뼈를 분석한 결과 그 유골에 관절염이 있었던 것도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들의 차이점은 팔이나 다리의 뼈가 유난히 굵다는 점이다.

키는 160센티미터 정도로 크지 않지만 몸이 엄청나게 다부지고 얼굴은 희며 머리카락은 금발이다. 움푹 파인 눈은 큰 코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눈의 색깔은 파란색으로 추측된다. 간단하게 네안데르탈인은 키 165센티미터에 100킬로그램 정도의 건장하고 땅땅한 사람을 상상하면 된다. 신체 비례는 현대 에스키모인들과 비슷한데 네안데르탈인들이 이 같은 몸매를 갖고 있는 것은 추운 곳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굵고 짧은 몸은 체중에 비해 체표 면적이 작으므로 열의 방출이 적다. 원래 근육이 발달되어 있으면 처음부터 열을 많이 발생할 수 있지만 피하 지방이 많으면 과분한 열의 발산을 막는다. 또한 뇌 용량은 1,500cc로 현생 인류보다도 컸다.

이와 같은 특징은 현재의 극지방과 유사한 환경 아래에서 적응한 결과로 해석한다. 먼저 코의 옆에는 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동맥이 위치하는데, 동맥이 비강 가까이 있으면 극도의 추운 기후 아래에서 호흡시에 찬 공기가 비강을 통과할 때 뇌로 전달되는 혈액의 온도가 급격히 저하한다. 혈액의 온도 저하뇌의 원활한 대사운동을 방해하므로 추운 기후에서 뇌의 대사 운동을 원활히 유지하려면 동맥혈류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강과 동맥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동맥류의 급격한 온도저하는 어느 정도 방지될 수 있으므로 결국 코가 넓고 크게 발달하여 동맥은 비강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턱과 정두부는 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발달하게 되므로 안면과 두개골 상부는 매우 튀어나오게 된다. 아울러 짧은 사지와 원통형의 몸집은 신체의 중심부에서 끝부분까지의 거리를 축소시켜 체열손실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또한 극심한 환경조건으로 인하여 이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힘들 수밖에 없으므로 사지뼈가 억세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은 결론은 많은 유적들이 당시 대륙 빙하 가장자리의 매우 추운 기후지대의 개활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동굴과 같은 자연적 보호처가 없더라도 극한적인 환경에서도 충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많은 유적들이 높은 해발고도 지역에 위치하는 것을 감안하여 그들이 높은 고도와 산간지역의 생활에도 충분한 적응력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이는 세계 각지가 더 이상 인류의 서식과 이주를 방해하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들이 살았던 시기가 추웠다고는 하지만 온난한 시기도 많았으며 프랑스의 남서부나 이베리아 반도 등은 오늘날과 기후가 비슷했다. 단지 겨울이 다소 길고 더 추웠는데 빙하기가 약 127000년 전에 끝나자 영국과 유럽대륙이 분리되었다. 당대에 유럽에서도 코끼리가 살았는데 이들의 몸집은 현대보다 더 커서 어깨까지의 높이가 5미터 정도 되었는데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들을 사냥했다는 것은 상당한 지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5000년 전 따뜻했던 간빙기가 끝나고 날씨가 다시 추워지자 숲이 줄어들고 초원이 다시 확산되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동굴 속의 벽에 나무막대를 기대놓고 가죽을 덮여 씌워 집을 만들었다. 발견되는 석재는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찌르개, 여러 종류의 긁개, 돌날 등이 사용되었고 이를 무스티에 문화라고 하며 이 시기부터 중기 구석기시대로 분류한다.

그들은 동굴 입구의 중앙에 을 피우고 불 근처에서 돌로 도구를 만들었다. 대부분 주변의 돌을 사용했지만 먼 곳에서 구한 흑요석 등과 같은 질 좋은 석재들은 여러 차례 다시 손질해서 사용했다. 그들은 황철광으로 만든 부싯돌로 불을 피울 줄 알았다.

네안데르탈인을 평가할 때 과거부터 논쟁의 초점이 된 것은 네안데르탈인이 정말로 말을 할 수 있었느냐이다. 해부학적인 증거만 보면 언어 사용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발성 기관인 후두가 너무 높이 위치해 있어서 침팬지가 내는 소음 정도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자들은 침팬지들의 그런 억눌린 듯한 음조나 말로도 다른 침팬지들에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하튼 언어의 문제는 계속 네안데르탈인들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데 1983이스라엘의 콰제 동굴에서 거의 손상되지 않은 남자 네안데르탈인 유골은 이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 유골은 섬세한 ‘U'자형 설골을 가졌는데 그것은 인간의 후두 연골에도 붙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네안데르탈인이 말 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인간의 조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려한 결정적인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매장 풍습 발명>

네안데르탈인들을 현대인의 조상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증거는 매장 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종교적 감정을 갖고 있고 그들 생명에 시한이 있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 그래서 죽은 자에 대해 보이는 배려인간애의 척도로서 삶의 성격과 가치에 대한 이해의 한 표징으로 간주한다.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물론 노약자들을 돌보았다는 증거를 볼 때 정신적인 면모가 발달했다고 추정한다.

시신을 의도적으로 신중하게 매장한 징표는 지난 10만 년 내에서만 나타나는데 프랑스의 도르도뉴 지방의 라 페라씨 유적이 대표적이다. 1908년에 발견된 이 유적이 주목을 받는 것은 하나의 유골이 아니라 한 집단 전체의 유골이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묘지이기 때문이다. 앙리 델포르트 박사는 몇몇 피장자들이 동서향의 일정한 방향으로 매장되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의 무스티에(Le Moustier) 유적지에는 10대 소년이 옆으로 누워서 머리를 팔위에 얹어 놓은 상태로 매장되어 있었다. 그의 손 옆에는 훌륭한 돌도끼 한 개가 놓여 있고 소의 뼈가 둥그렇게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소년의 사후에 있을 여로에 도움이 되도록 무덤에 놓여진 것이었다.

1951년과 1960년대 사이에 랄프 솔스키 박사는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지역의 바라도스트 산맥에 있는 샤니달(Shanidar) 동굴에서 많은 네안데르탈인 유적을 발견했다. 발견된 인골은 40세 정도의 남자인데 다리가 접히고 구부러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인골 주위에서 접시꽃, 푸핀, 엉겅퀴, 무스카리 등을 비롯한 많은 꽃가루 화석이 발견되었다. 죽은 자에게 꽃을 바치는 마음을 간직했다는 사실은 시체를 정성스럽게 묻었다는 것으로 원시인의 이미지를 근본부터 뒤덮는 일이었다.

에릭 트링카우스 박사는 이곳에서 출토된 두 개의 두개골을 세밀하게 연구한 결과 그것들이 인공적으로 변형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그러한 두개골 변형은 유년기에 머리에 단단한 띠를 둘러 묶음으로써 생기는데 아마도 나름대로의 미적 개념에 부합시키기 위해 행해졌다고 추정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이 나름대로의 문화 활동을 한 증거라는 설명이다.

이후 이곳의 유물에 대한 연구는 중단되었는데 2015영국 포메로이 박사가 다시 발굴에 착수했다. 포메로이 박사의 연구는 고기후, 고생태 및 문화적 틀에 맞추었는데 놀랍게도 70,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의 유해를 발견했다. 유해는 심하게 손상된 두개골의 일부와 일부 몸통 뼈다. 포메로이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시체를 배치하기 위해 땅을 파고 뼈 주변의 퇴적물에서 고대 식물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시신이 있는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돌을 사용하였으며 이 지역에 여러 사람의 시체를 매장하여 공동묘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매장을 했느냐 아니냐로 큰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죽은 사람의 매장 징후가 높은 인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네안데르탈인이 나름대로 영적 또는 현대 종교와 같은 생각을 가졌음을 암시하는 증거로도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메로이 박사는 이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매장은 어떤 종류의 영적 아이디어, 또는 적어도 그룹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 죽은 자를 돌보는 것, 슬픔이나 상실의 느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네안데르탈인이 죽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죽은 것을 돌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테쉭 타쉬(Teshik Tash) 동굴의 한 네안데르탈 소년의 무덤도 정성들여 시체를 묻은 또 하나의 예다. 시체 주위에는 6개의 염소 두개골이 배열되어 있었다. 근처의 화덕이 이 매장에 관련되어 산양들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장례연이 열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후에 퇴적물 층이 더 쌓임에 따라 때때로 몇 개소에 불이 지펴졌으며 동굴 내에 석기가 남겨졌는데 이는 동굴 속에서 사람이 꾸준하게 살지 않고 때때로 들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매장을 특별하게 생각하였고 더불어 매장이 매우 슬픈 사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체코의 한 고분에서는 시체 위에 돌로 만든 보호층 아래 14개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시신은 내세에서도 계속 가깝게 지내겠다는 뜻에서인지 서로 붙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모라비아의 한 고분에서는 매머드의 거대한 견갑골 밑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시신 위에 적색의 황토가 소량 뿌려져 있었다. 생명을 주는 혈액으로 추정했을지도 모르는 적색 황토는 유럽의 여러 고분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주로 웅크리거나 자궁 속의 태아 모습으로 수습된 시신 위에 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언어도 가능>

그뿐 아니다. 네안데르탈인문화적으로도 성숙했다. 동물의 뼈나 이빨에 구멍을 뚫어 팬던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약 35,000년 전의 동굴에서 피리가 발견되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피리곰의 넓적다리뼈로 만들어졌고 인공적으로 뚫은 것이 분명한 4개의 둥근 구멍이 있었다. 하루 종일 사냥에 지친 네안데르탈인들이 동굴 안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피리로 미뤄보건대 네안데르탈인들이 언어를 갖고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즉 네안데르탈인은 예술행위, 사체의 매장고도의 상징행위를 하던 집단으로 의식적으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면서 언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U'자형 설골이 있는 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호모사피엔스에 포함되는 네안데르탈의 문화를 흔히 무스테리안(Mousterian) 공작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호모사피언스의 다른 지역의 도구와는 매우 다르다.

무스테리안 공작의 중심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지역이다. 이들은 르발로아 기법(Levallois technique)이라는 소위 준비된 석핵(prepared core)을 이용한 석기 제작술을 갖고 있다. 이것은 석기의 형태와 크기를 제작하기 전에 미리 결정한 후 결정에 따라 석기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학자들은 르발로아 기법의 등장으로 비로소 인간의 사고나 문화적 요인 혹은 기술적 규범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 이전의 석기 제작은 제작과정상의 우연한 산물로 보지만 르발로아 방법은 우연이 아니라 의식을 갖고 도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석기 제작 기술인류기술사상 가히 혁명적 사건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는 대형석기를 위주로 계속 제작했다. 호모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으로 규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다시금 보여준다.

 

참고문헌 :

새로운 증거로 네안데르탈 인 매장 논쟁이 끝남, Ed Whelan, Ancient Origins, 2020.12.11.

문명의 여명, A. J. 가우레트, 범양사출판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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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2007

현대과학으로 본 창세기 빛의 환타지아, 임성빈, 환타지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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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훔친 29가지 이야기, 하인리히 찬클, 글빛냄, 2010

뼈가 들려준 이야기, 진주현, 푸른숲,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