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42) : 호모사피엔스 등장(1)

Que sais 2021. 2. 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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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2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기후는 과거로 돌아갔다.

건조하고 냉하던 기후가 다시 고온 다습한 기후로 변한 것이다. 생활권은 확대되어 거의 100만 년 동안 열대 생활권에 붙잡혀 있었는데 호모에렉투스적도를 떠나 이동을 시작했다.

학자들은 호모에렉투스의 선조로 몸집이 상대적으로 건장한 호모루돌펜시스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들이 호모에렉투스보다 약 50만 년 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발굴에 의하면 호모에렉투스뇌 용적이 커졌고 뇌와 얼굴의 비율이 변했으며 두개저의 굴곡이 강해졌고 척수가 끝나고 시작되는 두개골 아랫 부분의 입구가 더 깊이 위치한다. 또한 이마가 낮고 눈두덩이가 많이 튀어나왔다.

호모에렉투스의 뇌 용량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은 화석으로 증명된다. 200만 년 전 두개골의 용량이 약 800900cc임에 반해 100만 년 전의 화석은 9001,000cc였고 50만 년 전의 것은 1,1001,200cc였다.

학자들은 늦어도 200만 년 전 초기의 호모에렉투스아프리카를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을 호모 에르가스테르 또는 호모 루돌펜시스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은 불을 사용했고 사냥기술이 발전하여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짐승을 쫓아가면서 서서히 생활권을 넓혀나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호모에렉투스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바섬에서 발견된 190만 년 피테칸트로푸스의 앞 어금니는 뿌리가 두 개인 반면 호모에렉투스는 뿌리가 하나다. 그러므로 2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호모 루돌펜시스의 어금니뿌리가 하나인 것을 감안하여 아프리카 땅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하튼 유럽의 기후가 바뀌어 이동에 상당한 제한이 있지만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무리는 남유럽까지 무사히 진출했다. 학자들은 유럽으로의 진출두 길로 추정하는데 첫째는 근동을 통한 이동지브롤터 해협을 통한 이동이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아직 이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마 장래의 어떤 시기에 발견될 것으로 추정한다.

적어도 50만 년 전에 유럽에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빙하기에서 적응할 수 있는 튼튼한 몸매를 갖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선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사회를 조직하고 매머드나 무소를 사냥하였으며 동굴에 살고 있던 곰이나 하이에나와 싸워 이겼고 불을 완벽하게 다루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발달된 언어를 사용하였으므로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할 줄 알았고 노인과 약자를 보호했다. 죽은 사람의 장례를 지냈고 부장품을 함께 매장해주었다는 것은 덤이다.

한편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에 도착했을 무렵 즉 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원시 현대인 즉 호모사피엔스가 진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늦어도 20만 년 전에 현대인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이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인도로 향했으며 근동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크로마뇽인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는데 여하튼 크로마뇽인호모사피엔스가 약 8만 년 전에 지중해 동부 해안에 도착했고 유럽 북부의 네안데르탈인이 내려와 그곳에서 약 5만 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는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도구 제작술이 뛰어났으며 환경을 보다 잘 활용하였고 사회 조직 수준도 훨씬 높았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가 유럽에서 터전을 잡은 네안데르탈인보다 선진화되었다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여하튼 이들은 아프리카 출신 호모사피엔스에 도태되어 전권을 양보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설명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호모에렉투스현대인의 혼합 흔적이 나타났고 스페인에서도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의 혼혈 형태 혹은 공동 조상으로 설명되는 호모 안테세소르가 발견되었다. 유럽에서 두 그룹이 문화적으로 교류했다는 흔적이 나타났는데 이는 앞에서 수없이 다룬 이야기이다.

지질학자 루이 라테가 처음으로 1868 3크로마뇽 동굴지구를 발견했는데, 여기서 4구의 유골을 발굴했다. 중년의 남성, 젊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유아의 유골이다. 이들과 함께 부싯돌 등의 석기와 무기 그리고 조개껍데기와 동물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다. 뼈와 도구들이 발굴된 동굴의 이름크로마뇽이므로, 이후 크로마뇽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두개골은 이마가 높이 나오고 골이 얇은 형태이며 지금의 인류 생김새와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유골 주변에는 귀걸이 또는 목걸이 용도로 추정되는 동물 이빨이나 조개류의 장신구는 큰 반향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이후로 다른 유럽 국가와 중동국가에서도 해당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후 유전자 분야의 발달로 크로마뇽인의 연대는 들쭉날쭉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진화학연구소의 요하네스 크레이즈 박사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가진 공통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DNA를 분석해, 47만 년에서 22만 년 전 사이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종이 분리되었다고 발표했다. 2017의 일이다.

그런데 이들 숫자는 세포핵의 DNA 통해 얻었던 기존에 추정한 분리시기인 765000년에서 55만 년 전으로 추정한 것보다 약 30만 년가량 늦은 것이다.

크로마뇽인의 태동이 최소한 47만 년에서 2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아프리카가설이 얼마나 황당한 것임을 다시금 알려준다. 크레이즈 박사가 이렇게 발표한 것은 독일 남서쪽 호렌스테인-스테달 동굴(Hohlenstein-Stadal Cave)에서 1937년 발굴했던 약 124000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대퇴골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의 DNA가 이들 전후까지 유전자가 같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크레이즈 박사는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이브가 유럽으로 이동했고, 유럽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과 섞이면서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돌연변이가 축적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크로마뇽인의 연대는 계속 혼동을 갖고 오는데 1015만 년 전에 크로마뇽인이 등장했다는 발표도 있지만 크로마뇽의 연대를 매우 낮게 56만 년 전 또는 34만 년 전으로 추산하는 경향도 있다.

여하튼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상당기간 지구상에 함께 살았다고 설명되었다.

엄밀하게 말해 현대의 유전자분석에 의한 년대만 보면 이들은 호모에렉투스와도 함께 살았다는 뜻이다.

네안데르탈인유럽, 중동 지방에 특히 밀집하면서 구세계에 널리 분포되었고 그 인구는 몇 십 만 혹은 몇 백 만에 달했다고 추정한다. 여하튼 이들을 현대인들의 직접 선조인 호모사피엔스로 인식한다. 이들 크로마뇽인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중동에 주로 살았는데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크로마뇽인유럽인의 선조로 분류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은 현대인의 선조가 다소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근래 도출된 아프리카 가설에 의하면 약 20만 년 전에 살던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가 그동안 살아있던 사람들을 대체하고 현대인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당히 헷갈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크로마뇽인과 아프리카의 이브의 관계. 20만 년 전의 아프리카 이브가 크로마뇽인이 되었는가이다.

도대체 크로마뇽인이 누구이냐인데 5만 년 미만의 크로마뇽인호모사피엔스라 본다면 그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이브와 어떻게 연계가 되느냐이다. 이 문제만 보더라도 현생인류가 한 명의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가설 자체문제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여하튼 크로마뇽인이 유럽인만의 선조이든 아니든 인류학자들이 크게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현대인의 전초단계인 문명인으로의 길을 걸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동시대의 전세계를 걸쳐 크로마뇽인처럼 선진 문화를 지속한 호모사피엔스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