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44) : 호모사피엔스 등장(3)

Que sais 2021. 2. 13. 08:55

youtu.be/445dPxpLQ1A

아메리카 호모사피엔스

아메리카에 언제 최초로 인류가 살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베링해협이 얼어붙어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던 25,000년 전에서 늦어도 20,000년 전 이전시베리아, 중국 등 아시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약 15,000년 전에는 버지니아의 캑더스 힐(Cactus Hill) 부근에 자리를 잡았으며 비슷한 시기에 펜실베이니아 남서부의 메도우크로포드(Meadowcroft)에도 살았다. 이들은 바구니를 만들어 식물과 열매, 민물조개 등을 채집했으며 덫을 놓아 작은 야생동물들을 잡았다. 또한 뼈로 만든 바늘로 동물의 가죽뿐만 아니라 식물성 섬유로 된 직물을 바느질하여 만든 옷을 입기도 하였다.

13,000년 전에는 사우스캐롤리나의 토퍼사이트나 캘리포니아 팡바다의 산타로사 섬에서도 살았다. 뉴멕시코 동부 클로비스에는 12000년 전부터 약 500여 년간 살았고, 이 시기 전후의 아메리카인들을 클로비스인이라고 부른다. 학자들은 이들이 북아메리카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살면서 정교하게 제작된 돌촉 등을 사용하여 매머드나 들소 등과 같은 대형야생동물들을 사냥하여 멸종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설명한다.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약 12,700년 전에 이미 남아메리카 칠레 인근에 정착했다. 이들은 일정한 장소에 집을 짓고 2030인씩 무리를 지어 살았으며 별도로 분리된 침실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스토돈을 사냥하여 그 가죽으로 오두막을 덮고 바닥에 깔기도 하였다. 한편 사냥하고 채집도 하였지만 토착 식물인 야생 감자와 다른 곡식들뿐만 아니라 향정신성 식물까지 재배했다.

9,500년 전 오레곤의 케너윅 부근에 살았던 케너윅 인몽골로이드 피가 섞인 코카소이드인 아이누(Ainu) 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약 10,000년 전부터 약 1000년 동안 시베리아 동북부계의 몽골로이드베링해협을 건너는 등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와 이미 이주해 살고 있던 인류와 충돌을 일으켜 이들을 대체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9,000년 전 이후의 아메리카 인디언은 기본적으로 모두 몽골로이드이며 이들을 아메린드(Amerind)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아메리카의 호모사피언스2만 여년에 불과하므로 사실 큰 틀에서 고인류 대열에서는 제외하기도 한다.

 

유럽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

그동안 서양학계의 주류유럽의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이 전세계의 지구인의 선조라는 것을 명제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에 의하면 각 대륙에서 현생인류가 진화하였는데 이들이 수많은 고인류의 유전자를 받으면서 현대인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이들에 대한 모든 의문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각 지역에서 진화한 현대인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 수 있는가는 아직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그동안 주류로 인식된 유럽의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설명한다. 학자들은 크로마뇽인이 전세계 현대인의 선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유럽인의 선조라 부르는데는 문제점이 없다고 설명한다.

50,000년 전 서아시아의 기후는 현재와 판이하게 달라 사막은 비옥한 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약 30,000년 동안 예멘에 정착했던 인류 중 일부는 사냥감이 북쪽으로 이동하자 그 뒤를 따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진출했다. 또한 일부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등으로 이동했는데 이들은 사자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유럽은 많은 지역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비옥한 식물대는 오늘날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다. 그러다가 25,000년 전 지구는 더욱 추워져 북서 유럽과 알프스를 포함하여 육지 면적의 약 1/3이 얼음으로 덮였다.

빙하기는 약 18,000년 전에 정점을 찍으며, 어떤 곳은 얼음의 두께가 3킬로미터에 달했고,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0미터나 낮아 오늘날의 대륙붕은 대부분 육지였다. 15,000년 전 지구의 기온이 다시 상승해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 대륙붕들이 다시 물에 잠겼고 황량하던 사막지역에서도 다시 숲이 무성해졌고 잠시 동안의 한냉기를 거쳐 약 12,000년 전부터 인간과 동물들이 살기 좋은 지대가 되었다.

현생 인류는 이러한 변화무쌍한 기후에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생존했는데 크로마뇽인네안데르탈인에 비해 너무나 엄청난 비약을 했다. 평균 신장이 약 180센티미터로 현대인보다 조금 컸다. 크로마뇽인들이 남긴 유물을 봐도 네안데르탈인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활과 화살, , 고래 잡는 작살, 바늘, 재단된 바지와 몸에 딱 붙는 짧은 상의, 칼라 달린 셔츠와 커프스 된 소매 등이 발견되었다.

크로마뇽인들이 창을 사용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이들은 가늘고 긴 길이 35.5센티미터의 좁고 긴 창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의 가장자리는 대단히 날카로운 날을 가졌는데 그 끝이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원형으로 만들었다. 던지는 창은 사냥꾼이 순전히 팔로만 던지는 것보다 30미터 이상을 더 던질 수 있다. 특히 후대에 아틀라틀(Atlatl)이라 불리는 창 발사 기구를 사용했는데 이를 사용하면 창을 두 배 이상 멀리 던질 수 있으므로 원거리 사냥이 가능하다. 이는 무서운 동물에게 접근할 필요 없이 사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머드와 같이 거물도 인간이 둘러싸서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진전은 이다.

일반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활의 사용은 기원전 20,00030,000년 전 사이의 크로마뇽인으로 생각한다. 창 대신 활(화살)을 사용한다는 것은 창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냥꾼이 훨씬 더 먼 거리에서 사냥감과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석기 시대에는 활과 화살로 야생 수돼지뿐만 아니라 붉은사슴과 노루도 사냥했다. 그들은 작은 부싯돌 조각이나 식물의 가시를 뾰족한 끝에 붙여 화살을 예리하게 만들곤 했다. 화살의 재료는 서중부 유럽의 경우 대부분 느릅나무로 만들었고 길이는 1.51.0미터였다.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의 동굴 벽에도 사냥 장비로 활과 화살을 사용하고 있다.

이 당시 사람들의 지식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우크라이나의 메즈히리치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4채의 집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유적이 지어진 시기는 14,000년 전경으로 매머드의 뼈와 송곳니로 집을 지었다. 그런데 이 집들을 짓기 위해 집의 토대에만 100마리가 넘는 매머드의 턱뼈를 사용했다는 점이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또한 함께 발견된 몇 개의 구덩이들은 육류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냉동실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아르마딜로(아메리카에 거주했던 대형 동물)를 죽인 다음 껍질을 벗겨 내어 은신처의 바람막이로 이용한 곳도 있다. 뿐만 아니라 크로마뇽인들은 남쪽 방향으로 집을 지어 태양열을 이용하는 지혜도 갖고 있었다. 평균 수명도 네안데르탈인의 45에 비해 더 오래 살았고 몇몇 크로마뇽인들은 6065까지 살았다.

프랑스 오리냐크 부근에 살던 인류는 중앙에 구멍이 난 뼈로 장식용 원반을 만들었고 동물의 뼈로 플루트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남부인 랑드 지방의 호모 사피언스사피언스들은 곰과 동굴사자 이빨에 물고기, 물개, 말 등의 동물 모양 무늬를 만들어 넣고 구멍을 뚫어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그리말디인은 소라 장식이 붙은 모피 모자를 썼으며 뼈로 단검을 만들고 뼈와 돌로 만든 팔찌를 착용했는데 이들을 크로마뇽인으로 부르고 코카소이드백인종의 직접 조상이 된다.

유럽과 중동의 크로마뇽인으로 한정하여 이들이 유럽 현대인의 직접적인 선조로 인정한다면 이들이 어떻게 원시인의 틀에서 벗어나 현대인이 갖고 있는 지적 수준에 이르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작업이 단순한 것은 아니다. 동물 수준의 원시적인 의식 속에서 머무르던 인류가 언제 이 모호한 안개 속을 헤치고 나와서 문제 해결 능력과 예술적인 창조력을 발휘하고 의식을 행하며 무한한 기술력을 창안하게 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질문에 대한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빙하시대 후기인 13만 년 전 이후 어느 시점에서 그런 도약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