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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49) : 라스코 동굴 벽화(3)

Que sais 2021. 2. 1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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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에 따라 다른 벽화 제작>

동굴벽화는 크게 채색화와 선을 새겨서 그린 그라뷔르(gravure, 선각)'가 대종을 이루지만 이를 혼용한 것도 있다. 라스코 동굴에서는 채색화의 대부분이 황소의 방정면의 복도 아케이드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들 벽이 지하수로부터 적출된 방해석(方解石)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벽면은 흰색이며 단단하다.

방해석은 겉보기에는 치밀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구멍이 있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리면 이 구멍으로 물감이 스며들어 고정된다. 라스코 동굴의 채색화15천 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나타나는 이유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른쪽 측랑은 방해석층이 아니라 부드러운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주로 선각을 그렸다. 그곳에는 무려 1500개 정도의 형상선각으로 그려져 있.

벽화가 있는 곳은 어떤 빛도 밖에서 들어오지 않으므로, 실내를 밝혀주는 빛이 필수적이다. 발굴 당시 10센티미터 정도의 등잔 백 수십 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오목한 돌 조각으로 약간 가공되었거나 전혀 가공되지 않은 것이다.

등잔에 있는 재를 조사한 결과 노간주나무의 가지였다. 오목한 곳에 동물의 지방에 작은 나뭇가지의 심을 넣고 점화용으로 마른 풀에 불을 붙였다. 실험 결과 50그램의 지방 덩어리한 시간 가량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이런 등잔 몇 개면 상당히 밝으므로 그림을 그리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마제석기로 분류될 수 있는 사암으로 된 등잔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비슷한 등잔이 근처의 라 무트 동굴마들렌 층에서도 발견되었는데 마제석기가 널리 실용화 된 것은 훨씬 후대인 신석기 시대부터다.

유럽에서 신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7000년 정도로 추정하므로 이들 등잔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구석기 시대에도 마제석기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질 좋은 등잔의식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동굴 안에서 벽화를 그리기 위한 조명으로 항상 등잔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동굴 안에서 상당량의 재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횃불도 많이 사용했다고 본다.

채색화를 그릴 때 사용된 물감은 주로 검정빨강황토 등 세 가지 색이다. 검정색산화망간, 빨간색산화철, 황토색황색 점토가 주성분이다.

특히 벽화에 사용된 붉은색과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은 그림의 생동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들 색들은 다름 아닌 과 그 외 다양한 금속 물질들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인류는 다양한 물질을 이용해 벽화를 그렸는데 철의 산화물을 이용해 붉은색이나 노란색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동물의 뼈나 식물을 태워 그 재로 검정색, 망간의 산화물로 짙은 푸른색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산화된 철로부터 색을 얻는 방법현재붉은색 안료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다양한 금속을 이용해 안료가 만들어지는데 크롬산납이나 크롬산아연으로부터 오렌지색 안료, 산화크롬과 수산화크롬에서 녹색 안료, 망간을 이용해 보라색 안료를 만든다.

더불어 라스코동굴 벽화의 놀라운 점은 자연에서 얻은 원료를 지혜롭게 활용한 것은 물론, 동굴 내부의 튀어나온 곳뿔로 표현하는 등 자연의 지형도 그림에 활용했다. 당대 화가의 재주에 놀랄 뿐이다.

여하튼 이곳에서 사용된 색은 자연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가장 잘 견디는 견고한 색소임을 감안할 때 크로마뇽인들이 수천 년간의 경험을 통해 가장 좋은 색소가 어떤 것인가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색하는 도구로는 분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원료를 갈아서 가루를 만들고, 돌 조각 위에 응고시켜 만든 것이다. 채색하는데 사용된 팔레트도 발견되었다. 그것은 등잔과 같은 모습의 가운데가 파인 석회암 조각으로 둘의 형태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상황에 따라 등잔 또는 팔레트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감을 응고시킬 때 결합제동물의 지방 같은 것을 혼합했다고 생각했지만 실험에 의하면 그런 혼합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동굴 내에 흐르고 있는 탄산칼슘이 많이 포함된 물로 응고시켰다. 크로마뇽인들은 자신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학자들이 동굴벽화를 보고 놀란 것은 채색화를 그릴 때 동물의 윤곽은 분필 혹은 붓을 사용해서 단숨에 그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철이 있는 벽면을 단숨에 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화를 그릴 때 두 번 다시 가필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동굴 벽화를 그린 화가도 이와 같이 숙련된 거장이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필치로 그린 것이다. 학자들에 따라 크로마뇽 시대에도 벽화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장인이 별도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실험에 의하면 분필을 사용한 것보다는 나무나 대나무 끝을 다듬어 만든 단단한 붓을 사용하는 편이 물감을 칠하는데 좋다고 한다.

동물의 각 부분에는 여러 가지 기법이 사용되었다. 황소의 방에 그려진 황소거친 점으로 강렬한 성격을 표현했고 솜방망이를 이용해서 피부를 표현했다. 바림(gradation)' 기법도 이용되었다. 바림 기법이란 입에 물감을 머금고 있다가 대롱으로 혹은 직접 부는 것으로 이런 기법은 라스코 동굴보다 더 오래된 그라베르 문화시대에도 사용되었다. 바림 기법은 물에 녹인 물감보다는 분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말갈기바람에 날리는 모양깃털을 묶은 붓으로 그렸다고 추측한다. 또한 황소를 보다 섬세하게 그리기 위해 신체를 검게 칠한 다음, 윤곽을 새롭게 가느다란 선으로 새겨서 윤곽인 검은 바탕에 하얗게 떠오르게 했다.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라스코 동굴의 화가들이 동물을 삼차원 입체로 표현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브뢰이 신부반 비틀림 화법이라고 부를 정도로 독특한 방법이다.

동물의 신체완전 측면에서 보고 그리지만, 소의 뿔(말의 경우 귀)이나 앞발비스듬한 앞의 각도에서 보고 그리며, 뒷발은 경우에 따라 비스듬한 앞 혹은 비스듬한 뒤의 각도에서 본 것처럼 그리는 방법이다.

황소의 눈은 크게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말의 눈은 빠른 움직임 때문에 얼굴이 흐려져 정확하지 않으며 갈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몸 전체의 선이 물결을 타고 약동하고 있고 앞발과 뒷발은 각각의 순간을 포착하여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의 애니메이션(dessin animation)에서 자주 보이므로 요코야마 유지는 이들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굴 벽화를 두 가지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추정한다. 첫째는 주술 용도이고 두 번째는 사냥시 요행을 바랬다는 것이다.

우선 벽화에 묘사된 동물의 형상토템으로서 아마도 그 형상들이 상징하는 힘과 속성일체감을 느끼는 집단이나 부족에 의해 의식이 진행되는 중에 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들소나 코뿔소들은 인간보다 힘이 세고 위험하므로 동물들의 힘을 억누르거나 줄이기 위해 사냥에 앞서 뭔가 주술적인 행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현대에도 종종 볼 수 있다. 독일의 인류학자 프로베니우스1905아프리카를 탐험했을 때의 일이다. 예비 식량이 바닥나자 안내원인 피그미족에게 영양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피그미족은 수렵이 주업이라 영양 한 마리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피그미족은 오늘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다음 날 사냥을 하자고 거절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피그미족은 새벽에 적당한 장소를 잡고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먼저 주문을 외면서 집게손가락으로 영양의 그림을 그린 다음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침 햇살이 땅 위에 그려 놓은 그림 위에 비치자 영양의 그림을 향해 활을 쏜 다음에야 사냥에 나섰다.

두 번째는 사냥꾼들이 사냥물을 많이 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나 묘사된 동물이 더 많이 나타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문제는 식량 확보와 자손 번성이다. 식량은 이들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며 자손 번식종족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수렵인들이 식량을 확보하려면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해야 한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사냥할 동물의 번식을 기원하기 위해 동물의 새끼 밴 모습이나 교미 장면, 또는 성기를 과장해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순록(馴鹿)이 무수히 번식하고 있음에도 많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은 순록사냥하는 데 별로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자나 이리 따위의 맹수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은 이들 맹수는 결코 사냥의 대상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 맹수는 인간이 동물들을 사냥하는데 공격해오는 위험 동물이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사냥할 때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길 기원했다. 이 경우 동물들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동물들이 사냥의 대상이기도 하며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바위그림이 있는 곳이 바로 신앙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장소였다고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