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래?(한국불가사의)/한국인과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50) : 라스코 동굴 벽화(4)

Que sais 2021. 2. 1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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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입은 크로마뇽인>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다른 동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그림이 있다. 바로 크로마뇽인의 그림이다. 한 남자가 창에 찔려 창자가 쏟아져 나와, 들소 옆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뒤로 벌렁 누워있고,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가 옆에 있다. 들소에게 치명상을 주기는 했지만, 자신도 역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상황이다.

프랑소와 보르드 교수는 이 장면에 대한 해석을 두 개의 가설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이 그림은 하나의 공상과학소설과 유사하다. 토템으로 삼은 사람이 들소사냥 도중에 죽었을 때 코뿔소 토템을 가진 그의 친구들이 이 동굴에 와서 친구의 죽음과 친구를 대신한 복수하는 장면을 그렸다. 들소창과 화살을 맞았고 아마도 코뿔소의 뿔에 받힌 듯 창자가 터져 나왔다.”

 

브뢰이 신부는 처음에 수렵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해석했다. 이어서 미개 민족에게서 잘 보이는 수렵의 모의 댄스(gesture dance)'와 유사한 수렵 마술의 의식이 최고조에 달해 황홀 상태에 빠진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가 앉아 있는 막대기는 토템이며 그 는 넘어져 있는 사냥꾼 수호신이라고 했다. 당시에 투창기의 장식에 많이 이용되었으므로 역시 수렵의 마술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새로 변신해서 공중을 나는 능력이 있다는 시베리아의 샤먼을 근거로 새의 머리를 한 사람을 샤먼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려진 이 장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라스코 동굴의 최대 미스터리.

그들은 짐승을 실제와 꼭 닮게 그렸다. 이 시대의 기본 생활 수단수렵과 채취였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연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짐승들의 동작과 습관을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고, 짐승들을 재빠르게 죽일 수 있는 용기와 기술을 익혀야 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리 중에 그림을 제법 잘 그리는 사람이 동굴에 남아 짐승들을 그림으로써 동료들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을 것이다.

고대 인류에게 있어서 들짐승들은 사냥의 대상인 동시에 신비스러운 동물이었다. 그 당시에 인간의 존재 가치는 오히려 동물보다 낮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동물들이 있어야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틀림없이 동물을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인간은 동물이 갖지 못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고 동물의 습성을 파악하여 손쉽게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양식과 필수품을 얻을 수 있게 되자, 고대 인류는 원시적 용맹성자연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대신 합리적 사고를 갖게 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동물들을 용맹스럽게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으로 사육하는 묘수를 발견하는 것이다.

가축을 사육하면서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주술적인 의미의 그림은 필요 없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고대 인류가 지녔던 그림 솜씨를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크로마뇽인의 그림 솜씨를 되찾게 된 것은 고대 인류가 동굴 그림을 그린 지 적어도 몇 천 년 후의 일이다.

한편 인간의 예술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2001 이탈리아 북서부 보르조나스카 지방에서 고고학자 피에트로 가이에토 박사가 발견사람얼굴 형상의 조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0만 년 전에 생존했던 호모엘렉투스에 의해 조각된 것이라고 주장되는 이 암석은 암석의 한쪽은 턱수염이 있는 얼굴, 반대쪽은 턱수염이 없는 얼굴로 깎아냈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일반 고고학자들은 호모엘렉투스 같은 원시 인류가 예술에 필요한 기호나 상징을 생각해낼 수 없다며 단순한 지질학적 우연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인간이 그린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을 앞에서 설명한 블롬버스에서 발견된 7만 년 전의 골각기로 추정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290킬로미터 떨어진 블로보스 동굴에서 인간이 그린 추상화가 그 주인공이다. 이 추상화는 철광석의 일종인 오커(ocher)’의 표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균등한 간격으로 대각선 여러 개를 긋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대각선을 그어 마름모꼴과 삼각형을 표현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증거로 인류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추상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고 추측한다.

 

<쇼베동굴 벽화>

199412에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발견이 있었다. 장 마리 쇼베(Jean Marie Chauvet)와 두 친구는 프랑스 아르데슈 지역의 동굴을 답사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동굴벽화가 그려진 25개의 동굴이 발견되었으나 라스코 동굴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비하여 특이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쇼베 일행은 이들 지역을 탐사하면서 잡석 무더기가 있어 이들을 치우자 언덕 속으로 향하는 좁은 통로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벽에 붉은색의 사람 손자국을 발견하고 따라 들어갔는데 동굴 내에 , 사자, 들소, 코뿔소, 매머드 등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채색된 것도 있으며 진흙 벽에 새겨진그림도 있었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미술의 발전을 논할 때의 기본은 선으로 대충 그려놓은 원시 단계에서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묘사를 하는 단계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쇼베 벽화들은 원근법까지 제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 이들 벽화를 조사한 학자들은 이 벽화의 연대를 뒤에 설명하는 프랑스의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등 다른 유명한 동굴 벽화와 같은 빙하시대 후기14천 년 전에서 17천 년 전 사이로 추정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이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말이나 들소처럼 인간들이 사냥하던 동물들이 대부분 차지하는데 반하여 쇼베 벽화에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동물들이 현저히 많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들의 의심은 옳았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쇼베 동굴 벽화를 측정한 결과 가장 오래 된 그림의 연대는 무려 32410720이었다. 이를 실제 연대로 환산하면 약 35천 년 전경이 된다. 20세기 고고학 사상 최대의 발견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 작품이 오리냐시안 시기32천 년 전의 작품으로 밝혀지면서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와 다른 해석이 가해졌다. 이 벽화는 위협적인 동물들에게 원초적인 공포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렸다는 것이다.

고대 인류에게 들짐승들은 사냥의 대상인 동시에 신비스러운 동물이다. 그 당시에 인간의 존재 가치는 오히려 동물보다 낮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동물들이 있어야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동물을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위협적인 동물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들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들에 대한 공포심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한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라스코 동굴을 설명할 때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쇼베 동굴은 사람이 거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선사시대인들도 지하에 있는 이 성역의 힘을 체험하러 이곳을 찾았을 뿐이다. 그러다가 입구 위쪽 절벽의 일부가 붕괴되면서 동굴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외부와 단절되었다. 또한 동굴1년 내내 13.5도의 기온99퍼센트의 습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벽화가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쇼베 동굴에서 특이한 것은 손바닥에 안료를 묻혀 92개의 자국을 찍어 놓았는데 학자들은 들소나 코뿔소를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컴퓨터로 손의 위치를 재구성한 결과 키가 175센티미터 정도 되는 사람이 선 자세로 오른손에 안료를 묻혀 벽에 찍는 식으로 그림을 완성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으로 직접 찍는 이런 독창적인 기법은 그린 사람과 대상 간의 강한 유대를 상징한다장 클로트 박사는 설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벽 표면을 덮고 있는 진흙을 긁어내 하얀 석회암이 드러내게 한 것이다. 갈기를 곤두세우고 바짝 긴장한 말 한 마리가 6미터 길이의 긁어내어 그린 그림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석기시대인들에게 은 탈것이 아니라 식용이었으므로 그림 소재로 많이 등장한 모델이다. 그러나 쇼베 동굴에서 보이는 매머드, 코뿔소, 동굴곰, 동굴사자 등 위험한 짐승들은 사냥감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뉴브강 계곡에 있는 포겔헤르트 동굴에서 발견된 1931, 상아로 만든 작은 조각상들의 년대가 쇼베 동굴 그림과 같이 무려 32천 년 전경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길이가 몇 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조각상인데도 그물무늬는 물론 십자 표시도 새겨져 있었고 양 옆을 매끄럽게 손질했다. 가이센클뢰슈테를레에서는 뼈피리도 발견되었다. 독일 튀빙겐대학의 닉 코나르트 교수는 이들 조각상을 만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현대인들과 같은 예술적 안목과 감각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홀레슈타인-슈타델 유적지에서 발견된 뢰벤멘슈사자인간 조각상은 기존 인류학자들의 크로마뇽인에 대한 선입견을 송두리째 벗겨내는데 기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30센티미터 크기의 이 작품은 사자의 상체와 인간의 다리가 결합되었는데 잘 알려진 이집트의 스핑크스가 서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다. 릭 고어는 이 조각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핑크스쇼베 동굴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위협적인 동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심경외심을 갖고 그린 것이다. 인간과 사자가 결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연계시켰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갓 피어나던 시절, 우리의 조상이 동물의 수준에 머물렀던 과거를 박차고 도약하는 순간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